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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산업선교회 방문기김정곤의 탐방 보고서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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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06  22: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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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산업선교회 방문기

김정곤의 탐방 보고서(2002년 11월 28일 사회복지 정책학과 1학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눅4:18)

1. 소속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2. 소속노회 : 영등포노회
3. 구 성 : 영등포산업선교위원회(노회가 파송한 위원-목사10명과 장로4명-으로 구성)와 실무자회(목사 3명, 전도사 1명, 실무자 6명, 호주선교사 1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4. 설립원칙 
1) 복음의 원칙
그리스도의 복음을 산업사회에 선포함으로써 노동자와 기업인 모두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일하며 경제활동을 하도록 한다. 
2) 노동의 원칙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는 믿음으로 노동을 아름답게 여기며 노동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김으로써 노동의 신성함을 지키고, 노동자의 인권이 보호되며, 노동3권과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이 보장되게 한다.
3) 선교의 원칙
산업선교의 활동은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이 아니라 선교운동으로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기반으로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 기초한다.
5. 설립일시 및 주요사업
1) 1957년 교단 정기총회에서 산업사회에 복음을 전하자는 결의를 하다.
2) 1958년 총회전도부 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하고 당시 최대 공업 단지인 영등포지구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다. 초기에는 감리교 등 다른 교단과 에큐메니칼 차원에서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선교활동을 하다. 초창기에는 주로 전도와 예배, 문서 활동 등을 하다.
3) 1968년 아시아기독교협의회에서 '산업전도'에서 '산업선교'의 개념으로 전환되면서 눅4;18를 근거로 '도시산업선교'라는 하나님의 선교 입장에서 활동을 새롭게 하다.
4) '도시산업선교'에 근거하여 1960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소모임 그룹활동을 하여 한국노동운동사에 큰 밑거름이 되는 노동운동 활동을 전개하다.
5) 이러한 선교활동의 결과로 박정희유신정권과 전두환군사독재정권 및 기업으로부터 용공좌경세력으로 대대적인 탄압을 70년대 말부터 80년초에 받다. 그래서 '도산이 들어가면 도산한다'는 일화가 생기게 되다. 특히 인명진 목사와 여러 명의 실무자, 노동자 회원들이 구속되거나 해고되다.
6)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결성되기까지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유일의 노동운동의 열린 공간으로서 민주노동조합 결성과 노동운동지도자 교육과 지원 및 노동문화활동에 기여하다.
7)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IMF)로 많은 노동자들이 실직노숙인으로 길거리로 나오게 되어 지금까지 전통적인 공장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교가 공장 밖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다. 그래서 노동복지적 사업으로 실직자, 노숙인들을 위한 재활교육, 심성 및 인성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며 희망사랑방(쉼터), 햇살보금자리(주간이용시설)를 운영하다.
8) 1998년 40주년 행사를 하며 기념집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와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하고, 1999년부터 10월부터 기관지 '산업선교'를 '노동과 창조'로 바꾸어 21세기 새로운 노동사회에 대처하는 노동선교로 전환하다.
9) 2001년 국제적 노동선교연대와 네트워크 및 아시아URM실무자들의 지도력 강화를 목적으로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와 공동으로 '아시아URM디아코니아훈련원'을 개원하여 아시아도시농어촌선교 현장의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경험을 함께 나누고 훈련하다.
10) 2002년 현재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현장을 가꾸는 해"로 그 동안의 자료와 경험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21세기 변화된 여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욕구를 찾아 함께 일하고자 한다.

6. 현재 진행하는 사업
1) 목회와 전도사업(성문밖교회)
2) 노동상담과 교육 지원, 현장투쟁 지원 및 조직활동(조직교육부)
3) 새로운 대안공동체를 지향하는 협동운동사업(협동운동사업부)
- 다람쥐회(신용협동조합)
- 의료협동조합
- 밝은공동체(대안교육을 지향하는 문화협동운동)
4) 실직자와 노숙인 및 쪽방선교사업(노동복지부)
- 희망사랑방(노숙인 숙식 및 재활사업)
- 햇살보금자리(노숙인 주간편이시설 및 쪽방상담)
- 기쁨의 집(실직자 자활공동체)
5) 국제노동(민중)연대와 나눔 및 훈련(국제연대부)
-국제노동연대
-세계노동소식 나눔
-지도자훈련과 교류
6) 아시아 도시농어촌선교 지도자 훈련과 이주노동자 선교훈련사업(부설;'아시아도시농어촌선교 디아코니아 훈련원'- CCA와 함께 공동운영)
- 아시아 도시농어촌선교 실무자 훈련
- 아시아 민중연대와 나눔
-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 선교훈련
7) 각종 산업선교 자료 보관과 연구, 출판사업 및 노동선교정보센타 운영(사료실)

7. 주요역사
1) 공장목회로서 산업전도(1958-1963년)
처음으로 산업전도를 시작한 이시기의 주요활동은 공장들을 방문하여 산업전도회를 조직하고 교계나 사회의 관심을 모으는 작업을 하였으나, 노동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한편 산개돼 있는 공장조직간의 연합 예배를 드리게 된다.
2) 평신도를 통한 산업전도(-1967년)
이 시기는 평신도를 통해 공장에서의 전도활동을 강화하는 시기로서 산업재해를 비롯한 노동현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이지만, 소극적인 전도활동 이상의 활동을 하지는 못한 시기이다. 공장별로 조직이 단단해지고 공장별 조직이 연합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모임이나 계기가 조직된 시기이다. 그리고 이점을 강화하기 위해 소식지가 발간되었다.
3) 노동조합을 통한 도시산업선교(-1972년 10월 이전)

노동자들의 권익과 노동쟁의에 직접적인 개입을 한 시기로서, 특히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외부기관의 관심이 고조되어 노동현실에 대한 토론회, 강연회가 지속적으로 개최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자각과 노동조합의 결성, 노동조건 완화투쟁을 직접적으로 지원했고, 노동자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에 일조하고자 신용협조조합(현 다람쥐회)가 처음으로 시작했다. 71년 1월에는 산업선교에 종사하는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의 전임 실무자는 조지송목사로서 현장개입활동으로 영산 자체가 공안당국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4) 소그룹운동으로서의 산업선교(-1979년)
전태일열사가 분신하여 지식인들이 민주화와 노동현실에 대해 자각을 이루면서 영등포산업선교회도 왕성한 노동운동을 담당한 시기이다. 왕성한 실무자 그룹의 활동을 바탕으로 현장 노조의 강화를 이루는 한편 각종 토론회와 강연회를 조직하여 엄울한 유신독재시대의 등불이 된 시기이다. 노조가 미조직된 공장에는 산업선교회가 직접 공장주에게 항의하기도 했으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주택조합을 조직하여 노동자 주택단지를 조성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시기에는 공안당국의 직접적인 탄압이 매우 강한 시기로서 대표적인 실무자인 인명진 목사는 두번이나 구속되었으며 64년부터 지원을 해오던 영락교회가 이시기에 지원을 끊는 등 기존교회와는 불협화음을 이루게 되었다.

5) 산업선교에 대한 탄압과 수호(-1982년)
신군부정권이 정권을 획득하여 이전 시기보다 노동현장에 더 강한 탄압이 들어온 시기로서 구속자지원사업과 여성노동자 여가활용을 위한 사업을 펼친 한편, 민주화 운동에 매진한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국제적인 기구에 한국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활동을 많이 진행하였다. 많은 실무자들이 구속되었던 시기이며, 심지어는 83년 예장총회에서는 산업선교를 아예 없애려고 했었다.

6) 노동운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 산업선교(-1987년)
영등포노동자교회가 성문밖교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난 시기로서, 많은 외부단체를 - 각종대책위, 한국기독노동자총연맹 등 - 지원하는 사업을 했으며, 노동자신문을 발간하면서 84년 이후 유화국면을 활용한 대중투쟁을 전개하였다. 기존의 현장지원사업을 유지하면서, 대중조직이 결성되지 못한 한계를 산업선교회의 실무자들이 앞장서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였다. 한편 민주화운동이 폭발한 86-87년에는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중심적으로 활동하여 많은 열사의 추모제와 토론회, 시국강연회를 개최하여 그 열기를 높였다.

7) 노동운동의 지원과 기독노동운동의 산실로서 산업선교(-1992년)
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많은 노동, 사회단체가 결성된 시기로서, 영등포산선은 기독민중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편 신규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결성에 많은 역할을 하였다. 90년에는 위령제에 장소를 빌려주었다는 이유로 노회임원회로부터 사임을 권고당한 이근복목사(총무)의 문제해결을 위해 교인과 노동자들은 청원서 작성, 서명활동, 기도회, 산선임원 방문, 노회총회에서 입장을 담은 글 배포 등의 활동들을 하였다. 91년 7월에는 제3세계의 민중선교 동역자들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도시농어촌선교위원회에서 주최한 민중선교정책협의회에 참석에 참석하여 '민중선교의 일치와 연대를 위하여'라는 주제하에 한국 교회 민중선교의 회고와 전망, 기독자 대중조직운동을 향하여, 한국 교 회 노동선교의 현황과 과제, 농민의 현실과 기독농민 회의 과제, 도시빈민 선교의 현황과 과제, 공해의 현 실과 교회의 사명이라는 소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였고, 회의 마지막날에 공동으로 채택한 결의문에서 민중선교의 주체 역량들이 통일단결할 것과 그러기 위하여 선교일꾼들을 공동으로 훈련, 양성하기로 했고, 아시아, 아프리카 민중의 생존권 투쟁에 적극 연대하기로 하는 등 제3세계 도시산업선교회에도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했다.

8) 노동선교공동체를 만드는 산업선교(-1999년)
93년 대선을 통해 문민정부가 열리면서 사회가 많이 변화된 시기이다. 70년대 영등포산선 총무를 역임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던 인명진 목사는 정권의 주요 요직에서 일하는 등 사회가 많이 변화하였고, 기존 영등포산선이 할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노동, 사회단체들의 체계화되면서 영등포산선의 입지가 좁아졌을 뿐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었던 시기이다. 기독사회운동과 민중교회 운동의 강화를 위해 많은 토론회와 교육을 진행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으며, 전반적인 사회운동단체와 같이 활동이 이전같지 않은 시기에서 영등포산업선교회는 기존의 노동자 의식화사업과 병행하여 생활개선, 생태, 생산자, 국제연대 활동을 강화하였다. IMF이후에는 경제운동과 도시 실직자와 노숙인들을 위한 쉼터 운영, 자활자업 등을 진행하였다.

9) 21세기 노동선교의 새 꽃씨를 뿌리는 산업선교(2000년 이후 현재)
2000년 이후에는 기존의 직접적인 노동현장 지원사업에서 보완적인 사업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신용협동조합(다람쥐회)의 활동의 강화와 의료생활협동조합(대림동소재)를 시작하여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주력하면서 실직노숙인을 위한 희망사랑방, 햇살보금자리(24시간 거리노숙인 편의시설, Drop-in-center)을 운영하는 한편, 국제노동연대와 나눔 및 훈련(국제연대부)활동을강화하여 아시아 도시농어촌선교 지도자 훈련과 이주노동자 선교훈련사업(부설;'아시아도시농어촌선교 디아코니아 훈련원'- CCA와 함께 공동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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