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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관서지방 탐방기(3)3) KCC(Korea Christian center) 역사와 선교적인 비젼
유재무 목사(전 일본선교사)  |  oikos78@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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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27  0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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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 뉴스 관서지방 탐방기(3)

                      KCC의 역사와 선교적인 비젼 

                                                                                              유재무 목사(전 일본선교사)

 글 싣는 순서
1) 예장뉴스 간사이 여행
2) 關西(관사이) 지방 그리고 한인교회
3) KCC(Korea Christian center) 역사와 선교적인 비젼
4) 京都(쿄토) 동지사 대학과 쿄토 동산교회
5)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생성과 역사 그리고 과제
6) 한국교회의 일본선교와 선교사 및 문제점
7) 일본인과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1970년 10월, 제26회 재일대한 기독교회는 정기총회를 쿄토교회에서 개최 하면서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태도” 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는 당시 재일 한국인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회 진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1971년 10월의 제27회 정기총회가 오사카교회에서 열렸는데 이 총회기간 중인 10월 13일「재일한국기독교( KCC)회관」개관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73년 10월, 제29회 정기총회 자리에서는 이에 대한 「선교기본정책」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1974년 2월에는 “재일한국인센타의 전신인 「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 RAIK(Research-Action Institute for the Koreans in Japan)」를 설립하게 된다.              

  오사카의 일정 중 우리는 오사카교회 옆에 있는 KCC회관을 방문했다.  최근 새로 관장으로 취임을 한 김성원 장로(오사카교회)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전임 관장인 이청일 목사와 간사인 이상경 목사도 함께 했다. KCC는 관서지방과 서남지방(고꾸라교회) 에 위치해 있다.  재일한국인의 권리와 인권을 위하여 총회가 세운 유일한 사회선교 기관으로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KCC를 소개하는 김성원관장(중앙),  뒷모습 오른편 이청일 전관장, 왼편 이상경간사 

  김 관장은 재일동포 출신으로 청년 시절부터 한일교회 협의회 멤버로 필자와도 오랜지기이다.  RAIK 간사와 KCC 간사를 거쳐서 관장이 되었으니 재일동포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KCC가 '재일 한국인의 삶의 현장의 문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고 한다.  예을 들어 전에는 어린이 유치원도 일본인만 받고 한국인은 받아주지 않는 문제에서 부터 시작하여 시민이면 누구나 신청하여 살 수 있는 시영아파트 입주권도 외국인은 불가하다고 차별하는 것 등을   조사하여 행정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투쟁을 통하여 시정한 경험을 갖고 있다.  결과 국가가 교묘하게 나서서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차별을 하는 것들에 대항하여 오늘날처럼 재일동포들의 삶이 질의 개선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하여 총회가 직접적 나서서 투쟁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외면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이 기관을 통하여 재일한국인의 생활과 법률상의 지위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사회문제화 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사실 교단은 공 교회이니 사회문제에 대처하하거나 투쟁하는 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KCC는 액션그룹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일본의 선한 이웃들과 연대하며 차별 철폐와 외국인의 지위 향상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KCC가 있었기에 양심적인 일본교회 및 일본인들의 연대와 동참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네트웍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KCC가 출범하게 되는 1970년대 초는 일본이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의 특수를 통하여 경제적인 풍요와 성장을 구가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경제적인 풍요를 기반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이제 인권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은 선거권이나 배상문제가 남아 있지만 제도적인 차별은 상당히 해소 된 상태이다.  그리고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에 높아짐에 따라 유엔 규약이나 선진국 수준의 인권과 외국인 대우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KCC가 주관한 역대 국제협력의 날 '하나의 한국' 축제포스터 앞에서 (오른편 두번째가 이청일목사)

  김 관장이 직접 경험한 일로 관서지방회는 납골당을 가지고 있는데 1년에 한번은 날을 정하여 모든 교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추모한다.  그 때 어느 할머니가 유골 항아리를 들고 우는데 “ 네가 병원에 가지 못하여 죽었다” 라고 한탄 하면서 우는 것을 보면서 외국인으로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입지 못하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딸의 한을 지닌 선조들의 문제를 이론이 아니라 생활과 실제로써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990년 이후의 일본 사회는 경제적으로 성장의 정점을 찍고 생산성의 저하와 일본인 납치문제와 독도문제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외국인을 차별하는 풍조가 생겼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 교과서 근현대사 날조를 비롯해 특히 재일 조선인 민족학교에 대한 차별을 넘어 공격적인 언행들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리더들은 좀 더 개방적이고 세계와 인류에 대한 보편 타당한 정신과 가치를 가져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일본은 유독 국수주의와 극우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고 그 여세로  총리와 장관을 하는 풍토가 큰 문제이다.

  이렇게 이쿠노쿠에서는 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구세군이 모여서 외국인 등록과 지문날인 문제를 위하여 투쟁하여 승리한 경험이 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의 큐슈지역의 小倉교회(고꾸라)의 고 최창화 목사는 직접 입국시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실형을 살게 된다.  잘못된 법에 직접 도전하여 스스로 범법자가 됨으로써 저항을 한 것이다. 이 재판에 대하여 세계와 한국은 아주 큰 관심과 지지를 하였으며 재일 한국인 사회가 일치단결하여 함께 나서서 투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재일 대한기독교회와 교인들이 참여하여 지문 날인을 철폐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지금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매년 외국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국제협력의 날” 로 기념하며 축제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외국인 문제 하면 거의가 50% 이상은 한국인 문제였는데 이제는 남미와 기타 국가들의 이민자들이 당시 재일 동포들이 겪은 것보다는 덜하지만 똑같은 문제를 또 다시 겪고  있다.

  한국의 출입국관리법이나 산업연수생을 받아 들이는 법이나 제도들도 보면 거의가 일본이 이전에 차별에 이용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 노동자들을 이용적 가치면에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차별이나 사회문제에 대해서 되려 후퇴하거나 침체되어 있음을 본다.

  이제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 교인들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성장한 후 가정을 이루고 이주한 분들과 일본에 와서 결혼을 한 분이나 일본인들과 결혼하는 등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다.  지금은 그들의 3-4세가 중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화는 좋은 점도 있고 오히려 나쁜 점도 있을 수가 있다.  먼저 국적이 어떻든 모든 사람들을 받아 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런 개방성과 관용을 가져야 일본을 향해서도 똑 같은 요구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전에는 일본의 외국인 정책은 일본인이 되든가 아니면 영원한 외국인으로 남던지 선택의 문제였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귀화에 대하여 굉장히 부정적이였다. 그러나 이것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귀화” 한다는 것은 우리들 가운데 거부감이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오사카교회도 약 30%는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밝히지를 않는다.  아직은 일본의 풍토 자체가 귀화란 무엇인가 변절했다는 인식을 줌으로써 공개적으로 귀화한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재일대한기독교회의 목사나 사모 가운데서도 귀화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자신은 “귀화”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편, 재일대한기독교회는 대신측과 성결교회와 합동측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 교단들과 선교협약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것이다.  한국 NCCK에도 참가하고 있지 않은 가장 큰 보수적인 교단들과 협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성은 세계화에 대한 모델이 되고 있다.  재일 대한기독교회는 100년의 역사지만 마이너리티로써의 차별을 견디고 이겨낸 집단으로써 남다른 경험과 과제를 안고 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는 과거 남과 북의 대치상황에서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고 남과 북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주선도 하고 장소도 제공한 것을 큰 자랑과 경험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남북한의 긴장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이 때에 일본의 한인교회가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몇년 전 부터 일본선교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온누리 교회의 “러브 소나타”  행사를 통한 일본선교에 대한 열정은 긍정적이지만 그 결과에 대하여는 온누리교회의 지교회을 세우는 개교회 주의로 끝났다.  이는 결국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요란한 일본선교가 자기네 지교회를 세우는 일로 끝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극도의 개인주의적인 전도로 사회구성원과 역사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예을 들어 과거 일본사회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과 아픔에 대하여 투쟁하며 지금의 여건을 이뤄놓은 동포들의 지난한 삶과 여정에 대하여 좀 겸허하게 배우고 격려하기 보다는 자기네 교회 교세 확장이라는 이기적인 목표에 메몰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일회적으로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그것은 재일 동포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나 영향력으로 발현되지 못한다.  재일한국인으로의 정체성과 존재론적 고민을 하지 않은 채 오직 신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구하는 무책임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억압과 차별속에서 사는 재일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해야 할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과 변화를 주지 못한다. 
   
                                                                                    KCC회관 정문입구에서

金 成元 館長略歴
1951年  11月生
1972~ 79年   在日韓国人問題研究所(RAIK)幹事
1981年     KCC幹事就任
2004年 5月   大阪教会長老奨立
2012年 4月   KCC館長就任
2012年 4月~  外国人との共生をめざす関西キリスト教代表者会議事務局長
2012年 10月   イカイノ保育園園長兼任

李 清一 名誉館長略歴 
1942年  3月生
1971年 7月  KCC幹事就任
1983年 10月  KCC総幹事就任(1999年館長に名称変更)
1983年 6月  イカイノ保育園園長兼任
1985年~95年  アジアキリスト教協議会(CCA) 国際問題委員会・URM 委員
1985~ 12年  外登法問題と取り組む関西キリスト教代表者会議事務局長
1997~ 12年   日本キリスト教協議会都市農村宣教委員会(NCCJ-URM)委員長
2009年~   関西いのちの電話理事長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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