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조금 씩 진보하는 것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칼럼/기고/강연
역사는 조금 씩 진보하는 것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10.08  10:30:28
트위터 페이스북

                          정죄보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  

우리 총회 역사상 교단 내외적로 가장 큰 사건은 합동과의 분열일 것이다. 그 이전 해방후 고신과의 분열외에도 기장측으로 불리우는 조선신학교의 김재준 목사의 제명으로 인한 분열도 있었지만 합동측과는 분열은 한국기독교 역사의 가장 큰 일로 기록되는 데 학자들은 이를 3차 분열로 보기도 한다. 분열하고 싸우기 보다는 서로 딴 길을 모색한 것은 잘되었다는 느낌이다.
`
당시 분열에는 신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959년 44회 총회가 대전제일교회에서 열렸는 데 총회에서 경기노회 총대 문제로 논쟁후 정회를 한다 그 다음 해에 양측은 승동(합동)측과 연동(통합)으로 총회가 속회되여 분열을 공식화한다. 그후 몇 년동안은 재결합을 위한 위원회가 나오지만 타협할 수 없는 내용들로 긴 대화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가 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그후로도 합동측은 호남을 축으로 한 개혁교단(광신신학교) 합동신학원(합신)등으로 여러 번 분열을 했다. 하지만 통합은 이후 분열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은 교회연합운동(에큐메니칼)에 대한 신학적 기초로 당시 한경직, 강신명 목사등 선진들의 통합 정신이라고 보여진다. 이것은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주의신학이나 혼합주의가 아닌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를 읽어 내는 포용성으로 현대신학을 공부한 선진들의 넓은 사고와 신학적 관용 정신 때문으로 보인다.

근자에 기억되는 가장 큰 분쟁은 부산영락교회 고현봉 목사가 80년 64회 총회장이 되고 81년 65회 총회를 을 부산영락교회로 유치하고도 분란으로 1987년 합동정통(현 백석)으로 가 우리 총회를 이탈함으로써 끝이 난다.  이 분쟁은 오랜 동안 우리 총회의 큰 이슈였는 데 이렇게 대형교회, 큰 지도자들의 힘과 권위가 교단을 흔든 사건이다.   그후로는 기관들의 산하기관 이탈문제로 총회가 몇 번 큰 혼란을 겪었는 데 선교사들이 준 것을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기관들이 더 문제다.
이외에도 대구 계명기독병원과 서울의 피어선 학원, 전주 기전학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교단내 자원이나 자력이 아닌 모두 미국장로교회가 지원을 하거나 운영을 하다가 이양한 것들인데 그 안의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 노회의 인사들의 묵인속에서 사유화하였다. 그러고도 지금도 전주 예수병원과 대구의 애락원은 총회와 분쟁중이다. 결론은 총회나 노회에서 아탈하여 법인 중심의 이익단체로 전락되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연합기관들인 성서공회나 기독교서회 기독교방송,연대 배민수 목사 기념사업등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위한 감시와 견제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교단 파송 이사들을 무력화시키는 개방(찬성, 회원)이사제도에 친위대를 구성하고 은퇴자들을 앞세운 경영의 인위적인 사유화를 막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보 부족이나 근시안적인 인식으로 안의 제 식구는 같이 합세해서 때리고 밖의 더 큰 부정은 묵인하는 모양세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결론은 이런 과정에는 신앙이 없고 교단에 대한 정체성이 없는 이들이 아니라 너무 잘아는 분들이 주역이라는 점이다. 이일은 당대에 총회나 노회를 대표하는 분들의 묵인과 협조속에서 진행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지금도 전주 예수병원 문제는 전북지역의 8개 노회를 분열시키는 비호자들 속에서 온존하고 있고 대구의 애락원은 경북노회가 그 진원지다.

교회문제는 해 노회가  
이런 연장 선상에서 보면 서울동남노회 명성교회 세습사건을 유추한다면 최근 우리 교단의 가장 큰 이슈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진 데는 교권주의자들의 의도나 묵인이 아니다. 예장 개혁세력들과 젊은 목회자, 총회 산하 신학대학 교수들, 특히 장신대 교수들과 신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사실 동남노회가 그 진원지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은 없었다.

그러나 명성교회에 대한 문제는 동남노회안에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을 비대위가 총회나 재판으로 가지고 나와 사회적 사건이 되었고 일반 언론들 까지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커진 배경에는 단순히 세습만이 아니라 그동안 대형교회의 위세와 집중에 눌린 이들의 말없는 연대와 저항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외부인들의 지적이나 비판은 한 두번으로 족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총회 일에 그렇게 관심들이 많치도 않았던 이들이 이 일을 계기로 장로회의 원리나 법, 제도등에 대하여 관심갖는 계기는 성과다. 그러나 교회나 목사는 모두 소속 노회 관할로 다른 노회나 개인이 관여하지 않는 다는 관례를 깻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 헌법과 질서를 위반했다는 논리나 구호를 만들어 세반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세습이 큰 문제라고 하지만 개신교의 원리상 자기 교회 후임자를 교인들이 누구를 청빙하던 그것은 그들의 원초적인 자유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장로교가 추구하는 자유권(신앙과 양심, 직원 선택)으로 볼 때 그렇다. 또 청빙은 그 주체가 교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교인이 원치 않는 데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공이 큰 창립자라고 하더라도 교인들이 무조건 동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단의 질서나 법문제는 공기관의 사유화가 더 문제로 진짜 분노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명성문제는 교단법의 준수와 개혁적 관점에서 부와 권력의 세습이라는 윤리적인 비판은 할 수 있다. 그 외 교단 법 문제도 절차와 정서적인 것이라고 보여진다. 교단법을 어기는 사람이나 교회, 기관들이 한둘이 아닌 데 명성교회만 들고 까대는 것은 세습을 핑계로 감정이라고 보는 이유다. 아마도 가장 큰 교회이고 과거 교권에서 보여온 패권주의적 리더쉽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세습비판은 슬로건에 불과
그런데도 세습은 권력과 금권의 연장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다. 당회장이라고 재정이나 인사권을 멋대로 행사했다가는 목회하기 어렵다. 교회 안팎에 견제 세력들이 많아졌기 때문인데 카리스마의 지도자들인 성락교회 김기동, 제자교회 정삼지,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사랑의교회 오정현,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등이 시민단체와 언론들로 인하여 무너지거나 손을 들었다. 선대는 개척자고 공로자이니 어떻게 할 수 있었는 가 몰라도 후대는 전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개혁구룹들이 세습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론으로 세습을 부와 권력의 사유화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명성교회는 우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내부 씨스탬을 바꿔야 한다. 그럼에도 명성이 하는 일은 외부 정보를 수집하고 사안별로 대처하고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우호적인 인맥이나 언론에 의존하여 대처하는 수동적인 대처을 하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 그러니 공신들만 많아지고 시달리는 것이다.

개혁운동에서는 운동의 전략적인 면에서 힘이 쎈놈 하나를 제대로 잡아야 질서가 서기 때문에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한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세습은 사유화라는 의미는 재산상의 등기이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의 대물림과 전대의 목회 매카니즘을 유지시키고 전임자의 관여를 용납한다는 면에서 반 개혁적인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명성으로는 그것이 너희들이 말하는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명성교회가 주목해야 하는 일 
개혁 구룹은 명성교회가 장로들이 그렇게 많아도 다른 대형교회의 비하면 당회원들이 우민화, 서열화되고 있고 유급화하여 기업화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남노회를 지배하여 서열화시킨다는 것도 공개된 사실이다. 다른 교회들의 경우을 보면 목회(설교 행정)은 당회장이 하지만 재정은 장로들과 반반이거나 장로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데 비하여 명성은 목회자에게 독점되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명성은 총회가 정한 남선교회 여전도회활동을 협력하지 않고 여장로도 세우지 않고 여목사도 배제하는 등 전근대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한다.  이것이 바로 우민화 목회로 보기 때문에 교단 내 여러 분야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비판과 반대를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고 구조를 바꿔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가시적인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

만약에 김하나 목사에 이르러도 부친이 한 목회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진짜 세습이라는 비난을 용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명성교회가 김하나 목사를 선택한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즉 앞으로 목회와 교계에서 선대와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는 모습을 내외에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명성교회는 이를 위한 준비와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그 중하나가 명성이 교단의 중심에 서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교단의 인맥을 관리하고 사람을 배치하고 세우는 일이나 총회 일이나 인사에 관여하는 일도 필요없다. 명성교회 하나를 제대로 목회하는 것 자체가 가장 귀한 일이고 엄청난 일이라는 사명감을 갖아야 한다. 교권정치가 아닌 주어진 목양에 전념해야 하는 것은 명성만의 과제가 아니다. 모든 대형교회 목사들의 사명이다. 따라서 진정한 개혁은 구조를 바꿔도록 도와주는 주는 것이지 나가라거나 파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반운동도 살펴야 할일 
그러나 지금의 세반운동은 운동을 넘어 교단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위험한 지경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반대자들의 목회마져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목회자는 주어진 교회를 섬기고 건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목사는 자신이 청빙받은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 우선이지 교단의 질서를 위한 것은 나중 일이다. 그것은 해당 치리회나 담당부서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한두번 비판하는 것 이상은 모르나 입에 달고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명성 세습을 봐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옛말에 “도둑은 잡는 게 아니라 쫒으라” 는 말이 있다. 도둑잡으려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구헌날 세습타령만 하다가는 자기 교회 내부에서 피로증이 올 수도 있다. 장로들이 이것을 지지해준다고 하여도 결국은 엄밀히 말하면 남의 교회, 당회 참견하는 주제넘은 일이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이지 정죄자, 판단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잘못인지만 지적하는 것이지 해결사가 될 필요는 없다.

목회자가 작은 교회도 아닌 곳에서 설교마다 세습을 언급하고 정죄하고 또 나가서 기도회로 집회로 특정 교회를 비판하고 반대하다가 보면 사실 정서적으로 감정적이 된다. 그게 막히면 오기도 나게 되니 더 완고하게 되기도 하고 결국은 그 비난의 화살이 총회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 그 모습인데 세습한 교회 바로 잡으려다가 엉뚱한 총회장을 비난하게 된 것이다.

결론
지도자란 미래를 바라보고 좋은 것을 가르키며 나가는 것이지 남을 정죄하고 보복하고 지적절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특히 직업적 운동단체라면 몰라도 같은 교단의 목사들은 동료들의 약점이나 부적절함에 대하여 해당 치리회나 총회에  맡겨야지 앞장서서 반대하는 것은 덕이 안된다.  우리 시대 모든 진보 운동도 과거에는 분노와 좌절을 선동하여 운동의 동력으로 세웠다면 이제는 희망과 미래의 행복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여러번 명성교회의 세습에 대해서는 비판한다고 밝혔다. 제정된 헌법을 어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8회 총회서의 법제정은 졸속이었고 노회 수의도 안거친 표적입법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후 헌법위가 결의한 그 조항의 수정은 무시되었고 규칙부의 헌의부는 경유기관이라는 지적도 외면했다. 세습파나 반대파나 피장파장인 셈이다.   따라서 비판은 자유이나 그것의 원상회복하는  문제는 해 노회 관할이라고 본다. 불법을 덥고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난 8년으로 인하여 총회적으로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봉합하자고 한 작년 104회 총대들의 결정을 다시 무력화시키면 문제만 하나 더 늘게 될 것이다. 우려곡절 끝에 지금 이 문제는 정치부에서 논의 중이지만 아마도 그 결의의 무효를 다룰 수 없다면 당시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보는 총대들의 소송만 남았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도 아닐 것이 수습안 이행을 하는 동남노회나 명성교회가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몇년 간 교단의 공교회의 중요성과 정체성, 법에 대한 중요성을 아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도 하나의 성과로 보여진다. 

[관련기사]

유재무 편집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4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5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6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7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aum.net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왕보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