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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와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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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1  08: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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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진정 교회가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박상기 목사(안산 빛내리교회)
   
 
1. 이제야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실감나게 배우고 있다. 그간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배우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성전과 성전에서의 제사(예배)에 대한 명령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요 전통으로 여겨졌다. 으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당으로 와야 했고 어딜 가든 예배를 드릴 교회를 먼저 찾았으며 그렇게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온전한 예배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 믿는 자의 증가와 함께 예배당 즉 교회(엄격하게 말하면 교회당)는 엄청나게 세워졌고 그 규모도 웅장해졌다.

2. 특히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황금기를 맞았으며 신 구교를 막론하고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예배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예배당의 규모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초 대형화 되어갔다. 게다가 교인들에게는 그 같은 예배당이 자긍심과 자랑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말할 때는 으레 ‘예배당’을 지칭했을 만큼 예배당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21세기에 접어들어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인간의 능력이 극대화 되고 세상은 과학기술과 속도로 대변 되는 디지털시대를 거치면서 인본주의는 급상승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에 흐르는 다원주의의 물결이 팽배해지면서 신앙의 열기가 점점 식어지고 교인들은 썰물처럼 예배당을 빠져 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서구 기독교가 뼈아프게 겪었으며 그 흔적은 텅 비어있는 웅장한 예배당 건물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3. 한편 우리나라도 80년대 중 후반 90년대를 거치면서 기독교 신앙의 황금기를 경험했다. 전도의 열기가 충만했고 집회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믿는 사람들이 흔했으며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도 좋았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까지 교회는 호평을 받았다. 그 증거가 종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에는 불신자들도 으레 교회에서는 종을 치는 줄 알았고 그것을 결코 소음으로 여기지를 않았다. 예배당 바로 곁에 사는 불신자들을 생각해보라. 새벽 4시에 치는 종소리가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는가? 그러나 전혀 불만 없이 받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기도원운동이 활발했고 부흥회가 흔했었다. 이 같은 신앙의 열기를 타고 목회자나 선교사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신학교에서 배출 된 목회자들을 통해 처처에 예배당이 수도 없이 세워져 도심 높은 곳에 오르면 빨간 네온 십자가가 물결을 이뤘을 정도였다.
   
 
4. 그 시절만 해도 교회를 개척만 하면 성장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도심 웬만한 상가 건물에는 하나 걸러 교회가 들어섰으며 어떤 상가는 한 건물에 교회가 둘씩이나 들어서서 어깨띠를 두른 안내위원들이 한 입구에서 각자의 교인들을 영접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개척된 교회들은 교인들이 웬만큼 모이고 재정적인 힘이 생기면 저마다 웅장한 예배당을 갖는 것이 목표요, 꿈이었으며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 성장과 축복의 기준이 되었고 목회자나 교인 할 것 없이 커다란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예배당은 점점 대형화되고 시설을 늘려서 예배당이 단지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Complex의 기능을 할 정도로 웅장해졌고 그 기능도 다양해졌다. 놀랍게도 그 큰 예배당에 사람들이 가득히 들어차고도 모자라 1부 2부 등 예배의 횟수를 늘려갈 정도가 된 것이다. 적어도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랬다.

5. 세대가 바뀌면서 교회도 부흥을 경험한 구세대와 그저 맹맹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세대 간의 영적인 세대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소위 부흥세대가 점점 세상을 떠나고 신세대들이 교회의 중심을 이루면서 교회의 영성은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교회의 정서와 신앙생활에 대한 패턴이 적응할 수 없을 만큼 변해갔다. 이에 교회도 발을 맞추어 빔 프로젝트를 통해 예배를 중계하고, 교인들의 편리를 위해 성경과 찬송을 화면으로 띄워주는 화상예배가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예배의 감격은 식어지는 현상이 체감이 될 정도가 되었다. 거기에다 첨단으로 시스템을 갖춘 상징적인 교회들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예배가 생중계되고 쉼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소위 예배 서비스가 제공이 되면서 구지 예배당에 모이지 않고도 어디서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6. 언제부턴가 교회는 모이는 것에 목이 말라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전도가 둔화된 것이다. 부흥회를 한다고 해도 본 교회 교인들조차 움직이질 않는다. 그 어떤 유명강사를 모셔 와도 이미 유튜브를 통해서 메시지를 맛본 성도들은 그렇게 신비감을 갖지 않는다. 교회는 저마다 모이는 프로그램에 열을 올리고 공을 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예배당은 급기야 무대로 변했고 교회만이 가질 수 있는 예배의 감동과 경건성은 점점 빛을 바래게 되었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성경을 통해 주신 본질적인 메시지로 영성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할 뿐 아니라 교회 안 문화나 컨텐츠가 교회 밖 문화를 압도할 만큼 완성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교회 이탈 현상은 뚜렷하게 상향 곡선을 보이게 되었다. 교회학교가 없는 교회가 50%가 넘는다는 통계가 맞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회학적인 통계만 보더라도 저 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는 교인수의 감수와 정통으로 맞물려 있어서 점점 모임에 대한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7.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사태가 터졌다. 무엇보다 기독교를 자처하는 사이비 신천지가 슈퍼전파자로 지목 되고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으면서 교회가 사태의 중심으로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안타깝게도 빗나가지 않았다. 각종 뉴스나 미디어에서 신천지와 엮여 정통교회까지 가십거리로 만들었고 과거 같으면 분연히 일어났을 민감한 영역을 건드리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간 배일에 가려졌던 기독교의 치부들을 하나씩 들춰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교회는 지금 이중 삼중의 딜레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8. 회중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로 대체한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으며 누구보다 목회자들은 목회적인 공황상태가 와 버렸다. 적어도 몇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목회자의 내면에 있는 존재감에 대한 충격이다. 회중 앞에서 당당하게 예배를 집례하고 말씀을 선포하던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마음이 가난해졌다. 한마디로 ‘이게 뭐냐!’는 황당한 상황인식으로 인해 풀이 죽고 기가 죽어있는 모습이다. 둘째 목회자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딜레마다. 무엇보다 예배관에 대하여 평소에 가졌던 소신이나 가르침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느 편을 선택 하든지 충격을 피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셋째 회중예배의 스타팅 포인트를 언제로 정할 것이냐에 대한 갈등이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여전히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고민이다. 넷째 과연 회중 예배 시점을 결정하고 공지했을 때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느냐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사태 이전과 같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혹자는 3분의 1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절망적인 전망을 내 놓기도 한다. 다섯째 회중예배가 시작 되고 정상적인 목양이 이뤄졌을 때 얼마나 회복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한가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목회자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섯째 온라인 예배가 장기화 되면서 오는 재정적인 압박에 대한 문제다. 세상은 교회가 돈 때문에 예배를 고집한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 교회를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필요한 돈은 예배를 통해 드려진 헌금으로 채워지는 것이 맞다. 따라서 장기적인 회중예배의 단절이 재정적으로 커다란 부담이 될 것은 뻔한 현실 일이다. 지나친 비관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 목회자들에게 당면한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9. 요즘 몇몇 대형교회의 예배 실황을 모니터 하고 있다. 텅 빈 예배당에서 사역자들과 예배 담당자들 몇몇이서 인터넷 예배를 중계하는 모습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비어있는 예배당에서 들리는 공명이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풀이 죽은 목사님들의 입에서는 회개와 탄식, 예배당을 떠난 성도들에 대한 그리움과 다시 또 예전과 같은 예배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성과 회개, 그리고 다시 교회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여러 진단들을 쏟아내고 있다. 분명 어려운 사태의 중심에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의 조롱과 비판을 온 몸으로 받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엄중한 시점에서 지난 날 ‘꿩 잡는 게 매’란 식의 왜곡된 성장 병을 고치시려는 것은 아닌지? 교회의 크기만 자랑하고 교세만 자랑하던 목회자의 교만한 콧대를 꺾으시려는 것은 아닌지? 잃어버린 양한 마리를 찾으러 밤중에 나갔던 목자의 마음을 회복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기복신앙, 신비주의 등 온갖 비 신앙적인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복음의 순도를 높이시려는 것은 아닌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고 더 큰 재난을 대비케 하시려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교인 없는 텅 빈 예배당을 통해서 진정 교회가 무엇인지를 재대로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확실해 보인다. 잘 견뎌내면 오늘의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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