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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0.26  14: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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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사상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1975년)는 독일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 정치 이론가이다. 종종 정치 철학자로 평가되지만, 아렌트 자신은 항상 철학은 "단독자인 인간"에 관심을 갖는다는 이유로 그러한 호칭을 거절했다. 아렌트는 대신에 자신을 정치 이론가로 묘사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업적이“‘한 인간’이 아닌 ‘인류’가 지구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공헌은 20세기와 21세기 정치 이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생애
아렌트는 당시 독립적이었던 린덴(지금은 하노버의 일부)에서 세속적 유대인 집안에 태어났으며 쾨니히스베르크(이 도시는 이마누엘 칸트의 고향이었다)와 베를린에서 자랐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밑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그와 길고 산발적인 연애 관계에 있었는데, 이후 나치에 적극 협력하던 그에게 깊은 환멸을 느끼게 되어 그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야스퍼스의 지도를 받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입각하여 사랑의 개념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1929년에 출판되었으나, 아렌트는 1933년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 취득(하빌리타치온; 독일에서의 교수 자격 취득)을 금지당했으며, 따라서 독일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도 좌절되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피신하여 파리 시로 갔다. 파리에서 문학 평론가이며 마르크스 신비주의자인 발터 벤야민과 친구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아렌트는 유대계 망명자들을 돕기 위해 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한 뒤 독일이 프랑스 일부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유대인이 수용소에 강제 이송되게 되자, 아렌트는 프랑스에서 도주해야 했다.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독일 출신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주간 《아우프바우》(Aufbau)지에 기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렌트는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며, 독일 비(非)나치스화 청문회에서 하이데거를 위해 증언했다. 이는 평소 하이데거를 깊이 존경하던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의 권유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일 하이데거의 정부로 대학 시절부터 불륜 관계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비록 그가 나치에 협조하였다는 과오가 있었을지라도 그의 사상과 철학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 증언했다고 하나, 이것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있다. 1950년에 미국 귀화 시민(naturalized citizen)이 되었으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전임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학력과 경력
마르부르크대학교·프라이부르크대학교·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1928년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프랑스 파리로 피신했으며, 사회사업가로 활동하면서 1940년 철학교수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뉴욕 시에서 '유대인 관계협회'의 조사국장(1944~46)과 쇼켄 출판사 편집국장(1946~48) 및 유대문화재건사의 전무이사(1949~52)로 있으면서 나치의 탄압으로부터 유대인의 저술들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1951년에는 미국 시민이 되었다.

기념비적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 Origins of Totalitarianism〉(1951)에서 그녀는 전체주의로부터 19세기의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로까지의 발전과정을 서술했고, 전체주의의 성장을 전통 민족국가 붕괴의 산물로 보았다. 전체주의 정권은 유물론적이거나 공리적인 고려를 무시하고 미숙한 정치권력을 추구했기 때문에 사회구조의 대변혁을 가져왔고, 현대의 정치를 거의 예측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 연구로 그녀는 저명한 정치사상가가 되었다. 미국의 주요대학들로부터 강연에 초청받았고,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1963~67) 이후 뉴욕 시 사회조사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아런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1963)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유대지역사회 지도자들의 협조가 있었음을 주장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인간의 조건 The Human Condition〉(1958)·〈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Between Past and Future〉(1961)·〈혁명에 관하여 On Revolution〉(1963)·〈암흑기의 인간 Men in Dark Times〉(1968)·〈폭력에 관하여 On Violence〉(1970)·〈공화국의 위기 Crises of the Republic〉(1972) 등이 있다.

   
 

논쟁이 된 저서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의 저작 중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여러 논란을 일으켰는데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표현은 바로‘악의 평범성’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인터뷰에서 그 말이 “개개인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아이히만에게는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상상하는 포괄적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아이히만을 광대라고 표현한 이유는 우스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분별력이 없고 폭넓게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사유’하는 능력을 강조했는데 《한나 아렌트 평전》에도 사유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된다. 아렌트는 악에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사유’에 있으며, 스스로 사유하는 사람들에게‘저항’은 평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아렌트가 생각하는 사유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내적 경험으로, 이 사상은 훗날 아렌트가 자신의 최고 걸작이 되리라 예견한《정신의 삶》1부 ‘사유’의 집필로 이어진다. 이렇듯 아렌트는 삶과 저서를 통해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실천적인 사상가였다.

그 밖에도 《한나 아렌트 평전》은 전체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공적 영역의 강조 등 한나 아렌트가 한평생 주장하고 행동해온 바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주며, 더 나아가 주요 저서들의 집필 계기와 그 주요 개념 및 영향, 뒷이야기까지 한눈에 조망해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평소 어렵게만 느껴지던 한나 아렌트의 사상과 정치철학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JS에서 열린 아이히만이 전범재판정은 피격을 우려하여 방탄 유리부스에 보호 

악의 평범성에 대한 논란
1960년,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 모사드가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 겸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3]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하였다. 그 후 아이히만은 기소되어 1961년 4월 11일 공개재판이 열렸는데, 미국에 거주하던 아렌트에서 뉴오커라는 잡지가 이를 참관도록 한다. 이 재판을 참관한 내용을 훗날 아이히만에 대한 평론을 작성하여 책으로 출판한 것이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즉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주관했던 만큼 매우 사악하고 악마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아주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개재판에서 아이히만은 그동안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해, 본인은 그저 자신의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사항들을 성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일관했다.[4] 아이히만과 같은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는가에 대해 생각하던 중, 한나 아렌트가 떠올린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아이히만과 같은 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하는 일들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학살된 유대인은 600만 명이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학살 대상이었다. 워낙 대규모로 저질러진 학살이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2003년 9월에 밝혀진 극비 문서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듬해인 1940년 1월부터 1941년 8월까지 독일 각 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지체장애인과 정신장애인 27만 5,000명을 학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몬바이센텔 센터의 R. A. 쿠퍼(R. A. Cooper) 소장은 "나치 정권은 장애인 학살로 살인기술을 연마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했다"고 비난했다.

아렌트가 송고한 기사는 곧 미국 전역에 걸쳐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인물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아이히만이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 영화는 크게 흥행도 하지 못하고 사실적 전달에도 미흡한 것으로 평가

악인은 태여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히만은 학살을 저지를 당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던 히틀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착한 사람이 저지른 악독한 범죄라고 하는 사실에서 연유되는 곤혹스러움은 인간의 사유(thinking)란 무엇이고, 그것이 지능과는 어떻게 다르며, 나아가 사유가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가 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악은 언제나 생겨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하고 일명 '예스맨'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악의 평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매우 많다. 특히나 군 조직과 같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하게 자리잡은 곳에서는 더욱 심하다. 가까운 역사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국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군인들의 사례가 있다. 악의 평범성과 관련하여 군 조직에서는 언제나 '상관의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딜레마가 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군인의 도리가 아니지만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택사스 크리스천대학의 강남순 교수도 평하기를 ‘악의 평범성’은 우리 주변에 있는 무수한 평범한 이들, 그 사람들이 거대한 악에 가담하게 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의 부재에서 나온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악이란 어떤 악마적 품성을 지닌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비판적 사유의 부재를 통해 창출되고 지속된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종교권력이 집중되어 기업화된 대형 교회 부자 목사, 그리고 그 사건에 ‘아멘’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너무나 평범한 이들일지 모른다.

다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와 ‘왜’라는 물음표다. 종교에 대한 왜곡된 이해, 위계주의적 가치관, 다층적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의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 직장 등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의 따돌림과 괴롭힘의 문제에도 악의 평범성을 발견할 수 있다. 조직의 분위기가 특정인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방향으로 형성되면 구성원들은 기계적으로 해당 분위기에 맞는 행동들을 하게 되고, 결국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조직 바깥에서는 악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사반다 로즈 힐의 평전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관심은 사후 5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있다. 국내에도 관련 서적이 100여 권 나와 있으며, 2022년 한 해에만 열 권 가까운 신간이 출간되었다. 《한나 아렌트 평전》은‘평전’이라는 제목으로는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출간된 책으로, 이 비범한 인물의 일대기를 자세하면서도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아렌트를 만나 볼 수 있다.
저자

사만다 로즈 힐은 한나아렌트센터Hannah Arendt Center for Politics and Humanities 선임 연구원이자 브루클린연구소Brooklyn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 부연구원으로, 《한나 아렌트 평전》과 《한나 아렌트의 시Hannah Arendt’s Poems》(2023년 출간 예정)를 집필했으며 현재 예일대학교 출판국의 의뢰로 외로움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힐의 글들은 학술 지 《Los Angeles Review of Books》와 온라인 잡지 《Aeon》 및 온라인 매체 LitHub, OpenDemocracy, Public Seminar, Contemporary Political Theory, Theory and Event 등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힐의 개인 홈페이지(samantharosehill.com)를 방문하면 그녀가 발간하는 소식지 《Illuminations》 구독이 가능하며 한나 아렌트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들도 확인할 수 있다.

역자: 전혜란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으며, 다년 간 연합뉴스TV에서 외신 뉴스를 번역했고 최근까지 특허법률 사무소에서 한영 번역가로 근무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는 《미니 타투 도감: 타투이스트와 타투 러버의 디자인 가이드》, 《필로소피 유니버스: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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