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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주일이 삼위일체주일입니다유경재 목사의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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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5  1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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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주일이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

교회에서 좀처럼 삼위일체에 대한 설교를 들을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삼위일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신앙고백인데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깊이 살피지 않거나 잘 다루지 않습니다. 1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다루지 못하였지만 삼위일체가 왜 중요한지를 다루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을 앞두고 좀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 분이 한 하느님이라는 데서 흔히 발생하는 큰 오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다른 인격이십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며, 또한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십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각각의 신앙을 따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하느님의 존재양식입니다.

이런 하느님 이해에서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세 분이라는 말인데, 그것은 삼신론(三神論)이 아닌가라는 오해입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상호간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세 신(神)이라면 삼신론이 될 것이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부가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 안에 성령이 계시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인격이시면서도 하나의 목표인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시기에 삼신이 아닌 한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삼위일체론 설명에서 또 하나 오해하기 쉬운 것은, 성부가 가장 높고 그 다음 성자, 그리고 성령의 순서로 서열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버지 하느님이 더 높고 아들 하느님이 그보다 낮은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은 심부름꾼처럼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조에서 보는 대로 삼위 하느님은 동일한 신성과 인격을 가지신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아버지로부터 나신 독생자로서 빛으로 오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피조 된 것이 아니라 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이 신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신성과 인격을 지니신 하느님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령에 관한 고백을 보면, “우리는 주님이시고, 생명의 부여자이신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은 성부로부터 나오시고, 성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영광을 받으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령에 관한 항목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성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영광을 받으신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성과 인격을 가지신 하느님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 하느님 사이에 어떤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인격적 관계
또 한 가지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삼위 하느님은 인격적 관계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문균 교수의 “삼위일체 신관에서 본 기독교 인간이해”라는 논문에 보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특성을 인격적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리, 만물의 창조자인 하느님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계신 분으로서 어떤 다른 것에 기원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느님의 본성은 비관계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다른 인격들과의 관계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성부가 누구인지는 오직 성자와 성령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성자는 성부와 성령과의 관계에서, 성령은 성자와 성부와의 관계 속에서만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세 인격으로 계시기에 하느님이십니다. 관계 가운데 있지 않은 고독한 유일신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하느님은 사귐 가운데 있는 인격들의 신비로서 존재하는 분입니다. 사귐(koinonia)은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사귐 가운데 있는 인격체들은 행복․희망․고통․책임을 함께 하고 나눕니다. 사귐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삶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우선 내적으로 세 인격들 사이에 사랑의 교제가 아름답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와 삶은 인격(위격)들이 함께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사랑의 춤과 같습니다. 외적인 측면에서 삼위 하느님의 사귐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로 확대됩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사귐의 삶의 원천이요, 그 사귐을 유지시키는 바탕이요, 그 사귐의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바르게 세움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각각의 독립된 신성과 인격을 가지셨지만, 그들이 따로 따로 역사 하지 않고 창조와 구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하여 역할을 분담하시며, 이를 위해서 서로가 서로 안에 들어가 완전한 일치를 이루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어디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우리는 분명 개별적 인격을 가진 독립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 홀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드리면서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에게 이런 생명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인격을 갖추고 하느님의 역사와 이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자존심만을 고집하지 않고 기꺼이 그 역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기 속에 남을 받아드리기도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즉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7장 23절에서는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인간과 피조계 모두를 구원하여 “완전히 하나”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교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될 때 완전히 하나 되는 구원의 목표가 성취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인격적 사귐을 미리 맛보고 실현하는 생명공동체입니다. WCC ‘신앙과 직제’ 문서에서 교회의 사명을 바로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느님은 인격적인 하느님으로써, 그분의 삼위일체적인 삶이 모든 코이노니아의 원형이요 근거이다 … 교회의 독특한 사명은 … 이 코이노니아를 실천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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