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목회" 와 홍정수 교수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무슨 일이 있었나?
"예수목회" 와 홍정수 교수
예장뉴스 보도부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4.02.24  22:32:04
트위터 페이스북

         쫒겨 난 신학자 홍정수 교수(1948-)의 30년 여정

1988년 8월 10일, 변선환 교수가 감리교신학대학교 제6대 학장으로 취임한다. 변선환 교수는 종교 다원주의자를 대표하는 분으로 등장하는 일이 일어난다. 내용인 즉 타 종교를 배척하기보다는 존중하고 공통된 내용을 찾으려고 학문적 노력이 무지한 이들에게 압살당한 일이다. 변선환 학장은 1990년 ‘불타와 그리스도’라는 글을 발표했고 그 다음 해 제자 홍정수 교수는 ‘부활의 메시지를 다시 조명한다’ 라는 글을 냈는 데 모두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종교 다원주의자로 매도)는 말로 왜곡된다. 

김홍도목사가 주도하고 "교리수호대책위원회" 로 대표되는 감리교단 교권주의자들이 두 교수의 사상이 이단 사상, 내지는 ‘기독교 신앙과 감리회 교리에 배치되는 신학 사상’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선교, 특히, 감리교의 7천 교회 2백만 성도 확장 운동에 막대한 장애 요인’ 이 된다고 주장하며 목회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급기야 이러한 주장이 총회서 받아들여져 두 교수를 기소하고 재판하여 출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사건의 과정이 절차적으로나 법리적으로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감리교단은 희생양이 필요했는 지 모른다. 변학장과 홍교수를 지지하는 감리교단 내 구룹들이 없지 않아 ‘교단 정치 싸움’ 으로 물러설 수 없는 대척점에 서게 되 판이 커진다. 스승을 재판하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감신대 학생들의 비판과 저항을 받았지만 당시 감리교단 기성 목회자들의 지지를 받는 김홍도 목사는 이 재판을 주고하여 총회적으로 관철시키게 된다. 

40 중반에 날개가 꺽인 홍정수 교수는 이후 LA로 가게 되는 데 거기서 달리 할일도 아는 것도 없어 원하는 이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 나중에 한아름교회로 그리고 더 발전해 주정부 인가 갈릴리신학대학을 세우고 한국 분교까지 열게 된다. 그리고 지난 2022년 홍정수교수는 일선에서 은퇴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해 고향 인근 강릉에 거주하고 계신다. 

   
 

홍정수교수는 한번도 당시 재판과 관련하여 글을 남기거나 말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담으로 하시는 말씀으로 당시 재판이 열린 1992년 금란교회에서 자신은 감리교단에서 출교, 면직되지만 대학교원으로의 지위는 문교부 관할이라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조차 몰아내려는 이들에 의하여 학교에서 마져 나오게 되여 더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판이 커지고 동료들과 제자들의 불이익이 뻔하여 도피성 외유를 하게 되였다고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홍교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동문이나 지지자들의 성원으로 재판으로 입은 인격이나 손해에 대하여 민사소송을 주선해 자신은 내용도 모른 체 진행한 변호사 중재로 김홍도목사측과 배상 합의하여 소을 취하하게 된다. 이때를 전후하여 김홍도목사를 몇 번 만나기도 하여 자신은 금전보다 공식적인 사과를 원한하고 했더니 김홍도목사는 개인적으로 미안하지만 공개적으론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듣기도 한다.

그후 미국에 출국하려고 공항에 나갔더니 김홍도목사가 자신에 대하여 이 소송을 왜곡하여 허위로 금전을 목표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출국 금지 조치를 해 논 것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였기에 우여곡절 끝에 풀려 결국 한국을 떠나는 것 조차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판단으로 그 조치들이 풀려 출국하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미국에서의 교회와 신학교 설립

LA에 가서도 자신은 아는 게 성경뿐이고 가르치는 일만 해왔으니 가까운 이들과 성경공부를 하게 된 것이 원치 않게 교회로 발전하게 된다. 교단에 소속된 교회는 아니었으니 자유로운 교회공동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하다가 주정부 인정 갈릴리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고 년전 은퇴시점에 후임자가 없어 교회는 접고 갈릴리신학교는 아직도 운영되고 있고 한국분교도 홍성현목사에 이어 홍상태 박사가 책임자로 운영중이다.

홍정수 교수의 신앙 입문은 태백의 철암장로교회이다. 유년시절 그는 교화에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그 신비와 비밀의 세계를 계속 추구하며 온 곳아 지금이다. 이후  묵호(현 동해시)로 가 삼척공고를 졸업한다. 그후 감신대에 입학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때 한영제장로와 박종구 선생을 도와 월간 "목회신학” 을 창간하여 초대 편집장으로 있었다. 이 잡지는 기독교사상이 신학잡지인 것에 반하여 한국교회 최초로 목회와 신학을 접목하는 잡지였다. 그후 미국으로 가서 에모리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감신대 교수가 된다.

홍교수는 한국에서 "한국기독교연구소" 를 설립하여 한국교회 풍토에선 편내기 어려운 외국 신학서를 번역 출판하는 일에 한 것이다. 지금은 김준우 박사가 맡아서 운영하게 된다. 또 “예수 목회세미나“ 를 시작하여 18년을 이어오다 지난 2024년 2월 충북 제천에서 졸업식(?)을 한다. 이 졸업이라는 의미는 앞으로는 강사를 모시고 새로운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는 다는 얘기다. 그 대신 그동안 함께 해온 도반들과 동문회 형식으로 그간 공유한 내용을 심화한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연구소 예목세미나 졸업식(2024년) "예수목회세미나 20년을 돌아보며" - YouTube

   
 

홍정수교수가 한국신학과 목회에 끼친 영향

홍정수 교수는 그 자신이 비록 감리교단으로부터 출교와 면직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의 신심이나 신앙과는 별개다. 세속적 교파신학이나 교단이 가한 것은 형식과 제도안에 있을 사람에게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에 받은 아픔과 좌절이지만 이제 노학자가 된 홍교수에게는 과거의 낡은 사슬에 메여있지 않으며 한국교회를 살리는 신학에 관심이 있다.

그렇게 해서 예장의 홍성현목사를 만나게 되고 한국분교를 허락하게 된 것이다. 홍성현목사도 한 때는 LA에서 목회를 하시기도 한 바 있어 한국 분교장을 맡은 이래 첫 졸업생으로 이원돈 유해근 박사가 나왔다. 석사는 장병기목사외 이후 감리교단 후진들과 예장의 목회자들이 갈릴리신학교에서 공부하여 박사 석사을 받은 이들이 나오게 된다.

홍정수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수에 대한 것이다. 예수교이면서도 예수보다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한국교회와 신학교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예수로 돌아오기를 위한 염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오래 전 크로산등이 미국서 시작된 “예수 세미나” 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다른 “예수알기“ 다 이미 한국에 는 조헌정목사등이 하는 초교파 ”예수살기“ 도 있다. 홍정수 교수가 하는 모든 수업과 세미나의 주제는 바로 “예수알기” 다.

홍정수교수는 진정으로 한국교회를 걱정한다. 저출산과 고형화 그리고 AI시대에 한국교회가 갈 방향을 잃고 신학교도 머물다 가는 학생들을 그져 학교 씨스탬에 뭍혀 돈받고 학점 이수로 전락한지 오래다. 또 현장 목회자들도 모든 것을 상대화 개인화하여 내게 문제 없으면 없는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실하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바로 세계기독교의 미래라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신학교와 교회의 간극과 괴리에 대하여 내놓는 생각은 이것이다. 신학교 교수들이 목회현장에서 사명과 생존의 사이에서 상념하는 기성 목회자들에 대하여 신학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고 그들을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감리교단의 교권주의자들로부터 출교와 면직을 받았지만 그 때 한국 교회의 현실을 받아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 한국분교 제 1회 졸업생들과 교수들 

한국교회와 신학의 화해을 위하여

김홍도목사는 한국 감리교단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교회로 만든 나를 신학교나 교수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느냐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김홍도목사 개인이 변학장과 홍교수를 면직 출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드린 감리교단 아니 한국교회의 현주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홍교수는 누구도 원망 않고 자신을 제도교회로부터 쫒겨난 것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역설이다.

그런 아픔과 고민 여정이 있었기에 예수에 대하여 더 깊이 상고하게 되었고 그 예수를 버린 한국교회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마음에서 예수꾼이 되자는 것이다. 지난 2월 감리교단의 제 2의 교권재판이라고 하는 이동환 목사가 동성애집회에서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감리교단 내 이를 지지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고 특히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것에 대한 집회와 항의가 있었다.

홍정수 교수가 면직 출교 당할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지만 감리교단은 여전히 교권주의자들에게 찍히면  그들을 표적화하여 감리교 장정에도 불가한 종교재판을 남용 중이라는 생각이다. 홍교수는 영국에서의 웨슬리가 창시한 감리교는 구라파의 30년 전쟁후 천주교 혹은 국교회로 부터 말살당한 인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대전제였다는 것이다. 이는 신앙과 신학의 상이성을 이유로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었는 데 한국 감리교는 이를 무시하는 교권의 만행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3년 감리교단안에서는 변선환 학장과 홍정수 교수에 대한 잘못된 교단의 종교재판 30년을 회고하며 그 의미를 새기는 공개 세미나가 있었다. 취지문을 보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 소위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지향했던 고(故) 변선환 교수(1927∼1995)가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고 출교당한 지 30년이 흐른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그의 제자들과 신학자들이 당시 사건과 그의 신학세계를 조명해보는 자리였다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 를 주제로 연 이번 학술대회는 변선환 교수의 제자들이 만든 ‘변선환아카이브’가 주최하고 ‘여해 강원용 재단’, 엄상현 목사 등이 후원했다. 농목, 새물결, 생명평화마당, 한기연, 크리스찬아카데미 등 30개 단체가 공동주관자로 참여했다.

이 행사의 실무를 하는 변선환 아카이브 소장직을 맡은 김정숙교수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시작했다.

1992년 5월 감리교 서울연회의 종교재판위원회가 감리교 목사이자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학장이셨던 변선환 교수를 교단과 학교에서 출교시킨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종교재판이란 그저 중세 유럽에서 교회권력이 저지른 부끄러운 기독교 역사의 유물로만 알고 있었던 당시의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은 중세도, 구한말 선교 초기도 아닌 20세기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일어난 초유의 종교재판 사태로 존경하는 학자이자 스승님을 잃었습니다.

종교재판이 있은지 30년, 그동안 심판자의 자리에 앉았던 감리교 목사님들 그리고 피고석의 자리에 앉아야만 했던 변선환 교수님, 종교재판에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이 이제 세상을 떠나시고 안 계시지만 저희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와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로 남아있습니다. 충분한 신학적 토론이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도 없이 마녀사냥처럼 몰아친 당시 교권의 종교재판은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덮고 지나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를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제 종교재판 30년, 이 자리를 통해 가슴 속에 묻어둔 질문들,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을 함께 묻고 대답하며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992년 5월 감리교 종교재판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는 왜 일어났는지, 그래서 무엇을 얻었으며 그 이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은 어떠했는지 묻고자 합니다. 그리고 비록 3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변선환” 이름에 덧씌워진 오도된 사실을 바로 잡기를 원합니다. 이는 변선환의 이름은 단지 교권의 희생당한 과거의 한 인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미래도 계속되는 종교 권력의 모습을 드러내는 하나의 모형이 되기 때문이며 인류를 위한 성숙한 기독교의 상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료집 다운로드/https://drive.google.com/file/d/12moxuPUpjsr2GvBFNX4wtxeHlk-LUveT/view?usp=sharing

   
 

변선환 교수 종교재판 경과

작성: 최대광 목사(감신대 객원교수, 공덕교회 담임목사)

1. 1990년 11월 24일 가톨릭 문화원 주최, “기독교, 불교, 천주교 대화모임” 중, 변선환 교수 “불타와 그리스도” 논문 발표.

2. 1990년 12월 8일 「크리스챤신문」에서 “기독교 배타적 사고서 벗어나야”라는 제하에 변선환 교수의 “불타와 그리스도” 요약 게재.

3. 1991년 3월 18일 서울남연회에서, 박기창, 이성국, 김순태, 정동광 등 4명의 목사 이름으로 된 건의안 상정됐는데, 여기에는 변선환 교수가 “불타와 그리스도”에서 논했던 주장을 전체 논문의 맥락에서 논의 ‧ 이해한 것이 아니라, 6개 항으로 앞뒤 잘라내고 문제제기 함(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신학적 모색이 요청된다 … , 요단강 중심의 유대문화에서부터 다원주의를 상징하 는 태평양 한강 중심의 신학이 개발 되어야 한다 … ,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해야 한다 … , 기독교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는 신학적 천동설에 불과하다 … , 종교는 익명의 기독교이다 … , 예수 를 절대화 우상화시켜 다른 종교적 인물을 능가하는 일종의 제의 인물로 보려는 기독교 도그 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남연회는 총회실행위원회에 신학심의회를 두어 감리교 신학에 대해 심의할 것을 건의하기로 결의.

4. 1991년 10월 감리교 특별 총회, 회원수 1,385명 중 301명이 참석하여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신학의 입장은 감리교회 신앙과 교리에 위배되는 것임을 결의”.

5.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하는 변선환 목사와 홍정수 목사에 대하여 제재 조처 방안을 논의하매 해당 기관 재단이사회에 면직하도록 하는 총회 결의를 통보하고, 당해자 가 소속한 연회의 감독은 장정 199단 제8조에 의거하여 심사위원회에 회부케 하자는 리승수 목사의 동의와 임덕숙 장로의 재청을 찬성(찬성 299, 반대2), 가결하다.”

6. 1991년 11월 21일 힐튼호텔에서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 조직, 공동회장으로 김홍도 목사와 유상렬 장로 선출.

7. 1991년 12월 2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서울연회 감독과 심사위원 앞에서 “변선환과 홍정수 두 목사는 이단 사상을 교수하고, 통일교 거물급 인사를 5년 동안 비호, 졸업시켰다”고 고소.

8.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 조선일보 」 1992년 1월 26일자에 “변선환, 홍정수 교수의 이 단 사상 및 통일교 연루 사실을 폭로한다”라는 광고에서 “감신대 변선환 학장과 홍정수 교수 의 주장은 적그리스도 또는 사탄의 역사이므로 반드시 추방해야 하며, 만일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교단 분열도 불사할 것이다”라고 위협하며 여론 형성.

9. 1992년 2월 24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위원장 나정희, 서기 조창식, 위원 이동우) 이름으로 변선환, 홍정수 교수를 서울연회에 기소

10. 1992년 4월 23일 감신대 교수들(김득중, 선한용, 이기춘, 김재은, 박창건, 이원규, 방석종, 장종철, 김외식, 타이스, 이정배, 박종천, 서현석, 왕대일, 김영민, 이후정, 송순재) 기독교대 한감리회 서울연회재판위원회에 두 신학자의 재판이 신학적으로 신중히 결정되기를 촉구하 는 성명 발표.

11. 1992년 5월 7일 금란교회에서 열린 종교재판(재판위원 15명 중 13인이 감리교교리수호대 책위원회 위원으로 구성: 최홍석 목사, 고재영 목사, 민선규 목사, 홍형순 목사, 임흥빈 목사, 금성호 목사, 박을희 장로, 김재민 장로, 곽노흥 장로, 신원보 장로, 이강모 장로, 김재국 장 로, 박완혁 장로)에서 변선환, 홍정수 교수 출교 선고.

12. 1992년 5월 28일 “감리교단을 염려하는 기도 모임” 발족하여 재판 결과에 문제 제기하고, “한국 감리교회의 전통과 웨슬리의 정신을 완전히 망각한 신학의 획일성과 배타주의가 지 배”하였다고 하면서, “교리와 신학을 토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무시한 채 일부 임의단체의 힘이 교단 위에 군림하여 재판을 좌우하여 교단의 권위를 실추시켰음을 통탄”한다고 하면 서, 1992년 6월 1일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에 상고.

13. 그러나 1992년 10월 24일 감리회 총회에서 변선환, 홍정수 두 교수의 출교를 최종적으로 결정.

14. 1992년 10월 26일 감리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는 「 국민일보 」 광고란에 “기독교대한 감리회 변선환, 홍정수 사건의 종결에 즈음한 성명”에서, “감리회 교역자들과 감리회 소속 대학의 교수들과 신학생들은 위의 사건(변선환 교수, 홍정수 교수 출교)과 관련하여 문제된 신학을 지지 및 옹호하는 경우에는 위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됨을 명시”한다고 하면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신학생 등을 협박.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5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6
장로교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7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