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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가 갈 곳은 '사람들 사이'다치-화-생 (치유와 화해와 생명) 마을 만들기를 위하여(2)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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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5  0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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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가 갈 곳은 사람들 사이입니다!
(눅4: 38-44)

'치-화-생(치유와 화해와 생명) 마을 만들기'를 위하여(2)

최근 이화여대 백소영<이화여대 인문과학원>교수는 여러 강연과 글을 통해 한국교회에 “이제 교회가 갈곳은 사람들 사이 입니다!”라는 참으로 중요한 담론을 제안 하셨다, 그 내용은 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소통에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데, 백소영 교수는 그 원인을 나의 영역도 너의 영역도 아닌, ‘우리가 의미 있게 마주보는 순간 탄생하는 제3의 공간 ‘사이’를 만들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나’만을 주장하고 고집해서는 절대로 ‘사이’라는 놀라운 관계성의 공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영역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너에게로 다가갈 때, 너를 알아보아주려 따듯한 눈빛과 열린 귀를 준비할 때, 서로가 그리할 때 비로소 ‘사이’가 존재케 된다는 것이고, 나의 것도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닌 이 ‘사이’ 공간은 나를 그리고 너를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소영 교수는 우리 신앙인들은 소통의 능력의 함향을 위해 이중언어의 구사 능력을 함향해야 한다고 한다, 다시말해 ‘성벽 뒤의 신앙공동체의 언어(communal language)’를 성벽 위에서 중재를 위한 ‘공적’ 언어(public language)로 번역하는 무엇보다 ‘이중 언어’ 구사의 능력의 함양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끼리의 성안의 언어가 아니라 일상 사회생활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수 있는 성밖의 사이의 언어와 사회적 언어를 쓰기위해 우리의 신앙언어를 어떻게 사회화 시킬 것인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문밖 언어와 사이 공간 제 3의 공간이야기는 우리 신약 성서의 예수님의 선교사역과 바울의 선교사역에 모두 등장하는데 우선 예수님의 선교사역에서부터 출발해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누가 4;38)

우선 우리는 여기서 누가복음의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나야 한다, 이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의미 심장한 이야기이다, 즉 이제 예수님이 등장하자 선교의 무대가 회당에서 베드로 장모의 집 즉 마을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40절에 “저물 때 사람들이 몰려온” 이유는 이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대교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일의 범주에는 병자를 고치는 치료행위도 들어간다. 거룩하고 복된 날로 축복받은 안식일이 오히려 사람들을 얽매는 날이 된 것이다. 주님은 두 팔을 벌리고 언제든지 사람들을 치유하시려 하였지만 율법에 매인 사람들은 바리새인관 서기관들의 눈치가 보여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에 주님이 계신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깊이 드려다 보아야 할것은 회당과 베드로의 집이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회당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29). 그곳은 항상 불신과 음모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당은 귀신들린 자들이 있고 손마른 무기력한 사람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평가하고 안식일이라는 죄목으로 사람을 얽어매는 곳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교만과 허영이 있고 진리를 대적하려는 음모와 폭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주님은 사역을 제대로 하실 수 없으셨다.

   
 

그래서 지금 새로운 공동체가 베드로의 집을 중심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 베드로의 집앞은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였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문턱은 낮아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오갈 수 있었고 이곳에서는 생명과 진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교의 마을 신앙의 중심 공간인 회당이 아니라 회당밖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바로 예수님의 선교사역의 베이스 캠프가 되었다는 의미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는 장면은 마치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부활의 장면을 연상케 만든다.

1. 그것은 베드로의 장모가 바로 홧병으로 병 시중을 받던 여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받고 예수님과 교회와 병들고 아픈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로 성장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베드로 장모의 변화위에 초대 교회의 선교적 베이스 캠프가 세워진 것을 의미한다,

2. 오늘 우리의 본문은  베드로의 장모가 섬김을  받던 자에서 섬기는  자로 변화할 때 예수님의  복음선교의 베이스 캠프가 탄생 하였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와 함께

3. 이러한 선교가 회당이라는 종교공간에서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라는 근접 공간과 사이공간에서 활발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는 이제 우리의 목회와 선교가 교회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타 마을 협동조합까페나 마을 문화원이나 마을 방송국이나 청소년 심야식당등 근접 공간이나 제3의 공간에서 하는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0년전 예수님의 갈리리 선교는 회당 중심이 아니라 근접공간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베이스 캠프가 되면서 활발하게 열리는 것을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유럽의 최초의 선교가 당시 사회의 중심인 성문 안이나 제대로된 제도 회당 즉 시나고그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문밖 강가라는 소외와 차별의 주변에서 여성들의 위기적 삶의 공간에게로부터 이방인 속의 이방인 두아디라 여인인 루디아가 선택된 것이라는 말씀과 같이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누가가 기록한 바울의 유럽 선교 활동은 성문밖 강가에서 시작된 사실이 두드러지게 돋보인다,

결국 성문밖과 외로운 강가 그곳을 주도적을 찿아간 바울 일행은 거기 모여 있던 성적으로 인종적으로 계급적으로 차별받는 일군의 여성의 무리들을 만나 이 성문 밖에서 빌립보 교회를 세워 유럽의 선교적 중심 공간으로 세워 나갔다는 것 이고 이는 루디아란 여성의 정체의 핵심은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이방인 중에 빌립보 토착민이 아닌 동방의 두아디라라는 이방인 속의 이방인 두아디라 여인이 선택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  (누가 4;42)

이렇게 에수님의 신앙의 언어와 공간이 사이성과 사회성을 획득하자 갈릴리 일대에서 예수님과 그 일행의 치유역사가 활발히 일어나자 에수님은 두가지 일을 행하신다,

첫째는 새벽 미명에 하나님 앞으로 나가 하나님과 소통하며 힘을 재충전 하시고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하신다,

둘째로 새벽 기도로 영적 힘을 충전하신 예수님은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하시며 갈릴리 일대에서 낮에는 복음전도를 하시고 밤에서 각색병을 고치시자 마치 새벽이 동트면서 빛이 도래하자 어둠이 몰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갈릴리 마을의 모든 악령이 추방되고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이 고쳐지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새벽이 밝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임했던 것이다, 

이제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교회라는 공간을 넘어 우리의 지역사회의 도서관이나 마을의 협동조합 까페나 어르신 문화센타나 지역아동센타와 같은 마을의 근접공간 사이 공간으로 나가 “이제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근접공간에서 성문밖의 언어와 사이의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할때 우리 한국의 갈릴리와 같은 교회와 마을 곳곳 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이러한 놀라운 (치화생) 치유와 화해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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