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현 목사의 종교개혁 496주년 강연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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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골 이야기(기획)REFO 500(1517-2017)
박동현 목사의 종교개혁 496주년 강연회개하는 개혁
박동현 목사  |  dhb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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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30  10: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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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하는 개혁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단 9:13 새번역에서)

박동현(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종교개혁 500주년(1517-2017)을 바라보는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을 모색해 보는 과정에서 지난 10월 27일(주) 포항제일교회(이상학 목사)에서 박동현 목사가 하신 " 회개하는 개혁" 으로 강의한 원고를 허락 받아서 올립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박동현 목사님과 포항제일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차  례
1. 들어가는 말
2. 회개하지 않는 백성의 죄를 고백하는 다니엘 (단 9:13)
3. 돌아오라! (렘 3:12, 14; 26:2-3; 슥 1:1-4)
4. 회개가 어려운 까닭 (눅 3:7-9; 렘 3:10; 8:4-5; 호 6:1-6)
5. 공동체의 죄 회개 (느 9:2; 에 9)
6. 회개하는 개혁의 네 가지 보기
1)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심을 전파함 (고후 4:5; 요 3:30)    2) 사람을 고귀하게 대함 (시 8:4-6; 창 1:26-27)
3) 약한 사람을 존중하고 잘 보듬음 (고전 12:22)   4) 기쁨을 돕는 동역자가 됨 (고후 1:24)
7.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처럼 귀한 모임에 부족한 사람을 불러주셔서 영광스럽습니다. 오늘 우리는 2013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즈음하여 하나님이 인류와 개인의 역사 가운데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의 갈 길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다가오는 목요일 10월 31일에 종교개혁은 496주년을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우리는 종교개혁의 역사나 개혁교회의 역사만 돌이켜보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이 있기 훨씬 이전에 생겨난 교회의 역사도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여 지난 200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오늘 우리 기독교회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반도에서 예수를 믿게 된 우리는 한국 개신교 128년의 역사도 되짚어봅니다. 포항제일교회에 속한 여러분은 포항제일교회 108년의 역사도 생각합니다. 각 가정에서는 집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예수를 믿어왔는지 돌이켜봅니다. 마지막으로 각자 자신이 살아온 신앙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이렇게 세계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와 포항제일교회와 내 가정과 나 자신의 지난 역사를 돌아본다고 할 때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일구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또한 피땀 흘려 믿음을 지키고 이어오신 어른들의 노고를 기억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의 선조들과 지난날의 나 자신이 보인 모자라는 모습, 아름답지 못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도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개혁을 말할 때는 마음이 아프지만 특히 바로 이 부족한 모습을 잘 살펴보고 앞으로는 그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미리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우리가 속한 한국 교회의 좋지 못한 모습을 바로잡는 것을 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제 이야기를 들으시다가, “왜 당신은 한국 교회의 좋은 점, 잘 하는 점은 말하지 않고 좋지 않은 점, 못 하는 점만 들추느냐?” 묻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문제점을 말씀드리는 것은 교회와 믿음의 선조들을 욕보이거나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어찌하든지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드는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느냐 하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저는 하나님과 여러분 앞에 참으로 죄송스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저부터 개혁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마치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사람마냥 높은 자리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꾸짖는 듯이 말씀드릴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야단맞아 마땅한 사람으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1981년 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신학교 강단에 처음으로 섰습니다.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낸 세월이 33년이 다 차 갑니다. 신학생 시절까지 치면 거의 4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서 교역자 후보생으로, 또 교역자로 일하면서 한국 교회와 사회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제 신학 교육 현장에서는 물러난 지 한 해가 넘었습니다만, 살아 있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주님의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개혁(改革)’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라고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도나 기구 따위가 낡아서 계속 그대로 쓰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낡아빠진 기독교를 새롭게 뜯어고침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를 새롭게 하려고 나선 루터나 다른 개혁자들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개혁은 회개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빗텐베르크 성 예배당 문에 마르틴 루터가 95항목으로 나누어 써 붙인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회개하라 … ’(마 4:17)고 우리 주님이시자 스승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신자의 전 생애가 회개이어야 함을 뜻하셨습니다.” 이미 이 첫 항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이 종교개혁은 회개에서 시작하고 회개로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시간의 제목을 “회개하는 개혁”이라고 정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죄 문제를 이 세상 그 어느 종교에서보다 더 진지하게 다룹니다. 죄 때문에 망할 사람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용서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루터 당시 교회는 로마의 베드로 성당 신축을 위해 헌금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루터는 이를 반대하여 나선 것입니다.   오늘 제가 “회개하는 개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릴 때, 어려운 신학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제 자신과 오늘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여러분과 함께 귀 기울여 듣는 마음으로 몇 군데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제대로 몰라서 잘못 말씀드리는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또 저와 달리 생각하실 것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들을 두고서는 이 시간 뒷부분에 함께 말씀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2. 회개하지 않는 백성의 죄를 고백하는 다니엘 (단 9:13)
다니엘 9장에 들어 있는 다니엘의 기도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억해 보십시다. 옛 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920년대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자 남북의 두 나라로 갈라집니다. 한 200년 뒤에 북쪽 나라가 아시리아에게 망하고 남쪽 나라 유다 왕국만 남습니다. 유다 왕국도 140년 쯤 지나 주전 587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망합니다. 다니엘 1장을 보면,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얼마 전에 바빌로니아로 사로잡혀 간 사람들 가운데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 9장 첫머리에서는 페르시아 임금 다리우스 1세 첫 해 곧 주전 521년에 다니엘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하며 금식 기도했다고 알려줍니다. 이때는 유다가 완전히 망하고도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때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는 유다를 멸망시킨 바빌로니아 대신에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던 다니엘은 페르시아에서도 그 자리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이 한 기도는 9장 4절 뒷부분부터 19절까지에 적혀 있습니다. 20절에서 다니엘은 스스로 자기가 기도한 내용을 간추려 말합니다. 다름 아니라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백성의 죄를 다니엘이 대신 아뢰고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다니엘은 지난날 이스라엘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이 한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거듭거듭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며 전 국토가 황폐해지는 무서운 재앙을 겪게 되었다고 아룁니다. 아울러 그래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사 간절히 빕니다.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 이 시간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두고 살펴볼 내용은 다니엘 9장 13절에 들어

있습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해 놓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모세의 율법’이라 하면 보통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더러 지키라고 알려주신 내용을 가리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따르면 복을 받는다는 약속과 아울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 친히 이런저런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말씀도 들어 있습니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이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 겪는 어려움은 바로 그런 말씀대로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인데, 그렇게 잘못을 저질러 벌 받아 어려움을 겪으면서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은 죄악을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으면 죄를 깨달아 같은 죄를 거듭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1993년에 처음 나왔다가 2001년에 개정된 새번역 성경에서 좀 더 똑똑히 드러납니다. 새번역으로 다니엘 9장 13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미쳤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죄의 길에서 돌아선다’로 옮긴 원어 표현이 바로 회개를 뜻합니다. 길을 잘못 가다가 그것이 잘못인 줄 알고 방향을 바꾸어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3. 돌아오라!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거듭거듭 권고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예레미야 3장 12절과 14절에서 하나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더러, 이미 100여 년 전에 망해버린 북왕국 백성을 향해서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고 선포하라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6장 2-3절에서는 아직 남왕국 유다가 망하기 전에 비슷한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3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그뿐만이 아닙니다. 스가랴 1장 1-4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가랴는 다니엘 9장 첫머리에도 나오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임금 제2년에, 외국 땅에 사로잡혀와 살고 있는 다니엘과는 달리 유다 본토에서 예언 활동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1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빌로니아에 사로잡혀갔던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유다 땅에 돌아온 것이 538년이었으니, 그러고도 18년의 세월이 흐른 때였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은 예언자 스가랴를 통해 백성에게 돌아오라는 권고를 따르지 않았던 조상들을 본받지 말고 지금 세대 사람들은 제발 꼭 좀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는 유다 백성 가운데 일부가 포로살이에서는 돌아왔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다니엘 9장 13절에서 다니엘이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라고 기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회개하지 않고 있는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회개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죄가 아닐까요? 이미 회개하지 않아 벌 받은 백성, 그런 백성에게 다시 한 번 회복의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는데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회개하지 않는 백성, 이런 백성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4. 회개가 어려운 까닭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앞서 기억했듯이 개혁은 회개에서 출발합니다. 회개로 이루어집니다. 회개는 개혁의 시작이자 과정이자 내용입니다. 루터가 말했듯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신 주님의 말씀은 예수 처음 믿을 때, 교회가 처음 섰을 때만 듣고 따를 말씀이 아닙니다. 숨 거둘 때까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간순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순종할 말씀입니다. 교회의 역사가 길면 길수록 더욱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따를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가 어려운 것은 어찐 까닭입니까? 믿는 햇수가 많아질수록, 교회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회개하기 힘들어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회개(悔改)’에 ‘회(悔)’ 곧 ‘뉘우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改)’ 곧 ‘고침’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저 눈물로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만이 회개가 아니라 잘못을 거듭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며칠 금식하고, 무슨 특별 집회를 하고 예배당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회개’가 끝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서 세례 요한도 자기에게 세례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하지 않았든가요? 누가복음 3장 7-9절을 읽어 보십시다.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입으로만 하는 회개는 참다운 회개일 수 없습니다. 이런 회개를 가리켜 예레미야 3장 10절에서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 회개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8장 4-5절에서 하나님은 예언자더러 하나님 백성에게 다음의 말씀을 전하라 하십니다.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돌아오는 것은 돌아오기를 거절하는 것,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돌아오는 회개는 호세아 6장 1-6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1-3절을 읽겠습니다.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이 석 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회개하는 말로 읽을 만합니다. 주전 8세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시리아에게 어려움을 겪습니다. 북쪽 국경 지방의 땅을 상당히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위기에 백성은 자기들끼리 하나님께 돌아가자, 하나님께 돌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곧 도와주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서도 “그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겠다니 참 반갑고 기쁘구나. 어서 오렴. 잘 왔어. 내가 너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야.” 말씀하실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뒤이어 4-6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이 백성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셨습니다.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려서 죄송스럽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그저 코앞에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만 돌아가는 체 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는 말이 여기에 전혀 들어 있지 않는데서도 드러납니다.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할 때, 용서는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받아야 할 벌을 전혀 받지 않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잘못을 저질러서 어그러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하나님이 다시 이어줌을 가리킵니다. 참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받아야 할 벌은 달게 받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잘못으로 상한 하나님의 마음이 풀릴까 고민합니다. 닥친 어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제대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회개는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값싼 회개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뉘우침은 결국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는 뉘우침이라 하기 힘듭니다. 제대로 뉘우쳤다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쓰기 마련이 아닐까요? 애쓰느라 몸부림치지만 약해서 다시 이전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고 거짓 회개라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말로만 잘못했다 하고 고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다시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쳐 놓고 제 뜻대로 살아가던 길로 더는 나아가지 않고 돌아서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 회개는 그저 “회개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내뱉고 어느 한 순간에 며칠 만에 끝내버릴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선 나, 내 가정, 내가 속한 교회, 단체, 교단,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정말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럽고 이웃에게 참으로 미안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용서받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했을 때 창피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전에 누리던 좋은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함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처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잘못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그것을 뽑아버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굳게 다짐하고 그리하지 않는 한 회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회개는 한 순간에 후딱 해치워버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때로는 자기 자신의 못된 마음, 오래된 나쁜 버릇과 싸우느라 몸부림칩니다. 때로는 바깥의 불의한 세력과 끈질기게 싸우느라 피눈물을 흘립니다. 그리하면서 그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마침내 새로운 삶, 달라진 삶을 이루어내는 것이 참 회개입니다.   그래서인지 회개를 말로만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전을 잘못을 아무 거리낌 없이 되풀이합니다. 요즘에는 입으로 하는 회개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누가 보아도 분명한 잘못도 모른 체 합니다. 잡아뗍니다. 구차하게 변명합니다. 온갖 구실을 붙여 빠져나갑니다. 내 잘못을 일러주는 사람을 오히려 몹쓸 사람으로 만들어 억누르고 내쫓고 없애버립니다. 이미 옛 이스라엘에 그런 권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찬송 “어서 돌아오라”(527장)를 함께 부른 뒤에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1.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보다 넓고 넓어 
2.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우리 주는 날마다 기-다리신다오  밤-다 문 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나간 자식 돌아오기만 밤새 기다리신다오
3.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채찍 맞아 아파도 주-님의 손으로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5. 공동체의 죄 회개
참된 회개에는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들어갑니다. 바로 이 때문에도 제대로 회개하기가 힘듭니다. 다니엘은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고백했습니다. 느헤미야 9장 2절을 보면, 포로살이에서 돌아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수리한 유다 사람들이 성회로 모여 금식하며 기도할 때도 자신들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허물도 자백했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죄도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중요한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이 개인의 문제인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하나님 백성 전체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다윗과 욥의 경우에서 개인이 회개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구약의 대부분, 특히 예언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에스라 9장에서 에스라가 회개한 것도 에스라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유다 백성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도 개인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부족하여 저지른 잘못, 지난 128년을 통틀어 우리 한국교회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독일 교회가 범죄의 고백문을 정하여 1945년 10월 18/19일에 발표한 사실을 기억해 볼 만합니다. 슈투트가르트(Stuttgart) 범죄 고백문이 그것인데, 이 고백문을 발표하는 일을 두고 독일 교회 내부에서조차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범죄 고백문을 발표함으로써 독일 교회는 세계 교회와 새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부분을 풀어 옮겨 읽어 드리겠습니다.  “ ··· 바로 우리를 통하여 숱한 민족들과 나라에 끝없는 괴로움이 닥쳤음을 우리는 큰 아픔을 느끼면서 인정합니다. ··· 나치 폭력정부에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난 잘못된 영을 거슬러 지난 여러 해 동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워왔습니다만, 더 용감히 고백하지 못하고, 더 신실히 기도하지 못하고, 더 기쁘게 믿지 못하고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를 고발합니다. ··· ”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 가운데 하나로 부흥사경회가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한 해에 한 번이나 여러 해에 한 번 부흥사경회를 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훌륭한 강사님이 오셔서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하시고, 참석자는 한결같이 열심히 찬송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 전체의 모습은 거의 달라지지 않고, 한국교회의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은 여전합니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는 결국 구약성경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신앙의 공동체성을 우리 한국교회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겠습니까? 그저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종교개혁 496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그 뜻을 새기고 있는 우리 각자 먼저 자신의 죄부터 살펴 고백하고 회개함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은 각자가 속한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인 만큼 그 신앙 공동체 전체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서도 가슴 아파하며 그 죄를 고백하며 그 잘못을 고쳐나가는 일에도 힘써야 합니다.   우선 내 가정이 예수를 믿은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못한 것이 없는지도 돌이켜 보면 좋습니다. “나는 오대째, 사대째, 삼대째 예수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어, 우리 친가도 외가도 모두 교역자 집안이야, 우리 집안에 목사, 장로, 권사가 몇 명이야!” 라고 뽐내기만 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랜 전통의 기독교 집안에서 그동안 혹시라도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없는지를 조용히 돌이켜 보고 그런 일이 생각나면 깊이 뉘우치고 고침이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집안에 신앙의 전통이 오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지만 우리는 제대로 그 은혜에 응답하지 못했지. 정말 하나님께 죄송스럽고 사람 앞에 부끄러워.”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역사가 오래되고 교세가 대단하다고 자랑만 할 일이 아닙니다. 그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렇게 교세가 커지는 동안 이 교회가 하나님께 잘못한 적이 없었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고 잘못이 생각나면 온 교우들이 깊이 뉘우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를 빌며 바로잡아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는 지난 128년 동안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우리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비롯하여 하나님과 겨레 앞에서 믿음으로 당당히 살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진심으로 이 죄를 공개적으로 제대로 인정하고 겨레 앞에 용서를 빌었습니까? 매우 안타깝게도 이제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한 번도 제대로 그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참으로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한 교회로서 더 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 않는 것입니까? 힘센 나라에 빌붙어 자신들만의 안전과 번영을 꾀하는 못된 버릇을 버린 것입니까?    해방 이후 기독교 정치인들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를 때 알게 모르게 그에 협력한 죄, 권력층의 위협이 두려워 불의 앞에 입을 다물었던 연약함, 이런 죄들을 교회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도 용서를 빈 적도 없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화해와 통일을 위해 힘써야 하는 사회에서 교회가 앞장서서 대립하고 분열한 죄는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할까요? 경제와 번영과 성공과 출세를 하나님보다 앞세운 잘못은 또 어떻습니까? 농어산촌교회와 지역사회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우리 도시교회의 부족함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자 교역자들이나 여자 평신도 지도자들의 수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여자를 그저 남자의 종처럼 부려먹기만 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습니까?

우리 한국교회가 회개할 죄를 두고 생각할 때 이는 그 누구보다도 저를 비롯한 교역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잘못은 교역자들이 앞장서서 저지른 것들입니다. 대단히 가슴 아픈 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죄를 지은 교역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 더는 회개하지 않는 교회가 된 것이 아닌가, 오늘 한국교회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가 바로 이 회개하지 않는 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렇지만 이 시간 아무래도 제 자신의 죄부터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연세가 아흔이신 제 신학교 은사 한 분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신학교의 문제요, 신학교의 문제는 신학 교수의 문제입니다. 한국 교회에 문제가 많다면, 이는 교역자들에게 문제가 많기 때문이고, 한국 교역자들에게 문제가 많다면, 이는 교수들이 신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6. 회개하는 개혁의 네 가지 보기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오늘 우리 자신을 비롯하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힘써 회개하면서 개혁할 것이 숱하지만 우선 급한 대로 네 가지만 간단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고린도후서 4장 5절을 읽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그동안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하면서 때로는 슬쩍슬쩍, 때로는 아예 대놓고 내 자랑, 내 가정 자랑, 내 교회 자랑, 내 교단 자랑, 우리나라 자랑하고 선전한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다시는 그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보잘것없는 나를, 우리를 귀하게 쓰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의 주님이심을 널리 알리는 데 더욱더 힘씀으로써 교회를 교회답게 개혁해 나가는 우리들이 되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예와 영광을 누리는 데 이제 더는 주님을 써먹지 말자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세례 요한은 외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수님이 흥하시려면, 우리는 쇠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요?  둘째, 시편 8편 4-6절을 읽겠습니다.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5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이 시편에서는 온 누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노래합니다. 이는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한 것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오늘 우리를 비롯하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사람을 우습게 본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때문에 존귀하게 여기도록 더욱더 힘쓰면 좋겠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하나님 때문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12장 22절을 읽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바울 선생님은 몸과 지체의 비유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여러모로 가르쳤습니다. 그 가운데서 약해 보이는 사람을 존중해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똑똑히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를 비롯하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각 가정, 직장, 교회, 사회,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살아온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약해 보이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잘 보듬고 지키고 돌보고 섬기는 데 더욱더 힘쓰는 교회로 달라지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가 힘센 사람이나 단체를 따라 움직이면, 세상 권력에 맛을 들이면, 더는 그리스도인이라, 교회라 하기 힘듭니다.

넷째, 고린도후서 1장 24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우들에게 주님처럼 굴 수는 없고, 각 그리스도인이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한 뒤에는 그들이 기쁨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동역자가 되기 바란다는 뜻을 이렇게 밝힌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는 어떤 훌륭한 지도자 아래에서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흐름이 드셉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좋은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좋은 협력자 되기에 힘쓰는 것이 더 좋습니다. 21세기는 훌륭한 리더(leader)보다 훌륭한 파트너(partner)가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지도력보다는 협력의 능력이, 리더십(leadership)보다는 파트너십(patnership)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좋은 지도자가 아닐까요?    마태복음 23장 10절에서는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도자가 되려하거나 지도자에게 기대려고만 한 잘못을 뉘우치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 아래 각 사람이 믿음에 굳게 서고 서로의 기쁨을 더하도록 돕는 동역자가 되도록 더욱더 힘쓰면 좋겠습니다. 이야말로 좋은 교회로 나아가는 개혁의 길이 될 것입니다.

7. 나오는 말
“아직도 우리는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 들어 있는 이 한 마디 고백을 오늘 우리 한국 교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교 100여 년 만에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는 한국교회를 향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교회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는 회개로 개혁을 시작하고 회개로 교회를 개혁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힘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잘 살펴 잘못된 데서 돌아서도록 하는 데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긴 시간 동안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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