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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수'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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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2  1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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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가 직접 나서는 일은 자제해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는 국가적으로 하고 있으니 이에 협력하기로 하고 이번 사태가 우리기독교와 교회에 어떤 영향과 교훈을 준지를 찾아 볼 때다. 아직은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공론을 먼져 시작해보려고 하는 것은 지금도 이 현상에 대한 총회나 지침들에 대한 논쟁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한 예배폐쇄나 대체에 대하여 반대하고 비판하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이런 조치들과 반대로 예배를 강행하는 것이 순교적 신앙으로 자임하며 의로움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인데 온라인 예배를 한 교회를 비난하고 자기가 하는 것만이 옳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총회가 이번 일에 대응함에 있어 직접 나서기 보다는 부서를 통하여 일을 하도록 추도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내용들이 총회 임원회나 부서 총무들과 협의와 논의를 하였는 지도 궁금하다. 먼져 총회가 중지를 모으고 해당 부서의 활성화을 위하여 활용하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  
   
 
총회는 일을 시키는 곳 되야
이번 사태에 대하여 가장 먼져 문제를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교회의 시스탬과 지도력에 대해서다. 우리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대처를 한 것은 지난 21일 “코로나19에 대한 제2차 긴급대응지침“ 에서다. 이 지침에서 68개 노회와 9190개 교회에게 이것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느낌은 마치 대형교회들의 주일 모이는 예배 변형에 면죄부를 주는 식의 조처라는 비판이다. 언제 부터 그렇게 총회가 지 교회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볼멘소리다. 

총회장의 1차 지침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알 수 없어 2, 3차 지침에 대한 문제만 본다. 2차 지침의 골자는 초기 2주간 대응이 중요하니 지역교회 성도들과 주민의 안전 및 건강을 위해 오는 3월 5일까지 “주일예배 외의 활동에 대해서는 일시 중단하거나 자제“ 하라는 것이다(소 모임이나 성가대, 식사등) 그러나 여기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 문제다. 그 결과 충청노회는  "총회의 주일예배 자제 요청" 이라고 표기하여 마치 총회가 주일예배를 안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이후 5일만에 다시 3차 지침을 발표하기에 이르는데 총회 대변인실(총회 서기와 사무총장)이 직접 발표한다. 골자는 지난 2차에서는 '제한' 혹은 권면에서 이번에는 '중지'로 전환한 것이다. 이미 뉴스에 난 대로 대구지역 교회들과 새문안, 소망, 온누리, 주안교회 등 일부 대형교회들의 교회 출입을 통제도 나왔고 국가적으로도 셧다운을 하라고 했으니 위험 요인을 방지하기 위해 공간 페쇄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확진자가 없는 교회들 까지 미리 나선 것에 대한 비판론이다.

총회 대응에 안해도 되는 얘기는 신천지에 대하여 모임 장소 공개, 교주 이만희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는 거기서 할말은 아니다. 전국 교회를 향하여 지침을 하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들에게 신천지와 기성교단들을 구별해 달라는 소린데 그건 한교총가서 할 소리다.  국난극복이 우선임에도 밖에서 보기에는 교파경쟁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신천지는 이미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었음에도 이단이라고 해서 범죄집단화에 앞서는 것은 주의해야 했다. 
   
 
주일예배 대체에 대한 논란 
교회로써 가장 먼져 주일 예배를 중지한 곳은 명륜교회(합동)다. 지 교회가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예배를 폐하는 것에 대한 심각성은 인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후에 확진자가 없음에도 전염과 안전을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주일예배 대체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건 너무 발빠른 일인데 한국교회가 그동안 가르쳐온 주일성수의 개념이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예배는 어디서 드려도 무방하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대형교회로는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가 가장 먼져 모이는 주일예배 대체를 선언했다. 이후 주로 우리교단의 대형교회들인 영락, 소망, 명성등도 가세한다. 명성교회는 한 부목사가 청도병원에 문상차 다녀온 것이 밝혀지고 확진자로 지목되여 교회폐쇄 조치가 된다. 그렇게 되면서 주일예배 셧다운(폐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찬반여론이 일기 시작한다(최종 결과는 음성판정)

교회 폐쇄라는 말이 나온 뒤 부터는 비판들이 나온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태가 난 것인데 대체의 수단을 갖고 있는 교회들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치 못한 교회들로는 난감함을 느낀다. 그 외 대체 방식이나 기술등의 문제가 나오지만 일부 교인들도 모이는 예배 포기는 배교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데 그동안 교회가 가르쳐온 것과 괴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목소리들도 귀하다.
이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평가와 고민들은 앞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 까지 드러난 문제을 논의의 공론을 위하여 문제를 제기해 본다. 이 문제에 대한 각 교단들의 대책을 보면 고신교단은 교단 신학위원회 요청으로 고신대 교수들이 헙동측은 총신대가 그리고 합신에서는 문제가 되는 예배에 대한 신학적 목회적 해석과 예배대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교단은 영신대 김동건, 김명실 교수가 현 사태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신학적 목회적 권고문을 내기에 이른다. 그 외 목회자들은 주일예배 변경 혹은 대체에 대한 찬성과 반대외에도 대체 방식이나 기술에 대한 문제들이 주로 나온다. 이어 교회에서의 주일성수에 대한 자부으로 순교를 각오하고 사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 보인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UCLA 옥성득 교수가 한국교회사 자료를 근거로 예배중단은 처음 아니다. 라며 환경과 조건에 맞춰서 예배등의 변형이나 조치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견해를 소개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목회자들도 주일성수는 꼭 교회라는 것은 아니고 국가 시책과 모두가 살기위한 방안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에 우리교단 두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김명실 교수(영신대) 2월 22일(토)

존경하는 모든 목사님들께,

예배학자로서 주일예배 외에는 모든 모임을 삼가하라는 총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발표는 너무도 적절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저는 코로나 19가 발생했을 때부터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는 주일예배도 잠정적으로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만 사실상 시골이 아닌 이상 전국의 교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일 수록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주일성수" 개념으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고, 충실한 그리스도인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주일만큼은 반드시 실제 공간에서 예배드려야한다는 생각이 우리들 다수의 생각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조치가 매우 당혹스러울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전국 신천지 교회의 폐쇄는 오히려 기존교회의 위험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수영로 교회(합동)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교회의 문을 닫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는데, 조금 과할 수 있어도 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 가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배학자로서 지난 몇 주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안하기 전에, 한국예배학회에 온라인 예배도 상황에 따라 충분히 가능한 예배라는 것을 알리며 범교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배관련 지침을 주자고 하였으나, 당분간 지켜보자는 입장들이어서 지금껏 나오지 않았고, 또 안정세에 들어서는 것 같아 저도 안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상황악화에 이제는 개인적으로나마 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토요일 밤에 몇 자 올립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종교와 전염병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종교집회 후에 크고 작은 전염병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전염병들이 종교집회를 통해 확산되기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전염병으로 인해 기독교 예배의 관행들이 바뀐 것들이 있습니다. 중세 때 성찬집기를 은그릇으로 사용한 것은 소독 때문이었습니다. 근.현대가 은그릇을 사용한 중세를 화려하다고 비판하지만, 그것들 위생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중세 로마 가톨릭이 성찬집기를 목기로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기까지 한 것은 나무에 곰팡이와 각종 세균들이 묻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정교회, 로마 가톨릭, 성공회 등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공기 중에 있는 세균들이나 예배집기에 있는 세균들을 없애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식에서 향을 피웠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항균, 멸균 기능이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항균.멸균이라고 하면 예배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구약의 개념, 즉 제사를 드리는 것과 연결하여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이처럼 기독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종교집회는 언제나 전염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예배학자로서 제가 제안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일예배까지도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이 주일성수 개념을 훼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해시에 바벨론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고, 숨어서 가정이나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상황에서는 주일예배를 가정예배에 맡기기만 한다면 영적으로나 그리고 신앙공동체의 결속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구역장과 권찰들의 지도하에 2-3 가정이 함께 예배 드리고 설교나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 정도만 교회가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헌금은 영적으로나 하나님의 교회의 지속을 위해 매우 중요한 예배의 한 요소이니, 권찰과 구역장의 지도하에 각 예배모임들에서 헌금순서를 갖고, 그것을 모아 권찰과 구역장들이 바로 교회로 전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십부장, 백부장, 천부장 중에 "십부장"에게 가장 큰 지도력을 부여해야할 때입니다.

2) 만일 주일예배를 반드시 실제공간에서 드려야한다는 입장이라면, 오후예배나 행사를 없애는 대신 예배의 횟수를 늘려 예배자가 보다 넉넉한 공간을(예배자 상호간 좌우앞뒤 1미터 정도 떨어져 앉을 수 있도록)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장의자인 경우에는 한 줄씩 건너뛰어 앉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배공간의 소독은 물론이지만, 예배진행자들의 예복이나 기타 예배집기들을 철저히 소독하셔야 합니다. 또한 당분간 성찬예식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사순절이 시작되지만, 가능하면 특별한 의식들은 삼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곧 사순절의 첫날, 재의 수요일이 다가옵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이 날에 재의 수요일 의식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권장했던 의식이지만, 올해는 생략 또는 축소하시면 좋겠습니다.
목회자와 회중, 혹은 회중 상호간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해야하는 순서들을 축약 혹은 생략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회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예배드릴 수 있는 분위기를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형 찬양대는 소형 중창그룹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주일학교 지도자들은 부모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제공해주고, 설교는 10여분 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 카톡 등을 통해 부모에게 배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 혼자 나오는 경우에는 예배 전체를 간단히 편집하여 보내주고, 그 동영상 후에 어린이들에게 전화나 SNS 등으로 연락하여 예배에 대한 응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은 그들과 함께 의논하여 적절한 매체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역시 SNS 를 통해 활발한 응답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4) 교회의 지도자들과 중직자들은 여러 경로들을 통해 교인들과의 소통에 더 힘을 쏟아야합니다. 특별히 연로하신 분들이나 환자들, 혹은 경미한 감기 등으로 예배에 불참하신 분들을,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섬세하게 위로하고 돌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심방은 최소화해야겠지만, 이분들을 돌보는 일은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겠습니다.

이미, 이렇게 결정하시고 실행하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고, 이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로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계시는 목사님들이 많으시라 믿습니다. 다만 예배학자로서 온라인 예배에 대한 저의 생각을 듣고 감사하다는 몇 몇 목사님들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용기를 내어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지금 현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긴장감 속에 계신 목사님들에게 책상에 앉아 이렇게 몇 마디 올리는 것 조차도 너무나 송구스럽고 민망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 힘내십시요! 저는 오늘 내일 한국교회를 위해 밤을 지세워 기도하겠습니다.

만일 공감이 되신다면, 이 글을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신도들도 함께 공감할 때 우리가 더 슬기롭게 문제를 이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평안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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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교수(영신대) 2월 25일(화)

온라인 주일 예배에 대해/ 생명 살림과 배려의 마음이 필요할 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를 ‘모여서’ 드리지 않아도 되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죄인 된’ 심정이라면서 비통해하기도 한다. 오늘은 대중예배를 일시적으로 폐하는 것에 대해 얼마의 기준을 생각해본다.

만약 대중예배를 유보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라면 예수님의 뜻에 부합한다. 한편 대중예배의 강행이 자신의 확신과 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즉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의를 추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1.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율법은 삶의 가장 중요한 근거였다. 문제는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랍비들에게 전승되어 온 할라카(Halakah)에 의해 해석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석했다.
‘하나님의 뜻’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예수님은 율법해석이 ‘생명’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면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떤 율법해석이 사람을 억압하고 생명을 왜곡할 때는 거부했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논쟁은 예수님에게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문제였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쳤다.(막 3:1-6) 예수님이 구경꾼들에게 물었다.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무엇이 옳으냐? 예수님은 곧 이어 다시 물었다.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당시 안식일 규례는 율법의 준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에 속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 살림을 안식일법의 형식적 준수보다 위에 두셨다.

지금 일부 개신교와 가톨릭교회가 대중예배와 집회를 일시적으로 폐하는 이유가, 코로나19에 의해 사람이 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일반 시민과 공공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한 대중예배를 ‘모여서’ 드리는 것을 피하면서, 가정에서 혹은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므로, 예배를 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 초기의 박해 시대 혹은 기독교 탄압으로 행해지던 교회 폐쇄와는 다르다. 만약 공권력에 의해 주일예배가 금해진다면, 당연히 목회자와 신자들은 결연히 이에 맞서야 할 것이다.

2. 대중예배의 폐쇄를 일괄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개신교 교회는 숫자가 많고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대중예배를 유보할지, 최소화해서 드릴지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도시지역인지, 이동인구가 많은 곳인지. 노약자가 많은 곳인지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대중예배를 드리게 되든 유보하게 되든, 이웃 교회에 대해서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바울은 할례여부, 터부시 되던 음식에 대한 태도, 종교적 예식에 대해, 가장 중요한 기준을 형제에 대한 배려(롬 14장)에서 찾았다. 지금처럼 혼란하고 힘든 시기에는, 비판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3. 바리새인은 결코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요 율법의 조항을 잘 지키는 자들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바리새인은 율례를 지키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의 공적을 내세웠다. 의(義)의 중심에 자신이 있었다. 바리새적인 의(義)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2, 5, 16)

지금 광화문에서 대중 집회를 강행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스스로 교회를 수호하고, 순교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개탄한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혼란스러워 한다. 대중들의 무분별과 무관심보다 더 나쁜 것은, 책임 있는 자들과 종교인들의 잘못된 자기 확신(self assurance)이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지금껏 대구에서 살고 있다. 혼란의 시기에, 대구에서, 대구 시민들과 함께, 대구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주님께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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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 예배에 대한 고신, 총신, 합신에서의 입장(요약) .

합신 총회(총회장 문수석 목사) 신학연구위원회의 ‘신학적·목회적 제안’(28일) 

“공예배는 반드시 드려야 한다”며 “주일에 드리는 공예배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에 걸쳐 신자들에게 명하신 절대적·도덕적이고 영구적인 계명이며, 세상 끝날까지 계속 지켜야 할 명령(출 20:8; 사 56: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7절)”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명령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 지키기로 서약한 의무(출 24:6-7)”라며 “따라서 각 지교회는 주일에 한 자리에 모여 성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사 56:6; 행 2:42; 히 10: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6절)”고 말했다.

둘째로 “전염병의 상황을 고려해 공예배를 드려야 한다”며 “공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신자가 서약한 의무이다. 전염병 상황이 심각할 경우, 주일 공예배를 드리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셋째로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공예배를 드리는 현장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지교회는 공예배를 유지하기에 힘을 다해야 하지만, 지교회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공예배가 드려지는 현장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넷째로 “공예배 현장 출석을 제한하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며 “지교회는 전염병 감염으로부터 신자를 보호하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섯째로 “전염병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 흩어진 처소에서 드리는 공예배의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여섯째로 “지교회는 전염병으로 출석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현장의 공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교회가 마련할 수 있는 방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영상을 이용하는 방편이며, 다른 하나는 설교를 포함한 예배문을 이용하는 방편”이라고 소개했다.

일곱째, “모든 교인들은 현장의 공예배에 참석해 예배하기를 사모하며 기회를 간구해야 한다”며 “속히 사태가 진정돼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면해 교제하기를 사모하고, 그리스도의 한 몸인 언약 백성으로 모여 하나님을 만나는 큰 기쁨을 고대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덟째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의 교훈을 상기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소망해야 한다”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가 보건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적·정치적으로 초래하는 혼란을 직시하면서, 모든 신자는 이 세상이 죄 아래 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진리를 각성하도록 상기할 필요가 있다(롬 8:21-22; 엡 2:2; 딤후 3:1-5)”고 했다.

마지막으로 “재난의 때에 지교회는 정부의 지침을 존중히 여기며,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의 실천을 격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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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위원회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의 주일예배 형식에 대한 제언’(28일)

요약하면 이번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사안에 따라 당회 결정으로, 다른 형태의 예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예배당을 통해 전염병이 확산될 우려가 있는 경우, 공동체적 모임을 당회의 결정과 감독에 따라 다른 형태로 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째는 ‘신학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가정은 초대교회 예배 장소이기도 했기에,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성경적 근거에 기초한 가장 본래적인 예배 형태(행 2:46; 5:42; 12;12; 롬 16:15; 몬 1:2)”라며 “두세 사람이 모였어도 참된 신자들의 모임이다(마 18:20).

둘째로 ‘실천적 고려’도 필요하다.
첫째로 ‘각 교회는 당회의 논의 혹은 그에 준하는 총회가 정한 방식을 통해 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정부의 권고나 여론의 동향에 기초한 결정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과 교단 헌법의 원칙에 기초한 신학적·목회적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예배당에서의 예배가 힘든 경우라면, 가정 예배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예배모범 15장). 가정예배는 공예배의 확장이자 구체적 실천 장소이지만, 영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교제라는 예배신학적 측면에서 임시적·보충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가정에서 혹은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이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릴 수 있도록 목양적 인도를 해야 한다.

넷째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예배당에서 드리는 공중 예배로 즉시 당연히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마주하며, 우리는 그 동안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었음에 대해 깊이 감사하며, 이 상황을 바른 예배의 정신과 실천을 향한 예배 갱신의 기회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지역 사회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그러할 때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단의 훼방을 물리치고, 지역사회에 전도의 문을 열어가는 길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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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1.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성도들 가운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들이 생겨나면서, 급기야 주일예배를 취소하고 온라인 예배 등과 같은 대체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16일 주일부터 일부 교회들이 이미 인터넷을 통한 예배를 시행하면서 한편으로 이 현상이 주일 성수와 공예배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게 된다는 우려도 생기고 있다.

2. 신앙생활에 있어서 공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도는 질병 혹은 감염의 이유로 발생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으로는 모여 예배하는 것을 더욱 사모해야 하며 혹여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3. 공예배가 지극히 중요하지만, 우리 신앙고백서가 가르치고 있듯이 공예배를 절대화시키는 위험에 빠져서도 안 된다. 무지와 미신에 빠져있었던 중세 시대의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고 예배당으로 몰려들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염병을 더욱 확산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비록 칼빈이나 루터와 같은 위대한 목회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아있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였지만 성도들이 예배당을 떠나 피신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았다.

4. 교회가 추가 감염을 예방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성도들을 일정기간 격리시키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레위기 11-15장의 정결법은 부정하게 된 사람이 성막과 공동체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진영 밖으로 격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회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감염병에 걸렸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성도들의 예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위의 말씀들을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성경은 신자들이 국가와 사회의 평안을 도모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성읍(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그리고 위정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렘 29:7). 세상 통치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를 위한 성도의 의무이다(딤전 2: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4). 세상의 평안을 위해 성도들은 함께 기도하고 또 시민으로서 협력해야 한다.

6.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주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공예배 외에 다른 형태의 예배를 시행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교회정치 121조 2항은 교회의 제반 예배를 주관하는 것을 당회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7. 이와 같은 전염병들은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섭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 발생을 어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삼위 하나님의 평강이 고신 총회 산하 모든 교회에 있기를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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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결

우리 총회는 다른 교단들과 비교하면 발빠르게 총회가 대응은 했다고는 보인다. 그러나 입장을 표명한 다른 교단들에 비하면 이 문제에 대한 대처를 부서나 신학자들의 참여가 아닌 총회 실무진이 직접 나선 것이 다르다. 이 문제는 우리교단만이 갖고 있는 총회 대변인 제도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간 총회의 지도자들이 너무 전면에 나서는 관행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일부 지도자들이 총회를 과잉대표하려고 하는 것과 이벤트 중심의 행정이 원인이다. .

국가로 치면 모든 일에 대통령이 나서서 말하고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책과 외교 국방등 중요하고 한정적인 분야에만 필요한 것이다. 그 외는 책임을 맡은 분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수해라면 대책본부가 질병이라면 질병관리본부가 나서면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기존에 조직된 부서들을 활성화하여 일을 시키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옛날에 김영삼 태통령이 어민 문제가 나오자 자신도 섬 출신임을 강조하고 애정도 보일 겸해서 앞으로 어민 문제는 자신이 직접 챙긴다는 발언에 언론들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어민 문제는 당시는 수산청이 관할인데 거기는 뭘하란 말이냐는 소리다. 큰 지도자가 관심은 모르나 직접 나서서 일하는 것은 월권이고  그르친다. 지도자는 격려하고 보고 받는 자리지 나서서 일하는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그렇고 언제 부터인가 총회장이 모든 부서나 모임에서의 얼굴을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닌 데 개회 설교를 한다는 소리다. 심지여 마스크 전달식에도 총회장을 불러 세웠는 데 여기는 실무진들이 나오는 자리다. 해당 위원회가 앞장서야 하는 일이다. 큰 지도자란 잘안보여야 신비감도 있고 권위도 서는 것인데  아무 때나 모든 일에 다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 불과하다. 
   
 
총회는 실행부서가 아니다. 
공교회는 기본적인 일에는 맡겨진 부서중심으로 대처를 하고 긴급한 것은 연합한 조직에서 하면 된다. 그런면에서 이번 코로나19 태에 총회가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조직들을 활용하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다. 총회 사회봉사부나 의료선교회 혹은 교사위원회등 합동이나 연합으로 가야 한다. 그외 예배에 대해서는 전국 7개 신학대학의 신학자들을 활용했어야 한다는 소리다. .

그런 차원에서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전면으로 등장한 예배와 신학문제는 그것을 장기적으로 살펴보는 조직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신학교육부‘ 가 있지만 신학교 문제만 다루는 듯 헤서다. 이 부서를 ’신학과 예배위원회‘ 로 이원화 하여 7개 산하 신학교들의 문제와 신학과 예배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다루는 위원회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WCC도 그렇고 NCCK도 미국의 PCUSA등 해외 선진교단들에는 신학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는 그 교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왜 존재하고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태동이 되고 발전되어 왔는 지를 밝혀주는 조직이다. 천주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교리청‘ 이라는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예배는 지 교회 당회가 결정한다.
지금 교단 안에서 필요해서 주일예배 대체 하는 교회들을 비난하고 목숨 고 주일 성수하고 예배를 사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곳도 있다. 이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님에도 분열적 행동들을 보게 된다.  예배는 법에도 지 교회의 당회가 결정하게 되어 있기에 지 교회가 정한 방식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다만 총회가 너무 앞서 예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으로는 보인다.

처음 기조대로 예배는 지 교회의 지도자들과 지역사회의 사정에 따라서 한시적으로 어떻게 하던지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드리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너무 시시꼴꼴하게 3차에 걸쳐 지침을 주는 등 안해도 되는 일을 한 것이다. 이는 옛날에 우리총회가 안해도 되는 사학법 반대 투쟁 한다고 총회장 머리 깍이고 우스운 꼴이 된 데자뷰로 보인다.

총회는 드러난 문제에 대한 대응을 종합하고 연구하여 비판적으로 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예배가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장소와 시간 방식의 문제인지도 검토해야 한다. 종교개혁가들이 그 교회로부터 개혁을 하려고 했던 예배갱신과 지금우리가 지키는 성수주일(정한 시간 정한 장소)이 무엇이 같고 다른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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