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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1.09  1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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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교 제도 왜 나왔나?

예장뉴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 기획 연재하는 글의 연속이다. 이번에는 장로교 제도와 PCK의 발전과 진보를 위한 정리다. 거칠고 번복되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바꾸지 않는 우리 현실을 고려하면 백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더 좋은 논의와 진전을 위한 마중물이라고 보시고 의견을 주셔도 좋겠다   

1. 국론 분열(정치 갈등은 국민 분열로)
2. 한국교회 분열과 갈등의 역사
3. 교회 분열 원인과 대안(목사,장로, 당회 정상화)

4. 장로교제도 왜 나왔나?

한국에서는 장로교라고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하는 데 신학적으론 죤 칼빈이 제도적으로는 스코틀랜에 죤 낙스가 시조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제도는 스위스에서 기초가 놓였으며 이후 화란과 헝가리, 체코등에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갔고 미국선교사들에 의하여 아시아로 와 세계종교가 된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영국민의 이주와 함께 정착한다.  

그러나 미국장로교도 세계장로교회는 쇠퇴의 길로에 있으며 아직도 건재한 한국장로교회가 유일하다. 교세나 숫자 사회적 영향력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에서의 장로교회는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분열 또 한 가장 심각하다. 그중 가장 크다는 합동과 통합중 통합은 한번도 분열하지 않았지만 합동은 핵 분열을 하여 장로교라고 쓰는 교단만 50여개가 넘는 다. 이외에도 더 보수적인 고신이 있고 진보 교단으로는 기독교장로회가 있다. 

다행히도 통합과 합동은 NCCK을 제외하고는 2011년 '한기총' 사태로 갈등하지만 지난 5년전 부터는 연합사업에서 협력하는 좋은 사이다. 이전 세대들에 비하면 아주 밀월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단의 지도력과 주류가 교단의 신학적 바탕위에서 하나됨이라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제도가 조직문화를 결정한다

인간들이 사는 사회와 조직에는 수직적인 위계와 지배구조(Governance)가 존재한다. 최초의 직접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하는 아고라(agora,그리스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토론하고 모으는 광장)에서의 자유로운 회의와 토론도 그것을 모으고 결론을 이끌 주제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중재하는 자(moderator)로 머무르려고 해도, 자신의 철학이나 의도를 실현할 권한을 행사(President)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스림’(Ruling)을 위한 ‘치리자’(ruler)와 ‘치리기구’(Ruling body)를 갖는 장로교회야말로 그러한 인간 본성을 가장 잘 수용하고 활용한 회의체계라고 할 수 있다.

장로교라는 체계는 죤 칼빈에 의하여 창시되었으나 그 뿌리는 스위스인데 교회의 특별한 신급제도는 왕조사회의 신분제가 교회에 그대로 통용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에 의하여 출발되었는 데 이는 영국국교회(성공회)의 권력화된 종교기구로부터 억압되는 인간의 자유 말살과 억압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들은 화란으로 가 장로교회로 더 발전시켜 정착했다. 1800년대 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프라우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개척자로 먼져 교회를 세웠고 동부 보스톤에서 정착한이후  메사추세추나 펜실베니아로 넓혔갔다. 선주민인 인디언들과도 사이는 나쁘지 않았고 서로 나누고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중앙집권제 국가가 아닌 느슨한 연방을 선호했는 데 특히 종교(기독교)의 자유을 보장하고 모든 종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륙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개된 전쟁과 살인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목표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국의 수정헌법에 종교(기독교)의 자유권은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게 되는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신대륙이 돈이 되고 각축장이 되면서 부터 선주민에 대한 적대 정책과 법률이 멋대로 제정되었는 데 워낙 넓은 대륙이나 중앙정부의 역할은 상징에 불과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공동체중 어른들이 총을 차고 가족과 재산을 지키는 차원에 용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통용되는 것이다. 

한국장로교는 선교사들의 산물 

우리나라에 온 장로교회는 미국식 초기 장로교회다. 그러나 미국도 남북전쟁으로 남북장로교회가 분열되었다가 1982년 통합되 하나의 장로교회를 유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 남북장로교회는 지역과 선교의 타켓이 달라지지만 선교 협동사업부로 운영되다가 선교 100주년에 하나의 장로교 선교부로 완전히 된다. 현재 미국장로교 아시아본부가 기독교연합회관에 있는 데 대만과 중국 북한 담당과 한국과 일본, 중국과 대만을 담당하는 사역자 3명을 두고 있다.

장로교회 제도는 특정한 사람에게 부여되지 않으며, 공적 회의체(Assembly)를 통하여 발현된다는 점에서 지배를 지향하지 않는 치리회다. 만일에 누군가 권한과 권력을 소유하고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는 장로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유일하게 지니시는 권한과 권력을 위임받거나 찬탈해야만 가능한데 이는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최고이자 유일한 권력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그의 열두 제자들, 곧 사도들에게만 그의 신적 권위를 부여했다. 정경화작업도 모두 그 사도성을 전제로 한다. 예수의 직계 사도가 아닌 나중 사도인 바울은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신비로운 체험을 전제로 깨달음과 순종을 통하여 사도권의 위임을 받을 수가 있었다. 교회의 다스림에 있어서는,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행하도록 하심인지를 논의하고 판단하는 ‘치리회’(Ruling assembly)의 운용이 필연적인 것이다.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적 특성이 가미되었다. 처음 목사와 장로의 임기제를 교권정치로 목사 위임제와 장로의 항존직(한번 임직 받으면 은퇴시 까지)제를 타협한다. 그렇게 해서 목사의 지위는 회중들로부터 도전받지 않고 장로의 지위는 불변하게 된다. 그렇게 나온 폐단이 성직독점주의와 장로(당회) 권력이다. 그러나 이런 위계질서는 성경적이지도 서구의 것도 선진적인 것도 아닌 사람들이 필요에 의하여 만든 것으로 언제 든지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장로교회에서의 당회 운영은 파행중이다. 회의체로서의 당회(Congregational eldership)나 노회(Classical assembly), 그리고 대회 혹은 총회(Synodal or General assembly)는 거의 성경의 원리로 운영되기 보다는 영향력이 큰 목사나 장로의 입김에 의하여 좌우지 된다. 특히 교권이 강력해지면서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파벌과 인맥의 이해관계) 입장들로 이합집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성경에 근거한 대의가 뒷전이고 다수가 정한 논리나 제도에 의하여 왜곡되고 있다. 

장로교 제도는 오랜기간 진화한 것이다. 

장로교회가 얼마나 교권주의(clericalism)를 싫어하는가는, 그 조직구조에서도 알 수가 있다. 즉 ‘당회-노회-대회 혹은 총회’의 구조는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데 이는 교권주의를 차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교회의 치리회는 ‘당회’라고 하는 회의체를 통하여 운영되는 데 이조차 홀로(즉, 독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의 회의(greater ruling assembly)인 ‘노회’와 시찰과의 협력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다(임시 대리당회장은 반드시 노회의 허락(재가)을 받아야 한다)

이유는 지교회의 당회가 오류에 빠지거나 오판할 때 상회로 부터 문책을 받기에(당회록 검사) 당회의 오류나 나태를 시정할 수가 있다. 이 회록검사는 거의 다른 조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제도인데 최근들어 노회들이 이를 게을리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특히 목사등 칭빙에 있어서는 서구의 것과는 완전히 결별하여 자체 청빙위원만으로 정한다. 그러나 미국도 그렇고 뉴질랜드 호주장로교회도 모두 노회의 전문위원회가 파송되여 지도을 받는 데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노회’는 또한 ‘대회’(Synod) 혹은 ‘총회’(General assembly)의 오류는 어디서 시정할 수 있는 가? 학자들은 이를 ‘당회-노회-대회 혹은 총회’는 서로 간에 ‘~할 수 있는’(may be) 관계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must be) 관계로 연계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대회’나 ‘총회’ 조차도 유일한 상급기관이 될 수가 없도록 함으로써, 교권주의를 차단하는 것이 바로 장로교회 정치의 기초이다. 따라서 3치리회는 엄격한 의미에서 독립적이다. 

이를 간과하고서 다른 기구들을 상설화하여 기능을 부여하고 운영하는 것은 교권주의의 폐단이다. 또 세속정치의 금권선거 못지않은 선관위을 둔 총회장 입후보 공탁금등은 극단적인 세속주의와의 타협이다. 이는 추대라는 전통을 져버리고 힘에 의한 경쟁을 부추키는 것이다. 권력을 집중하거나 나누는 것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세속 정치(secular politics)와 영적인 관할권을 다루는 교회 정치(church politics) 사이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권력을 인정하고 행사하느냐(세속 정치)와 권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느냐(교회 정치)의 차이다.

교회 정치에 있어서 소위 ‘교권주의’(clericalism)의 타파는, 구교[로마 가톨릭]와 신교[개신교]를 나누는 가장 원초적인 기준인다. 교회정치체제와 관련하여서 기본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사제주의(Sacerdotalism)를 확고하게 정착시킨 것에 반해, 로마 가톨릭교회로 변질되기 이전까지 신약시대 교회로부터 한동안 존속했었던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신(마 28:20) 교회로서의 교회정치로 개혁된 교회들은 철저히 그러한 교권주의적인 교회정치 구조를 개혁하여 장로주의(Presbyterianism)의 교회를 구축했다. 이것이 바로 대의주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그 가운데서도 신약성경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교회와 그 운용으로서의 교회정치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소위 ‘초대교회’라고도 칭하는 초기 기독교(Early Christianity)로부터 이미 정립되어 있었음을 바탕으로, ‘장로회정치체제’(Presbyterian government system)의 형태를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소급하여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신약성경과 주후 1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교회와 교회정치는 분명 장로회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교회정치의 형태였음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장로교회정치체제에 있어서의 핵심적인 구조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로회(Presbytery)로서의 노회정치의 실행이다. 개별 장로교회들이 아무리 온전한 치리를 시행한다고 해도, 노회정치체제에서의 치리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장로교회정치를 구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노회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대회정치와 범세계적인 총회 정치가 가능한 것이니, 바로 그 구조 속에서 비로소 지상에 ‘공교회’(Catholic church)가 가시화한다. 무엇보다 장로회 정치의 핵심적인 특징은 ‘회의체’(Assembly)에 의한 치리와 권징의 시행에 있다.

치리회라는 독특한 제도 

‘치리’(discipline)라는 것은 ‘다스림’으로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은 신자라 할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지키도록 하신 것에 따라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자연스레 타락하고 부패한 본성과 행실을 드러내기 마련이기에, 치리회를 통한 다스림이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내 나름의 가치와 공덕을 바탕으로 지분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치리회의 치리에 순응하기로 결단하고 수긍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 가운데서는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신 대로 치리를 행하는 치리회를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게 하신 멍에를 메고 그에게서 배우는 자들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치리회는 교회의 권력기관이 되어버림으로서 사실상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길을 바라보고 있고, 신자들은 그 어떤 치리에도 순응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자인 교회의 회원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자들은 갈수록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가르침을 따르며, 치리회는 사실상 기득권이 된 권력을 옹호하거나 찬탈하는 쟁탈전을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League)가 되어버리고 있다. 가장 안타깝고 처참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장로교회와 그러한 교회들이 속한 장로교단들 가운데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내의 실정에서 확연한 것이지만, 마치 세속정치의 혼잡한 몰골을 고스란히 축소해 놓은 것이 장로교단들의 장로교회정치의 몰골인 것이다.

기구화는 화석화

그러므로 ‘총회’는 장로교단의 최고 통치기구가 되어버렸으며, ‘노회’는 총회의 임원들이 하달하는 정책과 지시를 수행하는 집행기구처럼 인식되기도 하며, 심지어 노회 본연의 직무와 기능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그저 자영업자인 목사들이 모이는 연합회(일명 목사 이익단체인 노동조합) 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되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그러한 판국이니 ‘당회’가 온전히 운영되겠는가? 치리회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서 목사를 사장으로, 혹은 치리장로들을 이사들로 하여 이뤄진 임원회[그것도 기업체의 임원회]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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