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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형(天刑)의 섬 낙원의 섬 소록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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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8  18: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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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형(天刑)의 섬 낙원의 섬 소록도

오래 전부터 나환자 수용소로 인식되어진 소록도는 더 이상 외딴 섬이 아니다. 고흥반도의 녹동에서 연륙교로 육지와 연결된 소록도는 섬은 섬이로되 육지의 한 부분이다. 소록도로 연결된 연륙교는 인근 거금도까지 연도교로 이어져 버스와 차량이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다.  소록도를 생각할 때마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1975)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시 ‘소록도로 가는 길‘과 ’보리피리‘는 나병환자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일제 시대 조성된 국립나환자 수용소는 미국의 몰로타이섬과 같은 곳이다. 고흥군 녹동항에서 배로 갔지만 지금은 다리가 놓엿다. 지금도 경비실에서 주의사항을 듣고 일주할 수 있다. 주의사항은 공원 산책길과 개방된 박물관 및 전시관과 역사적으로 보존된 건물들만 볼 수 있으며 한센병 거주지역은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출입하지 못하게 한다.  

경비실이 있는 바로 그 지점이 수탄장(愁嘆場) 즉 ‘근심과 탄식의 장소‘라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 직원 거주지역과 환자 거주지역의 경계선이다. 환자 자녀들 중 미감아들은 직원 거주지대 보육원에서 격리생활을 했는데 한 달에 한 차례 허용된 면회는 감염을 우려해 10미터 쯤 간격으로 한 쪽에는 부모들이 다른 한 쪽에는 자녀들이 줄지어 눈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곳이다. 조금 뒤 자료실에서 본 기록은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이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배고프지 않느냐고 소리쳐 묻자 아들이 배고프다고 대답했다. 당시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하루 세끼 밥 챙겨 주는 것이다. 나환자 엄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면회가 끝나고 죽도록 두드려 맞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과 탄식의 장소인 모양이다. 생각해 보라. 부모자식이 생이별하고 한 달에 한 번 씩 눈으로만 봐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심정을.

과거 환자 전용 부둣가는 입원하는 환자를 실어오거나 식량과 필수품들은 이곳을 통해서만 들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직원전용 부두는 따로 있었다.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 시는 나병환자의 고통과 애환을 가장 잘보여준다. 그는 함경도 부유한 선비의 장남으로 태여났는 데 본명은 태영(泰永)이며 하운(何雲)은 필명이다.

그는 중국 베이징 농업대학을 졸업한 후 함남도청, 경기도청 등에서 근무하다가 나병으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에 월남, 1949년 시집 ‘한하운 시초(詩抄)를 간행해 나병시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어 1955년 제2시집 보리피리와 1956년 ’하운시전집‘을 출간했다.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토(黃土) 길‘을 출판했다. 자신의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도 감수성 많던 소년기 그의 시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소록도 가는 길과 보리피리 그리고 파랑새에서 문둥이의 설움을 느낀다. 

   
 

한하운 (1919-1975) 

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고 /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 피-ㄹ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何)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닐니리 

소록도 국립병원은  흰색의 현대식 5층 병원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한센병 전문병원으로 소록도 주민들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서울의 어느 종합병원에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시체을 해부곳과 사설감옥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수용된 환자가 죽으면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사망원인을 규명한다는 구실로 무조건 시체를 해부한 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수용자들은 3번 죽는다는 말이 생겼다. 처음 한센병 발병 다음은 죽은 뒤 시신해부 마지막 화장으로 죽는다는 자조적인 한탄이다. 해부실과 영안실 두 칸으로 나뉜 검시실은 해부대 등이 그대로 있었다. 그 옆 건물은 감금실이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조선 나예방령에 따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이곳에 수용된 환자들은 대부분 수용소 처사에 저항하거나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로 원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과 함께 강제노동과 온갖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특히 출감 시에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남자들은 무조건 거세 수술을 당해야 했다.

역사 자료실에는 자료들이 나름 잘 정리정돈되어 았었다. 이곳에 입원이 되면 모든 의료와 주거생활은 모두 국가에서 부담하여 무료다. 초기 한센인들은 인권이 침해되었어도 항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 투쟁 끝에 점차 발전하고 좋아졋다. 그런 내부 투쟁의 결과로 소록도는 악마의 섬에서 사슴의 섬이 된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펀국"은 소록도 원장과 축구에 얽힌 이야기다.

소록도는 멀리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한센인들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특히 노인은 해방직후 일본헌병과 조선인 자치대에 집단학살당한 소록도 84인 학살사건을 들려주었는데 내가 자료실에서 읽은 기록과는 약간 달랐다. 1996년 발간된 소록도 80년사에는 “해방후 직원들에게 병원 운영권을 빼앗긴 의사 석사학이 병사에 내려와 환자들을 등에 업고 주도권을 찾아볼 욕심으로 ‘오순재 일파가 창고의 식량을 빼돌리고 있다’는 거짓정보를 흘려 흥분한 환자들이 직원지대로 몰려들었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직원들이 뭍에서 치안대를 몰고 와 주민들을 학살했다고 했다.

61년 원장에 부임한 조창원 전 원장이 조사한 내용은 일본인 원장이 한국인 의사 석사학에게 식량창고를 인계하자 오순재 송희갑 등 한국인 직원 2명이 의사를 두들겨 팬 뒤 열쇠를 빼앗아 창고를 강탈(强奪)하려고 해 흥분한 환자들이 몰려오자 이들이 치안대를 끌고 와 주민들을 죽창과 총으로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84명이 총과 죽창으로 살해됐다는 일치된 증언을 보면 나는 학살사건에 일본군이 확실히 개입했다고 믿는다. 소록도에 해방소식이 전해진 것은 8월18일이며 학살사건은 22일이다. 당시 총기를 소지한 세력은 일본군경 뿐이다.

일본군 무장해제는 9월8일 미군이 진주하고 이틀 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남한의 치안은 여전히 일본군이 담당했다. 따라서 죽창은 모르되 총에 죽은 사람이 많다면 틀림없는 일본군경 짓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기록에는 일본헌병이 치안대와 함께 저질렀다는 구절도 있다. 노인들도 일본 헌병을 언급했다. 어쨌든 소록도 주민 84명이 학살당한 것은 틀림없다. 이들의 유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01년12월8일 발굴해 수습했고 이듬해에는 병원입구에 ”애한의 추모비(哀恨의 追慕碑)“라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문자 그대로 슬프고 원통한 사건이다.

한센병 자료역사관에 기록이 남아 있다.  공원에는 한하운의 버들피리 시가 넓적한 바위에 와불(臥佛)처럼 새겨져 있다. 공원중앙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구호가 새겨진 공원의 상징 '구라탑'이 세워져 있다. 미카엘 대천사가 긴 창을 들고 찌르는 석상이 세워진 구라탑은 천사가 나병을 무찌른다는 의미다. 공원 한구석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역장인 벽돌공장터가 있다. 이곳에는 천주교에서 대형십자가를 세워놓았다. 

손이 뭉그러진 한센병 환자들이 매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겪은 고통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으로 상징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5월 4일 소록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석등 형상의 기념비도 있다. 당시 교황은 전두환정권의 극력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고집으로 5.18의 현장 광주와 가장 소외되고 비참했던 소록도를 방문했다. 교황은 이날 한센병 환자들을 어루만지면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달려 왔다고 인사해 한센병 환자들을 감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환자구역 안에는 교황방문 기념성당이 세워져 있다. 

한센병 환자전용 성당과 5개리에는 장로교회가 서있고 중앙교회당이 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은 자기의 고통을 신앙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사회적 무지와 편견이 가져온 차별이 엄청난 고통을 준 것이다. 사실 한센병은 단순한 질병임에도 민간에는 아이을 잡아간다는 등 괴담때문에 큰 오해와 고통을 당했다. 양성환자와 상처난 피부를 직접 접촉하지 않는 한 전염위험도 없고 양성환자도 발달된 의학 덕분으로 쉽게 치료된다.

화란의 세균학자 한센이 이 균을 발견했다고 해서 한센병이라고 하는 데 한문으로는 구라(구라)라고 한다. 성경 히스기야 왕이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있는 이때 부터 나병을 천형(하늘이 내린병) 으로여겼다. 감염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나병환자는 머리를 풀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종을 치며 나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센병 환자 신규발생이 거의 없다. 가끔 외국 노동자들에게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수많은 나환자 정착촌도 머지않아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중앙공원에는 또 하나의 감사비가 세워져 있다.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다. 오스트리아인으로 젊은 처녀의 몸으로 이역만리 낫선 땅 소록도에서 43년을 봉사하고 홀연히 사라진 두 천사의 이야기를 두 노인으로부터 상생한 증언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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