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낙도 선교와 장로교회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지금 찾아갑니다.
신안군 낙도 선교와 장로교회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8.10  23:47:37
트위터 페이스북

                           신안군 낙도 선교와 장로교회

한국 기독교 130년 역사의 열매로 그동안 많이 조명된 곳은 도시의 대형교회들이었다. 이들이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도하고 꽃을 피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한국기독교가 정신사와 사상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밝혀지고 조명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과거 유배의 땅 호남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2013년 5월 신안군 증도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개관되면서 신안군은 믿음의 섬으로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목포 시내의 근대문화유산들과 기독교 선교유적들을 연계한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최근에는 증도면의 부속 도서인 기점·소악도에 12사도 순례길이 선보였다.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외롭게 낙후되었던 지역이 조명되고 알려지게 된 것은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너무 상업적이거나 미화되는 것은 금물이다. 외국만 찾는 성지순례도 문제지만 발 빠른 장삿속은 더 큰 문제다.

이제 신앙유적지로 조명된 증도만이 아니라 신안군 전체에서 믿음의 발자취가 나타나고 있다. 신안군은 천혜의 자원인 갯벌과 염전 등 자연경관은 물론 복음 전래의 귀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신안군은 관내의 유인도와 무인도를 합쳐 1000개 이상으로 보고 1004의 섬으로 명명했다. 우리나라 섬의 1/4이 모인 이 주변을 국가도 ‘다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신안군 섬 전체가 기독교 보고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동안 다른 곳에 비하여 조명이 덜 된 신안군의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고 오랫동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굳건하게 제단을 지켜온 신앙 선배들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도 지극정성으로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충성하는 민초들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분은 아무래도 증도의 문준경(文俊卿·1891∼1950)전도사다. 이미 성결교단에서는 그녀의 헌신적인 사역과 순교를 기리기 위해서 증도에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그는 증도 인근의 증동리교회, 진리교회, 대초리교회 등 10여 교회를 개척했다. 이 교회들에서 김준곤, 이만신, 정태기, 이만성, 이봉성 목사 등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 30여 명이 나왔다.

증도는 전남 신안군에 속한 섬으로 2,000여 명의 주민 중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다. 논농사를 주로 하지만 사계절 어족 자원도 풍부한 곳으로 1953년부터 시작한 염전도 유명하다. 그러나 증도가 우리 사회에서 각광 받게 된 것은 바로 문준경 전도사 때문이다. 신안을 그의 순교 피가 흐르는 성지로 만든 것은 바로 그의 후예들이다.
   
 
                                                                                           
                                   

증도와 문준경 전도사 신화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출생해 17살에 증도로 시집와 20년을 시가 어른을 모시다가 목포로 나가 1927년 36살의 목포북교동 성결교회에 출석한다. 그 후 은혜받고 이성봉 목사의 권유로 1931년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 전신)에서 공부한 후 전도사로 고향인 신안군 일대의 섬에서 전도활동을 한다.

1932년에 임자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1935년에는 증도에서 증동리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한국 전쟁 중 피난을 나갔다가 교인을 돌보기 위해 다시 증도로 들어갔다가 남아있던 인민군들에게 59세에 순교를 당한다. 이로 말미암아 신안군 일대에는 현재 190여 개의 교회가 각 섬에 있는 데 증도에만 12개 교회가 있다.

이에 2007년 성결교단에서는 전국교회가 헌금하여 증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을 6년여 만에 건립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순교기념관을 찾게 된 것이다. 여기서 척박한 섬에서 배를 타고서도 복음전도 사역을 한 선진들의 믿음을 배우며 감사하는 발길들이 이어지고 있다,
   
                                                                   *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이를 계기로 신안군 일대가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8’에 의하면 신안군의 복음화율은 35%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육지와 떨어진 섬은 문물의 유입이 늦어지고 자연환경으로 바닷가 바람, 태양의 신을 믿는 토속신앙이 강한 곳으로 사실 서양식의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기 쉽지 않은 곳이다.

한국교회가 부흥과 성장의 이면에서는 이렇게 이름난 곳도 있지만 신안군의 다른 섬들에도 남모를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신안군 섬을 3개로 크게 구분하는 데 남부로 불리는 비금도와 도초도, 우이도, 하의도, 신의도, 장산도와 중부(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북부(임자도, 지도, 증도)가 있다.

이들 섬에는 하나같이 많은 교회가 있다. 그리고 순교의 흔적과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그동안 성결교에서의 역사조명이 일자 장로교 안에서도 그 역사를 찾는 일이 시작되었다. 교파를 초월하여 전도와 복음적 삶은 귀한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열매를 맺은 사연들이 너무 귀하고 각각의 열매가 다르기에 조명하고자 한다.
   
 
남 장로교 선교사역의 열매 
신안군에 가장 먼저 복음의 열매는 누구인가가? 그는 바로 암태도 단고리 사람으로 1890년 출생한 박복영 선생으로 기록된다. 그는 1908년 미국인 남장로회 선교사 맹현리(McCallie, Henry Douglas)가 지도하는 목포 성경학원에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다. 1916년 이후 다시 고향 마을인 암태도 단고리에서 기독교 전도 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894년 출생한 윤덕영 목사가 있는데 1915년 고향 친구 박봉연(박복영의 오기이거나 박복영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에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1932년 돈도 벌고 공부도 하자는 마음으로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거기서 영국인 선교사 구도사에게 은혜를 받고 이코마신학교에 입학한다 * 예수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www. aogk.org, 교단연감 역사 편에서 인용

이코마 성서학원은 1929년(昭和 쇼와 4년) 영국인 선교사 레오나드 W 쿱트(구도사)에 의해 설립된 성경학원으로 오순절 교단 소속이다. 국내에는 1928년에 창립된다. 김응조 목사의 후임으로 목포 북교동 교회에 부임한 이성봉 목사는 1931년 3월 25일부터 1936년까지 목회하였다(한국교회역사 자료 박물관   관장 장영학 목사)

“암도는 발동선으로도 두 시간 반이 걸리는 섬인데 그곳에 사는 김흥기라는 청년이 목포에 공부하러 왔다가 예수 믿고 고향 섬에 돌아가 교회를 설립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다. 지금은 그 섬에 교회가 다섯 곳이나 설립되었다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www.sungbong.org 이성봉(성봉선교회), 생애와 사상 7. 목포교회 목회시대 부분에서 발췌

이는 암태도에서 성결교회가 처음 세워지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다. 이성봉 목사도 암태도에서 성결교회의 시작과 성장이 김흥기 집사를 통하여서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볼 때 암태도에서 최초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도한 사람은 기록상으로 장로교회 출신 박복영 선생이다.
   
                                                                     * 비금 덕산교회 전경
비금도 덕산교회 이야기
비금도와 도초도와 서로 한눈에 보이는 섬이지만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도교가 있어 서로 연결되었다. 이 비금과 도초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비금도초의 모 교회는 덕산교회이다. 2020년인 올해에 창립 112년을 맞는다. 목포노회에는 118개 교회가 있는 데 신안군에만 2개 시찰이 있는 데 신안시찰과 동신안 시찰이 있다.

당시 신안군에는 많은 섬이 있었지만 비금덕산교회에 가장 먼저 복음의 뿌리가 내린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보여진다. 그렇게 시작된 덕산교회의 첫 장소는 덕산면 망동리에서 시작했으며, 이후 간척지 매립으로 읍내인 현 위치로 이전 건축한다. 초기에는 아동교육을 위한 망동학원(초등학교)도 운영하여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문화적으로 낙후된 섬이었지만 성탄절이 되면 연극, 합창, 율동, 암송과 같은 순서로 구성된 교회학교의 발표회가 있었다. 성탄발표회는 그야말로 큰 구경거리로 학예회 전신이며 요즘으로 하면 마을의 큰 축제였다. 섬마을에서 들려지는 성탄의 캐롤송은 한밤중에 천사들의 합창이었고 주민들에게 영혼의 잠을 깨우는 소리로 이 복음의 소리를 듣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비금도에서 배출된다.

더욱이 새벽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당시 시계가 없던 마을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천상이 소리였고 희망의 종소리였다고 전해온다. 그러나 교회도 일제강점기 압박으로 인한 신앙의 위기를 지나면서 독립과 민족교육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에 따라 교인들의 이주도 빈번했다.  해방 후 지금까지 덕산교회는 인근 마을에 14개의 교회들을 분가하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덕산교회 출신으로는 가장 유명한 이는 김수진 목사(교회사학자)로 지난 2008년 덕산교회 100년을 맞이하면서(예수님께서 오신 아름다운 섬-비금 기독교 100년사)을 낸 바 있다.

그리고 한일장신대 전신에서부터 학장과 총장을 역임한 강택현 목사도 덕산교회가 배출한 큰 지도자다. 이외에도 덕산교회에서 분가한 이웃 도초 성광교회에서는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가 나왔다.  이외에도 고만호 목사(여수 은파교회) 와 조현용 목사(빛과 소금교회) 김원웅 목사(광주 방림교회) 표영민 장로(동막교회 장로) 가 나왔다.
   
 
아름다운 섬 비금도
비금도(飛禽島)라는 이름은 날아가는 새를 뜻하는 데 천혜의 기름진 땅으로 해산물과 농산물등 부족한 것이 없는 섬이었다. 오지였으나 천성이 부지런한 주민들의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가난을 극복했다. 이제는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하트 해수욕장(해안이 하트모양)과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자전거 도로 등으로 유명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목포 북항에서 배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지금은 압해대교와 천사대교가 완공되어 암태도 남강여객선터미널까지 차로 올 수 있다. 차를 배에 싣고 30분이면 가산항에 도착한다. 이제는 더 상 외로운 섬이 아닌 곳으로 많은 외지인들이 방문한다.

과거는 농사와 염전이 주산물이었으나 최근에는 겨울 시금치가 일품으로 주민들의 큰 소득으로 잡았다.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여 천사의 섬으로 불리우는데 신안군 섬 가운데서도 천혜의 자원으로 세계에 유일한 해상공원을 꿈꾸고 있다. 이외에도 암태도는 소작쟁의로 안좌는 김환기 화백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또 세계 바둑계의 천재 이세돌 기사(알파고와 대결)도 비금도 출신이다.
   
                                                                * 도초성광교회(고훈 목사 모 교회)
신안군 교회는 덕산교회가 뿌리
비금교회로부터 분가된 신안군내 교회는 비금 서부교회, 제일교회, 도고교회,당산교회, 서산교회, 영광교회, 동부교회, 송치교회, 신안교회, 신안제일교회, 비금중앙교회, 갈보리교회, 가산교회, 비금실로암기도원등 14개 이지만 교파를 초월하여 신안군에 세워진 모든 교회들의 근본은 덕산교회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 교단 100회기 총회장을 지낸 채영남 목사의 모친이 덕산교회 출신인데 채 목사의 부친과 혼인하여 인근 섬으로가 당산교회를 세웠고 거기서 채 목사가 태어난 것이다.  특히 최근 덕산교회의 전설은 신안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것 외에도 유명한 종(鐘)이 있다. 이 종은 지금도 현존하는 데 오랫동안 방치된 것을 2015년 부임한 황규석 목사가 이 종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종탑을 세워 보존하게 된다.

그리고 총회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목포노회를 통해 총회 역사위원회에 선교사적 지정 청원을 올린다. 그 후 2019년 8월 13일 역사위원회의 실사와 연구 검증 결과 오는 105회 총회(2020년 9월) 총회에 인준 요청이 헌의 되어 허락 후 지정식을 할 것으로 보인다.
   
                                                                             *도초중앙교회
비금덕산교회의 놋종
총회 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손산문 목사는 비금덕산교회 사적 조사보고서를 통해 “비금덕산교회 놋종(銅鐘)의 정확한 제작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본 교회 4대 교역자였건 김봉현 조사(1920년대 시무)때 종을 구입한 것으로 보아 대략 1920~-30년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조사내용을 아래와 같이 이어간다. “교회 기록에 따르면 당시 목포 양동교회 종소리에 은혜를 받은 김봉현 조사의 동생 김봉신이 3년간 점심을 금식하면서 모은 양식을 팔아 평양에서 종을 구입하였다고 한다.”고 종의 구입에 얽힌 기록을 서술했다.

현재 종 외부 표면을 보면 십자가 표시가 있고 그 아래에 ‘관서로종’이라는 글씨가 한글로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종 내 외부 표면에는 종 제작사와 제작 연도 또는 종의 용도와 기증자 등을 부조 형태로 새겨 표시한다(예외로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기도 함). ‘관서로’라는 명칭은 예로부터 ‘서북로’라고 해서 평안도 일대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로 미루어 보아 평양 또는 인근 지역에 있었던 종이었거나 종 제작사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한편 비금덕산교회 종은 독특한 기계적 특징이 있는데 타종을 위한 종 줄을 도르래(pulley) 바퀴에 연결하지 않고 막대 장치에 연결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 종은 도르래 장치로 프레임에 고정된 종을 움직여 종 안에 매달린 추(clapper)를 내타(內打)함으로 소리를 낸다. 이에 비해 비금덕산교회 종은 종을 움직이는 장치로 도르래 바퀴 대신 막대 장치를 설치했다. 이는 이남에서 제작된 교회 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제작 기법이다.

따라서 비금덕산교회 종은 교회 기록과 교인들의 증언 그리고 실물의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평양 또는 이북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충분히 짐작된다. 이는 지금껏 발굴된 옛 교회 종 가운데 북한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는 남한 교회에서 유일하다. 또한 현존하는 대부분의 옛 교회 종이 철종임에 반해 동으로 주물된 놋종이라는 희소성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교회 종들이 공출당했을 때 드물게 교인들의 노력으로 빼앗기지 않은 종들이 있는데 비금덕산교회 놋종 또한 그런 귀한 종 가운데 하나이다. 보존 상태는 종 외부 표면에 일제때의 흔적으로 보이는 다수의 흠집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예배 시 타종할 정도로 양호한 편이다. 놋종이라 철종과는 달리 소리가 상당히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고 기술했다.
   
 
남장로교 최초 선교사
맥켈리(H. D. MacCallie, 맹현리) 선교사는 간호사였던 아내와 함께 1907년 미남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는 목포선교부에 부임하여 신안, 해남, 강진, 장흥, 진도, 완도 등 목포 근해 여러 도서 지역을 순회 선교하였다. 특히 신안군 비금도에는 이 지역 출신으로 목포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 강낙언을 대동하고 10시간이나 걸리는 뱃길로 1908년 입도(入島)했다.

맥켈리 선교사는 비금도 해변가인 월포리 촌전에 천막을 치고 전도를 하다 사람들이 모이자 4칸 예배 처소를 마련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에는 이때를 “무안군 덕산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본리인 강낙언이 믿고 전도하여 신자가 초진(稍進)함으로 예배당을 신건(新建)하고 선교사 맹현리와 조사 마서규, 이행언, 김경운, 김봉현 등이 차제(次第) 시무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덕산리교회 관리 당회장인 맥켈리 선교사는 해남에서 조사로 활동하고 있던 마서규를 덕산리교회 첫 교역자로 파송하고 예배 처소를 임리동으로 옮겼다. 이후 이행언을 2대 교역자로 파송하고 1911년 4월 2일 첫 세례식과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첫 세례 교인 중 한 사람이었던 김경운은 목포선교부에 개설된 달(月) 성경학교를 다니면서 제3대 교역자로 비금교회를 섬겼고, 이때 예배당을 상암 논골로 옮겼다.

멕켈리 선교사의 선교를 기초로 성장한 비금교회는 1920년에 이르러 세례 교인이 30명 이상이 되자 공동의회를 통해 김성규를 초대 장로로 선출하였다. 당시 교인들은 정성어린 헌금을 모아 예배당을 논골에서 망동으로 옮겨 ‘ㄱ’자 초가 예배당을 건축하고 장로 장립식을 가졌다. 그리고 장립식 다음 날인 1920년 1월 20일 첫 당회를 열고 교회 명칭을 비금교회에서 비금덕산교회로 변경하였으며, 망동학원을 운영하였다.

고난의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비금덕산교회는 1938년 6대 교역자로 김종인 목사, 1941년 7대 교역자로 김방호 목사를 청빙하여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성장을 이루었다. 일제 말 조선기독교를 통폐합시킬 때 일제는 비금덕산교회 하나만 남기고 인근 도서 지역 교회는 모두 폐쇄하였다.

해방 후 혼란기와 6.25동란의 시련을 겪고 난 후 교인들은 9대 교역자인 김영옥 목사를 중심으로 다시 교회 재건에 나섰다. 후임 윤희석 목사 때에 35평의 예배당을 신축하고 새로운 부흥의 희망을 가졌으나, 섬이라는 이유로 비금덕산교회는 더 이상 목사를 청빙하지 못하고 전도사 시대를 맞게 되었다.
   
 
비금도의 천혜유산
예로부터 비금도는 천일염과 시금치 등이 유명하며 원평, 명사십리, 하누넘 등 유명한 해수욕장과 칠발도해조류번식지, 성치산성, 도고리산성지, 서신사 등의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섬이다. 섬의 전체 면적은 48.490㎢이고 인구는 1,834가구에 3,766명(2013년 기준)이다. 비금도 내에 있는 마을은 덕산리를 비롯해서 13개 동리가 있다.

비금덕산교회가 위치한 읍동은 면사무소 등 주요 관공서 및 기관들이 있어 섬 전체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다.  금덕산교회는 예배당과 선교관 1동, 사택 및 약 200여 평의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데 섬 지역 교회로는 시설과 규모가 비교적 상당한 편이다.  그러나 놋종이라는 중요한 유물외에는 역사만큼이나 보존된 신앙 유산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급증하는 관광객들중 기독교인 비율이 상당하여 볼거리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면 탐방과 예배을 연결하여 묵는 관광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총회 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1920년 논골 망동에 있었던 ‘ㄱ’자 초가예배당을 여유 부지에 복원하고, 이를 기초로 ‘역사박물관’ 또는 ‘도서선교기념관’으로 확장하여 신안군 도서 지역 선교의 역사를 알리는 요람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역의 기존  여러 명소들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가 가능하다.  비금도에는 바둑천재 이세돌 기념관과 명사십리 해수욕장, 히트해수욕장이 있어 기존 볼거리는 충분하다. 

특히 흔하지 않은 놋종으로 제작 기법이 특이한 점, 평양(또는 이북)에서 제작된 종으로는 현재 이남에서 유일하다는 점, 일제강점기 교회의 핍박을 견뎌온 역사를 간직한 종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향후 남북이 통일되어 북한 교회를 회복하고자 할 때 이 종을 북한에서 타종한다면 상당한 역사적 의미와 상징을 나타낼 수 있다.

이와같이 종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 외에 비금덕산교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는 미남장로회 목포선교부가 맥켈리 선교사를 필두로 하여 멀피, 하퍼, 니스벳 등의 선교사를 신안군으로 파송하여 초기 한국교회에서 가장 왕성한 도서 선교를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신안은 다도해가 절정을 이루는 섬의 천국이다. 신안군은 전국 섬의 1/4에 달하는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천사의 섬’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뛰어난 절경으로 유명한 홍도와 흑산도, 최서남단의 외딴 섬 가거도, 슬로우시티로 알려진 증도 등이 모두 신안에 속한다

호남 지역을 선교 구역으로 했던 미남장로회는 육지뿐만 아니라 도서 선교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위해 토착 한국인 도우미(Helper, 助事)와 협력하여 도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나갔다. 그 첫 열매로 비금덕산교회가 세워지자 이를 모(母) 교회로 하여 신안군 전역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여러 교회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다.

비금덕산교회는 이러한 결과로 미남장로회 목포선교부 도서 선교의 첫 열매이자 요람으로서의 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비금덕산교회는 놋종과 도서 선교의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교회로서 1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왔다. 그 세월에 비해 현재 보존된 유형의 신앙유산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놋종의 보존과 도서 선교의 역사적 의미로도 총회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총회역사위원회는 일찍이 익산황등교회(제33호)와 남원세전교회(제34호)를 종의 역사적 가치만으로도 총회 사적으로 지정한 바가 있다. 또한 광양신황리교회(제16호), 안동서부교회(제36호), 청도풍각제일교회(제37호) 등은 중요 유물인 교회 종에 더하여 각각 ‘희귀 유물 보관’, ‘이원영 목사 기념’, ‘청도 최초의 복음 전래’라는 명목을 부가하여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총회역사위원회는 과거 영등포산업선교회를 한국교회 산업 선교 현장이란 특수 선교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 ‘산업 선교 발상지’라는 명목으로 총회 사적 제8호로 지정한 바 있다. 그리고 전주예수병원 역시 ‘의료 선교’라는 특수 선교를 기념하여 총회 사적 제31호로 지정하였다.
   
 
이러한 전례와 역사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았을 때 놋종 보존과 도서 선교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 비금덕산교회 또한 총회 사적으로 지정함에 별로 무리가 없지 않을까 한다. 다만 조사자의 종합적인 판단으로는 ‘도서 선교’라는 특수 선교 기념에 좀 더 무게를 두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도서 선교라는 역사적 의미는 섬으로 구성된 신안군의 지역성과 맞물려 과거 한국 교회가 도서 지역에까지 미친 선교 열정과 대사회적 영향력을 증거하는 중요한 역사 유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총회 사적을 지정함에 있어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은 그 신앙유산이 갖는 교회사적, 역사적, 예술적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간혹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익산 지역 최초의 교회인 남전교회는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유형의 유산이 전혀 없었음에도 총회 사적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남전교회가 현재 통합측과 기장측 두 교회로 존재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신앙유산을 기장측이 보존하고 있어 통합측은 교회의 역사성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총회역사위원회는 남전교회가 익산4.4솜리만세운동을 주도한 역사에 주목하여 이를 기념하는 사적으로 지정하고 교회는 향후 초기 예배당 복원을 비롯한 역사 되찾기를 약속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고려는 비금덕산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신안군의 기독교 선교 역사는 6.25때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으로 주로 성결교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사실 신안군의 선교 역사는 성결교에 앞서 애당초 미남장로회 목포선교부의 도서 선교에 대한 열정과 의지에 의해 이루어졌다.

비금덕산교회가 총회 사적으로 지정되어 도서 선교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고, 교회가 향후 복원된 역사 유산들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성결교에 앞선 장로교의 도서 선교 역사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책적 고려도 비금덕산교회에 적용될 필요가 있다.
   
                                      * 지남교회가 자리한 지남마을 전경(한국의 산토리노)
비금 덕산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안군 장로교 역사 알아가기
이번에 비금 덕산교회의 놋종이 총회의 사적으로 지정되는 것을 계기로 하여 이 일대에 대한 장로교 역사 찾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1985년 제70회 총회에서 결정된 도서(섬) 지역 의료선교사업을 위하여 총회 농어촌부에 ‘도서(섬)의료선교위원회’ 가 조직된다. 설립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의료소외지역 주민들에게 치유와 삶의 소망을 주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섬김과 나눔을 실현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하여 1986년 초대 위원장으로 림인식 목사가 취임하여 1989년에 16톤의 첫 번째 ‘구원호’를 취항시켰다. 또한 1990년에는 팔금도에 도서의료선교원을 건축하여 현지에서 선교사업을 뒷받침했다. 더 많은 섬들의 요청으로 더 크고 빠른 의료선이 필요하여 1995년에 40톤급 두 번째 ‘구원호’를 건조, 취항시켜 지금까지 35년 동안 약 18만여 명의 무의촌 섬 주민들을 치료해 왔다.

그동안에 본 기구는 의료선교사업뿐만 아니라 고령화된 섬 주민들의 일손과 환경개선을 돕는 봉사사역,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에게 육지 병원의 도움으로 진료을 받게 하는 협력사역, 그리고 섬 지역 학생들을 위한 어학원을 설립하여 양질의 어학교육을 받게 하는 교육사역 등등의 선교사업을 실천해 왔다.

이런 가운데 <도서(섬)의료선교위원회>의 명칭은 2003년도에 <도서(섬)의료선교회>, 2008년도에 <총회해양의료선교회>를 거쳐 2019년에 현재의 <지구촌의료개발기구>로 변경되었다. 명칭의 변경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본 기구는 섬 선교의 연장선상에서 <호주별빛아시아재단>, <세계병원선교회> 등과 협력하여 국내 도서지역 선교를 넘어 북한을 비롯한 전 지구촌으로 사역의 외연을 넓혀 가고 있다.

따라서 1995년 취항하여 지난 35년간 사역한 ‘구원호’는 그 수령을 다하여 폐선을 위해서 목포항에 정박되어 있다. 그러나 보존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하다는 평이다. 이에 도서(섬) 의료선교의 수명을 다한 이 배의 활용을 다각도로 연구하던 중 이를 비금덕산교회의 놋종이 총회 사적지로 지정되는 것을 계기로 신안군에 의료선교를 시작한 미남장로회의 도서선교기념교회로 총회사적 지정 과정 중에 있음을 알고 ‘구원호’를 비금덕산교회로 이전하여 한국장로교 도서선교 역사를 계승, 공유하고 있는 유산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비금덕산교회와 협의 중이다.

따라서 미국 남장로교 선교의 씨앗이 맺은 첫 열매이자 현장이며, 신안군 섬 마을교회를 대표하는 덕산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놋종과 아울러 구원호의 전시관을 연합하는 것이다. 이는 본 교단 ‘산업선교’의 역사성을 영등포 산업선교 현장에 기념‧보존(총회사적 제8호)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도서선교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구원호’ 또한 선례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 덕산교회 주일 예배 전경
지구촌의료개발기구
‘구원호’를 폐선 처리하지 않고 한국장로교회 도서선교의 기념유물로 영구 보존코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앞서 총회사적으로 지정‧결의된 비금덕산교회와 협의하여 이곳에 육상 존치하려고 한다. 그 이유로 비금덕산교회가 미남장로회 신안군 도서선교의 첫 열매가 되는 교회로서 ‘구원호’는 바로 그 역사성을 잇는 유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계획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비금덕산교회와 ‘구원호’ 모두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남장로회 도서선교기념교회로 지정되는 비금덕산교회는 이를 기념할 만한 마땅한 유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비금덕산교회 인근에 ‘구원호’를 존치할 수 있다면 종과 함께 섬선교의 역사적 자료관으로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라서 ‘구원호’의 영구보존을 계획하는 <지구촌의료개발기구>의 계획과도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런 시너지 효과를 잘 개발하면 장차 신안군에 또 하나의 역사문화콘텐츠를 제공하게 되고 이를 통해 군 당국의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성결교 문준경 전도사로 대표되는 신안군의 기독교 역사를 훨씬 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본 교단의 도서선교 역사 또한 부각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를 통하여 지구촌의료개발기구는 한 시대 신안군에서의 섬의료선교의 산증거인 구원호와 최초의 교회 덕산교회에 영구보존하므로 선교부의 역사적 자료와 가치를 후손들에게 알리는 산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신안군에서도 1004섬의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업과 협력한다면 증도의 문준경 기념관과 함께 복음의 확장성에 대한 산 증거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지구촌의료개발기구는 한 시대 선교의 성과와 자취를 마무리 짓고 다음 사역지인 북한과 아시아 아프리카로 가자는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고 복음을 전해온 선교사들의 사역정신을 이어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이어가는 일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유재무 편집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4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5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6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7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aum.net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왕보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