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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저항유경재 목사의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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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1  20: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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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저항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

인간은 원래 자유인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바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옷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몸으로 살 수 있었고, 모든 자연은 인간의 친구였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었기에 생명의 기쁨만이 넘쳐흘렀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그들의 다정한 친구요 보호자로 그들은 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유인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자유의 동산에 사탄이 침입하므로 인간의 모든 자유는 예속과 제약과 억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때로부터 인간에게는 굴레가 씌워졌고 틀 속에 갇혀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자유의 상실은 하느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지배한 것은 예속과 굴종과 억압 등 모든 부자유의 대명사인 사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의 본질인 자유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자유를 찾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저항을 합니다. “우리는 악마의 지배와 권력과 이 시대를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하늘에 있는 허다한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에베소서 말씀이 바로 인간을 노예화 시키려는 모든 세력에 대한 저항이 우리의 사명임을 일깨웁니다.

성경의 역사는 바로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저항의 역사이며 그 승리의 역사입니다. 구원사의 표본이 된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복까지의 역사는 자유를 얻고자 얼마나 피나는 저항을 해야만 했나하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히브리 민족의 이집트 노예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혹독했습니다. 저들은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느님께 부르짖었고, 모세의 인도로 격렬한 투쟁 끝에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렇게 속박의 땅을 탈출하기는 하였지만 자유의 땅은 가깝고도 멀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오는 괴로움을 감당하기 힘들어했고 그래서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려고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없었던 탓으로 해서 광야에서 다 죽고 그 후손들만이 자유의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의 땅에 온 그들은 또 다시 권력과 지배의 상징인 왕국을 세움으로 스스로 권력의 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야훼 하느님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 지성소에 갇혀버리고 그 땅은 권력과 부자유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나타난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은 법궤 속에 갇힌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계셔서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 이집트에서 그들을 탈출시켜 자유하게 하신 그 하느님을 기억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두 세대에 걸친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어떤 틀 속에 들어갈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자유의 하느님이시며 자유케 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다시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막힌 신앙고백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두루마리 속에서 퇴색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유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그는 철저한 저항자였습니다. 그는 인간을 얽어매려는 모든 것에 저항하셨습니다. 특별히 그는 하느님을 율법의 두루마리 속에 가두어버린 사람들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크게 도전한 것은 모든 인간의 가장 큰 굴레인 죽음입니다. 결국 그는 승리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다시 자유의 회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도 인류의 역사는 저항으로 점철된 역사입니다. 1500년 간 이 예수를 장엄한 성당 속에 가두어 버리고 교황이라는 새로운 권력이 모든 사람을 틀 속에 가두어버리던 중세의 철문을 깨뜨리고 나온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롯하여, 신앙의 자유를 위해 새로운 대륙을 찾아 탈출한 청교도들의 역사와 모든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세계 여러 나라의 피나는 역사들 이러한 모든 역사는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세력과 투쟁하여 이룩한 역사입니다. 이제 하느님이 고귀하게 창조하신 인간을 억압하려는 악의 세력은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이러한 세력들과 맞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자유가 있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서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세력에 항거해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길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용감한 저항뿐이며 그렇지 않으면 가장 비천한 굴종밖에 없다”는 조지 워싱톤의 말은 그대로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진리입니다. 우리의 이런 신앙의 저항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리를 만들어 절대화 하고 하느님을 교회당 안에 가두려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어떤 틀에 끼워 거기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죽은 신앙입니다. 교회나 신앙은 하나의 씨앗과 같아서 언제나 그대로 있으면 썩거나 죽게 마련입니다. 씨앗은 땅에 뿌려져 싹을 내고 꽃피어 또 다른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처럼 교회도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한 행진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을 거부하는 모든 세력은 우리가 투쟁하여야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자랑스럽게도 프로테스탄트입니다. 저항하는 자란 뜻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우리는 언제나 저항자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 자랑스러운 이름에 합당한 생활이 언제나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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