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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마을과 석보교회, 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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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3  21: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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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주의 작가 김주영 기념관   

조선 중기 경상도 지방의 음식 래시피를 디미방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장계향(1598~1680)

   
 

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두둘마을은 재령 이씨들의 고을로 지금이야 자동차로 편히 가지만 그 옛날 왕래가 자유롭지 않턴 곳이다. 그런 산동네에 조선조에 몇안되는 위대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는 데 원래 이씨가문의 묘가 있던 곳이다. 장계향의 묘는 안동 수곡리에 있지만 이씨 조상들의 묘소를 정리할 때에 많은 고급 옷이 나왔는 데 이는 맡딸 이명여 것이라고 한다.

그는 광산 김씨 문중에 출가를 했는 데 친정에 왔다가 돌림병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뜨는 데 부모보다 앞선 것이 가족들이 아쉬워 하면서 혼수로 해 간 것을 함께 매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 백년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가는 누비 실로 직조한 것으로 보아 당시 우리나라의 직조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후문이다.   

   
   * 장계향의 글씨는 여성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데 당대 명필들도 극찬)

이 귀한 조상들의 묘를 지켜온 분들 중 한분이 재령 이씨 후손 이병달(1949년생) 장로다. 조부 이현종 장로는 대구 계성학교를 나온 근대적 지식인으로 개화된 분이다. 부친 이양호 장로는 안동 경안학원 유지재단 이사장과 노회 부노회장 농협 조합장을 지냈다. 이병달 장로도 석보교회 원로 장로로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 중앙 회장을 연임중이며 청년회전국연합회 경안노회 청년회장을 지냈고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한편 이들이 섬기는 석보교회는 1922년 처음 원리교회로 이현종 장로의 사가에서 10여명이 이광호 전도사를 모시고 시작했으며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다.  

그후 1970년 석보교회로 개명하지만 그간 처음으로 인가귀도된 이들에게 문중은 서양귀신을 섬긴다 하여 핍박과 곱지 않은 시선속에서도 교회와 가정을 지키며 목회자를 지극히 모셨다. 한 때 조부는 안동에서 경찰로도 근무를 했지만 옥중의 독립운동가의 편지를 전해주거나 탈옥을 돕다가 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해임되여 경안노회 지역에서 조사로 사역를 하시기도 했지만 생전의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약화로 44세에 소천하신다.  

   
 

과거 100여명이 모였던 석보교회도 이제 이농과 고령화로 인하여 교인들이 줄었지만 내년 100주년에는 남다른 교회의 역사와 자취를 남기는 기념 사업으로 기념비와 조그마한 책자라도 준비할 예정을 하고 있다. 한편 종 조부인 이현준 영수도 지역에서 석보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사람들을 조직하여 3.1 만세운동에 참여하셨는 데 이 일로 일경으로 부터 고문과 협박, 감시를 받으셨다. 이 가문은 대대로 양봉을 전수받아 인근에 이름난 꿀벌 채취와 체험 마을로 유명하다. 

   
 

경상북도 영양은 산 높고 골이 깊어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환경의 영향으로 이 고장은 유명한 문학인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사람은 주실마을의 조지훈, 감천마을의 오일도와 함께 두들마을의 이문열을 꼽을 수 있다. 크게 많이 알려진 마을이 아니었으나 경북대 한 교수의 연구로 빛을 본 장계향이 쓴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때문이다. 원리라고도 불리우는 두들마을은 반변천의 지류인 송하천과 화매천 두개의 천(川)이 만나는 데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서 들어와 개척한 이후, 그의 후손인 재령 이씨들이 집성촌이 된다. 

   
                                *  조상 장계향이 남긴 디미방에 대하여 설명중인 이병달 장로 

마을에는 석계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과 석계 선생이 후학들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을 포함하여 전통가옥 30여 채를 비롯하여 한글 최초의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남편이 정2품, 종2품) 장씨를 기리는 안동 장씨 유적비, 이문열의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으며(공사중) 최근에는 군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 화려하고 큰 규모의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이 설립되 디미방의 음식 재현과 숙박등을 받고 있다. 

   
    * 좌로 부터 전경상(안동교회), 이병달(석보교회) 원로 장로, 허춘중 선교사, 이천우 원로 목사, 필자

마을 앞에 흐르는 화매천 바위 절벽에는 석계 선생의 넷째 아들인 이숭일이 새겨 놓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 등 글씨도 보이는 정감가는 마을이다. 정부로부터 1994년에 문화마을로 지정되었으나 코로나 사태이후로는 발길이 뜸해 보인다. 그러나 경북 내륙에 역사적으로 디미방을 기록한 장계향의 생애나 업적 교육등 흔치 않은 이야기를 갖고 있어 충분히 옛 어른들의 품격있는 교양를 자랑할만 하다.

   

                                 * 이병달 장로 가족 4대가 사는 자택과 자녀들이 운영중인 카페 "율" 이 있는 곳

이병달 장로댁은 지금은 장계향 체험 마을 반대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장로 네 앞길을 거쳐야 하는 데 이곳에 카페 '뮬' 을 자녀들이 운영한다. 또 조상 대대로 산채와  양봉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황토 민박도 운영하고 있다. 신지식으로도 지정된 이병달 장로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조상들이 준 큰 이런 정신적 유산이 국가적으로 인정받고 음식 디미방으로 인하여 고향과 선친들의 옛일이 알려지고 재평가 받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 이병달 장로 가정이 운영하는 두들마을 꿀벌 체험장 입구(국내 최대 양봉업) 

장계향의 생애
선조 31년 경북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에서 타계한 장계향은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이 사헌부대사헌에 올라 법전에 따라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아버지 장흥효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 벼슬도 마다한 채, 집가까이 광록정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평생을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낸 인물이다.

그러나 그 후대는 남자쪽이 아닌 딸의 후계들에 의하여 큰 빛을 발하는 가문이 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여성이라고 하여도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한 조선사회에서 왕족이 아닌 평민 가운데 이만한 칭송을 받은 예는 일찌기 없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된 것은 학문만이 아니라 가정관리 자녀교육과 남긴 유산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흥효가 서른 다섯살 되던 해에 얻은 아이가 장계향이었고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셋째 아들인 갈암 이현일이 어머니의 팔십 평생을 기록해 놓은 책 ‘정부인장씨 실기(實記)’에 의하면 그녀는 당시 성인군자의 입문서인 <소학>은 물론, 유가(儒家의 기본적 경전(經典)인 <사서오경>, 세상 돌아가는 실제를 알기 위한 중국역사서 <십구사략>에서 소강절의 난해한 천문도수 학문 <원회운세지수>까지 제대로 이해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초서, 그림, 자수 등의 작품을 보면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존 最古의 한글 조리서로 1670여 년 경, 여중군자 장계향(1598~1680)이 후손들을 위해 일흔이 넘어서 지은 조리서이다. 조선 중후기 양반가의 식생활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전통음식 연구의 지침서이자 관계전문가들의 교본이며, 정확하고 다양한 어법과 철자로 사전적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광해 8년(1616) 나이 열아홉에 부친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제자인 석계 이시명의 아내가 되었고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相敬如賓), 더 나아가 서로 동지로서 공경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때를 맞추는 중용(時中)의 모범을 보이는 군자로서 살았으며 특히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기보다 한 가정의 평범한 딸이자 가정주부로서 시가와 본가 두 집안 모두를 당시 사회공동체의 기둥이 되는 가문(宗門)으로 일으켜 세웠고 10명의 자녀를 훌륭히 키워 냈다.

   
 

여중군자에 정부인 교지를 받다
자녀들에게는 늘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르침으로서 과거시험 공부보다 성리학의 학문적 본질(義理)을 하나라도 몸소 실천함을 근본으로 삼았다. 또한 강인함과 온유함을 갖춘 도덕적 품성으로 나이 든 사람이나 과부, 고아처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힘껏 도왔고, 만년에 이를수록 숨겨둔 재주와 덕행이 드러나서 칭송받았다.

17세기 이후 조선인들은 그녀를 맹자(孟子)나 정자(程子)의 어머니와 같은 현명한 분이라고 칭송하였다. 여성의 학문적 자유나 사회적 제약이 많았던 시대를 살다간 양반가의 여인,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가치로운 삶을 살다간 그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케 하는 스승이자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천함으로서 가르쳐 준 크나 큰 인물이었다.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한국에서 음식에 관한 책은 있었지만 모두 한문으로 쓰여졌으며,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반면 음식디미방은 예로부터 전해오거나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 및 어육류, 각종 술 담그기를 자세히 기록한 이 책은 17세기 중엽 한국인들의 식생활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귀중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빼어난 시를 남긴 시인산수화를 남긴 화가350여년이 지난 오늘, 그녀가 묻고 있다. 당신은 평생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나이 일흔 무렵에는 눈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자손들을 위해 애써 음식하는 법을 정리하여 남겼다. 음식디미방이라고도 하고 규곤시의방이라고도 불리는 요리책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기록된 요리서이자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계향 선생은 1680년 83세를 일기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양 석보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 현일은 "내가 노둔하고 우매하여 지극한 가르침을 따라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소 야비한 말과 버릇없이 구는 말을 내 입에 올려 말하거나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로 어머니께서 어릴 때 부터 금지하고 경계한 탓이다"고 '정부인 안동 장씨 실기'에서 그 고마움을 회고하였다.

   
                                                       *남존여비의 사회인 조선시대에 살았지만 유일하게 유적비가 세워졌다.   

여성의 학문적 자유나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시대를 살다간 양반가의 여인, 장계향 선생.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가치로운 삶을 살다간 그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케 하는 스승이자,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가르쳐 주는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저자는 서문에 남기기를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아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이책을 가져 갈 생각일랑 마음도 먹지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지게 하지말라“ 고 당부했다.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한국에서 음식에 관한 책은 있었지만, 모두 한문으로 쓰였으며,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반면 음식디미방은 예로부터 전해오거나 장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 및 어육류, 각종 술담그기를 자세히 기록한다. 이 책은 17세기 중엽 한국인들의 식생활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귀중한 문헌이다. 현재 원본은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이다.

   
                                                                * 석계 이시명의 고택

출판사서평
현재,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음식디미방(閨?是議方)'은 앞뒤 표지 2장을 포함하여 전체가 30장으로 된 1권 1책의 필사본이며 다른 등사본이 발견되지 않은 유일본이다. 이 책은 17세기 중엽의 음식문화, 음식 조리 방법을 알 수 있는 한글로 쓰여진 최고(最古)의 조리서이다. 『음식디미방』은 저자가 직접 지은 책 이름이고, 표지의 한자 閨?是議方'은 장씨의 부군(夫君) 또는 자손들이 격식을 갖추려고 새로 지어 붙인 것이다.

이 책은 경상북도 영양 지방에 살았던 사대부가의 정부인 안동 장씨(安東 張氏)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거나 스스로 개발한 조리법을 기록한 귀중한 생활사 자료이다. 안동 장씨는 안동 서후면 금계리에서 1598년에 성리학자 경당 장흥효의 딸로 태어나 19세에 석계 이시명에게 출가하셨던, 거유 ‘갈암 이현일’의 모친으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는 최근 문화관광부에 의해 이 달(1999년 11월)의 문화인물로 지정되어 관련학계에 널리 재조명된 분이며, 이문열의 소설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인덕과 명망이 자자하였던 고령의 안동 장씨가 쓴 이 책은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을 설명한 면병류(?餠類)등 모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이 책이 학계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60년 당시 경북대학교 명예 교수이셨던 김사엽 박사의 논문에 비롯되었다. 그 후 이 책을 해설한 수많은 연구 논문과 연구서들이 앞다투어 출간되었지만, 아직도 그 원문의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영인본과 해제본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형편이었다.

   
 

객주의 작가 김주영 문학관

이곳을 나와 안동방향으로 10여분을 가다보면 청송군 진보면의 여고자리에 세워진 객주의 작가 김주영 문학관이 크게 서있다. 가난한 동네에서 성장하고 서라벌예대를 나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서울신문에 연재한 객주 라는 소설로 일약 유명 인사가 된다.  내용은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들을 중심으로 민중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소설로 한국 역사 소설의 지평을 넓힌 그를 기리기 위하여 문을 연 객주문학관은 폐교된 진보 제일고 건물을 증·개축한 4천640㎡ 규모의 3층 건물로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 객주, 영상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 시설 그리고 작가 김주영의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 2전시실에는 작가 김주영의 집필 배경과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고 조선 후기에 활동하던 보부상들의 활동상이나 조선 후기 상업사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게 꾸며 역사 및 상업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흥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깨알같은 작가 노트나 그가 사라져 가는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채보하기 위하여 수많은 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면담하는 동안 한달에 2주 이상을 외지에서 원고를 정리하고 송고했다는 말이 있어 길위의 작가라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그는 토속적이고 섬세한 언어로 한국 정서를 가장 탁월하게 재현해내는 소설가로 정평이 나있다.  『활빈도』, 『화척』, 『야정』, 『아라리 난장』 등과 같은 대하소설과 2000년 들어 발표한 『홍어』, 『멸치』와 같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대부터 30대까지 16년 동안 안동서 생업으로 엽연초 조합의 4급 주사 경리 직원으로 이름 없이 살기도 했던 그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쓴 객주에서의 우리 언어와 그들의 삶을 후대에 전해준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성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화석으로 굳어가는 조선 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발굴하고, 당대의 풍속사를 유장한 서사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평론가 황종연은 『객주』를 두고 “신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상인들의 모험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코드, 숱하게 많은 모략과 술수의 이야기들은 의협 로맨스의 코드, 저잣거리를 비롯한 사회적 장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풍속 소설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객주』는 조선 말기의 특정 집단을 내세워 당대 풍속사를 꼼꼼하게 그려낸 작품일뿐더러, 더 나아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루어진 봉건 권력 집단의 와해와 사회 질서의 재편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한 작품이다. 『객주』에의 곳곳에는 당대 상업의 현황, 다시 말하면 특권 상업 체제인 시전, 그것과 대립하는 사상 도가와 난전, 전국 각처의 외장, 객주와 여각, 금난전권, 매점 매석, 밀무역, 개항 이후 왜상의 진출 상황 등 조선 말기의 물화의 생산과 유통의 양상이 사실적이며 박물적으로 그려진다.

   
 

김주영은 술과 담화로도 유명한 데 술판 이야기판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나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또한 김주영은 여행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소설에서 번 돈을 모두 여행에 쏟아 부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분은 여행을 할 때 결코 메모를 하지 않는 데 그 공간과 그 나라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그후 숙소나 집으로 돌아와 기억에 의존하여 생생히 현장을 재현 한 것이다. 그 큰 덩치에 아주 작고 예쁜 육필 원고는 사 여성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 서울신문에 연재중인 서설 '객주' 는 장안의 화제였다. 
   

                          * 김주영 작가의 노트인데 외모는 컸지만 글씨는 깨알갖고 꼼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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