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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10차 부산 총회 참관기
이원돈 목사 (부천 새롬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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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9  2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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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cc 10차 부산 총회 참관기

이원돈 목사 (부천 새롬 교회)
   
 

 1. wcc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이러한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용어는 헬라어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 oikumene)에서 나왔다. 오이쿠메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누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초대 교부 오리겐은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더 부가해서 오이쿠메네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류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이 있고 니케아 신조도 교회의 연합, 거룩, 보편성 및 사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국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고 이 국제 에큐메니칼 운동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에서 시작된 세계교회가 발전되어 지금 제 10차 wcc 세계대회가 2013년 한국 부산에서 열리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초대교회부터 기독교는 개교회주의가 아니라 이러한 공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이 있었다, 필자는 청년기에 기독교 청년운동을 하며 한국이 어려운 시절 세계 기독인들이 우리를 돕고 양심수와 기독 청년 학생들을 돕고 후원을 하는것을 보고 참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했던것은 당시 세계교회들이 청년등과 여성들과 평신도들에게 세계 기독교를 경험할수 있는 기회를 줄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것을 보고 이 기독교는 무엇인가 이 세상과는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 wcc 신학에서 ‘생명’을 발견하기까지

‘생명’이 기독교 선교와 신학의 중심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랜 일이 아니다. 서구 중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근간으로 등장한 제국주의와 현대산업사회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초래해 놓은 지구적 현상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낙관적인 것 만 같았던 인류역사의 발전은 불과 한 세기 남짓 만에 온 지구 위에 파멸에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다.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관심 또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19세기 세계적인 복음전도 운동은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가진 사회가 존재하며, 그러한 토양에 뿌리 내린 복음의 모습이 자기들이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세상 교회 사이의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서구 교회는 교회의 공통분모(교회의 일치)를 확인하고자 했다.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문명에 대한 책임의식을 전제로 하는 서구 교회는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다른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20세기 초반 서구 사회의 역사적 경험(특히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태동한 1948년 암스텔담 대회의 보고서의 마지막 장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1948년 암스테르담 이전의 기독교는 개인 영혼의 구원을 축으로 한 기독교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1948년에 세계교회협의회가 창립되면서 ‘책임사회’(ResponsibleSociety) 라는 이념이 제기되었고, 제3차 뉴델리 총회(1968)와 제4차 나이로비 총회 (1975)를 거치면서 세계교회들은 제3세계의 빈곤과 억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사회변혁의 가치들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밴쿠버(5차)와 캔버라(6차)와 하라레(7차) 총회를 거치면서는 이제 생명의 시각에서 신학과 선교를 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용어 중에 하나가 ‘변화,’ 즉 ‘사회적 변화’이다. 세계 교회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심은 제3세계 영역의 신학적 각성과 연계되어 더욱 고조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말에서 비롯해서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교회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영역이 대두되었다. 환경문제, 생태계 위기의 문제이다. 교회는 인간 사회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의 토대가 되는 지구 자체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자행되는 환경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정신사적 배후에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생명’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1년 캔버라 총회와 1992년의 JPIC국의 구조조정과 JPC(Justice, Peace and Creation)으로의 개편 속에서 "생명의 신학-정의, 평화, 창조 (Theology of Life-Justice, Peace, Creation)"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책임사회론은 그 대부분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반면, 새로운 창조적인 윤리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그 내용성이 미약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wcc의 생명 신학의 전개 과정을 연구할 때 좀더 세밀히 살펴보아야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정의와 생명이라는 주제의 갈등과 통합의 과정이다,

이미 나이로비는 “창조세계의 보전”을 “정의”와 “평화”와 맞물린 것으로 보는 1990년 서울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대회와 “지탱”(Sustainability)과 “개발”을 창조적 긴장 관계로 본 1992년 리우(Rio)의 “유엔지구정상”(the Earth Summit)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3. JPIC와 생명의 신학의 태동
20세기 가장 거대한 교회의 협력과 일치운동의 흐름인 에큐메니칼 운동이 1983년 카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6차 총회에서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JPIC)을 교회와 인류공동체의 가장 긴박한 과제로 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환경 문제는 다른 세계기구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마침내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리우 환경회의를 개최를 이끌어 낼 정도의 예언자적 사명을 세계교회협의회가 감당했다.

이것은 WCC가 밴쿠버 총회 이후 창조질서의 보존(Integrity of Creation)을 세계교회협의회가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의 핵심적인 과제의 하나로 노력한 결과를 반증하는 것이며 새로운 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요한 과제와 지평을 일구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생명의 신학이 탄생하였으며 생명의 신학은 정의 평화 창조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상호 매개할 뿐 아니라 교회의 전통과 해방 사이의 갈등을 "생명을 살리는 연대"속에서 새로운 지평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이로비 총회 이후 WCC가 JPSS를 최우선적인 프로그램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JPSS)의 건설을 위해 세계교회가 연대하자"는 WCC총무 필립 포터의 제안은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JPSS는 구체적인 프로그램화되지 못하고 구호적인 것에 그쳤고 각 부서들은 부서 이기주의적 경향 마저 보이면서 JPSS가 지향했던 통합적이고 상호 연관적인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4.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서구 신학 안에서의 사회 책임론의 부각
 

2. 여기서 지구촌 위기가 심화되면서 생명신학 태동의 두갈래 생명을 중시하는 신학과

     사회정의를 중시하는 신학의 갈등

 3. 사회책임론에서 시작하여 하나님 나라 선교(MISSIO DEI) 그리고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 및

   생명 평화의 신학의 탄생까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명과 정의 신학의 연결고리를 찿는 과정으로

   묘사될수 있을 것이다.

5, 결론적으로 지금 WCC 신학의 과제는 창조질서와 생명 생태 환경문제와 함께 사회정의의 문제를 연결시키는 생명신학으로서   지역 생명망 신학이 요청된다고 볼수 있을것 같다.

여기서 관건은 어떻게 정의(해방신학)와 생명(생태신학)이 각각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강조점과 힘을 약화시키지 않고 둘 사이의 견고한 연결을 꾀하느냐가 21세기 신학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것 같다. 창조질서와 생명 생태 환경문제와 함께 사회정의의 문제를 연결시키면서 우리는 생명과 정의 문제를 연결할수 있는 생명적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적 생명망짜기의 문제제기를 해볼수 있을것이다,

6. 지역 에큐메니즘(local ecumenism) 기초한 생명망(web of life) 신학 

이러한 상황에서 CCA(아시아기독교교회 협의회)에서 국장으로 있던 이홍정 박사는 이러한 서구중심의 생명신학과 제3세계 중심의 사회정의 신학의 갈등을 아시아 디아코니아의 비젼과 연결 통합 연결 하면서 예언자적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네트웍 구성을 제안한것은 특별히 비 서구권 아시아와 제 3세계 신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고 특별히 이러한 관점이 예장 통합측 교단에서 생명 살리기 10년에 이어 화해와 평화의 10년으로 이어지면서 이번에 wcc 세계 협의회 10차 총회를 주도적으로 치루게 된 것은 세계 생명신학계의 큰 의미가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예장 교단 사무국장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이홍정 목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서구중심의 생명신학과 제3세계 중심의 사회정의 신학의 갈등을 아시아 디아코니아의 비젼과 연결 통합 연결 하면서 예언자적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네트웍 구성을 제안한다.

그는 아시아 선교 디아코니아를 생명신학과 생명망 선교로 연결하면서 기초지역사회공동체의 생명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비전과 지구적 지역상호간 생명망 짜기 (global interlocal ecumenism)를 통해 생명망 신학으로 발전 시켜서 이러한 비젼으로 예장 통합측에서는 측의 생명살리기 운동 10년을 진행한 바 있고 이러한 세계 교회의 생명 신학의 흐름과 예장교단의 생명살리기 10년과 2010에 선언된 한국 기독교인 생명 평화 선언에 영향을 받아 부천의 새롬 교회에서는 교회의 27년의 역사를 지역과 아동(1986-1997), 가족과 마을(1997-2010), 생명과 협동(2010이후)으로 정리하며 지역 에큐메니즘(local ecumenism) 기초한 생명망(web of life) 목회를 실험 중에 있다.

6. wcc 10차 총회인 부산 총회의 특징 

6-1 평화열차(PEACE TRAIN) 

한국교회는 세계 기독교인의 올림픽이라고하는 2013 wcc 제 10차 세계 총회 부산에 유치하게 되었다,“유럽에서부터 중국이나 러시아를 거쳐 남북을 관통하는 열차를 타고 세계교회의 평화를 애호하는 사람들이 휴전선 넘어 부산까지 한반도 분단 현실을 체험하고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통일열차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6-2 Pre-assembly : 프리 어셈블리 : 사전행사 

wcc에는 청년과 여성과 장애인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세계 기독교를 경험할수 있는 기회를 줄려고 총회전 미리 모여서 자체 프로그램을 갖게하는 좋은 전통이 있는데 이번 부산 총회에서는 ‘평화 프리 어셈블리’라는 총회 전의 사전행사가 있는데, 평양에서 열릴 수 있도록 하였으나 결국 성사가 되지 않았고 청년과 청소년들이 참여한 임진각 평화 기행과 평화 콘서트가 있었다, 

6-3 마당행사 
   
 

8회 아프리카에서 열린 하라레 총회는 WCC 창립 50주년이 되는 희년 총회이었다. 아프리카는 그리스도인 인구가 집중된 곳이며, 총회는 에큐메니칼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 파다레(열린마당)을 열어놓았다. 제3세계 가난한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에 대해 ‘부채탕감운동’을 선언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공청회식 회무진행(Hearing)을 도입했다. 

남미 프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9차 총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해 아가페 과정(AGAPE Process: Alternative globalization addressing people and earth)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WCC는 특별히 아프리카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HIV/AIDS극복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어린이의 권리를 강조한 대회이었다. 

특별히 9차총회에서는 아프리카의 파다레(열린마당)에 이어 남미의 뮤티라오(Mutirao)를 총회의 개념으로 받아들여-모든 회원교회들과 에큐메니칼 기구들이 자기들의 선교적 과제들을 워크숍과 전시회를 통해 나타내는 박람회의 모임이 인상적 이었다.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제 10차 wcc 세계 기독인 대회는 우선 그 주제부터가 주목할 만하다, 생명 정의 평화가 총회의 주제로 결정된것은 바로 생명 정의 평화를 절실히 요구되는 바로 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이 반영된 주제로 환영할 만한 주제가 선정되었다, 

둘째로는 아프리카의 파다레(열린마당)와 남미의 뮤티라오(Mutirao)에 이어 한국대회는 마당이라는 개념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부산 총회때 마당이라는 개념이 부분이 아니라 총회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될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 속에 깊은 흥분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면 이번 부산 총회때 우리가 활용했으면 하는 우리 한국의 마당이란 무엇을 뜻하는 개념인가? 

첫째로. 마당은 열린 소통 구조 이다. 한국 사회에서 마당이란 우선 가족공동체와 마을과 지역사회과 만나는 열린 소통 공간이듯이 이 마당 공간에서 어떻게 가족과 교회와 마을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만날 수 있는가하는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마당 공간이 펼쳐져야 할줄로 믿는다. 

둘째로 한국의 마당은 여러 장과 마당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 마당은 한국의 역사속의 교회이야기 둘째마당은 한국 사회속에서 교회이야기 셋째마당은 교회와 마을과 지역사회와 시민사회가 하나로 만나는 이야기로 각 마당이 다층적으로 펼쳐치며 각 마당이 서로 연결 소통되며 이야기가 펼쳐나갈수 있다는 것이다,

 세째로 한국의 마당에는 판이 벌려지고 그 판에는 해학과 소통과 해방의 맛이 있다, 우리한국 말로 그야말로 판이 벌려져야 하는데 이 판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 재미는 해학이 있어 잘못된 세상 권세를 풍자하고 비웃으며 새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역동성이 있다. 

우리는 이번 wcc 마당에서 한국의 낡은 교회와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비웃음으로 새로운 교회와 사회의 모습에 대한 꿈과 희망을 노래할수 있어야 한다, 

네째로 한국의 마당의 절정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갑자가 구경꾼과 관중이 무대에 뛰어들기 시작하고 배우과 관객이 어깨동무하고 하나가 되어 대동의 세상을 이루는 그야말로 해방의 절정을 맛보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이 마당극에는 부름이 있고 그 부름에 대해 얼쑤로 화답하는 추임새가 있고 우리는 이 부름과 추임새를 하는 동안 여러 모순 속에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는 대동의 해방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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