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재 서남동박사 조명 학술대회 - 예장뉴스
예장뉴스
연못골 이야기(기획)I will miss your(추모)
죽재 서남동박사 조명 학술대회
예장뉴스 보도부  |  webmaster@pck-good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3.15  13:47:54
트위터 페이스북

           죽재 서남동박사(1918-1984) 학술대회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의 업적 평가, 초기 서구 신학의 한국 소개(안테나)
해직후 강단신학자에서 거리 신학자로, 안병무 박사와 함께 한국민중신학자의 선구자

   
 

민중신학을 개척·발전시켜 세계적으로 알린 공로가 있는 한국신학자로 두 번의 감옥생활을 한 진짜 신학자 죽재 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는 지난 2월 18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민주화운동 재조명」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서광선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삼석 국회의원(무안,신안,영암군), 박우량 신안군수, 김은경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이 축사를 했다. 이 행사가 끝난지 10일후인 지난 2월 28일 서광선 교수도 소천했다.  

동 사업회 이사장 권진관박사(성공회대 은퇴교수)는 “죽재 서남동교수는 민중신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신학자이다. 서교수는 안병무교수, 현영학교수, 서광선교수, 김용복박사 등과 함께 한국의 민중신학을 개척하고 발전시켰다”며, “영문으로 Minjung이라는 단어가 신조어로 세계의 유수 영문 사전에 실리게 된 것은 민중신학의 공로라고 평가되고 있다”고 의미를 전했다. “서교수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두 번의 감옥생활(약 3년)을 함께 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고문과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66세의 아직 젊은 연세에 소천하여 민중신학의 완결을 보지 못한 채 한을 안고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2부에서 최성환교수(목포대 교수)가 「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민주주의 운동가로서의 사상과 활동에 대한 재조명」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교수는 “서남동의 민주화운동은 1970년대 초부터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그 외 강연, 기도회 등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3년 2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겪었다”며, “그동안 서남동의 업적이 대한민국 민중 신학의 개척자라는 측면에 집중되다 보니 오히려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활동은 잘 알려지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민주 투사의 삶을 살았던 그의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면모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형묵박사(한국민중신학회장)가 논찬했다. 

   
 

이어 김성재교수(한신대 석좌교수, 전 문화관광부장관)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에 대한 재평가: 세계 신학에의 공헌을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박사는 “사실 성서는 당시 히브리 노예들, 가장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와 더불어 산 경험을 자신들의 언행으로 전승한 것이다. 그래서 성서언어는 신학자의 해석이 불필요한,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며, “그런데 신학자들이 성서를 해석한다고 하면서 지식인들의 어려운 개념 언어로 바꾸어서 자신들의 해석이 없으면 성서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신학자의 성서해석과 신학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해서 본래의 성서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남동의 민중현장·이야기신학이야 말로 성서를 성서답게 회복시킨 정통신학이다. 따라서 이 신학은 소멸의 위기에 있는 전통신학과 교회를 살리는 생명의 신학이다”고 평했다. 여기에 한기양목사(울산 새생명교회)가 논찬했다.

전남 무안태생으로 스승인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 토론토 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을 때에  ‘죽제’(竹齊)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1918년 7월 5일 전남 자은도 섬에서 출생하여 소학교 5학년 때 목포에 있는 교회학교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배우며 신앙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전주신흥학교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지사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1941년 신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평양 요한 성경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재직했고, 만 25세인 1943년 1월부터 10년간 대구제일교회, 범어교회, 그리고 동문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이후 연세대 신학과 교수를 1961년 부터 15년간 역임하면서 학과장도 지냈다. 이후 한신대 교수를 지냈다. 해직후 기독교장로회 총회가 반독재운동으로 제적된 기독학생들의 계속교육을 통하여 정식 학제가 아닌 목사 안수를 주는 과정을 개설한 책임을 맡아 기독교장로회 소속의 목사들이 나왔다. 이날 행사의 끝은 정상시목사(죽재서남동목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안민교회)가 「죽재 서남동목사기념관 사업 방향과 전망」이란 제목으로 발표했고, 박의배목사(목포 동안교회)가 논찬을 했다.

   
 

------------------------------------------------------

    내가 만난 서남동 목사(서광선 목사(이화여대 기독교 학과 교수)

서남동 목사님은 두 번 씩이나 연세대학교에서 해직되었다. 한번은 1970년대 중반이었고, 두 번째로는 5.18 전두환 등 신군부가 광주 민중 민주 운동을 탄압하면서 반 유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교수들을 강제 해직할 때였다. 그런데 서남동 목사님이 유신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한 것은 1976년 3.1절 명동성당에서 감행한“민주구국선언문”사건에 연류 되었기 때문이다.

1976년 3.1절 기념 예배를 드린다고 명동 성당에는 700명이 넘는 신구교 교인들이 모여 들었다. 문익환 목사님, 안병무 박사님, 서남동 목사님, 문동환 박사님과 이우정 선생 등이 만든 “민주구국선언”을 이우정 선생이 단위에 올라가 그 낭랑하고 힘찬 음성으로 낭독해 내려갔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내린 무시무시한 긴급조치 9호 아래서 모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박탈되고 분노의 침묵 속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던 시절에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3.1 절을 회고하고 당시의 1919년 3.1 독립선언문이나 낭독할 줄 알았는데, “[유신정권하에서]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안보라는 구실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가고 언론의 자유와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당하고 말았다... 이 나라는 일인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의 비원인 민족통일을 향해서 국내외의 민주세력을 키우고 규합하여 한 걸음 한 걸음 확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 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 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이 선언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주장하였다.

1.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국시이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철폐하고 의회정치의 회복과 사법권의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
2.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3.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질 지상의 과업이다. 민족통일의 첩경은 국민의 민주 역량을 기르는 일이며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은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

유신정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내용도 문제였지만, 시국선언 참여자들의 정치적 입장과 지명도가 더욱 문제였다. 성명서 기초자인 문익환 목사를 비롯하여 박정희 정권의 최대 최고 정적인 김대중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 국회의원 정일형 박사, 최고령자 함석헌 선생 등 참여자 명단은 유신정권만 아니라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여기에 더하여 서남동, 안병무, 문동환, 윤반응. 이해동 등 개신교 성직자 교수들과, 천주교에서는 함세웅, 신현봉, 문정인, 김승훈, 장덕필 신부들이 가담했고, 고려대 이문영 교수 등 18명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3.1절 명동성당 사건이 터진 후 10일이 지나서 서울지검의 서정각 검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재야인사들의 정부전복 선동사건에 참여한 관련자 20여 명을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입건했다.”고 발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즉각 성명을 내고 박정희 유신정권의 횡포를 규탄했다. 그러나 1976년 5월 4일부터 재판이 개정되어 8월 28일 선고공판이 있던 날 까지 16번의 공판이 주1회 진행되었고, 항소심 공판은 11월 13일부터 12월 29일 까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서남동 목사님은 유일하게 징역 2년 6개월, 자격정지 2년 6개월의 언도를 받았다. 문익환,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은 징역 5년에서 자격정지5년, 정일형, 이태영, 이우정, 이문영, 문동환, 함세웅, 신현봉, 문정현, 윤반웅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이해동, 안병무, 김승훈은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서남동 목사님은 문익환, 문동환 목사와 이문영 교수, 문정현 신부와 함께 1977년 12월 마지막 날, 그해 끝날, 석방되었다. 실로 22개월, 즉 1년 10개월 감옥생활을 하신 것이다. 김대중 선생은 최장기 수감생활을 했는데, 1978년 12월 27일, 서남동 목사님보다 만1년을 더 수감되었다 풀려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한스럽고 부끄럽다. 나는 아직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둥 마눈 둥,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학교 강의 핑계로 서남동 목사님과 다른 선배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의 재판장에 한 번도 참관하지 않았다. 구치소에 면회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정보부와 관활 경찰서 기관원들의 감시 하에 살면서 행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시국 정치범, 긴급조치 위반자들의 재판장에 얼씬 거리는 일은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로 취급받았기 때문이었다.

“목사님, 왜 저도 명동 행동에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원망 비슷하게 출옥한 서남동 목사님에게 여쭈었던 기억이 난다. 목사님의 답변은 의외였다.

나는 그때 목사님의 눈물 섞인 음성을 잊을 수가 없다. 완전히 파괴되고 좌절한 절망적인 모습에 나는 놀랐고, 치를 떨었다. 나는 목사님의 그토록 약하고 절망적인, 속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찬 음성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조용히 목사님의 두 손을 잡고 울었다. 나도 무서워서 소리도 못 내고 못내 울기만 했다.

“서 박사는 안 하기를 잘했어. 그런데 가면 안 돼요. 당해 내기 힘들어...” 목사님은 그렇게 정직하셨다. “출옥성도”티도 안 내셨고, “운동권 영웅” 티는 더욱 나지 않았다. 조용히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던 목사님의 자상하고 힘 찬 음성이 나의 나약함과 비겁함,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모두 용서하시는 것 같았다.

서남동 목사님이 출옥 신학자로 민중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던 차에 김용복 박사의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박사학위 동기인 스리랑카의 프레만 나일즈 박사가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 부총무로 일하면서 한국의 민중신학을 아시아와 세계 신학계에 알리는 목적으로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민중신학 국제학술회의를 비밀리에 개최하였다. 어기서 서남동 목사님은 그의 유명한 “한의 신학”을 발표하셨다. 나는 영어 통역을 맡아 땀을 흘린 기억이 새롭다.

이 민중신학 국제회의가 끝나고 해외에서 비밀리에 참석한 신학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김포 공항을 통해서 한국을 뒤로 하고 조용히 출국하고 있는 동안, 박정희는 자신의 심복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1979년 10월 26일 밤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중의 한과 서남동 목사님의 한은 풀리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한국 민중의 한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겹겹이 쌓여만 가는 것 같다.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