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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호 장로와 미얀마 난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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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0  0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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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2막은 전문인 선교사로

메타오 크리닉(버마난민병원) 한방과장으로 4년째 사역
박강호 장로(65세)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이다. 고교졸업후 공무원이 되고 첫 근무지는 양평군 서종면이었다. 양수리(두물머리)에서 청평쪽으로 올라가는 북한강변의 문호리에서 부터 정배리까지가 관할이다. 10년전 공직 생활을 시작한 첫 사랑 서종면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자녀들과 집을 짓고 정착했다. 서종면의 높고 낮은 산과 개울은 젊은 시절 그의 꿈과 희망의 묻어 있는 곳이다. 

1982년 경기도청 근무시절 수원에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였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2014년 안산시에서 환경재단 본부장으로 34년 공직을 마쳤다. 이후 신앙생활은 서종면 문호리에 위치한 들꽃교회(노환상 목사)에서 2009년도 장로로 임직을 받는 데 5인의 초대 장로들중 하나다 

박 장로가 처음에는 공무원을 시작했던 74년 에는 인사와 예산을 담당한 일반행정직과 현장의 농림, 토목, 보건환경의 기술직으로 이원화되었는 데 당시는 현장직을 좀 아래로 보는 분위기였다. 그때 박장로는 앞으로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행정직에서 80년도에 보건환경분야로 이직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환경업무는  다소 생소한 영역이었다. 그래서 박강호는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예방의학 석사과정을 공부한다. 또 한양대학교에 관련분야 박사과정도 밟게 된다. 또 1994에는 폐기물 분야의 선진분야를 배우기 위하여 3개월간의 일본 연수를 다녀오게 되면서 환경에 대한 국제적 흐름이나 시민운동 영역까지도 관심을 갖게 된다. 
   
 
경기도 공무원으로 시작한 공직생활
안산시 보건환경 분야에서 일하면서 1992년 브라질 리우환경 회의에서 나온 Agenda21(의제 21)을 국내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실천하여 이를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알리는 데 역할도 감당한다. 일화로는 1995년 안산의 초대 민선 시장으로 송진섭 시장(안산제일교회)이 당선되었을 때 시화호문제는 국가적으로나 안산시로는 가장 심각한 난제중 난제였다.

오폐수가 많이 나오는 반월시화공단과 안산시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오폐수가 처리시설이 완공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방조데 공사가 끝난 시화로로 들어가는 바람에 시커멓게 썩어 버린 것이다. 건설교통부도 한국수자원공사도 농어촌진흥공사등 관계기관에서 협의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결국 모든 오폐수가 집결되는 시화호가 위치한 안산시가 큰 과제를 떠 안게 된 것이다. 결국 안산시는 시화호 수질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하고 협의하고 노력하여 시화호조력발전소 건설. 상류지역 자연정화장치(현재 안산습지공원).대부도 완충저류지 확보등 중추사업을 구상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성과로 인해 1997년 송진섭시장이 정부로부터 녹색공무원상을 받게 된다, 결국 2002년 농어촌진흥공사가 시화호물을 담수화하여 농사을 짓겠다는 담수화 계획을 포기한게 된다, 사람 몸이나 자연도 마찬가지로 순환과 흐름이 생명이다. 인위적인 막음은 순리를 거스리는 것으로 결국 엄청난 재난을 부르는 데 담수화 포기를 위한 안산시의 노력의 인환으로 조력발전소를 통한 물 흐름을 회복한 것이다.

이런 힘든 사업이 성사되는 데 관련 환경단체들과 자기 철학을 일관하게 지켜왔던 박장로가 천성적으로 갖고 있는 올곧은 성품으로 맡은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려고 하는 성격이 한 몫을 한다. 그런 성격으로 인하여 때로는 쉽게 갈길도 어렵게 되고 유별나다는 말도 듣지만 지금의 살아있는 시화호를 보면 가슴벅차다고 한다. 
   
 
인생 제 2막을 위한 준비
그러나 이즈음 박장로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박강호의 젊은 날의 꿈은 한의사였다. 양평에서 병원을 하셨던 큰 아버님을 따라 젊은 시절에 접었던 의사를 다시 꿈군다.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틈틈이 공부하여 한양공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 때 만나서 도움을 주신 분이 미국무부 소속 미국대사관 연수원장을 지내신 박용득 원장님이다, 동네 악취가 심하다는 민원인으로 만나 미국 유학을 지원하는 후원자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한의과 대학에 편입학하려는 방향이 미국 한의학전문대학원으로 바뀌는 터닝포인가 되었다, 그 분의 주선을 유학길이 열리게 된다. 미리 한국방송대학에서 전공했던 영어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안산시에 휴직계를 내고, 2002년부터 3년동안 미국의 싸우스벨일로 한의학 학원에서 한의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48세의 늦은 나이로 공부도 힘들었지만 유학중 맛사지 , 주말시장 양말팔이 같은 알바를 해가면 어렵게 공부를 마친다. 그러나 이런 한의학에 대한 열망은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 좌로 부터 박강호 장로, 박경숙 권사,노환상 목사와 일행
미국에서 한방과를 졸업
한의학공부에 도움을 주셨 던 박용득 원장님과 약속했던 어려운 나라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의학 과정을 마치고 미국 한의사 면허를 득한 박장로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은퇴하면서 앞으로의 비전을 기도하던 중 과거 안산시 환경분야에서 일할 때 당시 안산시 민원 고충처리 민간위원장을 하던 허춘중 목사를 다시 만나게 된다.

당시 허목사는 태국 메솟지역의 미얀마 난민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허목사는 안산과 화성에서 민중 목회을 하다가 10년전에 선교사로 나가서 사역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 2005년 현재 근무중인 메타오 병원의 신시아 원장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가이드를 하면서 대화한 끝에 메솟의 메타오병원 사역을 허락받게 된다.

먼져 시무중인 들꽃교회 장로는 휴직한 후 선교사역의 가능성을 조사한 후에 결단하고 부인과 함께 제2의 인생을 메솟에서 살기로 하고 사역지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버마 난민병원 메타오 크리닉 한방과에서 Acupuncture(침술) 으로 5년 가까이 치료 사역을 하고 있는 지 오는 2020년 9월이면 5년째가 된다.

그가 근무하는 메타오 병원은 1989년 버마 민주화 항쟁시 핍박을 피해 난민과 함께 이곳으로 넘어온 미얀마 학생운동 출신인 닥터 신시아여사가 설립한 난민들을 위한 무료병원이다. 작은 의료로 시작한 이 병원이 지금의 규모를 갖게 되기 까지는 신시아역사의 헌신과 봉사에 대한 세계의료인들의 도움때문이다.
그림입니다..
   
                                            * 메타오 크리닉의 성탄절에 신시아 여사와 실무자들
메타오 병원에서의 침술진료
박 장로와 비슷한 생각과 사명을 갖은 이들이 하나 둘 모였고 기간을 정하여 봉사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의 이름난 NGO들과 의료인들의 도움으로 500여명의 직원들이 년간 15만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메타오 크리닉 한방과는 2010년 독일 군의관 한의사 닥터 울리에 의해 처음 시작되지만 그 분이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 한방친료는 부득히 문을 닫는 다.

그렇게 3년의 공백기를 거친후 다시 박강호 장로를 통하여 한방과가 운영된게 된다. 한방과 환자의 50%는 미얀마 국경 산간마을에 거주하는 난민이고, 50%는 태국 내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이다. 메타오크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병원까지 2~3일 걸어오는 것은 보통이고, 심지어 7일 동안 걸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는 가난한 이들이다.

치유는 영혼육의 치유요 치료는 육체의 병에 대한 치료다. 가장 한국적인 한의학은 자연의학이다, 그중 한의학적 치료는 영혼과 육신을 함께 돌보는 성령의 치유역사로 박장로는 지금 영혼육을 돌본다는 사명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한방 자연치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료장비나 의약품 문제를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사람은 치료하고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특히 낙후된 동남아지역에서는 그 실정에 맞는 치료방법으로 ‘적정한의학’ 이라고도 부르고 단순 치유만이 아니라 의료인력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한 치유사역도 초기는 대부분 서양 의사들이고 처음 보는 동양 의사가 침뜸과 같은 치료에 대하여 낮설게 느끼고 환자 몸에 불을 지른다며 병원장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를 본 환자들에 의해 이런 일은 사라졌다. 사람의 몸은 병이 나면 스스로의 면역체계에 의하여 어느 정도 저항의 바이러스가 형성된다. 즉 스스로의 자가 치유를 신이 허락했놓았다. 따라서 전문 의료인의 역할은 본인이 스스로 이러한 창조의 원리를 깨닭도록 도와주는 것도 치유중 하나라고  박장로는 믿고 있다.  

환자는 의사에 대하여 믿음과 의지를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과 두려움도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마음의 평안을 느끼도록 터치할 수 있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즉 먼져 의사가 그 영혼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럴 때 환자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갖게 되면 질병만이 아니라 영혼까지도 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빋고 있다.  

세조 시절에도 의원의 구분을 1口, 3藥, 6技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환부을 치유하고 처방하는 것 못지 않게 환자 마음속의 두려움과 근심을 내려놓고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희망을 갖고 의뢰하도록 하는 안부를 묻는 問診(상담)이 중요하다. 요즘 병원들은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많이 보느냐?가 관건이다. 그것은 의료보험제도 때문인데 많은 환자를 볼수록 돈이 되기 때문이다.
   
                                                                  * 치유를 받은 청년과 함께
침술을 전문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다.
박장로는 “하루 15~16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숫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옷 한 벌이 전부인 그들이 산에서 들에서 몇 일씩 걸려 병원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을 치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에게 배우기 쉽고 , 비용이 적게 들고 , 부작용이 없는 그 동안 정립해 놓은 ”적정한의학“을 소수민족지역에 보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지 의료인에게 적정한의학을 버마어와 소수민족언어로 가르칠 수 있는 적정한의학 선생님을 육성하는 것이다. acupuncture school을 세워 화요일 목요일 진료를 마치고 선생을 위한 선생을 가르친 지 벌써 3년이다, 3학년을 마친 학생 중 1명은 이미 카렌주 리키코시에 크리닉과 훈련센터을 열어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 귀한 사역을 부여노인전문병원(병원장 윤요셉)이 지원하고 계신다. 이러한 성과를 보면서 향후 계획은 소수민족지역 330여개 보건센터에 침치료를 하는 한방진료원을 가르쳐 배치하는 것이 소망이다. 우리의 보건지소처럼 우수한 대한민국의 양한방 통합의료시스템을 그 곳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안산시의료사업협동조합의 후원의 받아 메타오 크리닉에서 19명을 교육시켜 배출을 했다.

2020년 부터는 미국 기독한의사협회서도 관심을 갖고 돕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교육을 마치고 돌아가서 배운 한방크라닉을 지속적으로 전념할 수 있독록 하는 기본 경비를 지원하는 일이다. 기술만 가르쳐서는 그것을 현지에 적용할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강호 장로는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일과 이들이 현지 의료인으로 자리를 잡는 일에 도움을 줄 독지가를 찾고 있다.

진료는 기술이 아닌 마음
박장로의 좌우명은 베드로전서 5장이다, ”너희 중에 있는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을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라는 말씀으로 “나는 억지로 마치 못해 일하고 있지 않나? 나 자신의 이를 쫓고 있지 않나, 학생들에게 본이 되고 있나를 자문하고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는자는 좋아하는자만 못하고 좋아하는자는 즐기는자만 못하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論語 雍也篇)라는 말을 하였다. 그는 고위 공무원을 끝으로 퇴직후 년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 보다 신앙안에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한 일은 지식이나 취미가 아닌 즐거움으로 아는 그의 신앙안에서의 인생 이모작이다.

오늘날 교회의 신실한 신앙의 선진들이 교회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은 신앙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다. 더 어렵고 힘든 곳인 좁은 문에서 부르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더 이상 대접받고 부리고 받는 자가 아니라 약한 이들을 돕고 베풀며 사는 길이 어딘지를 박강호 장로처럼 우리도 찾아야 한다.
   
                                                   * 침술학교 수료식, 신시아 원장과 박강호 장로
                다음은 중부일보에 소개된 박강호 장로의 인생 2막 팁 3가지

1.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야
박강호 과장이 첫 번째로 말한 팁은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것을, 무엇을 하든지 시작하고 10년은 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미국 한의대 입학 기회를 얻고, 그 과정을 마치기 까지는 꿈을 실현하는 노력과 더불어 평소 방송통신대학 영어과를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 좋아하는 일을 해야
퇴직 후 어떤 일을 하게 된다면, 놀면서 즐겁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박강호 과장의 두 번째 팁이다. 낯선 곳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환자들의 건강이 회복되고 정상이 되면서 얻는 보람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놀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게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3.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라
지금까지 본인과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이제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박 과장이 여러 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할 곳을 찾다가 태국 메솟 지역에 자리 잡은 것은 이곳이 가장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10년전에 직접 지은 서종면 화서로 산위의 집
   
                                * 박강호 장로가 섬기는 들꽂교회(문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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