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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변호사 홍성우 별세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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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9  09: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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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 변호사 홍성우 별세

박정희 군사정권하에 일어난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인 민청학련 사건과 그후 박총철 고문치사 사건 등 대표적인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은 ‘1세대 인권변호사’ 로 불리우는 홍성우(84세) 변호사가 16일 별세했다. 고인은 1938년 서울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1961년 제13회 고시사법과에 합격해 판가가 된다.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민사지법·수원지원·서울형사지법을 거쳤다. 1971년 군사정권의 사법부 탄압에 반발한 판사들이 집단 사표를 낸 ‘1차 사법파동’때 주역으로 그후 법원을 나와 변호사가 된다. 당시 1세대 민권 변호사 홍남순, 이돈명 변호사를 잇는 황인철, 조준희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 불렸다.

1986년에는 인권변호를 하던 한승헌, 조영래 변호사 등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전신인 ‘정의실천법조회’ 를 결성했다. 군부독재정권 시절 일어난 시국·인권사건 측히 학생들을 위한 무료변론을 많이했다. 대표적으로 1975년 김지하 시인 사건, 1976년 김대중·윤보선 긴급조치 위반사건, 1979년 YH 노동조합 사건, 1985년 서울미문화원 방화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988년 문귀동 성고문 재정신청사건 등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 인하여 정보부등에서 조사를 받고 경찰의 미행이나 감시를 받는 등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5·18 당시에도 ‘지식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가 도피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인은 2011년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때 사법부의 풍토상 승소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징역 가는 게 뻔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의 소신과 신념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일인데 징역살이가 무서워 뜻을 꺾으면 사람이 망가진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2003년 식도암 수술 이후로는 변호업무를 접고 후진들을 위한 인권변론 자료 수집과 집필에 매진했다. 저서 ‘인권변론 한 시대’ ‘인권변론자료집’을 남겼는 대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가 그의 구술을 집필하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 인권위원장, 기획위원, 환경보전특별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내기도 했다.

한때 주변의 권유로 꼬마 민주당에 이기택 서경석목사등과 같이 지역구에 출마를 하기도 했지만 당선에는 실패했다. 이런 연유로 1995년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이후 1997년에는 한나라당 중앙선대위원장을 역임했다는 기록도 있다. 2004년 인권 변호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아내 정경남 씨, 아들 홍원기(OBS 아나운서) 씨 등이 있다. 빈소는 17일 오전 서울삼성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1일 오전 7시30분이다. ☎ 02-3410-3151. 

   
                     * 조목사 회갑연(YWCA) 좌로 부터 오균현, 나, 박영주,김봉화, 조목사,송유성, 송진섭

고인과의 청담교회 추억 

홍변호사는 강남구 청남교회서 1982년경 장로로 부인은 권사로 임직 받았다. 당시 고 조남기 목사는 NCCK 인원위원장으로 재직중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는 인사들이 출석했다. 부부는 성가대를 했으며 조남기목사 사후 교회를 이전했다. 내가 홍변호사를 마지막 뵌 것은 약 7년전으로 당시 청담교회 출신 성가대원 친목회 초청을 받았을 때인데 오랜 세월 청담에서의 인연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당시 청담교회에는 서울대에서 해직된 한완상 교수가 장로로 성가대 지휘를 했으며 동생 한정상 집사 부부와 서울법대 강구진 교수(중앙일보 강찬오 기자 부친)가족, 안재웅 박사, 양서조합 오균현 선배, 조용웅(KSCF), 송기원 작가, 권병길 연극인, 박영주 목사, 재미 윤창희 변호사,유경희 부부와 송유성 목사등이 있었는 대 대학부 학생들이 학내 시위로 구속되기도 한다.  

나는 1983년 초 청담교회서 조목사님 주례로 영등포산선 출신 장석숙 동지와 결혼을 했는 데 그 다음 주에 원풍건으로 기소되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 때 홍변이 무료 변호를 해주셨는 데 남부법원에서 공안검사 김승렴이 신혼인데도 1년을 구형했다. 홍변은 아주 강한 어조로 검사를 나무랐는 데 그 형이 확정되면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판사는 신혼을 참작하여 벌금과 노역으로 끝을 냈다.  

청담 사임후 1983년 10월 뚝섬에서 노동자들과 성수삼일교회를 개척할 때 홍장로의 주선으로 청담 성가대원들인 한정상 집사(한박사 동생)부부, 강기성 집사 부부, 신영교 집사(신애라 부친) 부부, 안성준 박사 부부, 양도원 교수 부부등이 오랜동안 사역에 후원을 해주셨다. 그후 성수동에서 함께 활동하던 노동운동가 김태현 동지 결혼식(성균관)에 홍변이 주례를 하러 오셔서 오랜만에 뵙기도 했다. 늘 다정다감하시고 너그러우신 품성이 기억난다.  

   
                                                * 2012년 홍성우 변호사님과 함께 

                     고(故) 홍성우 변호사님을 추모하며

서슬 퍼런 유신시절과 암혹했던 군사독재시절, 보장되어 있던 편안한 삶을 사직하고 고난의 짐을 자청한 그때부터 변호사님의 삶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변호사님은 시민, 학생, 노동자, 민주화 운동가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 곁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인권변호사의 중심이셨고, 우리 모임 창립의 주역이셨습니다.

변호사님은 인권변호사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군사독재 탄압에 저항하는 양심수들을 변론하고,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며, 경찰 공권력에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법적 지원에 앞장섰습니다. 탈냉전시대 통일운동에 대한 변론에 앞장서고 청년 학생들의 억울함에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임은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반독재투쟁,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본인의 역사적 사명으로 여겨 앞장섰던 변호사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변호사로서 보람이자, 생기가 나는 일”이라며 주위를 독려했던 변호사님의 모습은 현실에 지쳐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변호사님은 우리 모임의 전신이자 인권변호 활동의 첫 단체였던 정의실천법조인회(정법회)의 창립멤버였고 우리 모임의 첫 운영을 책임졌습니다. 변호사님이 힘들게 개척했던 가치 있는 삶, 진실을 기록하고 밝히려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 한 사람의 인권 운동가로서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셨던 삶, 그리고 넓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참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본받겠습니다. 변호사님과 같이 후배들에게 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현실의 고단함과 어려움 다 잊으시고,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유족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2022년 3월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도형

   
 

홍성우 변호사님 약력

1938. 서울 출생
1951.9~1954.3 경기중학교 졸업
1954.3.~1957.3. 경기고등학교 졸업
1957.4.~1961.3.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1961.10.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제13회)
1963.8. 군법무관시보 실무고시 합격(제12회)
1962.4. 해군 입대(법무관)
1965.6. 해군 법무관 예편(해군대위)
1965.11. 대전지방법원 판사
1969.1.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 판사
1970.1.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1971.10.27. 변호사 개업
1973. 서울제일변호사회 재무
1974. 서울제일변호사회 상임위원
1974. 민주회복국민회의 사무국장
1976~1989. NCC 인권위원회 위원, 부위원장
1979. 엠네스티 한국지부 조직담당 이사
1979. 카톨릭 정의평화위원회 인권분과위원회 자문위원
1986. 정의실천법조회(정법회) 결성 (28인)
1987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1987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198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결성
1988 한겨레신문주식회사 이사
1992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표간사
1995 참여연대 공동대표
2004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
2013.6. 제3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
2013.8. 제9회 영산법률문화상 수상
2022. 3.16. 별 세

저작
2011 인권변론 한 시대 (경인문화사, 778쪽)
2012 인권변론자료집: 1970년대, I~VI (홍성우·한인섭편,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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