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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의 새로운 신학과 스타일과그리고 생태계에 관한 상상” (1)작은교회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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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15  17: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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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의 새로운 신학과 스타일과 그리고 생태계에 관한 상상” (1)

 이원돈 목사 (부천 새롬교회) 

최근에 작은 교회 일각에서 교회의 생태계에 관한 글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그중 두 목사님의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 교회의 생태계에서 작은 교회의 위치는 어떠한가?  그리고 건강한 작은 교회라할 때 작은 교회의 사이즈를 현장 목회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가하는 현장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작은 교회 이야기로 부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1. 정병선 목사의 작은 교회 길찾기

 "대형교회로의 수평 이동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1980년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다. 누가 선도하거나 흐름을 만들지 않았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생겼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와 같은 흐름은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괴사의 위기로 내몰고 있다. 물론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교회의 생태계가 이처럼 황폐화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교회의 생태계는 아사 직전에 와있다. 몇몇 교회는 거대해졌지만, 그 덕분에 수많은 작은 교회들은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 동네 상점들이 백화점과 대형마켓에 잡아먹힌 것처럼 작은 교회들도 대형 교회들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사실이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살벌한 종교시장이 되어버렸다. 능력 있는 놈은 살아남고, 능력 없는 놈은 도태되는 무한경쟁의 시장 질서가 교회 안에도 에누리 없이 작용하고 있다. 하여,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대형교회의 그늘에 가려 죽어가고 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교회 선택에는 두 가지 뚜렷한 양상이 나타난다. 첫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사나 이런저런 사유로 인해 교회를 선택해야 할 경우, 어느 교회를 선택해야할지를 몰라 고민한다. 출석할 교회를 정하기 위해 몇 개월씩 교회를 순방하며 기웃거리는 것은 보통이고, 1년씩 떠돌며 고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단지 교회가 많아서가 아니다. 교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갈만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둘째, 작은 교회를 기피하고 대형교회를 선택한다. 사람들이 동네 구멍가게를 기피하듯 그리스도인들은 동네 작은 교회를 기피한다. 아무리 설교 내용이 좋고, 목회자의 인격이 훌륭해도 교회 규모가 작으면 일단 부담을 느끼고 등록을 안 한다. 예전에는 작은 교회에도 교회 정탐꾼들(예배 순회자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정탐꾼조차 없다. 작은 교회는 아예 선택의 대상에 끼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교회 생태계 괴멸 무엇 때문인가? :정병선 목사) 

2. 더함공동체 이진오목사(교회 2.0운동) “작은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교회”여야 한다

 그럼 ‘작은 교회’는 무조건 건강하고 좋은 교회인가? 물론, 작은 교회라고 무조건 건강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큰 교회” 의식과 지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냥 “크지 못한 교회”로 사실 이런 교회에 가는 것보다 “큰 교회”에 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최소 50명, 최대 200명

나는 청장년 인원이 최소 50명에서 최대 200명까지를 제안하고 싶다.

200명 정도면 지역교회로서 모든 사역적 열매를 맺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 교회가 더 크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 한두 가지 선택하고 집중해 감당해야 할 것을 하고, 무엇보다 어떤 일보다 교회 구성원 안에 신앙과 삶의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역은 사람이 한다. 사람이 영성이 깊어지고, 은혜가 넘치면 사역도 하게 되고, 사역도 성장하게 될 것이다.  
   
 
  3. 한국 교회와 작은 교회 생태계 보다 정밀화 세밀화 하기  

교회의 생태계는 어떻게 되었는가? 잘 아는 것처럼 교회 생태계는 지금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 더욱이 교회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다. 성도들이 대형교회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선호하면 할수록 교회는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갖추기 위해 더 큰 교회당, 더 많은 직원,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고, 교회가 더 큰 교회당과 더 많은 직원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고, 또 더 많은 돈을 충당하려면 더 많은 성도가 있어야 한다. 실로 악순환이다. 이뿐 아니다. 교회 규모가 커질수록 교회는 몸의 본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고, 대형교회가 많아질수록 교회 생태계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떤 지혜나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고, 목회자의 훌륭한 인격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필연이다. (정병선 목사) 

우리는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크지 못해서 작은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정신과 가치를 따라 작은 그 자체로 행복하고, 그 자체로 감사한 그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게으르거나 지지리 궁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는 한 교회를 "더 크게", "더 호화롭게" 성장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더 바르게” 성장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전도하고, 더 열심히 사역하는 것이다. (이진오 목사)

 그러나 필자는 작은 교회의 사이즈는 단순히 몇명이 적정 규모이다 하고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교인들과 목회자간의 소통의 생태적 관점과 교회와 지역사회간의 나눔의 생태적 관점에서 정해져야 할것 같다

 작은 교회의 사이즈가 몇 명이 될가 그 숫자를 따지기 보다 더 중요하게 세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 있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의 여부는 교회 크기 보다는 그 교회가 지역사회와 교회 내부의 생명적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가가 문제이다,

큰 교회 대형 교회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사회와 교회의 생태계를 붕괴 시키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의 의미는 이 작은 교회가 교회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부활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건강한, 바람직한 생태계란 무엇인가? 

4. 지구화 시대 보편적 복지동맹의 가능성과 ‘작은교회 (김진호 목사) 

지난번 생평 마당 포름에서 김진호 목사는 작은 교회의 생태계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최근의 한국 교회의 생태계에서 전도와 성장 중심의 대형교회를 닮으려는 작은 교회가 아니라 복지 동맹에 참여하는 작은교회가 형성됨으로서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작은교회들이 대형교회보다

지구화시대에 보편적 복지  동맹의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서비스의 민간위탁제도에 작은교회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작은교회들은 성장지상주의적 교회 프로그램을 지양하자 남는 시간을 활용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때 많은 작은교회들은 전도 프로그램이나 교인 훈련 프로그램 대신 약한 이웃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들을 기획하곤했다. 그리고 이것은 복지 서비스의 민간위탁기관이 되는 기회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도 최저생계비 이하의 열악한 소득 수준의 교회 사역자들에게 생계비를 벌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한 작은교회들은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해서주변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이것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를 확장하며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게 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신앙과 신앙의 배타성을 교정하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작은교회의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복지의 확대를 신념화하게 되며, 그러한 신앙을 이웃과 공유하려는 삶의 지향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은교회는 복지동맹의 잠재적 일원이 된다.

즉 대형교회는 복지에 반대하거나 제한적 복지에 우호적인 반면, 작은교회는 복지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로 최근 중앙정부와 지자체 정부 모두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육성과 관련해서이야기해 보자. 여기서 그 사회역사적 배후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현상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지구화는 무수한 공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으로 전화시키는 폭력적 경향을 낳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 지구화는 사람들의 경험의 범주를 국가 차원보다 더 광역화되거나 더 미시화된 무수한 영역들을 창출하였다.

이때 이 광역, 협역의 영역에서 새로운 공공적 범주들이 탄생했다. 정부는 바로 이 공공적 범주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복지를 보다 확대 심화시키는 역할을 사회적 기업에게 부여하고자 하였다.” 
   
 

 5. 왜 대형교회가 복지 동맹이 잘 안되는가?(이원돈목사 응답)

필자는 김진호 목사님의 위의 질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하고자 한다? 

 한국의 큰 대형교회가 교회는 마을과 지역사회에서 보편 복지와 평생학습과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 등 공공성 타자성 지역성이라는 생명적 생태계를 이룰수 있을까?

과연 작은 교회는 대형교회보다 더욱 왜 공공성 지역성 타자성을 가진 건강한 생태계를 가질수 있는가?

 ①. 원로 교수이며 목회자이신 문동환 목사님은 떠돌이와 바벨탑라는 책에서 산업화시대는 악이다라고 규정하시면서 이제 우리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 폐기의 산업화시대의 종말을 구하고 그 체제로부터 탈출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농촌과 작은 교회의 붕괴로 대형교회도 함께 교회의 생태계적 위기에 처해 있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어떻게 대처 해야 할 것인가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새로운 생태계로서의 사회의 생산 양식의 변화를 보기로 하자!!! 지금 세상은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생산이 사회적 구조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한다.  결국 대형교회의 성장이라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를  기초한 것으로서 이러한 대기업이나 대형교회라는 형태가 미래사회에는 맞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새로운 생태계로서의 사회의 생산 양식의 변화를 보기로 하자!!!

지금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교회성장 패러다임이 일정 한계에 다다라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명교회와 생명망 목회와 선교의 탄생이 요청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최근 우리는 세계 기독교 생태계에서 번영신학이 붕괴되는 것을 보고 있다.

지난 30년간 세계교회와 종교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면서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던 LA 수정교회가 파산하여 이러한 번영신앙과 신학의 중심부가 붕괴하고 지금 세계교회와 한국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반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초대교회의 작은 가정교회와 같이 작지만 영향력 있는 작은 교회를 볼 수 있는데 그 교회가 바로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교회라고 한다.  

   
 

 초대교회와 세이비어교회가 오늘 전세계 교회에 던지는 충격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 세이비어교회는 150명 교인으로 200여종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숫자와 크기가 아니라는 것이며, 작은 교회가 대형교회보다 더 큰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증거하며, 오늘 우리가 닮고 싶은 교회가 과연 수정교회냐 세이비어교회냐 하는 새롭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미래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 하는 경제학자 일군에서는 산업화시대의 복지가 지나치게 시장화 상업화 되어 있다고 하면서, 이제 경제 복지화와 보편 복지 시대의 제대로된 복지를 위해서 미래 복지는 모든면에서 탈시장화 탈산업화 생태적이어야 하고 미래 복지는 단순히 경제성장 복지 확대가 아니라 탈 산업 탈 시장화된 생태적 경제와 복지를 지향하여야 할때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대형교회는 지나치게 산업화와 시장화되어 있어 새로운 탈시장 탈 산업적인 교회 생태계를 형성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므로 대량생산 대량 소비 대량 페기의 산업화 시대에서 출애굽한  다품종 소생산 시대의 새로운 교회 생태계는 탈산업화와 탈시장의 가능성이 있는 작지만 건강하고 영향력 있는 작은 교회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본 소고는 한국교회의 작은 개척교회 현실과 상황을 포착하면서 그동안 한국교회를 지배해온 교회 번영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성장학적 성장패러다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작지만 영향력 있는 미래교회(small effective church)의 새로운 생태계를 그려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 글은 지난 2012년 11월 13일 (화) <생명평화마당> 11월 포럼 - 작은교회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에 발표된 글 입니다 (곧 2부가 계속될 예정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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