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았다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나는 설교다
보시기에 좋았다유경재 목사의 10분 설교
유경재 목사  |  yukj2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07.20  18:44:15
트위터 페이스북

보시기에 좋았다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

창조의 이야기가 나오는 1장에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구절이 7번 나옵니다. 7은 완전수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이 이룩하시는 모든 역사는 완벽하고 선함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성경의 제일 처음 책인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그것이 완벽하고 선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역사가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고 또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씀은 ‘전적으로 완벽하다’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지으신 우주가 아름답다는 뜻보다는 하느님이 목적하신 바에 완전히 일치되고 조화 있게 창조되었음을 뜻합니다. 창조의 완전성, 역사의 완전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세계 역사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음을 뜻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과거 어떤 시점에서 평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지으신 세계의 전 역사 위에 내려진 평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당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부조리와 불합리와 불의로 가득 찬 세계, 음모와 흉계와 모략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역사와 피 비린내가 가실 사이 없이 터지고 있는 전쟁의 역사를 지녀온 세계가 어떻게 완벽한 것이요 선한 것일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세계는 실낙원 이전의 창조세계에만 국한되어 하신 말씀이지 오늘의 세계에 대하여는 상관이 없는 말씀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전히 그 말씀이 진실한 하느님의 말씀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다.

“하느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체를 설계하시고 계획하신 하느님께서 만물이 계획대로 창조되었음을 확인하신 후에 좋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사실상 창조된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느님 한 분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만이 그가 지으신 모든 세계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한 부분만을 보고 좋다 나쁘다고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창조 전반에 대하여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이 하느님의 평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왜 좋다고 하시는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때 지혜로운 길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멈추고 하느님의 판단과 그 뜻을 전폭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그의 지혜는 우리의 것과 비교할 수 없으며, 그의 생각과 판단은 신비하고 오묘하여 우리가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깊도다 하느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11:33)이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하느님의 선언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바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는 아름답고 완전하며 선하다는 대 전제 위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낙관적입니다. 지금 비록 인간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타락하고 더럽혀졌어도 하느님의 창조 섭리는 선하고 아름답고 완전하다는 것이 성경의 주장이요 우리의 신앙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곧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기도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완전하시며, 선하시며,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는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선하였다는 긍정적인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체화되어 우리에게 실현되므로 오늘 우리는 좋았다고 선언된 창조의 신비를 옛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은 실현되지 아니한 희망 속에 살았지만 오늘 우리는 실현된 희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천지창조에 동참하신 말씀으로써 빛과 생명으로 이 땅에 오시어 완전한 재창조의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죄와 죽음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된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행을 만나도, 고난을 당해도, 역경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이 선하게 귀결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신앙고백은 오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역사까지도 선한 것으로 받아드릴 것을 주저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의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신앙은 경박한 인생의 경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얻어진 신앙이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고백된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고난을 만날 때 성장하고 시련을 당할 때 더욱 확고해 집니다.

오늘 우리는 격동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점점 더 어두운 그림자가 덮이고 있는 지구 위에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적인 신앙입니다. 이 모든 고난의 역사에도 하느님은 여기에 아름답고 선한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계시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닐 때 우리는 오히려 이 혼돈과 어둠을 뚫고 비쳐오는 찬란한 빛을 보며 희망찬 미래의 꿈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이룩하시는 모든 역사를 옳다고 긍정할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오늘의 모든 불안과 절망을 떨쳐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입니다. 이 신앙이야말로 오늘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포할 수 있으며,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입니다.

 

[관련기사]

유경재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5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이정훈 교수는 누구인가?
9
장로교회의 당회원, 당회장의 역할(1)
10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 성동구 성덕정 17길-10, A동 202호   |   사무소 : 서울 종로구 대학로 3길 29, 100주년 610호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daum.net   |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재왕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