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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협동운동조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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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12  19: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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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는 공공선의 보루

임종한 교수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마을의사)

이 내용은 이원돈목사 오세향 원장과 공동으로 저술한 "마을에서 만난 예수, 함께 만드는 사회연대경제" 내용의 일부다. 동연출판사. 2024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큰 줄기였던, 생협, 신협, 의료협동조합은 모두 초기에 기독교, 카톨릭등의 영향속에 태동되었으며, 생명운동, 상호부조, 돌봄운동의 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최초로 근대적 협동조합이라는 영국의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조합이 세워진 해가 1844년이니, 지금으로 179년전 일이다. 우라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세워진 것은 104년전 일이다. 오래 역사를 지녔지만, 협동조합의 이상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햇으며, 특별히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첨예했던 한반도에선 더욱 협동조합의 설 자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기후재난과 불평구조의 심화등 자본주의 병폐가 한계점에 달라고 있고, 이를 견제하던 사회주의도 붕괴, 고립되는 속에서 협동조합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대안의 하나로 주목을 받고 있다.

공공선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과 참여
최근에 교회 중심 선교의 틀을 깨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된 이후에 작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아동센터나 어린이집 같은 돌봄의 필요를 교회가 채우기 위해 실천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여왔다. 그러나 이런 지역 참여가 지닌 선교적 가치가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최근에 교회가 꾸준히 시도해 온 작은 도서관 운동이나 지역 아동 센터와 같은 지역 사회 참여를 통해 사회복지와 선교를 연결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정부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의 전환을 장려하고 견인하면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또한, 농촌 교회가 속한 지역 공동체가 와해하면서 생존의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 최근에 생산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농업을 새롭게 시도하면서 교회도 활기를 되찾는 사례도 있다. 생산 과정에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이 참여하면서 농사를 통한 치유와 돌봄을 동시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사회적 농업을 통해서 지역 내의 돌봄의 필요도 함께 해결하는 모델입니다. 이미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는 농업협동조합에서 돌봄을 제공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구조가 잘 구축되어 있다.

협동조합은 불평등과 빈부격차, 환경 파괴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모색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역사가 비교적 짧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금전적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위에 두기 때문에 ‘사람 중심의 경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사회적 경제가 도시 GDP의 45%에 이를 만큼 큰 규모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기반을 만드는데 가톨릭 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도 사회적 경제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교회의 디아코니아 (사회적 섬김) 차원에서의 참여가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 그들의 협동조합 근간에 교회의 기여와 참여가 활발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혁신학의 기초를 다진 캘빈도 자본주의가 탐욕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않도록, 부자가 빈자를 착취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경고를 했다. 한국도 켈빈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기독교인데 아쉽게도 그런 강조점을 계승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사람중심’이라기 보다는 ‘이윤중심’의 천민자본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삶은 더욱 척박해져 갔다. 경제 규모는 증가되었지만, 자본이 수익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고, 여러 제약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서는 교육과 의료를 포함하여 일상생활의 모습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소비생활과 경제 참여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삶의 뿌리부터 바꾸기 위해서 경제에 대한 인식 또 그것의 가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 안에서 이러한 변화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있다. 사실 교회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인식은 한국 선교 초기부터 강조된 부분인데, 한국 교회의 발전과정에서 선교의 개념이 하나님의 선교라기보다는 교회의 선교로 협소하게 인식된 측면이 있다. 특히 지도자들의 신학적 인식이 협소해지면서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버리면서 교회가 기득권화되지 않았느냐는 반성을 해본다. 그 결과로 교회의 세습이나 사유화 같은 현상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선교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며, 선교적 교회의 실천에 다름이 아니었다. 협동조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흔하게 발겨할 수 있다. 신앙과 협동과 나눔의 삶은 구별하여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주제를 갖고 사회적 농업 활동을 통한 돌봄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농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도시에서도 의료협동조합과 돌봄 공동체를 결합하는 형태를 시도하기도 하고, 교회가 참여하면서 기존의 지역아동센터를 사회적 협동조합의 형태로 확장시켜나가고, 또 의료 이외에도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이나 사단법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와 지역공동체와의 상호 결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부천시이다. 
지역 교회들이 마을 목회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교회의 연합과 지역 내에서의 사회적 경제를 만들어 내기 위한 모델도 만들어지고 있다. 더욱이 중대형 교회들이 이런 작은 지역교회를 지원하면서 교회 간의 연대의 새로운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의 개 교회주의를 극복하고 선교와 복지, 그리고 돌봄의 교회론에 근거해서 개교회의 영적인 에너지가 성도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지역사회에도 선한 영향을 주는 한국판 세이비어 교회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다수의 성공적인 모델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는 여러 기관과 교회들이 희년과 상생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가 각지역에서 구축되어지고 있다. 각 지역의 의료협동조합과 지역아동센터, 돌봄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마을목회 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의 그룹들이 지역마다 돌봄의 생태계를 만들고 교회가 동참하고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더는 개교회 간에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교회들이 서로 협력해서 새로운 지향점을 찾고, 태동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가 우리 사회에 안착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 흐름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킬 중요한 시민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화의 중심에 있던 교회가 이제 확장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80-90년대 민중교회의 성과를 이어가지만, 사회주의 몰락이후의 새 지평을 찾아야 한다.
관료화되고 비민주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는 이미 생명력을 다 했다. 우리 사회가 이런 극단주의에 휘둘릴 만큼 우리 국민이 어리석지 않다. 경제화의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진행된 이윤중심의 천민자본주의 역시 개발 독재나 인간 소외 등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또한,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어떤 정치권력이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경험했다. 결국, 극단적 형태의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문제에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가올 시대에는 사회가 사람중심 생명중심의 사회로 훨씬 더 민주화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회가 이를 향해 가도록 교회가 움직여야 한다. 또한, 기후 재난 속에서 시민의 책임지는 자세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지역 교회가 아닌 전 교회가 다루어야 할 주제들이다. 하나님의 선교적인 관점에서 삶 전체, 나아가 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의 질서를 회복시켜 나가는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기도하고 헌신해야 한다. 개 교회를 넘어서는 공교회 차원의 사회적 섬김이 기독교의 본분 중 하나이다. 한국 교회가 지난 시간 교회의 성장에 취해서 그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진 나머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었다.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는 교회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다. 그 근본에는 물신성 즉, 돈을 섬기는 물신주의(mammonism)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선교의 방향을 살피지 못하고 “사회와 담을 쌓은 교회의 성장”이라는 왜곡된 방향을 잡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방향이 어떤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정당성을 갖는가에 대한 교회 내에 공동체적 성찰이나 논의도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대화도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교회가 설득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와 공동체를 떠나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 내에 어른들의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어른들이 붙잡고 있는 생각이 교회 안에서 지배적인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지금의 문제를 교회안에 갇혀서 보는 것은 기성세대의 접근 방법이다. 문제에 대해 교회안에서 세대를 초월하는 대화를 하여야 한다.

교회의 대사회 신뢰 추락
교회의 대사회 신뢰 추락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평신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도록 성도의 역할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목회자들이 제대로 강조하지 않고, 본도 보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공교회로서의 인식이 약하기 때문에 개 교회 중심의 교회관을 갖게 되면서 결국 자기 교회의 성도 수가 늘어나서 큰 규모를 이루는 것을 우선하여 추구해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규모가 커질 때, 급여나 사회적 위상, 또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과 같은 부분에서 목회자가 가장 혜택을 보게 되지만, 정작 평신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주로 새 신자나 제자훈련과 같이 입문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이후 신앙인으로서의 소양과 인식을 지속해서 키워나가는 과정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주일 성수와 십일조만 잘하면 모범적인 교회 생활이 된다. 삶 속에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선교에 어떻게 동참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설교도 거의 없고, 연구도 없었다. 목회자들의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실천적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는 것이다. 이점이 안타깝다. 또 교단의 영향도 있고, 미국의 기독교가 주는 영향도 있을 듯하다. 한국 선교 당시에 배양되었던 좋은 전통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고, 전반적으로는 노쇠한 이미지가 되어서, 젊은 세대에게 어떤 비전을 줄 수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교회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해야 할 일
교회마다 환경이 달라서 일괄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목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좋은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사회 현장에서의 이슈를 인식해서 설교나 교회의 활동과 연계하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설교 사역 외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버거울 수 있고 특히 목회의 규모가 큰 중대형 교회의 환경은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목회의 규모가 작은 지역 교회들은 협력해서 협동조합 등의 형태로 직접적인 돌봄과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쉽다. 작은 교회들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섬기는 일을 할 때에 중대형 교회의 연합과 지원이 큰 힘이 된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중대형 교회 성도들도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역과 연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힘을 보탤 수도 있다. 교회의 영적 훈련이 피상적으로 되지 않고, 현장과 밀착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목회자가 이런 지도력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고, 지역 사회에 대한 섬김의 경험이 목회자의 목회 훈련에도 유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들을 훈련할 때에 종합병원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한다고 해도, 초기에는 지역사회에서 주치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 현장에서의 경험과 이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교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지역의 작은 교회들과 연합하여 공동 사역을 한다면, 개교회주의를 극복하는 동시에, 목회자들이 현장의 단독 목회부터 큰 규모의 협동 목회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목회 모델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보면, 교회의 수평이동 현상만 두드러지면서 큰 교회는 더욱 비대해지고, 작은 교회는 지역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가 결국은 교회 전체의 감소로 나타나기 때문에 깊이 고민해야 한다. 교단이 주도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면 좋지만, 교단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지역 중심으로라도 새로운 연합과 모델들이 나타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을 초월하는, 또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을 초월하는 연합 모델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교회의 연합이 한국 사회가 지금의 보이는 분열의 사회를 극복하고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아시아와 세계 선교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서, 많은 나라에 좋은 역할 모델로서 영감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가 성숙하고 발전된 시민 사회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교회는 아시아에서 기독교인의 수가 가장 많다(2,800만명).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또 사회연대경제의 육성에 왜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가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는 칼빈, 루터, 웨슬레이의 가르침도 잘 이해하고 있다. 최근 저는 북 스마트라를 방문하여 인도네사아에서의 사회연대경제 육성에 대한 협의를 했는데, 개신교교단의 임원진의 자세가 매우 진지해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도네시아교단(GBKP)은 “ 생명농업, 의료공공성 구축을 위한 의료협동조합”등 한국의 협동조합 경험에 대해서 대단히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교회보다 더 “사회연대경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놀라왔다.

또한 요즘 몽골에 큰 관심을 두고 자주 방문하고 있다. 몽골은 한국 전쟁에서 발생한 북한의 전쟁고아를 받아서 길러주고 다시 북한으로 보내준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과 남한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특수한 나라이다. 몽골은 기후위기 때문에 국토의 80~90%가 사막화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문제를 돕기 위해서 한국의 많은 선교사와 교회들이 참여하고 있다. 16개 교단이 참여해서 방풍림 조림 사업과 유실수 조림을 통해 마을을 세우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 유목문화가 강한 몽골은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데 한국 선교사들이 이런 부분을 돕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을 통해서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면서 좋은 선교적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북한과도 교류가 많아서 북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모델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150년 전 한국의 기독교가 있게 했던 선교의 역사가 지금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화되는 데 있어서 좋은 토양을 제공한 것처럼,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시아 지역에 확대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먼저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기회의 땅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교회 희망이 있나
한국 교회는 이땅에 어떠한 희망을 줄 수 있나? 그 선교적 비전은 무엇인가? 그 선교적 비전은 민족의 앞날을 고민하면서 분투했던 김구, 안중근, 안창호 선생이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헌신한 장기려 박사 등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실천해 온 신앙 선배들의 삶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제 그 하나님의 선교적 비전을 다시 되살려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아시아 국가에도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한다. 반면에 목회가 너무 기술적(technical)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유지하는데 주된 관심이 쏠리다 보니, 사회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교회에만 국한되는 협소한 관점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려는 성도들의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요즘 교회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교회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세상의 욕심이 교회 안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것을 아무리 신학적 용어로 포장해도 진정성이 없어서 청년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것이다. 결국은 교회가 종교를 통해 사업화되는 모델로 가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 기업의 모습과 과연 다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업이란 결국 사적 이익을 공유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배분하는 것인데, 교회가 기업과 다르다면 적어도 이웃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이바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사회에 임하면서 사람들이 변하고 사회의 뒤틀어진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 경험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교회를 통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통로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된다. 우선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만큼, 지금의 모습에 대해서 큰 책임감을 느끼시고 회개와 함께 교회 갱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평신도 지도자들도 함께 이러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좋은 선교적 교회 모델들이 나오는 만큼 이를 확산시키는데 한국 교회가 마음을 모은다면, 기독교의 불모지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선교하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지 않을 까 믿는다.

출처: 오세향, 이원돈, 임종한. 마을에서 만난 예수, 함께 만드는 사회연대 경제. 동연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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