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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공공성 어디서 오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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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17  13: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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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 사유화와 공공성 심포지엄
 
1. 체인질링에서 나타 난 성직자 상
2. 조성돈 교수의 "사유화와 공공성" 강연
 

지난 2012년 7월 6일에 한국기독교학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 한국 크리스챤 기자협회가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귀한 모임을 열었다. 이날 발표자는 숭실대 이철 교수와 실천신대 조성돈교수가 “한국기독교의 사유화와 공공성” – 신학적 대안 에 대하여, 한신대 전철 교수가 “한국교회의 사사성과 공공성” 강연에 이어 서울신대 이신건 교수의 “한국교회의 사사성과 공공성”에 대한 논찬이 있었다.

이 강연을 요약하면 이철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공통점은 경제라는 것이다. 물론 둘 간의 차이점도 분명한 데 전자는 물질의 사유화를 후자는 공유화를 주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경제와 물질이 갖는 힘과 마력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더 향유하고자 사유화로 마르크스주의는 이 사유화의 파괴적 결과를 알기에 공유화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는 신자유주의로 마르크스주의를 눌렀다. 이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로 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독교의 사유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세습이나 은퇴자의 권한등으로 나타나는 데 그 근저에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사유 통제 하려고 하는 나르시스적인 자아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사유화 현상은 자본주의의 사유재산과 막스의 물신주의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욕망에 의미가 있는가? 때로 욕망에는 의미가 있다.

어떤 이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물질 획득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감을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물질을 욕망한다. 또는 가족과 자녀를 위해 욕망한다. 이런 욕망에는 자기 제어 장치가 있다. 예를 들어, 가족과 자녀를 위해 경제적 부를 추구하던 이가 사고나 가정불화로 가족을 잃었을 때 이전 같은 경제적 활동을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실천신학대학의 조성돈 교수의 “한국기독교의 사유화와 공공성 –신학적 대안” 이라는 내용이다.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 유럽의 국가교회내지는 국민교회의 형태와는 다르다. 이렇게 교단형태의 교회는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트뢸치가 이야기하고 있는 교회형태(Church Type)와 종파형태(Sect Type)에서 종파형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교회에서는 종단형(Denomination Type)을 말하는 데 교회형까지는 아니어도 종파형보다는 좀 더 공적인 형태를 가진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교회성장 시대를 겪으면서 교회는 개교회주의로 급격하게 변했다. 성장이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그것을 가로 막는 모든 것이 다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된 것이다.

여기서 교단이나 공적인 기관들은 다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런 것들이 성장에 도움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극한 집단 이기주의 가운데 교인수 늘리고, 건물 올리는 것이 가장 선한 것으로 치부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성장시켜주겠다는 프로그램이나 세미나에 사람들이 모인다. 교인들은 어떤 교단에 자신들의 교회에 속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 교회에서 행해지는 프로그램에만 관심이 있다.

이것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교단에 대한 정체성보다도 프로그램으로 특징 지어지는 세미나에서 더 큰 정체성을 찾기도 한다. 오히려 이것이 자신들의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공공성이라는 것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 ‘우리 교회’외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 한국사회 특유의 특성도 한 몫을 했다. 그것은 가족주의와 분파주의다.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유교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동시에 가치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보편성을 잃게 되고 내 가족의 이익만을 챙겨 갖는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이것의 발전이 분파주의다. 우리 고향, 학교, 집안 등을 따지며 결속하지만, 동시에 이 카르텔에 끼지 못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집단이기주의다. 이러한 것의 대표적인 예가 재벌이다. 이것은 한국 특유의 경제집단으로 이해된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예가 없기 때문에 외국의 학계에서도 ‘Jae-Bul’이라고 하여 고유명사로 사용한다. 이것은 가족중심으로, 소유가 승계되고, 중앙의 한 사람에 의해, 그리고 그에 의한 특수집단에 의해 전체가 조정되는 기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이러한 재벌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계로 뻗어 가는 기업일지라도 결국 알고 보면 한 집안에 의해서 지배되고 통제되고 있다. 이러한 비 합리적인 경영방식이 가능한 것은 결국 우리 나라 특유의 유교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거 ‘가문’으로 이해되던 것들이 오늘날에도 비슷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초기 이러한 유교적 가치관을 깨뜨리며 새로운 가치체계를 가져왔다. 물론 그 배후에는 서구에서 온 선교사들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의 보편성과 합리성, 그리고 공익성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체계의 조직인 교회를 이 땅에 선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이 땅에 기독교기관이나 기독교학교에서 그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에서는 누구의 교회라든지, 또는 어느 집안의 학교나 기관이 없었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설립하고, 기관과 학교를 설립하면서 개인의 소유로 보지 않았고, 그것을 한국교회의 자산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철수한 후에도 그것은 한국교회의 큰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 역사 130여년에 한국교회 기관들이 문제가 생긴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한국사회 특유의 특성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유산으로 유지되고 남았던 기관들이 특정한 집단, 또는 특정한 인물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사유화돼 가는 것이다. 기독교정신으로 인해서 새로워진 것들이 다시 한국적 가치관에 의해서, 그리고 그 세력에 의해서 지배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때가 되었다.

조성돈 교수가 내논 4가지 대안이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되고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속에서 최근 느끼는 공교회에 대한 사사화가 심각하다는 생각에 재론해 본다. 조성돈 교수는 지금 초교파적인 실천신학대학교 교수이자 목회사회연구소 소장이기도 하다. 그는 영등포 영은교회 출신으로 연세대와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기독교 사회학을 전공한 평신도 연구자다.

그후 다른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지만 우리 교단에서 자라고 정성진목사가 설립한 거룩한 빛 광성교회 소속 목사로 Life Hope(자살방지)운동도 한다. 교파 신학자, 목회자가 아닌 시각에서 한국교회에 애정을 갖고 같은 대학의 정재영목사와 함께 교회개혁을 위한 컨설팅도 하고 있다. 이에 그가 결론적으로 내논 4가지를 소개하며 우리교단의 미래를 위하여 논의를 발전시키면 한다.

   
                    * 정성진 목사와 조성돈 교수

1. 기독정신의 회복이 필요하다.
보편적 가치와 합리성, 그리고 공익성이다. 이것은 내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합리성에 기반한 판단이 가능해야한다. 이러한 가치관과 태도에 기초하여서 토론의 문화가 이루어져야한다. 공적기관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토론하고 이해를 나누어야 한다. 그 자리에 필요한 것은 기독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공교회의 기능을 공고히 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에 공교회로 불릴 수 있는 기관이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희회(NCCK)도 한계를 가지고 있고, 한기총이나 한교협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없다. 또한 교단들 역시 공교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수없이 터져 나오는 문제들이 있는데 이런 것에 대해서 치리가 없고, 권고하거나 지도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 문제가 있으면 고칠 수 있어야 하는데 공교회가 무너지고 나니 한국교회를 대표할 곳도 없고, 동시에 한국교회를 단도리할 곳도 없다.

3. 공적 기관의 자리를 정치의 노획물이 되지 않게 보호해야 한다.
한국교회에 존중과 존경이 사라졌다. 인정받고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 이러한 어른이 없으니 기준이 없고, 가치가 없다. 결국 모든 의사결정은 힘으로 이루어지고, 그 힘을 조정하는 정치가 기준이다. 교계에 할당된 이사나 임원자리에 파송되는 이들이 정치에 능한 자들이 가게 되면 결국 그 자리가 정치적 포상이 되고, 그것이 다시 힘이 되고, 정치가 된다. 그러한 자리들이 희생의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4. 기독교에 공익재단이 필요하다.
사적 기반에서가 아니라 공동의 재산으로 남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관리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재단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다만 그 것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준비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것이 있어야 현재의 대형교회 위주의 한국교회 형태, 그리고 정치적 역할에 능한 이들에 의해 움직이는 한국교회의 형태가 고쳐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과 평가
우리는 개인과 집단 사적과 공적이라는 용어를 구분한다. 모든 출발은 개인이다. 사실 신앙이나 구원도 피조물과 전체라는 집단으로부터 개인화 시키면서 크게 부흥된다. 사실 중세이후에 만들어진 찬송가가 교회역사에서는 개인은 없다. 그러나 미국에 이주한 청교도들이나 종교자유를 원했던 대륙의 이민자들은 국가나 교회(교단)의 의미를 축소하고자 했다.

그리고 무디 이후 부흥운동과정에서 개인(나의 구원이나 축복)등이 전면으로 등장한다. 이렇게 문예부흥과 개혁주의 복음주의는 집단과 단체속에서 희생당하고 무시당한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자유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과 개발에서 다시 한번 국가주의와 공공성으로 개인은 다시 희생양이 된다. 산업화에서는 능ㄹ류과 협업으로 인하여 개인은 집단속의 하나로 묻힌다.

그러나 한국가회도 2000년이후 3만 달러 이상의 선진국에 입국하면서 이전의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기고 여성학 전공자들과 시민운동의 영향으로 소수자와 개인들이 다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는 협동조합운동가들의 모토였던 ‘All for one One for all“(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하여) 라는 주제에 맞게 개편된 것이다.

그렇게 되어 우리사회도 개인이 더 이상 희생당하는 것을 원치 않고 주체가 되는 사회로 전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는 데 개인의 존엄과 가치로써의 보호나 권리는 신장되야 하지만 그 개인의 합이나 권한을 위임한 국가나 단체에서의 공익성 혹은 공공성이 약화되거나 권한과 힘을 갖은 이들에 의하여 사사화된다는 문제가 있다.

경찰 공무원도 일할 때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강력한 공권력을 사용하지만 퇴근한다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자신도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야 하는 그러한 공적권한을 임의로 사용하는 폐단이 있어왔다. 경기도 도시자가 긴급 출동해야 하는 소방서를 격려하려면 일반전화로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긴급전화를 나 경기도 도지사 김문수라고 했으니 얘기 다한 것이다.

화제는 그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제대로 훈련이 된 사람으로 보였다, 전화를 받고 그런데 왜 그러냐는 답변이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를 못알아 들었는 지 쪾팔서서인지 권위주의적 태도를 포기 하지 않는 김문수 도지사는 어이가 없는 듯 근무자 이름을 묻고 경기도 도지사라고 항변하지만 큰 망신을 당한다.

국가 정당 기업 교회 그 구성원은 개인이지만 그들이 공적권위를 갖을 때 그리고 그 직무를 사사로히 행하지 않을 때 존경과 사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로 국한하여 보자면 과연 자신이 공인으로써의 의식이 있는 지에 대하여의문을 제기해본다. 예을 들어 어느 노회에서 총회 총대로 선출이 된다면 그는 개인이지만 공인이다.

그렇다면 그의 태도나 발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노회 더 나아가 총회의 구성원으로 업무가 확대 될 것이다. 따라서 총대로 파송받은 직무는 교회를 비례 대표하는 자로 총회의 발전을 위하여 임기동안만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형편은 어떤가 자신이 어떤 직책과 부서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다시 총대가 되기 위하여 구걸하고 압력넣고 인연을 대는 것은 과연 공인이라고 할 수 있을 까?

따라서 조성돈 교수가 강조하는 바 목회자들은 칼빈의 후예요 개혁신학 신봉자로써의 정신회복이 우선이며 공적 치리장들의 엄격한 책임의식으로 사적 유익을 보려는 조직이나 사람들로부터 공교회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적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헌신 신앙 선심이 아닌 제도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필요한 것은 제도개혁으로 다져지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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