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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균목사의 野聲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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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4.02  2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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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노회 이동균목사 조사

   
   
 

 

 

 

   
   
 

김병균 목사님,

사방은 화란춘성, 만화방창의 계절로
봄기운과 향기로 가득합니다.
김목사님과 2월25일 전화로 웃고 이야기한 시간이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시는 “어야 동생, 아우”하시며 부르시는 말씀을
이제는 들을 길이 없어져서 아쉽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스스로 호를 야성으로 지으시고
세례 요한 역할을 자청하셨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을 향하여 준엄하셨습니다.
80년 오일팔을 직접 겪으시고
마음 속에 타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 오일팔 현장의 경험은 민중신학을 공부하고
그 신학의 실천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례요한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용기있는 외침으로 권위주의 권력을 향해서
쓴소리를 쉬임없이 해오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우리 시대 참 예언자이셨습니다.
21세기 AD 1980~2023년까지 40여년을
한반도 남쪽에서 預言 활동을 하셨습니다.
“왜 나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 하면서
거절할 수 없는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희망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말을 네 백성에게 전하라 !”
충실하게 소명을 다하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갈릴리의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목회와 사회를 섬기셨습니다.
보수와 진보적 목회관으로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 보며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갈릴리의 역사적 예수님을 본받아서 신앙화 시키고
사회선교와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스스로 3번이나 감옥에 드나들면서
양심수, 사상범, 통일운동, 농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분들을 격려하고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을 뛰어넘는 민중신학의 실천가이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바울사도와 같은 초지일관의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그 삶을 본받고 내면화하셔서
불굴의 용기와 신념으로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제자로 손색이 없이 달려가실 길을 다달리고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에 겸손히 순종하셨습니다.
몸의 아프심을 끝까지 짊어지고
그 아픔까지 사랑하며 마지막 생을 사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신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믿고
권력의 협박과 압력을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과 십자가를 지고갔습니다.
수많은 비난과 조롱에도 고개숙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목회자의 삶을 조금도 비관하지 않고
불의와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수없는 법정의 출입, 소송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석에 서는 일도, 증인석에 앉은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하나됨을 위해 분투노력하셨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서 이론과 실천을
균형있게 병행하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북한을 이해하려고 주체사상은 물론
마르크시즘까지 공부하고 북한 다녀오기,
대화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 동과 서, 빈과 부의 격차해소,
이를 통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대동세상을 꿈꾸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 하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인권과 통일운동의 큰 산이셨습니다.
목사로서 생의 시간을 다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이요 사명이셨습니다.
90년대 인권운동과 통일운동은
많은 시간과 비용, 열정을 다한 일이었습니다.
인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 되어야 완성될 수 있다고 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밤낮 간단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들이 예수님의 사역이요
복음을 실천하는 길로 확신하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학문하며 실천하는 분이셨습니다.
민중신학을 공부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그곁에 함께하고 서는 일을 했습니다.
본 예장통합의 목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기장의 선교원에서 석사를 갈릴리 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마르크시즘‧주체사상간의 대화”라는
박사학위를 해내신 학문가이셨습니다.
에큐메니칼을 실천하고 역설하셨습니다.
이런 내제화된 신학과 신념이셨기에
초지일관 불굴의 삶이 가능했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인간 박물관이셨습니다.
서재에는 그 많은 메모장, 책들, 자료들이 있고
인문학적인 지식들을 가지셨습니다.
살아있는 박물관이 사라졌습니다.
최근까지 강진과 김영랑에 대한 글들을
강진신문에 연재하는 등의
글쓰기가 마지막 열정이었습니다.
나주와 강진에 대한 향토사학자셨습니다.

김병균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본받으셨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가실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준비되신 의의 면류관이
김 목사님의 것입니다.
김목사님께서 제게 하신 마지막 말씀,
“아우! 피차에 건강하세나.
이 윤석열 정권을 끝내지 않고는
이 나라 존속이 위태롭기 때문에
추위에도 전국으로 촛불행동에 참석 했었네.
몸을 추스리면서 긴 호흡으로 나아 가겠네.”(2.28)
병상의 폐렴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차 상경하셨습니다.
목이 메입니다.

이제 이 땅에 남은 유가족들과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목사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목사님의 가신 길들을 잘보고
우리도 그 길을 기쁘게 가는 여정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가신 김목사님께서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시고
이 땅의 남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실 것을 믿으며
훌륭하신 목사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감사드립니다.
오래 목사님을 기억하겠습니다.

 

          2023년 4월 2일 광주혜성교회 목사 이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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