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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제도 이대로 좋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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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9  15: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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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는 자가 복되다 

한국 장로교회의 위임목사 제도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나온 제도이다. 이 말은 성경적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나라와 시대마다 또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위임제(종신)와 담임제(3년)으로 나눠져 있다. 위임제는 신임을 묻지 않는 종신제이고 담임제는 3년 마다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교인들의 신임 의사를 묻는 제도다. 어느 것이 더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가? 그것은 두발 할 것 없이 교인들로부터 재 신임을 받는 제도일 것이다.

선교 초기, 시대가 어수선한 때에는 그리고 교회성장에는 지도자의 강력한 사명과 소망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위임제다. 누구로 부터도 도전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전권으로 하는 목회, 가히 성직독재라고 할 정도로 교인들에게 카리스마를 보이는 권위 있는 지도력이다. 그렇게 우리 1세대들은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이뤘다. 그들은 모두 위임제의 덕을 톡톡히 본 분들이다. 왠만해서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통용되고 용납되었다.

초 대형교회를 이룬 주안교회 나겸일 목사, 안산제일의 고훈 목사, 소망의 곽선희 목사, 명성의 김삼환 목사, 높은 뜻의 김동호 목사, 그리고 최근에 은퇴한 거룩한 빛 광성의 정성진 목사가 있다. 이들은 작은 교회,  혹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함' 을 이룬 분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영적 카리스마형 목회자들이었다. 교회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큰 손의 역할들을 했고 교회는 그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만약에 지금도 그 분들처럼 목회를 한하고 씀씀이를 한다면 글쎄 그것이 용납될지 모르겠다.
   
 
진짜 원로가 누군가? 
그러나 그 후임자들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87체제를 지나 극심한 분열의 시대를 맞고 있다. 과거처럼 가난하지도 절실하지도 순박하지도 않다. 교회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고 영화롭지도 않다. 후임자들은  선대가 이뤄 놓은 것을 유지하는 것만도 큰 일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 같은 대우를 받기도 힘들다. 교회내 갈등을 방지하고 분란을 막기 위하여 모두가 주의하는 중이다. 그래도 몇건의 사고를 보면서 이제는 개인의 인내와 희생으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착이 되야 한다.

위임은 한번 담임이 되면 은퇴할 때까지 목회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20년을 시무하면 은퇴 후에도 원로목사가 되고 그 영향력을 교회와 노회에 행사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될 때는 농경사회였고 목사들의 숫자가 적었을 때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진 시대를 산다. 따라서 시무기간에 충분히 사역하시고 은퇴를 하면 미련을 떨고 완전히 물려줄 수 있는 목회를 해야 할 때다. 원로하려다가 개인이나 교회가 험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교회 안의 모든 직제는 평등한 처럼 목회자들도 은퇴후에는 평등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 등은 신약성경에 언급된 직분이기는 하나 목사라는 칭호는 학자들 얘기로 지금과 같은 교단이나 제도 교회와 목회가 아니였기에 그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지금 장로교회가 채택하고 있는 목사는 회중이 정하고 노회가 추인하고 파송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성공회나 감리교(반파송)과는 다르다.

안수 자체가 성별은 아니다. 
칼뱅은 일찍이 “안수는 직분자를 하나님께 맡기고 바치는 일을 상징하는 예식일 뿐 그 외에 다른 심오한 신비가 깃들여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즉 안수 자체가 직분자들에게 특별한 ‘신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그가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신적권위를 갖는 하나님의 대리자라도 된다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수는 성별되었다는 의미일 뿐 그것의 유지는 사역에서 체워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 장로교회와 달리 유럽의 개혁 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전통적으로 장로와 집사 임직시에 안수를 하지 않는 다고 한다. 목사 역시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이므로 목사 안수가 목사직을 다른 직분보다 더 우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안의 직분은 모두 같고 나눠져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항존직자라는 의미는 아주 높은 직위로 인식되고 신앙생활의 최고 열매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항존직자가 되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여 직분을 사회처럼 진급하는 것처럼 사모하게 목사들이 가르치기도 한다. 직분자를 세우면서 교회에 신앙적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목사의 지지자 지원자 후원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것이 다 잘못된 한국교회의 직분론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한국교회 특히 장로교회가 시대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 씩 고쳐나가야 하는 데 이것이 바로 생활개혁이다. 예전처럼 급격한 개혁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세습을 막는 것만이 개혁이 아니다.

원로는 계급이 아니다
따라서 원로제도는 목회자에게 있어서도 옥상옥이지만 장로들에게도 이제는 없어도 되는 제도이다. 이렇게 목사와 장로중에 다시 원로라는 직급으로 인하여 평등성도 헤치고 있는 것이다. 또 똑같은 항존직자인 안수집사나 권사에게는 없는 데 원로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 분야에서 길게 수고하고 애쓴 분들에 대한 명예를 기억하기 위하여 쓰는 용어이기에 자체대로 모두 호칭으로는 원로 하면 된다. 그러나 특별한 예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안그려면 그 요건을 체우려고 하고 또 그 대우를 안해주려고 하는 등 부적용이 있다.

교회법상의 원로는 20년 이상을 시무한 목사나 장로를 말한다. 목사는 다시 노회에서 공로목사라고 하여 다시 예우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들을 모두 폐지를 논의 할 때이다. 이런 제도가 이제는 성숙한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평화로운 전통보다는 분열과 갈등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과거 연금제도가 없었을 때 노후를 위하여 은퇴후 일정한 비율의 생활비를 드리는 것인데 지금은 연금을 넣어드리니 없어도 되는 구조다.

장로도 원로가 되려면 약관 50세 이전에 장로가 돼서 70세 정년을 맞아야 한다. 이른 분은 40대에 되기도 하는 데 그러고 30년을 교회서 앞장서 봉사하고 일하면 거의 교회 사정이 목사 수준이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도 아는 경험이나 지식들을 당회나 목회자도 못당한다. 사랑으로 조언한다고 하여도 이것은 시어머니가 될 수 밖에 없다. 또 그 세대가 아는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한정된 옛날 얘기이지 미래를 논하기는 어렵다.

몸으로 실행해주셔야 된다.
따라서 원로의 역할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로는 없에도 정신과 마음으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의미다. 원로 대우를 하려고 생전에 받던 생활비를 드리기 위해서 공동의회를 하는 등 부작용들도 많다. 다행인 것은 은퇴하시는 분들중에 20년이 넘었지만 원로제도를 자원하여 받지않는 분들이 한둘씩 나오고 있다. 이미 오래전 고인들도 계시지만 청량리중앙의 임택진 목사나 연동교회 김형태 목사, 안동교회 유경재 목사 같은 분들이 모두 65세에 조기 은퇴를 하셨다.

고무적인 일이다. 제도개혁을 이루려면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분들이 이렇게 선제적으로 앞장서서 자기 희생을 해야 한다. 앞으로 위임목사들 가운데 20년 이상을 하시고 은퇴를 하실 분들이 과감하게 미리 그런 선언을 하면 좋을 것이다. 남들보다 좋은 여건에서 자낸 것도 감사하시고 동역자들에게도 심정적으로 위로를 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와 후임자를 위하야 자문요청 외에는 일체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것이다.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넘어서 4차산업시대이고 AI시대로 상상할 수 없는 사회와 목회현장의 변화에 직면해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이를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한 일선 목회자들의 이겨내기 위한 노력들이 대단하다. 지금 총회장을 지낸 신 전 총회장들의 모임이 있는 데 원칙은 현 총회장을 돕데 요청하는 일에만 자문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모두 현역들이 지고 가야한다는 의미다. 이는 다른 교단과 비교하면 참 대행스럽고 존경받을 일이다.

따라서 더 이상 목회든 사역이든 그들의 시대에 맡기고 선진들은 한발 뒤로 물러서서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축복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회도 노회장을 지냈으면 후진들에게 부장도 맡기고 일도 맡겨서 크게 해야 한다. 성경에도 보면 모세가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보기는 했으나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에게 지도력을 이양하듯 선진들이 때을 알고 물러서실 때 더 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04회기 김태영 호의 항해 끝에
104회기 김태영 호가 서서히 닿을 내리는 중이다다. 역대 어느 총회장 보다도 더 심적으로 시간적으로 바쁜 1년을 보냈다. 과거와 비교하면 교단이나 교계 안의 문제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문제까지 겹쳐 욕도 많이 먹고 교단장으로 한교총 회장으로 우리교단의 위상과 가치를 널리 알린 것도 사실이다. 진보적인 분들에게는 교권주의로 보수적인 분들로는 사이비로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받은 것도 사실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총회장은 일하는 자리가 아니다. 맡겨진 일꾼들이 하는 일을 잘하게 하고 보고 받고 격려하는 자리다.  듣는 자리지 지시하고 따지고 벌을 주는 자리가가 아니다.  들을 때는 친구가 생기지만 말할 때는 적이 생기는 법이다. 특히 연합사업이나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그런 것이다. 진짜 할일은 자신의 목회현장에서 하면 된다. 총회는 오랜 역사와 관성과 정서 속에서 무슨 난리가 난다고 해도 이 또한 지나 갈 뿐이다.

총회장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하는 분들에게도 조언한다면 그런 자리에 한번 가보시라고 하고 싶다.  지금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라고 하고 싶다.  마치는 가운데 한가지 부탁을 한다면 김태영 목사가 처음 부총회장이 되고 장차 104회기를 디자인 할 때 갖았던 느혜미아의 개혁정신중 하나인 총대 구성 개혁안으로 50명만이라고 우리총회를 대변하는 분들로 비례제를 하자는 안이 정치부에 있다. 그것이 꼭 열매를 맺기를 기다린다.

한술에 배부를 수 없고 법과 정서를 따지는 분들도 있지만 우선 해보는 게 중요하다. 비례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총회는 한국장로교회의 선각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실행해보고 거기서 문제를 점을 보고 보완하고 수정하고 더 낳은 제도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총회장을 그만 두시더라도 교단의 개혁을 위하여 무언가 후진들에게 큰 교훈이 될 만한 지표를 한번 남겨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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