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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적 사회주의 (블룸하르트-라가츠-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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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3  15: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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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적 사회주의 (블룸하르트-라가츠-바르트) / 한국신학연구소 刊

종교사회주의운동의 시작과 그 초기사상 E.부에스/M.마트뮐러 지음

   
 

레온 라가츠는 그 수년 동안에 신학교수의 강단을 버리고 바젤 대성당의 설교단에 섰다. 그 후 그는 1908년에 츄리히 대학에 조직신학과 실천신학 교수로 초빙된다. 이 새로운 교수직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생각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명백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었다. 동시에 그 교수직은 그로 하여금 종교사회적 운동에서 일하는 데 있어 목사직에 있을 때보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게 했다.

입수가 가능한 그의 강의 초안들을 보면 그 당시 완결된 형태를 취했던 최초의 사고들을 일별하게 해 준다. 제1 형식의 완성은, 1909년 여름에 처음으로 그리고 1911년 여름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받볼을 방문했던 블룸하르트의 영향 아래서 이루어졌다. 그때 블룸하르트와의 만남은 매우 인상적이었음을 라가츠는 그가 사망한 해인 1945년에 쓴 자서전에서 말하고 있다. 블룸하르트는 원래 자유주의적 신학자인 라가츠에게 기적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긍정할 용기를 주었고, 이것이 라가츠의 신학적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라가츠는 츄리히 학생들에게 종교철학, 교의학, 윤리 등에 관한 근본 문제들을 강의했고, 그밖에도 1909년에 이미 “그리스도교와 사회적 문제”란 강의를 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교수로서의 직무를 완수하는 일이기는 했으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라가츠는 강의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서술해야 한다는 도전으로서 이 강좌들을 받아들였다. 후에 많은 첨삭이 이뤄진 1908년부터 1913년까지의 강의록들은 초기의 종교사회적 사상의 거대 요약과 같이 여겨진다.

1906년 목회자 대회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라가츠는 <현실에 안주하는 종교>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종교> 사이의 기본 갈등을 처음으로 도식화했다. 이러한 대립이 그의 학문적 이론에서도 중심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하느님과 악 사이의 세계적 투쟁’은 그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그로서는 살아계신 하느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윤리적 예언자적 경건”은 심미적-제의적인 하느님 경배로 소진되어 버리지 않고 ‘세계와 인간을 위한 참여적 행위’로 곧바로 넘어간다.

그러나 기존하는 세계의 마술에 사로잡힌 인습적인 그리스도교는 도래하는 주님에 대한 정향(定向)을 상실했다. 라가츠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행태를 “종교”라고 규정하기 시작한다. 종교란 그리스도교의 현실안주적 형식 즉 문화와 신이용(神利用)에 바탕을 둔 형식이다. 종교란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사이를 단절시키고 자신의 비밀들을 유지하기 위한 계층 즉 신학자와 사제 계층을 만든다. 예수를 통해서 계시된 하느님의 나라는 그것이 갖는 역동성에 있어서 종교와 구별된다.

“예수가 원했던 것은 새로운 신경험이 모든 인간의 세계에 흘러들어옴으로써 실현되는 모든 난관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이룩된다. 하늘이 지상으로 하강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하늘은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고 나아가서 물질적 제관계도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근심들, 죄에 노예됨, 증오, 불화, 죄책감, 온갖 종류의 상실, 빈곤, 질병, 아니 죽음까지도 하느님 나라에 의해, 하느님 나라 안에서 극복됨으로써 하느님의 법과 그의 능력과 사랑이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가장 최선의 정의다. 즉 그것은 침투해 들어오는 하느님의 생명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세계이다.

현실안주적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와 미래지향적 그리스도교인 하느님 나라 신앙과의 차이는 종교와는 무관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에서 성립하며, 하느님 나라를 믿는 자들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차안과 피안 사이의 분리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성립한다. 종교란 세상을 위한 희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종교는 사실상 그것의 고정적 본질양태을 볼 때 궁극적인 희망의 지평, 즉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도 상실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 신앙은 현재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역사를 관찰하는 데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이 계속 활동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희망을 창조해 낸다. 지상에 건설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생명이 이 세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오심으로써 하느님을 통한 세계개혁에의 희망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원래 자유주의적 신학자였던 라가츠의 강연들을 보면 예수가 언제나 중심적 인물로 되어 있어서 그와 정통주의자 사이를 거의 구별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 나라의 희망에서 생겨났지 어떤 정체적인 교의학의 틀로부터 넘겨받은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리스도 신앙은 세상 사건들을 고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들을 겪고 수많은 외적 투쟁들을 거치는 가운데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블룸하르트와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종교는 세상적 영역과 영적 영역 사이를 갈라놓는다. 이와는 달리, 하느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는 이러한 단절을 폐기한다. 왜냐하면 예수도 결국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매우 큰 것이어서 그 두 영역은 더 이상 서로 분리된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아버지를 보여주셨다. 이 세상적이 아닌 모든 이질성은 사라졌다. 사랑은 완전한 통일에 이른다. 그리하여, 소위 순수한 초월이란 최종적으로 완전히 극복된다.”

이것이 초기 라가츠 신학의 기본적 관점들이었으며, 또한 여기에 그의 사회주의의 핵심이 놓여 있었다. 하느님 나라를 부인하는 종교는 말하자면 반신적 세력들의 한 특수한 형태일 뿐이다. 다른 형태의 노예상태들, 즉 사유재산제도의 불의, 자본주의를 통한 인간 공동체의 파괴, 노동의 소외 등은 극복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법, 그의 능력과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서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의 온갖 그릇된 규정들이 총체적으로 극복되며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스런 자유를 체험한다.

자본주의 비판
여기서는 초기 라가츠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어 보자. 자본주의 시대를 통해 인간의 공동체와 노동이 파괴되는 것을 고발했을 대 그는 자기가 한 말의 뜻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의 고향마을인 타민에서는 아직도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농경적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바젤이나 츄리히의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양식을 아직은 철저히 이윤의 지배 아래 있지 않았던 생활양식과 비교할 수 있었다.

라가츠는 이 점에서 처음부터 인간에게 있어서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했었고 그것을 자기의 자본주의 비판의 전면에 부각시킨다. “사회적 문제는 노임문제라기보다는 노동문제”라고 그는 확신하고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추구적인 노동분업을 통해 노동자들과 그들의 일과의 관계를 파괴해 버렸다고 비난했다.

“노동자는 절단된 노동으로 불구자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부분적 인간으로 전락한다. 모든 노동은 원래 창조적인 그 무엇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즉 노동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 창조의 요소가 결여될 때 노동은 저급한 노예적 봉사로 전락한다.”

창조적 노동은 실은 인간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말해준다. 통전적이어야 할 노동이 이윤추구를 위해 파괴당한다. 라가츠에게 있어서는 인간 착취의 개념이 아니라 노동 소외의 개념이 중심에 서 있다. 이것이 역시 그의 맑스 연구의 결실이겠으나 당시는 아직 그러한 연구를 위해 특히 중요한 맑스의 파리 초고(草稿)들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는 비도덕적이고 반신적(反神的)인데, 그 까닭은 이 체제는 인간의 노동을 파괴하고 자본의 이윤이라는 비본래적 목적에 굴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비판은 내가 아는 한 그 이전의 신학자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프롤레타리아의 삶의 상황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노동이라는 측면을 중심 자리에 놓기 위해서는 하느님 나라 신학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소외된 노동으로 인해 침해된 프롤레타리아의 인간적 존엄성은 살아계신 하느님과 동행하면서 역사를 살아가고 이를 통해 인간이 해방되는 것을 보는 사람에 의해 비로소 인식된다.

자본주의는 그러나 개개인의 노동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공동체성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마을공동체에서나 도시적 조합들에서나 공동체가 생산량을 조절했고 누구나 필요한 것을 적절한 값으로 살 수 있도록 했었다.

자본주의에서는 공동체의 필수요건이 아니고 개개인의 이윤추구가 생산을 조절한다.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는 “물질적인 생산품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의 휴식과 안전을 제공하기에 적절한 올바른 생산질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이 비본래적인 목적에 굴종하고 있듯이 소비도 마찬가지다. 소비는 더 이상 수요충족의 정상적 과정이 아니라 이윤증대에 기여한다. 인간의 제관계는 이 목적에 종노릇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된다. 성스러운 것도 아무것도 없고, 인간관계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윤리적 종교적 진리도, 어떤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돈이 주인이다. 이렇게 물건이 전적으로 인간에 대하여 주인노릇을 한다. 깊은 무신성(無神性)이 이 질서를 누르고 있다. ‘너희는 하느님과 돈을 같이 섬길 수 없다.’”

하느님이 이 “깊은 무신성 상태”를 그냥 참지 않고 불의와 소외의 이 세계를 공격하신다는 사실, 그는 경건한 자들의 도움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도움으로 이 일을 하신다는 것, 이것이 종교적 사회주의자들의 기본적 확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하느님의 하시는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일하심을 수동적으로 바라만 보거나 또는 그러한 관찰 결과들을 순종적인 그리스도교회에게 자랑삼아 기껏 전달이나 해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 노동자들의 위대한 해방운동에 동참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쿠터는 어느 편인가 하면 전자의 입장이었고, 라가츠는 공동투쟁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있는 쪽이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종교적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신앙관에 따른 실천적 결론 속에 그들 자신의 신학적 기본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피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차안에로 옮겨졌다고 하는 인식이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인들도 그 주님을 따라서 의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가츠는 이러한 결론을 인식했고 그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1912년에 일어난 츌히 총파업에서 그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매우 열렬히 투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대학에 관한 지침을 내놓도록 라가츠에게 요구했다. 블룸하르트와 오이그스터 쥐스트가 그러했듯이 그도 그런 일이 있은 지 1년 후에 사호민주당에 입당했다.

사회윤리 : 노동의 해방
그는 윤리에 관한 강연들 가운데서 제자의 길을 위한 이같은 원리들을 설계하고 그것을 복음의 빛에서 검증하고자 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노동조합운동을 통해 투쟁해야 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노동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라가츠는 그 이전의 어떠한 그리스도교적 윤리학자도 다루지 않았던 노동조합운동을 신중히 평가했다. 이 운동을 통해서 “노동자는 자기 상실과 우매성에서 벗어나게 되며 다시금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노동자는 이전에는 곤궁 가운데서 이기적으로 고립되려 했으나 다시금 권리와 의무를 되찾게 된다. 노동자는 이제 희망과 존엄성을 획득한다.” 노동운동은 바로 그러한 일을 통해서 “교회나 학교나 국가, 이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한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은 노동의 세계뿐만 아니라 전체 사호의 보다 나은 질서를 위해서, 다시 말하면 인간을 더 이상 노예화하지 않고 비인간적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인간을 개체화하지 않고 실제적인 연대성이 출현하도록 하는 사회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오직 사회체제의 토대가 변혁될 때에만 가능하다. 연대성은 경제질서에 있어서는 “상품의 생산과 분배의 사회적 관리”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라가츠는 그 전제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힌다.

즉, 그것은 생산수단의 소유를 새로운 질서로 개편하는 것이다. 노동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이 생산수단들이 사적인 이윤동기에 종속되는 한, 노동의 자유란 성립될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의 연대는 불가능하게 된다. 하느님이 원하셨던 인간의 해방과 연대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새로운 소유의 질서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종교적 사회주의자들은 말하자면 단순히 사회적으로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주의자들인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현재의 경제체제 가운데 일부를 수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제변혁, 집단주의적 새 질서에 의해 기존의 경제질서를 대치하자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연대의 원리를 통해 경제를 윤리화함으로써 인간에게 봉사하게 하는 경제질서”라고 라가츠는 자기의 츄리히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경제적 삶은 이윤이 목표가 되지 않고 공동체의 물질적 요구의 만족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또 이것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물질적 곤궁에 대항하는 공동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적인 사회에서는 노동이 해방되고 공동체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따라 세워지며 이렇게 됨으로써 소외가 근원적으로 치유된다. “하느님의 자녀됨, 형제애, 연대성, 그리고 (칼빈식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러한 사회질서를 라가츠는 염두에 두고 있다.

집단적 소유란 개념은 잘못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라가츠는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자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집단적 소유의 담지자는 그 최상의 형태가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국가가 갖는 강제성”을 갖지 않으며 “공동체의 경제적 욕구충족”이라는 목적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가능하면 사회주의 사회를 향해가는 도상에 있는 정치적 가능성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의 조직은 뭔가 성장하는 그 무엇이자 유기체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연대성의 본질
그러나 모든 조직은 정신에 의해 활력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협동을 이루어주며 조직의 퇴화를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강의들 속에는 연대성의 본질에 대한 깊은 숙고가 들어 있었다. 라가츠는 본래 칸트철학의 추종자로서 개인의 권리들 사이의 상호중재로부터 연대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했었다. 또한 라가츠는 “인간의 보편타당한 법”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라가츠는 블룸하르트와의 긴밀한 접촉을 가진 이래 “형제의 법”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필연적으로 형제가 내포된다. 바로 하느님을 통해서 인간은 동료 인간과 가장 깊이 결속된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을 묶어주는 무조건적인 연대성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종교적 사회주의자들이 그 이전의 “사회적인” 그리고 “사회주의적인” 목사들과 대비되는 새로운 특징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캄블리도 벤츠도 아니 플뤼거까지도 그들의 신학적 확신과 정치적 태도 설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그렇게 정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구체화되고 또 그것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들과 나란히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적 행위에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라가츠는 1차 대전 이전에는 우선 자기 강의실에 들어온 작은 그룹과 함께 종교사회주의적 신학, 윤리, 정치의 초기 행태를 발전시켰다.

1910년을 전후해서 스위스에서 있은 사회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화에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 쿠터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부르주와적 성향을 폭로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역동성을 가지고 그것과 대결했다.

라가츠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고, 사회주의적 연대성과 예수를 복음적으로 따르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사고의 발전은 당시 개신교 세계에서는 유일한 것임을 지적해 두어야 하겠다. 블룸하르트 운동은 실로 1차 대전 이전의 고도의 자본주의적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전위대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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