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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족직 임기제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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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6  21: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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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족직 임기제 논의할 때다. 

목사, 장로 임기제가 필요한 이유 

모든 공직자들은 임기도 있고 정년도 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한가지 일을 계속하다가 보면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고 잘한다고 하여도 무사안일과 부정에 연류되고 지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사람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데 그래야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다. 또 자기 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으려면 일단 손을 놔봐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그러면 잘못되도 모르기도 하고 자기와 관련된 부족이나 약점, 부정을 은폐하게 된다. 또 일반론으로는 “물은 고이면 썩는다” 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사실 정치에서 선출직을 공천할 때 정당내부만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과 신진인사를 받아드려서 고루해지고 안주하려는 조직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과 도전으로 길을 닦고 현실에 도전하려는 의욕을 가진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고 짊을 나누워진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계중에도 임기가 없는 직임이 있는 데 천주교회 교황과 추기경 성공회의 주교와 교구장이다. 이들은 사건이 나거나 죽거나 자진해서 그만 두지 않는 한 종신이다. 나름대로 이론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 종교인 불교에는 오히려 종신제가 아니다. 조계종 총무원장도 그렇고 종정회의나 주지도 종신제가 아니다.

종교기관의 특성에 따라서 임기제가 도입이 된 것은 종신제에서 불법과 부정을 막기위해서다. 그 이유는 종교기관과 시설이 이권이 있으나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적이니 한 개인에게 과도한 특혜나 권한을 갖게 되면 아무리 법으로 통제를 하고 자정을 강조해도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욕지책으로 종교기관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임기제를 도입 한 것이다.

한국교회 세습만 문제가 아니다.

개신교의 이야기를 해보자 교회의 역사나 제도는 모두 서구에서 왔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서구적 전통과 잣대로만 보는 것은 옳치 않다.  민족마다 전통과 현실이 다르기에 일방적인 대입은 안된다.  그러니 어디가도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도 있지만 변하지 말아야 될 것도 있다. 옛날에는 총회서 총대 숫자가 목사가 많았지만 지금은 목사와 장로가 동수가 되도록 한다.  그러나 노회는 다르다. 민주적이려면 사실 동일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교회제도는 민주제도가 아니다.     

우리교단이 지난 3년간 세습문제가  큰 화두였다. 이게 전에는 그렇게 문제시 되지 않다가 최근 들어서 사회의 문제가 되었는데 성공한 1세대 목회자들이 은퇴를 하게 되면서 이다. 한 500여 교회가 세습들을 했는데 그중에 몇 개 빼고는 모두 잘 안착을 했다는 주장도 있어 세습은 무언가 교회의 안정과 이양에 매우 극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세습가 전반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형교회에 표적화된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세습을 금하는 법을 만들었으니 문제기는 하지만 대게는 윤리적 비판이 더 강하다.  

그러나 윤리적 비판은 사회규범상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한두번 하고 가야한다.  그러나 세습이라는 용어도 비판적으로 보기 위한 용어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용례로 쓰여왔다.  그러나 직업군에서는 대를 이어 장인이 되는 것을 장려해왔다.  문제는 자기가 시무하던 교회의 후임자를 자신이 임기 내에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당회장권 행사)  자녀라도 후임자중의 한사람으로 지원하는 것은 막아서는 안된다. 

이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 삼간 태운다”는 격으로 세습을 하는 교회가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닌데 몇 개 교회를 문제로 총회의 헌법에 명문화 한다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식으로 법을 만들다 보면 누더기 법에 될 것이다. 그러나 세습에 대한 반대 정서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습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법을 만들면 다시 법망을 피해가면서 까지도 세습을 하게 되어 있다. 제도를 고치지 않고 법으로 규제 하는 한 안되는 것이 있다.

법은 최소한의 약속이지 유익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위임목사가 되는 것은 평생 위임 받은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의미인데도 그렇게 하는 가? 불가피하게 혹은 더 형편이 낳은 교회로 가기 위하여 위임을 받은 지 얼마 안되서도 사임들을 하는 데 이것을 방지 하자고 위임후 몇 년동안은 사임 할 수 없다는 조항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세습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가 되면 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제도연구를 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가 꼭 세습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다만 지금 세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에 그렇치 세습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것도 많다. 예을 들어 그동안 목회자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목사의 위임제다. 예장 통합의 예을 들면 위임목사(공동의회에서 2/3이상의 인준) 가 아닌 목사의 임기는 3년으로 3년 시무후 연임을 위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연임조항에 미흡하여 탈락하여 사임하는 목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외 전도목사 부목사는 1년이다. 그러나 목사 위임제는 목사가 인사권 심의에 메이지 말고 안정적인 토대위에서 소신있는 목회을 하기 위한 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의 배경은 농경사회에 목사도 많치 않고 교회도 많치 않턴 시절의 산물이다. 그때는 한분이 오랫동안 동거동락하며 목회하는 것이 미덕인 시작이다.그러나 기독교의 선진국인 외국에서도 그렇고 목사는 임기제다.

그들은 오랫동안 별의별것을 다 해보고 나서 임기를 두는 것이 낳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목사에게 임기제를 둔 것의 가장 혁신적인 의미는 인사권을 교인들과 노회가 나누는 것이다. 임기제는 교인들이 자기 교회의 목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되 돌려주는 것이며 노회의 인사권을 강화하여 권위를 세우는 제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목사의 임기제를 말할 때 꼭 같이 얘기가 되야 하는 것은 사무장로의 항존직 문제다. PCK의 법에 의하면 안수받은 장로와 권사, 집사는 정년 70세 은퇴까지 한번 받은 직임을 유지한다. 이것도 매우 불합리한 제도이다.

교회수와 목사수도 적고 교인들이 많치 않고 이동도 적어 힘있는 일꾼들을 세운다는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한 환경에서 정해진 법으로 오늘날 변화하고 달라지는 사회에는 낙후된 제도이다. 달라진 세대에 겨우 년령만 조정하였 뿐 오늘날의 사회변동과 발전에 비교하면 너무 낙후된 제도이다. 예을 들어 사람이 어떤 직을 갖고 살다가 보면 좀 쉬면서 할 필요도 있고 부득이 감당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목사의 임기제에는 항존직의 임기제 혹은 단임제는 우리가 한번 연구해 볼만한 선진적인 제도이다.

임기제를 반대는 제왕적 목회 

그런데 지금 목사의 위임제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바로 목회자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위임제 폐지는 목사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목사가 정당한 목회행위를 통하여 존경받고 사랑받기 보다는 법적 보호를 받아 가면서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 분들은 잘못된 제왕적 목회에 물들어 있거나 그것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소위 대형교회의 목회성공자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교회 평신도들의 민주적인 참여를 교묘한 논리로 공격하여 당회나 제직회 공동의회을 무력화시키거나 유명무실화 시키는 것이다.

자기의 주관적인 판단과 말은 곧 신적 권위를 갖는 것이라고 주입하여 목회자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고 저항하고 반대하면 벌을 받는 다는 식의 성직우월 독점적 권위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에서 이구동성으로 가장 썩었다고 비판하는 직업군으로 국회의원들을 말하는 데 그러나 그 사람들은 어찌 되였건 4년 마다 국민들로 부터 심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심판을 받기 전에는 공천경쟁을 거쳐야 한다. 지역구에서는 3선 이상을 하기가 어렵고 전국구는 1회 이상 주지 않는 다. 그래서 오히려 재벌총수나 오너형의 기업 CEO나 성직자들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창업주가 자기 기업을 상장하고도 온갖 편법으로 지배주주로 남는 것은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업가의 기업 사유화나 교회를 자기가 키우고 성장시켰다고 그 결과를 자기가 배분하거나 자기 맘대로 하고 싶다는 것이나 다른 것이 별로 없다. 이렇게 사유화가 되니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발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의 대 물림과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도 기업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이해하나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형교회 일수 록 그 반감이 크다. 세습을 하는 이들의 면모를 보면 공통점도 강한 카리스마에 교회부흥을 이룬 사람들이고 매우 보수적으로 정치적으로도 편행된 의식을 갖은 분들이다. 권력에 줄을 대고 있다. 목회적으로는 가장 은혜로운 설교를 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존경을 받으면서도 하는 일이라고는 가장 은혜스럽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다.

개인이 표적이 안되도록 시스템으로 

그러기에 이 세습문제는 문제를 개인을 놓고 비난하고 공격하기 보다는 구조를 바꾸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목사 위임제의 폐기라는 것이다. 이미 서구에서는 위임목사제도는 없다. 그래야 자기 교회라는 막연한 교회사랑을 하지 않게 된다. 주님의 교회 노회의 교회 모든 목사들의 교회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교인들이 민주적으로 후임자를 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다. 그렇게 되면 전임 목사의 자녀라고 해서 특혜를 받거나 소외를 받을 필요 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지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미 서구 기독교에서는 임기제를 실현하고 있다. 첫 번째 몇 년을 보장하고 다시 계약을 하여 연장하거나 이임하는 것이다. 목사도 사람이니 아무래도 자기와 잘 맞지 않은 교회가 있을 수 있기에 계약기관이 끝나면 서로 연임을 위하여 인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제도를 통하여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결정들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제도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임지를 이동하는 가? 안정되고 넉넉한 평편이 되는 도시 교회에서 목회하던 중년이후의 목회자들은 자진해서 작은 도시나 교회로 물러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는 다시 젊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녀들을 뒷바라지할 다음 세대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그리고 이 사람들도 목회하다가 중년이후가 되고 자녀들이 성장하거나 은퇴시기가 되면 선배들처럼 좀 여유롭게 목회 할 농촌이나 중소 도시로 간다는 것이다. 또 젊은 초년 목사들은 아직은 미숙하고 어리며 자녀들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으니 오지의 작은 교회나 어려운 곳에서 목회훈련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면 도시로 나와서 목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에서 목사의 임지이동에 관한 제도는 이제 우리가 한번 검토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 장로교회의 한 교단에서는 은퇴를 강요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은퇴한다면 말리지는 않는 다. 그정도만 해도 다 알아서 하는 것이니 그것을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시대 역행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매우 다를 것이다. 임지에 비하여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갈 곳이 없다. 그런데다가 요즘 노년의 건강도 좋아지고 능력도 있고 교인들이 원하니 정년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무리는 아니지만 이는 한 가지만 아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민주적으로 나가는 길과는 역행하는 것이다. 공무원도 정년이 있고 군인도 교사도 다 정년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후진들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그 분야의 사람들을 길러 내였으면 그들에게도 일하고 책임을 맡을 기회를 구조적으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년제도이다. 만약 이들이 편법과 힘으로 정년 연장을 주장한다면 사회적 저항에 직면 할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충분히 일하고 누렸고 즐겼고 저축했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을 지나 위로 부터의 민주주의로 그리고 이제는 아래로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고 해도 경쟁에서의 공정과 작은 기업들과의 상생이 화두다. 그렇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도 출자자나 이해당사자가 아닌 사회공익이사를 받고 학교법인과 공적기관에는 모두 개방이사를 받아서 투명성을 실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교회들만이 이 흐름을 역행한다면 말이 안된다.

종신 위임제도 모자라서 자기 자녀에게 대를 물리는 소위 세습목회를 하지를 않나 그야 말로 사회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국교회는 교세 감축 특히 젊은이들의 이탈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한국교회의 제 2의 부흥이나 도약은 이런 몰상식과 자기유혹을 이겨낼 때 가능 할 것이다.

종교인에게 거는 우리사회의 기대치

종교인은 자기 희생이나 결단 없이 기득권을 지키고 누리려는 발상을 갖고는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스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 분이 충분히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직자는 교인들게 만이 아니라 국민들로 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할 나름인 것이다. 목사까지 나서서 제 먹을 것 다 먹고 거기다가 제 새끼것 까지 챙겨주는 세상이니 이런 세상 뺨치는 식의 삶을 살면서도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혹세무민하며 부끄럼 없이 군림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가 아닌 가?

이제 우리사회와 국민은 과거보다 높은 학력과 정보의 균등화로 인하여 국민 전체의 수준이 올라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민도가 올라가니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인터넷이나 어디서나 SNS의 보급으로 인하야 원하는 정보와 설교까지도 다 듣고 어떤 소식들은 순식간에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간다. 이제는 어떤 교회의 문제는 개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시민은 전문가다. 그들은 1인 미디어로 무장하고 잘 정리된 논리와 비판을 교회의 약점이 드러나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이제 한국기독교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이것을 받아 드려야 한다. 예을 들어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대필 의혹은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랑의 교회 문제를 넘어 합동측 교단의 문제를 넘어 전체 기독교의 문제 아니 한국사회의 문제가 된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제 한국기독교는 소수자의 종교가 아니다. 보호받고 동정을 받을 처지가 아니다. 아직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으로나 숫적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우리 사회는 목사나 교회를 약자라고 보지 않는 다.  모두 강한자 힘있는 자라고 인식한다.

위임제는 다시 한번 생각할 때이다.

임기제를 언젠가는 실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완벽하거나 좋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있는 차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어느 힘이나 논리에 밀려서 할 것인가 아니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이제 목사이기 때문에 잘못을 하고도 안일하게 위임이라는 제도로 보호받고 안주하는 비겁함으로 부터 당당하고 자유롭게 판단 받고 선의의 경쟁을 받아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치피 이 세상은 모두 경쟁하는 것이며 사람은 이 경쟁을 통하여 단련되고 순수해지며 자기 발전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더 강해지고 아름다워 지고 순수해지려면 자기 기득권을 버리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결단으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위임을 받고 정년이 남았지만 조기 은퇴들을 하신 선배들이 많이 계시다. 고 임택진 목사 김형태 목사 유경재 목사등이다. 아름다운 결단들이며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70세도 모자라 정년을 연장하고 거기다가 자기 자식에게 물려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발상은 교회사랑이 아니다.  교회사랑을 이용하여 교인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지금 새로운 인재들을 기다린다. 모세의 시대가 가고 여호수아의 세대가 출애굽을 완수하듯이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롭게 훈련된 세대들을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신다.

개혁교회의 원리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회의 파송과 아울러 회중(교회)의 선택권이다. 교인들의 목회자 선택권을 되돌려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대가 좋다고 장로들이나 교인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판단으로 근거 없는 자만감으로는 안된다.  교회의 안정, 연착륙이라는 허울좋은 이론으로 세습과 연기연장을 합리화하지 말고, 우리사회가 민주화 선진화하는 만큼 교회도 이에 걸맞는 상식적인 제도와 규범으로 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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