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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제는 말해야 한다 "정병준교수의 교회사 발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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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3  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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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최초의 한국선교사 최찬영에 대한 NAE의 공격

새해들어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교에 기증된 마포삼열목사등 내한 선교사들의 자료가 공개되었다. 또 3년에 걸쳐서 완료한 국내 최초의 주간지 한국기독공보도 창간호부터 현재 까지 아카이브 자료화하여 공개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중요 역사 발굴에 힘을 쏫는 서울 장신대 정병준교수의 작업들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일들의 증거가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자잘못을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규명 차원 이다.

이번에 발표한 자료도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오해와 진실들이 낮낮이 밝혀져 충격이다. 특히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로 기록될 태국의 최찬영목사의 파송과 후원 이후에 대한 증거들이 나왔다.  이런 퍼즐들을 통하여 추론되는 것은 당시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신학적이기보다 의도적이고 정치적이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남산에서의 신학교 교사 건축비 사기사건도 그렇고 대구 계명대 사유화등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이 모두 개인의 사욕과 사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지금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이양한 선교적 유무형의 재산이 공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지를 물어야 한다. 전주 예수병원이나 대구의 애락원 그외 실로암 안과병원, 순교자기념사업회, 이외에도 각종 선교회와 장학회 성경구락부등 공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선교 유산들이 방치되거나 사유화 되지 않토록 해야 한다.

   
 

태국 최초의 한국 선교사 최찬영에 대한 NAE의 공격

1955년 예장 총회는 해방후 최초로 해외선교사 파송을 결정했다. 그때는 한경직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고, 태국선교비를 후원하였다."1955년 예장 총회는 해방후 최초로 해외선교사 파송을 결정했다. 그러나 비자와 여권 수속이 늦어져 최찬영 선교사는 1956년 4월 6일 출국해서 4년 동안 임기를 수행했다. 그리고 안식년 기간에 한경직 목사는 최찬영선교사에게 미국에서 공부하도록 권면했다.

해설/여러자료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최찬영목사를 파송하게 된 배경에는 한경직목사가 귀국하는 길에 방콕공항을 경유하게 되었는 데 당시 방콕은 아시아에 홍콩과 더불어 서구의 아시아 거점으로 금융과 교통, 문화의 허브들이었다.

또 서양의 아시아 선교부가 설정한 중국 곤명과 마닐라에 이은 중요한 배후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아시아의 강력한 종교 불교의 성한 곳이다. 한경직목사는 이곳에 서구인들도 오랜 염원인 기독교선교에 대한 비전을 갖고 귀국 후 서울영락교회의 후원으로 최찬영목사를 그리고 한해 뒤에 김순일목사를 태국 방콕에 파송한다. 그후 김순일선교사는 합동측으로 소속되게 되지만 최선교사는 소속이 없이 사역한다. 

그러던중 합동측 태국선교사인 오영철목사의 최근 선교기록에서 최찬영선교사의 자취가 언급된 바 있었다. 이에 허락을 받아 예장뉴스 일자에 보도한 바 있다 이렇게 역사의 흩허지 조각들이고 하나둘 씩 모아져 맞춰지고 있다. 따라서 역사발굴 차원에서 귀한 자료를 찾아주신 정병준교수의 학문적 노력과 수고에 감ᄉᆞ한다.  

   
 

최찬영은 공부를 마치고 1962년 태국과 라오스 성서공회의 총무로 취임했고, 1978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총무로 취임했다. 그는 1992년 65세로 은퇴했다.

1956년 이대영 목사를 총회장에 당선시킨 NAE 세력은 태국 교회가 장로교회가 아니고 에큐메니칼 교회이고, 최찬영 선교사가 에큐메니칼 선교사로 파송됐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 본질은 최찬영 선교사를 파송한 한경직 목사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었다.

아래의 기독공보 1959년 10월 8일 자의 기사는 호남 NAE의 핵심 정규오목사와 대구 NAE 핵심 박병훈목사가 태국 선교사를 공격하는 기사가 실려있다.

NAE 세력은 1956년에 총회에 총무 제도를 신설했고, 그 자리에 김상권 목사를 임명했다. 그리고 김상권 총무는 해외 선교사에게 선교비를 보내는 책임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최찬영 선교사에게 보내야 하는 선교비의 상당액을 착복했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NAE를 불신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 정규오목사가 공개적으로 한경직목사를 공격한 내용

1959년 대전 총회 이후 선교사들이 미국 교회에 공개적으로 보내는 한국교회분열의 배경에 대한 설명서 일부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태국에서 섬기는 두 명의 한국인 선교사의 생활비는 책임을 맡은 두 교회가 담당했다. 그들의 선교 활동비는 노회들, 교회들, 개인들의 헌금으로 충당되었다. 이러한 활동비를 모금하고 집행하기 위해서 총회의 해외선교위원회는 상근 총무와 회계를 두었다. 그 총무는 총회의 총무를 겸하고 있는 김상권이었다. 한국과 태국 사이의 외환 교환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모든 자금은 우리 사무실을 통해 태국의 우리 선교부 회계에게 미화로 전달되었다. 태국 선교부 회계는 한국 선교사들이 선교활동비를 받지 못해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한국의 선교부의 회계 장부를 감독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에게 온 것을 전해주는 은행원 역할 만을 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선교사 중 한 명이 총회를 앞두고 태국에서 한국에 왔을 때, 오래된 신학교 동기 중 한 사람이 그를 만나서 그에게 활동비 외에 훨씬 많은 특별한 선물을 보냈다고 알려주었다. 한국에서 모금한 액수와 태국에 전달된 액수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만일 대전 총회에서 임원이 선출되고 이 사안이 다루어졌다면, 이 문제 역시 조사를 받아야 할 문제였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이름은 총회 총무이며 해외선교위원회 총무인 김상권이다.”

선교사들은 NAE 세력이 3000만환 사건, 계명대학교 서류 선교사 사인 위조사건, 김상권의 재정 비리 사건 등이 폭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리하게 대전 총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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