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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죽음의 권세를 넘어 출애굽 예배를 드릴때!!
부천 새롬 교회  |  이원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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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19  09: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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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지난 17일 안동의 여중생이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다. 15살 소녀였다.

유서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진짜 내 장래를 위해 즐겁게 수업을 받기보다 강압에 의해 45분 동안 앉아 있는 훈련을 받고 있다.” 그날 오전 카이스트 학생이 기숙사에서 뛰어내렸다.

“열정이 사라졌다. 정체된 느낌이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했다고 한다.

하루 전 영주에선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2 학생이 투신했다.

가족은 사망 다음날 아들을 화장했다. 지난달 30일엔 쌍용차 해고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임대아파트로 이사한 뒤였다. 그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강북지역의 어느 영구임대아파트. 그곳에서 5월 이후 100일 동안 주민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올 들어 대구에서만 학업부진, 학교폭력에 시달려 중-고등학생 10명이 잇달아 자살했다.

정리해고에 맞선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망했는데 그 중에서 12명이 연쇄자살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자살…자살…자살…. 돌림병에 걸린 듯이 죽음의 행렬이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놀랍게도 하루 43.6명 꼴로 자살했다.한국의 자살률이 9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1위이고 세계적으로도 리투아니아에 이어 2위다.

삶이 얼마나 절망적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싶은것이다.

 
   
 

영화 장르중에 로드 무비라는 장르가 있다.

로드 무비 이들 영화의 주인공은 무언가로부터 도망하거나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도망이나 추적의 서사가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로드 무비의 주인공이 길과 떠남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이러한 여행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길을 무대로 펼쳐지는 로드 무비는 기본적으로는 '성장의 영화'라는 한다.

대표적인 로브무비를 한 영화 소개한다면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이다.

이 영화의 타이틀롤의 전경은 여성 델마와 루이스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찿는 그 과정을 하늘과구름, 그리고 산들로 아름답게 묘사되면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여자가 보잘것없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성 동료인 '델마와 루이스' 그녀들의 억눌린 현실과는 달리 질주하면서 느끼는 싱그러운 바람과 자연은 즉, 자유는 그들의 희망이며, 절망가운데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 명제임을 알려 준다. 그리고 이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은 잊을수 없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탈출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그랜드 캐년의 막다른 절벽 앞에서 루이스가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델마는 "Let's keep going (계속 가는 거야)" 라고 말함으로써 다시는 죽음 앞에서라도 자유, 즉 여성의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모습은 초기의 여린 그녀들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여성으로서의 차별 받고 억압받는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찾기 위한 여성 해방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모든 로드무비의 로망인 억압으로부터 자유에로의 탈출을 멋지게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우리 신앙 생활의 핵심중에 하나인 출애굽 정신이란 노예 생활하던 사람들이 그 제국에서 탈출하여 세운 새로운 공동체의 헌법 정신인바 이것은 바로 탈출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로드무비일수도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고대 근동에 기독교의 야훼 하나님이 등장하기 이전에

당시의 근동의 다른 신은 전부 착취의 신들이었다.

이집트에 가면 그들이 섬기는 신은 우선 규모로 사람을 압도한다.

이러한 신들은 늘 힘을 숭상하고 전쟁을 일삼고 노예로 삼기에 십계명중 제 1계명은 “나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인 것이다.

왜 믿음의 조상들은 이러한 신앙 고백을 계명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삼았을까?

야훼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그 신들은 너희들을 다시 노예로 삼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그러면 너희들은 다시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될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영어 몰입식 엉터리 교육제도로 학생들이 투신자살하건 말건, 세계 최악, 매년 1만 5천명이 자살하건 말건 경제난 악화로 중산층, 자영업이 붕괴되고 서민들이 고통에 신음하건 말건,매일 마흔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음의 행렬에 들어서지만 너무 조용하다.

 
   
 

모두가 죽음의 동조자 내지 방관자가 된 것인가?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과 소외 문제에 대한 대책이 겉돈고.

협력보다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에 대한 성찰이 없고.

뒤처진 사람들의 절망감을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 둔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자살증가는 사회병리적 현상임이 틀림없고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의 자살 현상은 사회적 타살의 일종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나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현상인 것 이다. (출 20:7)

 

그러면 이러한 죽음의 시대 이시대의 작은자들 약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 약자는 강자와 직접 싸워서 이길수 없다,

그 강자로부터 새로운 더 이상 노예와 종살이가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탈출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시대의 가장 중요한 신앙의 출애굽 사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다른 이방종교에는 이러한 약자의 해방과 안식의 개념이 있는 종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만이 참 고등 종교요 참 진실된 종교임이 틀림이 없다.

 
   
 

 

지난번 청년 사회적 기업 혐동조합 마을 만들기 인큐베이팅 센터를 만들기 위한 모임이 있었는데 국제적인 경험이 많으신 김용복 박사님이 이러한 증언을 하셨다.

“ 지금 전셰계는 사회주의만 아니라 자본주의도 이미 일정부분 붕괴 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사회주의 자본주의 다 마을이 붕괴해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청년들은 이미 일자리도 할 일도 없다, 우리는 이제 마을 생명 공동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을에서부터 다시 창의와 창업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멈출 줄 모르는 죽음의 행렬은 바로 우리 한국 사회가 출애굽해야만 하는

살인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이라는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생들은 거의 살인적 공부에 시달려 자살의 행렬이 이어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거의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데도 부채가 늘고 일자리를 늘어나고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자살의 행렬을 더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하는 이 말씀을 지금 처럼 죽음의 권세와 행진이 권세를 떨치는 이시대에 “예배를 거룩하게 지키는 예배정신”으로

오늘 이 시대의 정신과 함께 우리는 다시 이러한 출애굽 정신의 예배를 부활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에 성서의 안식의 개념을 받아들여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오늘 수많은 사람의 이 자살의 행렬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신실하게 믿는 자들은 오늘 출애굽기의 십계명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죽음의 사회를 거부하는 이러한 죽음의 살인 세상에서 모세 처럼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겠다”

(출 8:27) 고 선언 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무리를 이끌어 새로운 하나님 나라고 출애굽 하고 그곳에서 우리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믿는 자들이 진정으로 부활시켜야할

신령한 예배에 대한 고백인 줄로 믿는다,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한가지 기쁜 소식을 전할수 있어서 기쁘다.

놀라운 일은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 제97회기 총회 주제가 바로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주제를 선언하고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그리스도인 정체성 확립을 향한 대장정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교단이 시대 변화를 파악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다.

이 주제는 한 회기로 끝날 일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실천운동을 확산시켜야할 목표이며

또 작은이들(가난한 이, 다음세대, 장애인, 다문화가족, 북한동포)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을 보면 실천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장뉴스 ; 작은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회통합)

이와 함께 이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개념을 구체화 하기위해 한가지 정도를 덧붙인다면

오늘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 하고 있다는 이 삼포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청년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만들기 인큐베이팅 센터”같은 것을 만들어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이 총회의 주제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만들어 교회와 사회가 상호 소통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실마리와 계기를 만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다시 작고 가난한자와 함께 하는 정신 그리고 마을과 지역사회의 작은 자들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정신으로 지금 붕괴하는 이 낡은 죽음의 세계에서 출애굽 하여 생명의 풍성한 추수를 나누는 추수와 감사의 계절이 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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