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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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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9  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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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열사 50주기'

   
                      *좌로 부터 전태삼 최재영 목사 부부 전순옥, 000, 천인숙 목사

전태일 열사 분신 의거 50년을 맞아 전태일을 조명하려는 열기가 뜨겁다. 열사로 호칭되는 최초의 인물이다. 어떤이들은 한국 사회를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짓기도 한다.  전태일! 그는 분명히 한국현대사에 굵은 획을 그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의거 반세기가 지났고 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문헌이 많지 않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이 책 <인간 해방의 횃불 전태일 실록 I, II>의 출판은 전태일 연구와 평가를 위한 진일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국가에서 최초로 훈장도 수여하였는 데 환영과 비판이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인간 전태일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역작이다. 더군다나 미국에 거주하면서 37년이라는 오랜기간 동안 300인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해온 저자의 끈질긴 최재영목사의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이 ‘전태일 실록’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동생 전태삼으로 부터 직접 받은 자료와 구술이라는 점 때문이다. 

저자 최재영 목사의 서문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그에 따른 교훈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1차 자료가 필수적이며, 그 토대 위에 연대별로 정리한 일대기가 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분신 항거 이후 지금까지 전태일의 모든 생애를 체계 있게 정리한 일대기가 발간된 적은 없었다.
필자가 전태일 실록에 대한 집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런 요인을 포함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필자는 어느 날 강원도 철원에 있는 대한수도원 경내에서 전태일과 이소선 어머니가 다녔다는 창현교회를 비롯해 임마누엘수도원과 대한수도원 소속 목회자들과 신자들 일행을 우연히 만나서 대화한 적이 있었다. 세 곳은 서로 밀접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여성 목회자 한 명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연이어 전태일과 한 동네에 살았던 이웃 사람들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들을 통해 전태일과 이소선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증언들은 한결같이 가슴 뭉클한 이야기였음은 물론이거니와 —긍정과 부정을 포함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며, 기존에 공개된 이야기들과도 사뭇 차이가 있었다.
그 후부터 필자는 일부러 전태일과 관련된 구전들을 듣기 위해 여기저기 관련자들을 찾아다니며 체계 있게 탐문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과연 우리는 얼마나 전태일을 잘 알고 있으며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전태일에 관한 자료들은 얼마나 정확하고 신빙성이 있는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암울했던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인 1983년 어느 봄날 필자가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대한신학교(안양대학교 전신)에 다니던 중 불심검문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평소 은밀히 애독하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이 그날따라 가방 속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군 입대를 코앞에 둔 신학생의 신분으로 불온서적 소지 혐의자로 몰려 한밤중에 남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이 계기가 되어 전태일의 죽음이 주는 역사적, 시대적, 사회적 의미는 물론 종교적, 이념적, 철학적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했고, 그 후부터 마음을 다잡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모으며 틈틈이 정리를 해가며 집필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필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맞물리면서 또 다른 전태일들이 자기 몸을 던지는 사건들이 연속으로 속출하고 있는 사회현상 때문이었다.
‘세상이 점점 발전하고 잘살게 되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또 다른 전태일이 필요한가’라는 의문과 함께 마치 이 사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어느 청년이 노동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으로써 혹은 어느 노동자나 대학생이 분신 항거함으로써 그제야 없었던 문제가 갑자기 생겨나기라도 한듯 언론과 여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일시적인 미봉책이나 임시방편으로 일관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목도하였으며, 집필하는 동안에도 이 땅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일터에서, 학교 캠퍼스에서 그렇게 전태일처럼 무수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는 마치 죽어서 사라져야 증명되는 존재로 비치는 것을 보면서 집필을 중단하고 현장으로 뛰어들려는 충동을 수없이 느끼면서 언제까지 노동자들과 학생들에 대한 죽음의 알고리즘이 반복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분노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노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의 이념과 방향에서 비롯된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집필을 이어가곤 했다.
그러나 집필이 소강상태에 빠져있을 무렵, 이소선 어머니를 만나보니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분의 얼굴에서 전태일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렇다면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아들에 관한 애잔한 이야기들은 물론 어머니가 인지하고 있던 아들에 관한 생생한 기억의 편린이 망각되거나 희석되기 전에 하루빨리 소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사를 제쳐놓고 집필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하루 빨리 책을 완성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짓누르고 있을 무렵, 이소선 어머니의 적극적인 구술과 협조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선생의 구술과 자료 제공으로 인해 마침내 원고가 완성을 향해 치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필자의 집요함 때문에 면담과 전화를 통한 증언과 구술 과정에서 이소선 어머니는 진액을 뺄 정도로 최선을 다해주었으며 늘 친절한 호의와 사랑으로 흔쾌히 응대해 주었다.
스물 세 살의 나이로 각인된 아들에 관한 모든 추억의 보따리를 필자에게 무한정으로 풀어 놓은 이소선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리며, 삼가 이 책을 영전에 바치고자 한다.
전태일은 2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워낙 가난한 상태에서 다면적인 삶의 궤적을 살아왔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의 폭압적 제약 때문에 자료들이 빈약하여 일반인들이 그의 삶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접하거나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필자는 집필 자료 확보를 위해 전태일과 직 ‧ 간접적으로 관련된 250명이 넘는 주변 인물들을 만난 것은 물론 전태일과 관련된 각종 서적과 논문, 컬럼, 사설, 기고문, 특집기사, 인터뷰 기사 등을 선별해 참고하였다. 그중에서도 현존하는 전태일의 일기장과 육필 원고를 고스란히 담은 이른바 《전태일 일기 CD 사본》을 유족 대표인 전태삼 선생이 제공해주어 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태일의 거주지 이동 경로와 취업 변동 경로를 따라가며 그동안 산재해 있던 자료들이 수집되고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구술 자료들이 확보될수록 누락되거나 간과된 전태일의 행적들이 하나씩 드러났으며, 직접 탐문해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여러 일화나 사건들에 대해 연도와 날짜를 표기하는 등 연대순에 맞도록 본문에 배치해 독자들이 전태일의 동선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도록 했다.
특히 그동안 미공개되었던 전태일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 얽힌 일화들은 물론 학력, 취업 등의 과정을 통해 그가 지닌 배움에 대한 열정과 사업에 대한 꿈을 재조명하였으며, 그의 가치관과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기독교 사상과 신앙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짐없이 공개했다.
그의 종교적 성향과 배경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교회 출석 이력과 종교적 행적은 물론 개신교 신앙인으로서 그가 지닌 영적인 면모와 그가 지향하는 신앙 세계도 새롭게 발굴하여 수록하였다. 또한 불투명하던 여러 곳의 피복업체 취업경력도 새로 발굴하여 체계 있게 정리하였으며, 노동운동 시절의 각종 진정 활동과 투쟁 활동은 물론 분신 항거 사건 직전의 구체적인 일정과 행적들도 밝혀냈다.
또한 전태일이 평화시장 노동운동에 확신을 갖도록 뒤에서 자문역할을 아끼지 않았던 부친 전상수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교차검증 작업을 통해 그가 젊은 시절에 목격하고 체험한 노동운동 사건들이 오히려 아들이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되는 동기유발과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와 더불어 유능한 문학적 소질을 겸비한 전태일이 평소 수기장에 옮겨놓은 자작 시와 소설 초안 등을 가감 없이 게재하여 그의 문학적 세계관도 드러나게 했으며, 특히 기독교 사상과 천부적인 성품이 결합되어 형성된 그의 숭고한 인간애는 물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인성과 투쟁가로서의 면모, 지독히 순수했던 연애 감성과 친구들과의 우정 관계, 냉철한 사고방식과 지혜로운 생활철학, 인간적인 면 등도 다양하게 재조명하였다.
또한 스스로 치밀하게 계획한 죽음의 결단과 분신 항거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서도 병원 침상에서 보여준 의연한 모습들과 유언을 통해 어머니와 친구들이 자신의 화신(化身)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했던 이야기들을 통해 죽음마저도 인간애로 승화한 전태일을 독자들이 새롭게 음미하도록 했다. 임종을 앞두고 유언을 받은 이소선은 죽어가는 아들과 맺은 유언을 하늘처럼 여기고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스스로 투사가 되는 길을 걸었으며, 모든 집안일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오직 아들의 당부를 이루는 일에만 몰두하여 마침내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자칫 사장될 뻔하거나 마치 기사의 오보처럼 왜곡되거나 굴절된 채 묻혀버릴 뻔했던 전태일 생애의 편린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보완하는 작업을 통해 한 폭의 그림처럼 드러나게 했고, 순수했던 그의 삶을 연대순으로 재생해냈다.
실록 2권 뒷부분 <덧붙이는 글>에서는 전태일이 남긴 정신과 유훈이 남측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분단의 벽을 넘어 북측에도 널리 알려지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필자가 여러 차례의 방북을 통해 인민들과 노동자들은 전태일 분신 항거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는가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을 수록했다. 남측과 노동 현실이나 노동 구조가 판이하게 다른 북측에서는 전태일과 남측의 노동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해 필자와 북측의 노동자, 학자, 목회자와의 대화록도 수록하였다.
이어서 장례식 전후의 국내 대학가의 주요 집회와 시위들을 도표와 함께 자세히 실었으며, 아직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일부 극우학자들의 불순한 주장과 이견을 사실에 입각해 논박했다. 또한 수출 목표를 정해놓고 개발독재에 여념이 없던 박정희 정권에서는 전태일의 분신 항거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반응을 보였고 어떻게 대응책을 마련했는지를 다뤘다.
한편 유신정권의 몰락을 가져다준 전태일의 분신 항거 사건과 박정희가 시해된 10.26 사건과의 연계성을 역사적 근거를 동원해 논리적으로 다뤘으며, 전태일의 분신 항거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의 당시 보도 행태도 심도있게 수록했다. 이어서 언론사와 노동청에 의해 훼손되거나 도난당한 전태일의 일기장의 행방과 그것을 되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당시 언론과 정부의 민낯을 고발했고, 영화감독 신상옥이 전태일 영화를 제작하려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과 마찰을 빚은 이야기도 최초로 다뤘다.
본문 전개 방식은 우리나라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전태일의 분신 항거 사건으로 다다를수록 실록이 절정에 이르도록 했으며, 새로운 역사의식의 관점에서 전태일의 생애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전태일의 생애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것을 자제하고 가급적 있는 사실 그대로 가감 없이 수록했고, 사실이 호도되어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킨 부분을 바로잡아 실체적 진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집필 중에 발견한 그의 생애에 대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은 교차검증 작업을 거쳐 대폭 수정했으며, 그의 친필 수기 원문을 연대순에 맞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해 독자들로 하여금 전태일의 인간적 면모와 당시 내면의 세계 등을 숨결처럼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다.
실록의 주인공 전태일은 23년간의 짧은 생애를 살았으나 이 땅을 떠난 것은 아니며 실제로 지금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동료와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친 전태일의 육체는 비록 소멸되었으나 그가 지닌 사회정치적 생명은 이 땅의 모든 노동자, 농민, 소외받는 민중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도록 했다.
50주기에 맞춰 출간된 전태일 실록은 이제 전태일 연구의 기초를 닦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청년, 학생, 노동자, 문학가, 역사가, 정치가, 성직자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 중에서 전태일을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는 텍스트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누구든지 전태일처럼 사람이 주인인 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노동과 인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사회개혁과 정치혁명, 인간 해방의 꿈도 꿀 수 있고, 문학과 사상과 종교의 꽃도 마음껏 피울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전태일을 아는 지식의 폭과 깊이가 더욱 넓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독자들의 의식이 점점 전태일에게 상정(上程)되거나 전태일을 영웅시하기보다는 각자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전태일을 찾도록 이 책이 동기 부여의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차례

[1 권]

제1부 ╻ 어린 시절
1장 | 부모(전상수, 이소선)의 만남과 결혼
2장 | 대구 출생과 영아기 시절
3장 | 부산 유아기 시절
4장 | 서울의 초등학교 소년 시절
5장 | 서울 용두동 집을 나온 1년의 가출 생활
6장 | 대구 중등학교 학창 시절
7장 | 대구 남산동에서 고학을 위한 가출 결행

제2부 ╻ 서울 생활
8장 | 대구에서 서울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 식구들
9장 | 참담한 서울 생활과 가족들의 상봉
10장 | 또다시 시작된 1년간의 밑바닥 서울 생활
11장 | 평화시장 첫 취업과 서울 남산동 50번지 이주
12장 |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만나지 못한 만남’의 인연들

제3부 ╻노동 ‧ 연애 ‧ 신앙 생활
13장 | 서울 남산동 50번지 화재 참극과 다락방교회
14장 | 도봉동 천막촌 공동생활과 천막 교회 설립
15장 | 남상사와 통일사에서 본격적인 미싱기술을 익히다
16장 | 쌍문동 화재민 천막촌으로 이주해 정착하다
17장 | 한미사 재단보조 취업을 통해 노동참상을 겪다
18장 | 오금희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다
19장 | 일기로 사랑을 말하다
20장 | 시로 실연의 아픔을 달래다
21장 |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에 도전하다
22장 | 확고한 기독교 신앙 형성과 교회 헌신
23장 | 자기 이름을 다양하게 개명하다

제4부 ╻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25장 | 창현교회 건축공사에 헌신하다
26장 | 부친을 통해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27장 | 평화시장 노조 선배들의 실패를 거울삼다
28장 | 바보회를 조직해 진정 단체로 활동하다
29장 | 자신의 생애 같은 ‘맨발의 청춘’을 노래하다

[2 권]

제5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30장 | 해고, 사표, 면접을 반복하다
31장 | 삼총사 친구들과의 우정과 공사판 막노동 시작
32장 | 평화시장의 젊은 베르테르가 되다
33장 | 소설 형식의 자기고백서를 집필하다
34장 | 박정희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편지 형식의 진정서를 쓰다
35장 | 허리우드 키드 전태일, 충무로의 단역배우가 되다

제6부 ╻ 생존의지
36장 |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37장 | 모범업체 ‘태일피복’의 설립 착상과 계획
38장 | 348명의 직원을 두는 모범업체 CEO의 꿈과 좌절
39장 | 현실과 소설 사이, 행동하는 소설가의 꿈
40장 | 잦은 철거에 맞춰 오히려 점점 넓어지는 판잣집 주거 공간

제7부 ╻ 죽음의 결단
41장 | 삼각산 임마누엘수도원(修道院) 건축공사 헌신과 죽음의 결단
42장 | 임마누엘수도원 하산과 투쟁의 시작
43장 | 삼동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하다
44장 | 분신 항거 1주일 전의 행적들

제8부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45장 |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40분, 횃불을 들다
46장 | 엿새 동안의 영안실 투쟁: 1970.11.13.(금)~18일(수),
14일(토), 분신 항거 이튿날

제9부 ╻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47장 | 15일, 분신 항거 셋째 날
48장 | 16일, 분신 항거 넷째 날
49장 | 17일, 분신 항거 다섯째 날
50장 | 18일, 분신 항거 여섯째 날

덧붙임 ╻ 못다 한 이야기

I. 장례식 전후의 국내 주요 집회와 시위들
II. 전태일 분신 항거 현장에 대한 이견 논박
III. 분신 항거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과 일기장 도난사건
IV. 전태일 일대기와 신상옥 감독
V. 분신 항거, 10.26 사태의 도화선이 되다
VI. 전태일의 분신 항거와 북조선(북한)의 반응
VII. 전태일 사진과 유서

저자 소개

최재영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집필과 강연 활동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이자 대북사역자이다. Social Movement Group NK VISION2020 설립자이며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문화예술위원회(예술) 등 다섯 개 기관을 두고 활발히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전태일 실록 1, 2권』을 비롯해 『북녘의 교회를 가다』,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외 여러 권이 있으며, 공저로 『평양냉면』,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 『자주시대를 부탁해』, 『북한, 다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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