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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4  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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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와 희년>

박창수 목사(기독교경제학&사회윤리학 박사, 희년사회 연구위원,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서울대학교 대학원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룻기의 주제는 서로 원수 관계에 있는 민족들의 구성원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다. 룻기는 이스라엘 사람과 모압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다. 모압 사람인 룻이 이스라엘 사람인 시어머니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며 서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인 보아스가 모압 사람인 룻을 따뜻하게 배려하고 결국 두 사람이 결혼하여 서로 하나가 된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인 베들레헴 주민들도 룻을 환대하고 축복하며 서로 하나가 된다.

그래서 룻기는 장차 신약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위대한 역사를 미리 기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룻기는 하나님이 한 몸으로 부르신 교회 안에서 성도의 친교(코이노니아)가 어떠해야 하는지 구약의 언어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룻기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모압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데 핵심이 되는 단어가 바로 ‘헤세드’이다. 룻기에는 ‘헤세드’가 3번 나오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1:8에서는 ‘선대’로 번역했고, 2:20에서는 ‘은혜’로 번역했으며, 3:10에서는 ‘인애’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 헤세드의 기본 의미는 ‘언약에 신실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서로에게 맺은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헤세드라고 한다.

룻기에서 이 헤세드를 실천한 사람이 바로 보아스와 룻이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룻 2:1)인데,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힘이 강한 사람’(이쉬 깁보르 하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룻은 “현숙한 여자”(룻 3:11)인데,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힘 있는 여인’(에쉐트 하일)이라는 뜻이다. 보아스와 룻은 모두 힘(하일)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떤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바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헤세드를 베풀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헤세드의 정점은 바로 ‘기업(땅) 무르기’를 중심으로 보아스와 룻이 절망 가운데 있던 엘리멜렉 가문을 위해 베푼 헤세드였다. 룻기에는 ‘기업을 무를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고엘’을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기업을 무르다’는 표현이 룻기에 나오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가알’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고엘과 가알은 룻기에 22회나 등장한다(룻 2:20, 3:9, 3:12(2회), 3:13(4회), 4:1, 4:3, 4:4(5회), 4:6(5회), 4:8, 4:14).

그래서 룻기는 가히 기업 무르기의 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업 무르기’는 바로 희년 정신의 아름다운 실천이다(레 25:24-25). 기업을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직 이스라엘 역법 상 희년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족의 기업 무르기 덕분에 기업을 되찾는다면 그 시점이 바로 희년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이 기업을 되찾는 해가 바로 희년이기 때문이다.

보아스와 룻은 함께 엘리멜렉 가문을 위한 ‘기업 무르기’를 통해 희년 정신을 실천했다. 그래서 룻기는 희년 정신을 실천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룻기는 희년의 사람들에 대한 책인 것이다.
요컨대 룻기는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 안에서 헤세드의 실천을 통해, 또 그 정점인 기업 무르기와 같은 희년 정신의 실천을 통해,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다.

   
 

보리밭 사잇길

룻기의 시간적 배경은 사사 시대이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반역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 반역의 시대에 든 흉년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된다. 흉년 때문에 유다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이 그의 아내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에 가서 거류하였다. 그런데 모압으로 이주한 지 10년 만에 엘릭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나오미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어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두 며느리와 함께 길을 가다가 그들에게 각기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룻 1:6-9). 그러자 결국 오르바는 돌아갔지만 룻은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룻의 말(룻 1:16-17) 가운데 핵심은 정중앙에 나오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는 신앙고백이다.

룻은 이방신 그모스를 숭배하는 모압 민족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결단이다. 룻의 말에는 교차대구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핵심 주제는 중심축 곧 신앙고백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룻의 이 신앙고백을 들으셨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나오미와 룻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베푸셨던 것이다.

그리고 룻의 말에서 신앙고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 곁에 있겠다는 고백이다. ‘룻’이라는 이름은 ‘우정’(friendship)이라는 뜻이다. 룻은 그 이름 뜻처럼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그녀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랑을 실천한다. 또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엘리멜렉 가문에게 끝까지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을 실천한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라’는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성읍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뜻을 가진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로 부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로 남게 된 나오미는 절망에 가득차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들을 비탄 가운데 쏟아놓는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그런데 이런 나오미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곁에 룻이 있었기 때문이다. 룻은 가난한 자이며 이방인이자 과부이다. 가난한 이방인 과부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룻은 가난한 자 중의 가난한 자이고, 소외된 자 중의 소외된 자이다. 그러나 룻과 같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나오미와 같은 사람의 친구가 되어 그 사람에게 언약에 신실한 사랑 곧 헤세드를 베풀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온 때는 보리 수확을 시작할 때였다. 유대인의 전승에는 보아스의 밭이 베들레헴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오미와 룻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모압으로부터 서쪽으로 길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베들레헴성의 동쪽에 있는 보아스의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서 베들레헴성에 돌아온 것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으로 시작하는 우리 가곡 ‘보리밭’이 있는데, 바로 그처럼 누렇게 익어서 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 사잇길로 나오미와 룻은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보리밭 사잇길은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나오미에게 앞으로 두 사람의 헤세드를 통해 절망과 비탄이 희망과 찬양으로 바뀔 구원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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