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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 탈퇴를 위한 예장(통합) 목회자협의회의 입장부제: 한기총를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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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23  23: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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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총” 탈퇴를 위한 예장(통합) 목회자협의회의 입장

부제: 한기총를 해부한다.

예장 통합측은 이번 “한기총” 의 대표회장 선거사태의 한축인 이광선목사가 소속한 교단이다. 그러나 대다수 목회자들은 지금 “한기총” 지도자들의 탈선과 법정다툼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라도 나서 저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과 세상 앞에 참회의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으로 2011년 지난 4월 11일(월) 3시에 연동교회에 모여 김형태목사(전 총회장 연동교회 원로)를 모시고 모임을 갖었다. 그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몇 개의 노회들이 “한기총” 탈퇴를 하자는 헌의를 결의 하였고 자성의 기도회나 조사를 건의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묻는다. “한기총” 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들을 지도하는 총회와 총회들의 연합체로 목회와 교회의 연장선상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대답은 이렇다. “한기총” 은 이 땅의 교회들이 모여서 사회에 봉사하고 선한 역할을 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말해서 교회연합운동의 기본적이고 역사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이 급조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학이 서로 다른 교단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지한 신학적인 고민으로의 대화를 하기 위하여 로 모인 것도 아니다.

1.한기총의 창립배경
한기총은 1989년 12월에 탄생했는데 그 배경은 1988년 2월에 교회협이 채택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 에 대한 보수교회들의 반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는 한국 NCC 가 87년 민주화운동이후 정치 사회적으로 조성된 분위기에 힘입은 통일운동의 전환점이였다. 이는 정부주도의 남북문제를 다변화하고 분단의 고착화와 이로 인한 증오심의 극대화, 특히 ‘한국교회의 반공이데올로기를 종교적 신념처럼 우상화’ 한 점을 반선하고 이제 통일을 위하여 사상과 이념 제도를 초월한 화해의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 선언을 주도한 김형태목사나 이삼열박사가 소속한 예장 통합 총회는 교회협의 이 통일선언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만 한경직목사가 89년 89년 1월 남한산성에 한국교회 원로들을 불러 모아 “교회협이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기 위한 준비모임과 발기준비위, 준비위 총회(영락교회)를 거쳐 그해 12월28일 창립된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시대의 선교적인 과제들을 감당하려는 한교협를 무력화 시키고 자신들의 신학과 이해가 맞는 이들의 모임으로 시작을 한 것이다. 현재 한기총 개혁론자들과 존치론자들은 초기 결성 과정에 이렇게 고 한경직목사의 유지가 있으니 그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고 한경직목사의 명예을 크게 실추시키는 일로 만약에 지금과 같은 ‘한기총“을 보셨다면 당장 문을 닫으라고 하실 것이다.

당시 한기총 홈페이지에 있는 연혁을 보면, 정식으로 창립하기도 전부터 폭력배격 성명서를 발표하고 6.25상기 연합기도회와 8.15 광복절 기도회등 반공주의와 친정부 성격을 분명히 했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는, 89년 1월2일 남한산성 모임에 참여한 10명 중 9명이 북한 출신이라는 점 등을 꼽으며 한기총이 월남한 반공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됐다고 분석했다.

2. 한기총의 변화
그러나 역대 대표회장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기총의 성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다. 초창기 한기총에는 이북 출신출신 목회자들이 많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대형교회 목회자가 참여한다. 그리고 최성규, 박종순 등 교회협 회장 출신의 한기총 대표회장도 등장한다. 한기총의 필요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욕구가 결합한 결과라고 보인다. 국민의정부가 등장한 이후 한기총은 이북 출신 목회자 중심의 반공단체라는 기존의 성격에 변화를 가했다. 그전에는 반공단체의 성격만으로도 충분히 (정권 등에게서)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시대에 맞게 국민의 정부시절에는 호남출신의 이만신 목사를 세웠다가 다시 영남세력을 대표하는 김기수 목사를 대표회장에 세우지만 한기총의 위상은 그렇게 큰 변화가 없었다.

큰 변화는 대형교회 목회자가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등장하면서 한기총은 비로소 대안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대형교회 목회자가 제공하는 물질적 기반 -돈과 인원 동원- 은 한기총의 존재 가치를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엄신형 목사는 후원금 10억을 낸다는 약속을 걸고 처음으로 군소교단을 대표하여 한기총 대표회장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기총의 외형은 크게 바뀌었다. 89년 한기총 출범 당시 참여 교단은 36개였다. 지금은 무려 66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 단체도 출범 때에는 기독실업인회, 기독실업인회, 직장선교연합회 등 6개 단체였던 것이 지금은 월드비전, CCC, CTS 등 19개 단체에 이른다.

2. 한기총은 교회의 이념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했다.
“한기총“ 은 교회가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하려고 한다거나 연합과 일치라는 발전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였다. 내적 성숙과 발전의 수렴과정 없이 일단의 정치적인 요구들이 만들어낸 조직이다. 그래서 초기에 했던 일을 보면 주로 우리 기독교회가 대 사회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자는 의도아래 한국 기독교를 세력화하여 기독교의 이해를 관철시키자는 것 이였다. 그래서 타 종교인 불교와 천주교에 적절히 대항하며 사회의 기독교 지분과 이권을 챙기자는 것이다.

그런 정신은 지금 길자연목사가 주장하는 정부가 불교에 "템플스테이" 를 주려면 "쳐지스테이" 예산도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6.25 상기 연합기도회등 반공 이념 대립적인 행사들을 주도했다. 그런 배경을 분석하는 김지방기자는 당시 모인 초기에 모인 10명의 기독교 지도자중 9명이 이북출신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기총은 교회를 진보와 보수로 분열시켰고 결집된 보수의 힘을 모아 이해가 맞는 정치 세력과 거래해 왔다.

그러나 1997년 이전만 해도 ‘한기총’ 이 그렇게 정치적으로 노골적인 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기총은 국민의 정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 들인 탈북자, 동성애, 대중문화, 생명윤리, 해외선교 등 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활발하게 냈다. 종교 문제가 아닌 이런 사회이슈를 주제로 한 TV토론에 한기총 총무가 출연하기도 했다. 왜 이 시기에 한기총이 대사회 발언을 활발하게 하기 시작했나 물론 정치적으로도 열린 공간이였지만 호남정권에 호남출신의 회장인 이만신목사는 총무인 박영율목사는 당시 민주당 후보로 총선출마를 묵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을 거쳐서 참여정부 내내 이념성향의 정치집회를 많이 주도했다. 그런 동원력과 사회적임 힘을 바탕으로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조직이 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는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기총” 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비록 “한기총” 이 가입교단과 직원이 많고 사무실이 크다는 자랑을 하지만 세계적인 교단들인 감리교회와 기독교장로회, 성공회는 빠져 있다. 주로 합동측에서 분열했거나 신학적으로 가까운 성향의 군소교단들과 통합측의 몇몇인사들이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정부는 보수적인 입장의 목소리를 낼만한 민간단체가 과거 반공연맹이나 재향군인회, 특수전 동지회, 해병전우회에 불과했고 시민들은 식상했다. 그러나 한기총과 같은 기독교단체가 사회적인 공간을 확보한 후 이를 기반으로 뉴라이트가 등장하게 되었는데 보수적인 경제단체들의 회유와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참여정부 후반기로 당시 대표적인 시민 NGO인 경실련도 ‘우경화되고 있다’고 비판 받던 시기였다.

3. 안정되고 검증된 실무력이 없는 “한기총”
우리가 안정된 조직이라고 할 때는 건강한 정관과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실무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교협“ 은 공교회 조직으로의 회장을 뽑기는 하지만 한번도 그런 추태가 없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인 총무가 단체의 실무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어느 교단을 보아도 업무는 총무나 사무총장이 대표한다. 그러나 ”한기총“ 1년 임기의 회장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사무총장은 월급쟁이에 불과하여 회장의 성향에 따라서 좌우된다. 불교 조계종의 충무원장이나 천주교의 대주교를 예를 들며 개신교 수장으로써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싶지만 개교회의 목회자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 회장의 격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렇게 실세회장들이 재정을 담보하게 되니 대형교회 중심의 회장이 나오게 되어있고 심지여 어떤 이는 회장 조건으로 10억의 발전기금으로 내놓겠다는 거래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니 대형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분들 중에서 교회 연합사업에서 명예와 이권에 익숙해진 분들이 주로 하게 된다. 길자연목사는 칼빈대 이사장과 액트의 이사장을 지냈다. 이렇게 되니 그들의 회장의 성향에 따라서 좌우되니 오늘과 같은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래서 ‘한기총“은 구조적으로 실무력이 불안정한 조직이다.

통합측 교단은 처음에는 개인이 참여로 하다가 후일에 교단이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진보적인 “교회협” 과 보수적인 “한기총” 이 각기 대립하는 것을 완충하여 한 지붕 두 가족의 형태로 “진보와 보수” 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하여 한국사회에 어떻게 공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상당한 대화를 가져왔고 실무자들의 결단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행되지 않았다. 결과물들로는 서해안 기름 제거 봉사를 통하여 “한국교회사회봉사단”을 가져왔고 부활절예배도 연합으로 드리고 있다. 통합은 아직도 “교회협”과 “한기총” 에 다 가입하게 된 유일한 교단이며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그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4. 진보적인 기독교의 목소리를 좌경이라고 흑색선전을 한다.
“한기총” 은 과거 힘없고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일하신 좋은 분들을 돈과 자리로 회유하여 기독교회의 진보 개혁 세력들을 분열시켰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은 보면 왜 그런 일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가 알게 된다. 반드시 누군가의 편을 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갖은 자 힘있는 자, 잘되는 자, 안정된 자들을 두둔한다. 그러나 진보적인 목소리는 가난한자, 어려운자, 경쟁에서 쳐진 자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그렇게 서로 다른 관심을 갖고 일을 하면 그만인데 논리가 부족하니 이념대립을 조장을 한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 동포를 돕자고 하면 “북한의 교회는 가짜다” 라고 한다. 대북지원은 하지 말자고 한다. 그리고 “북한인권법” 을 만들자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통제하는 법을 만들자는 것은 상식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법을 반대하면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좌경이며 북한 정권의 하수인이다. 이 말을 가장 좋아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들이 돈을 주기 때문이다. 분단이 유지되고 긴장이 조성되면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빌미로 대북강경과 군비강화를 해야 하고 초기대응을 신속히 하지 못한 과정과 책임을 따지자면 군 정보누설이라고 하고 아군의 사기를 죽이는 일이라고 하고 반대하며 대북비난만을 일삼는다.

또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그때까지 성역으로 여겨졌던 종교 영역에 대한 사회의 비판이 노골적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기총이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사사건건 노골적으로 발언하자 반기련과 같은 안티 기독교의 활동을 불러왔다. 그러자 한기총은 교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목회세습, 대형화, 대형교회의 재정문제와 성문제) 에 맞서 교회의 대변하고 이익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면서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보여줬다.

5. 교회의 보수와 정치의 보수들이 만남은 타락을 가져온다.
이렇게 보수적인 기득권층에 기대여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과 손을 잡고 잡으려는 보수적인 정치 지도자들과 하나가 된다. 그들의 발언은 보수적인 신문인 조,중,동에 대 서특필된다. 그들은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하여 정치인들과 경제인들과 사귀고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한국 기독교교회 협의회“의 진보적인 정책과 대 사회적인 발언에 다른 소리를 내고 대항하는 축으로 활용화 되었다. 결국은 그들이 하는 일이란 보수적인 정치세력에 도움을 주고 됫 거래를 하는 데 그런 배출구, 집합체가 바로 “한기총” 이다.

이미 문제가 된 길자연목사는 “한기총” 의 회장을 지낸 분으로 재선을 위해 나왔다. 작년에 길자연목사는 이광선목사와 아시아연합대학원의 문제를 놓고 법정다툼을 하여 1승을 한바 있다. 이렇게 두 분의 감정싸움은 “한기총”에서 제 2라운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찬송가 공회” 의 불법성 문제로 길자연목사는 현재 4선의 이사장이 된 이광선목사를 그 단체의 책임자로 고발했다. 이렇게 고소와 고발을 일삼는 그들의 본심과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감투와 이권이다.

6. 법원이 파송한 직무대행도 인정치 않는 자들
"한기총“의 직무대행으로 법원에서 파송받은 김영훈변호사는 판사출신으로 법조경험이 많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법무법인 로고스의 경영담당 대표 변호사로 신실한 신앙을 가진 분이다. 운명처럼 부임함 그는 신실한 마음으로 ”한기총“ 의 문제를 단순히 법과 원칙의 문제로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써 화해와 중재 그리고 개혁이라는 끊을 놓치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사자들과 증경회장단 반대자들을 두루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자연 목사측은 총무단이라는 불법단체를 동원하여 만나는 날짜와 시간마다 “한기총” 회의실에서 항의성 기도회를 한다.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감추고 덮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하는 사람이다. 그들을 지지하는 홍재철목사는 수시로 대표 회장실에 들어않아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7. 한기총에 소속된 교단의 반 이상이 정체 불명이다.
한기총의 외형이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한국교회의 분열로 생긴 무수한 군소교단들이 큰 힘이 됐다. 군소교단은 이단이나 사이비 등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한기총 가입을 하고 그것을 교단으로써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절차로 여겼다. 교단이 분열하는 경우 누가 먼저 한기총에 가입하느냐를 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인 경우도 있다. 한기총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로 이곳에 가입하는 것이 교단으로써의 명분에 맞는 일이라고 이를 환영했다. 역사와 신학적인 명분에서 누가 봐도 교회협에 뒤쳐진 한기총은 양적인 측면에서 교회협을 압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려고 했다.

“한기총” 에 소속된 60여개의 합동측으로 분류되는 교단의 거의가 성직자를 자체적으로 양육하는 정규 신학교와 목사안수 제도가 불투명하다. 교단의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사무국이 없거나 총회장 혹은 총무들의 교회에 있는데 이것이 만연 총대의 원인이다. 교단들의 이름을 들어 보면 모두가 예장이다. 이들은 정규과정의 신학교육을 하는 전임교원도 없고 성직자의 교육과 안수의 권위를 담보할 수 없게 되자 “한기총” 가맹교단이라는 공식성을 획득하고자 들어와서 하는 일이란 불법적으로 신학생이나 모집하고 목사안수를 남발하고 이런 불법적인 일에 일당이나 받고 동원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기총” 교단분열의 조장하고 먹고사는 자기모순적인 집단이다.

현재 우리 교단에서는 우리가 제기한 “한기총” 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고 여러 논의를 하고 있다. “한기총”에 문제된 사람들을 퇴진시키고 개혁을 하자고 의견도 있지만 그것은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처방이다. 청와대도 ‘한기총“ 의 사건을 보고 받고 큰 실망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제대로 본 것이다. 지금의 “한기총” 저들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진보나 보수나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뼈아픈 반성과 과오를 반성하고 제도를 보완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한국사회로 부터 사형선고를 받았기에 문을 닫아야 한다.

8. 2000년대의 한기총
한기총이 정교분리의 굴레를 완전히 벗고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가 들어선 뒤였다고 본다. 그전까지는 사실 정교분리의 테두리 내에서 비정치적인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정도였다.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해봐야 북한핵 문제와 탈북자 문제 등에서 보수세력의 입장을 원칙적으로 대변하는 정도였다. 한기총의 변화는 외부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한국사회 보수진영은 위기감을 느꼈다. 냉전이 해체되는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는데 보수세력은 노령화되고 실천력도 없었고 저마다의 이익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때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이 한국교회를 ‘보수세력의 보루’로 추켜세웠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에서, 한국의 반공 태세가 난파당했다. “그래도 한국에는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 보루가 있습니다. 전 인구의 약 30%나 되는 개신교 세력과 약 70만이 그것입니다.” 2001년 7월부터 기독교 궐기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했는데 7월 한달 동안 그가 쓴 글 중 기독교와 관련된 글의 제목을 국민일보 김지방기자에 의하면

기독교의 궐기-카인의 후예, 사탄의 제자 타도
사탄의 편인가 하나님의 편인가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사명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던 김일성-김정일
거짓 선지자들을 타도해야 통일이 앞당겨진다.
기독교 뿌리에서 나온 이승만과 김일성의 차이
성경의 사탄, 세상의 사탄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도 아니고 기도회도 아닌 반공집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2007년 대선의 해에는 한기총이 “대선 후보를 검증하겠다” 고 나섰다. 당시 상황은, 한기총이 대선후보에 대해 특별한 기준이나 요구사항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에 어떤 역할을 학호 부응 하려는 기대감을 갖으면서 참여정부 10년의 종언을 위한 장로대통령을 염원하였다.

기세 등등했던 한기총에게 시련이 다가온 것은 어쩌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른바 ‘고소영’ 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기독교적인 배경이 국민의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기독교 정치세력은 본격적인 견제를 받게 되었다.

9. 한기총 탈퇴를 주장한다.
그러나 법인체의 해산은 회원들의 결의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쉽게 되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마주 않아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교단이라도 “한기총”을 탈퇴하자는 것이다. 이미 “월드비젼” 과 “장기기증운동본부” 와 “고문변호사” 몇 명이 탈퇴를 하였다. 그렇게 되면 해체가 가능해 질 것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과 같은 것을 보여주는 그런 조직은 불필요한 것이다. 아니 필요 하다면 건실한 교단들의 현직 총회장들을 중심으로 “교단장 협의회” 가 있으면 된다. 낮아지는 마음으로 사회를 섬기는 것이 교회다. 그런데 힘을 모으고 권력화 하여서 하는 일들이 바로 오늘 날과 같은 일을 보여준 것이다. 힘의 집중은 권력화를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되게 되어 있다.

한기총” 사태로 나타난 문제는 몇몇의 교권주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잘못된 목회 성공주의와 제왕적 목회의 결과이며 그들을 따르는 군소교단과 목회자들을 하수인으로 만드는 “회장선거” 라는 구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한국교회 성장과 축복을 개인화 하고 세력화 하고 정치집단화 하는 데서 심각해진다. 예전에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었을 때는 순수하고 열심 있는 목회를 하고 세상을 섬겼지만 이제는 부유함과 권력위에서 세속적인 명예와 이권을 탐하는 위선자로 타락한 것이다.

10. 침묵하면 공범이다.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이러한 금품선거와 교권다툼으로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는 “한기총” 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이며, 지도력의 상징인 것처럼 비쳐지고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한국교회의 주인은 이들과 달리 한평생 빛도 이름도 없이 작고 초라하지만 교회를 섬기며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이들을 위해 선교현장에서 새벽마다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진실한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아직도 의식 없는 목회자들은 힘있는 자들에게 줄을 서서 노회에서 임원과 총대가 되기 위해서 총회에서는 부서장과 부원이 되기 위하여 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통합측의 서울노회가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정과 자성의 의미로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총회의 총대권을 포기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교회사적인 유산이다.

이제 무엇이 되려고 하는 목회자라면 그리스도께서 몸소 모범을 보이셨던 청빈과 절제의 삶으로 돌아와서 성공주의 목회신화에서 깨여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소중이 여기는 목회를 해야 한다. 높이 올라간 사람들은 좀 내려와 나눔과 섬김, 헌신의 삶을 보여야 한다. 정부에서도 삶의 한계선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돕는 기준으로 차상위계층이나 경쟁에서 쳐진 사람이나 가정을 돌보고 있다. 그러나 교회와 노회는 어떤가? 전도목사와 무임목사들의 가정과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작은교회(미자립교회) 목사, 은퇴목사 보다 더 외롭고 처참한 것이 바로 이들이다. 이제는 목회자들도 탐욕선을 정하여야 한다. 자동차는 얼마 이상 안타기, 주택은 몇평 이상 안 살기, 해외는 몇 회 이상 안가기, 단체나 회의는 몇회 이상 안가기를 정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정부 시절 권위주의와 맞서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의 한숨과 땀을 위하여 댓가 없이 순결한 신앙양심을 갖고 기도하고 노력했듯이 다시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쳐서 낮고 겸손한 삶, 영적, 도덕적 기풍을 새롭게 하는 치열한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고 모두가 살 수 있다. 역사에 보면 종교의 타락은 결국 시대의 타락이며 몰락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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