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A 인도네시아 총회 개막(1)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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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 인도네시아 총회 개막(1)5월 18일~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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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5  2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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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 인도네시아 총회 개막(1)

   
 

인도네시아 바탑주에서 열리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 제14회 총회가 2015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하나님의 집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삶(Living Together in the Household of God)'을 주제로 개막되었다.  아시아 20개국 100개 교단과 17개 교회협의회(또는 기독교협의회)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는 1957년 창립 총회를 시작으로 5년마다 총회로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교단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구세군, 복음교회, 그리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는 에큐메니칼 기구이다.  개회이후 참가자들로 부터 간간히 페이스북를 통하여 소개도고 있는 데 전해진 소식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국가와 교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는 의미에서 몇차례 나눠서 소개한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이주해온 몽고족의 유민을 기원으로 하며, 기원전 1,000년경에 인도대륙에서 인도-아리안계의 유민도 들어와 인도네시아 열도에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7세기에 인도상인에 의해 전파된 힌두교와 불교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공존하였다. 인도네시아 역사를 기록한 양승훈은 "이슬람의 전파는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중의 하나이지만 가장 모호한 과정이다"고 하며, 최초의 물증이 1292년도에 북부수마트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서 이때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교도들은 수마트라 지역을 회교화하고, 이어서 15세기에는 자바섬 전지역을 정복하였다. 한편 기독교는 16, 17세기의 서구열강의 식민지 확장과 맞물려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게 되는데, 포르투칼, 스페인에 의하여 카톨릭이 들어오며,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개신교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4대 종교(이슬람교 87%, 기독교 10% 힌두교 2%, 불교 1%)를 라고 하지만 인도네시아 국민의 절대적 다수가 이슬람 교도이다. 10%면 기독교 인구가 사실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실은 정글에 사는 토착민들에게 갑자기 한 종교를 택하라는 정부의 강요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독교를 택한 애니미즘과 명목적인 크리스찬까지 모두 합친 숫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누구든 태어나면서부터 종교를 갖는 것이 의무로 되어 있고, 주민등록증에도 종교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법은 종교를 가질 권리는 있으나 이미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모든 체제와 법이 대다수인 이슬람 위주로 되어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사실상 많은 불이익을 당한다고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선교는 꾸준하고 열정적으로 그러나 비밀리에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이슬람들은 사뭇 긴장하여 사회 정치 다각적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은 자바인 45%, 수단인 14%, 마두르인 7.5%, 그리고 26%의 기타종족 이다. 이들은 섬의 원주민과 기원 전부터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이주민들이며 대부분의 이주민은 아시아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가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통칭되기 시작한 것은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1945년부터 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대체적으로 친근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자연적인 예술 감각도 뛰어나서 나무나, 금속, 흙, 돌 등을 소재로 하여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즐긴다. 또한 음악과 춤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주의해야 할 관습들 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들은 사람의 머리는 절대 만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아울러 왼손은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물건을 주고 받을 때나 악수를 할 때에는 오른 손을 사용해야 한다. 이슬람교는 위생을 중요시 하여 전염병에 걸리기 쉬운 돼지나 개를 부정한 동물로 취급한다. 식용으로 하는 동물의 도살방법에도 세심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종교적 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성립된 종교이기에 당시에는 남자의 수가 상당히 부족했으며, 이는 한 남자에 부인을 4명까지 허락하는 독특한 문화를 낳게 하였다.  이슬람교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라마단(Ramadan)인데, 이는 이슬람력의 9월 즉 금식 월을 일컫는 말이다. 이슬람 달력으로 아홉번째 달을 가리키는 라마단(Ramadan)은 금식을 통해 불우 이웃의 고통을 체험하고 자제력을 기르는 행사이다. 라마단 시작은 초생달이 나타나는 때를 기준으로 다음달 초생달을 볼 때까지 계속된다. 이 기간동안 성인 남녀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식사·음주·흡연·성행위를 모두 금해야 한다. 대신 해 뜨기 직전과 해진 후에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역사
인구 2억1천3백만명, 무슬림 90%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인구도 네번째로 많은 나라이며, 나라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적도에 길게 걸쳐있는, 수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고, 27개 주로 구분되어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인은 수백여 언어와 문화와 지역에 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여행할 때 다양한 음식, 음악, 춤,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벼 농사를 짖는 기름진 농지로부터 화산이 폭발하는 경사지, 한적인 해안가로부터 사람으로 북적이는 도시, 이렇듯 인도네시아의 복잡성은 그 누고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오랜 조상의 역사를 지닌 인도네시아는 수백년의 식민지 이후 1948년에 독립한 아직도 젊은 나라이다. 최근의 경제개발은 인도네시아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물가상승률이 최근에는 10%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1997년 아시아의 경제위기로 경제의 많은 부분이 심한 타격을 입었다. 매년 2백만명이 일자리로 나오지만 3%만이 직장을 찾고 있다. 따라서 실업자 문제가 사회 전반의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공무원의 한달 수입이 24,000원에 달하고 있으며, 노동자는 48,000원, 논 농사를 하는 농부는 6,120원에 달하고 있다.

최근 개정된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규정한 법과 주민 이주계획은 엄청난 인도네시아인의 연합을 가져오고 있으나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여러 지역에서는 이 법률이 지금까지 조용했던 지방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전체 인구의 40%가 자바섬, 자카르타, 수라바야 그리고 조기야카라타 같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위기 가운데 있는데, 최근에 교체된 대통령, 뇌물의혹, 학생들의 폭동, 소수 민족의 살해 등은 정치적인 불안정을 낳고 있다. 다양한 인종과 많은 문화를 지닌 인도네시아를 다스려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001년 4월에는 500여명의 마두라인이 Dayak인에 의해 비참하게 학살당했으며, 4여만명이 고향을 떠났다. 지난 1975년 이후Aceh 주의 독립주의 무슬림으로 인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6천명에 달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Maluku 섬에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의 충돌로 500여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50만명이 고향을 떠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 나라로 인도네시아는 선교사에게 도전을 주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그리스도인이 한명도 없이 주민의 100%가 무슬림인 섬과 마을이 수천 곳에 달한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대형교회가 세워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바하사(Bahasa)'는 원래 '언어'란 뜻이다. 따라서 'Bahasa Indonesia'는 '군도국의 언어', 즉 '인도네시아의 언어'라는 의미이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민족별로 350여 개의 언어가 공존하지만 공식적으로 Bahasa를 국어로서 채택하고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표기는 알파뱃으로 하고 있다.  이 언어는 인도네시아 내 다수의 종족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에도 통일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Bahasa를 듣고 있으면 영어와 같이 경쾌하고 부드러운 언어가 아니라는 정도는 한 번에 쉽게 알 수 있다. 이 언어는 차라리 좀 투박한 독일어에 가깝게 들리는데, 독어와 마찬가지로 거의 쓰인 그대로 읽히기 때문이다. 유럽 쪽의 언어들과 비교해 볼 때 문법도 상당히 간단한 편이다. 외국어로는 물론 영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정치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945년 독립과 함께 성립된 헌법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였으나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민협의회(MPR) 및 국회(DPR)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였다. 대통령(임기 5년)이 국가원수 겸 행정수반으로서 국민협의회(MPR)에서 선출되고 MPR에 대해 책임을 진다. 68년 6월 경제안정과 경제개발계획 추진을 목적으로 수하르토(Soeharto) 전대통령 하에 7차에 걸쳐 개발내각이 구성되었다가 98년 수하르토 전대통령이 사임하고 하비비(Habibie)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 과도정부를 구성하였다. 99년에는 6월에 치뤄진 총선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데 99년 10월 새 대통령인 와히드(Wahid)와 함께 새로운 내각이 수립되어 현재까지 자리 매김하고 있다.

경제
네덜란드 국민경제의 확대와 재편을 위해 식민지화 된 인도네시아는 독립 후에도 생산수단의 생산부문이나 소비물자의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산림자원은 수량이 풍부하여 목재산업이 활발하며 목재 원료는 주요 수출품 중의 하나이다. 무역은 70년대 이후 수출이 계속적으로 늘어 무역흑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은 원유·천연가스·고무·원목(原木)·커피 등이며 주요 수출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다. 또한 주요 수입품목은 기계류·화학제품·석유·비금속(非金屬)·식품류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농업과 광업에 기초를 둔 개발도상국형의 혼합 경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1998년 6,020억 달러의 국민총생산 중 농업이 18.8%를 차지하고 종사자수도 총취업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농업국이자 동시에 동남아시아 유일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다.

근래에는 천연가스도 주요 수출품으로 비중이 점차 높아져 생산시설의 확충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다도(多島)국이자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는 약 17,508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약 6,000여 개의 섬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총 767,777 제곱 마일(1,919,443제곱 킬로미터)의 면적에서 약 300여 종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2억 2400만의 인구가 제각기 약 350가지의 언어 및 방언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는 호주와 아시아 대륙 사이 약 3,198 마일(5,150km)에 걸쳐 위치하고 있으며 동시에 태평양과 적도의 인도해를 가르고 있다.

사회
인도네시아(Indonesia)라는 이름은 두 개의 그리스어로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indos'는 인도인을, 'nesos'는 섬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섬들은 크게 자바(Java), 수마트라(Sumatra), 칼리만탄(Kalimantan), 술라웨시 (Sulawesi) 그리고 이리안 자야(Irian Jaya) 등의 5개 지역이다. 수마트라(Sumatra)는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섬이다. 타 섬들과 비교해 볼 때 특히 경제, 정치, 전략적인 방면에서는 가장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마트라 섬은 정확하게 인도네시아 영토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부낏 바리산(Bukit Barisan)과 같은 산맥이 섬의 서부 전체를 다 차지하고 있다. 15개의 활화산을 포함한 93개의 화산 봉우리, 176종의 포유류, 194종의 파충류, 62종의 양서류, 그리고 150여 종의 조류 등이 이곳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수마트라 자체가 인도네시아 내에서 풍부한 야생동물로 가장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칼리만탄(Kalimantan) 섬은 말레이시아와의 접경지역으로서 그 일부가 인도네시아에 속한다. 섬의 대부분 지역이 아직도 서구인의 손이 미치지 않은 원시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섬을 찾는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편이고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도 덜 발달되었지만, 모험심 많고 도전적인 여행자들에게는 갈 곳, 볼 것이 많은 매력적인 섬이다. 이리안 자야는 뉴기니아 섬의 서쪽 절반 지역을 말한다. 이곳은 1969년에 정치적으로 인도네시아 영토로 병합되었다. 인도네시아 전체 영토의 22%에 달하는 비교적 넓은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1% 밖에 되지 않는 인구가 이곳에 살고 있다. 또한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방문객 수가 가장 적은 외딴 느낌의 섬이다. 수도가 위치해 있는 자바(Java) 섬은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호화로우며 많은 인구가 몰린 도시중의 하나이다. 1800년대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세워진 곳도 바로 이 섬이었으며, 20세기 초 무렵까지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전 지역을 통치 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음식, 건축 등을 포함한 문화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발견된다

종교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이주해온 몽고족의 유민을 기원으로 하며, 기원전 1,000년경에 인도대륙에서 인도-아리안계의 유민도 들어와 인도네시아 열도에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7세기에 인도상인에 의해 전파된 힌두교와 불교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에게 받아들여져서 공존하였다. 인도네시아 역사를 기록한 양승훈은 "이슬람의 전파는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중의 하나이지만 가장 모호한 과정이다"고 하며, 최초의 물증이 1292년도에 북부수마트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서 이때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회교도들은 수마트라 지역을 회교화하고, 이어서 15세기에는 자바섬 전지역을 정복하였다. 한편 기독교는 16, 17세기의 서구열강의 식민지 확장과 맞물려 인도네시아에 들어오게 되는데, 포르투칼, 스페인에 의하여 카톨릭이 들어오며,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개신교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오늘에는 기독교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다섯 종교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현재 전인구 (2억2천만명)중의 약 10%를 차지하는 대도약을 이루었으나 이는 일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 선교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전통 회교도와의 충돌이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겉으로는 회교에 열심히 없는 것 같은,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자신이 전통적인 회교도임을 당연시 하고 있고, 식민지배에 대한 항거에서 더욱 결속력을 갖게 하였다. 이들은 기독교를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위한 앞잡이 종교로 생각하였는데, 이점이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는 다른 점이다. 현 와히드 정부의 외무장관인 알위시합 (Alwi Shihab)은 자신이 속한 "무하마디야 회교종파"의 창설이 서구식민정부와 기독교를 대항하는 방어벽이라는 논문을 쓰면서 당시의 네델란드 정부의 편파적인 기독교 지원을 비판하고 있다.

둘째는 정령숭배자들의 집단개종이다. 네델란드 식민정부는 회교도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선교사들이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였지만, 정령숭배지역은 선교사들이 들어가도록 허락하였는데, 오늘날 수마트라 북부지역의 바딱족, 깔리만딴 지역, 동 인도네시아 지역이 이에 해당하며, 오늘날에도 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선교의 열매들이 있다. 독립이후에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정령숭배자 지역에서 선교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한가지 아이러니컬한 현상은 지난 50년 동안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자바인들에 대한 개신교 선교의 열매가 대단한 점이었다. 자바인들은 겉으로는 회교도이지만, 속에는 힌두교에 바탕을 둔 자바전통의 종교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격이 온순하여 급진 회교사상을 싫어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기독교에 대하여 개방적인 마음을 가지며, 많은 이들이 복음 앞에 헌신하고 있다. 한 침례교회 지도자는 자바족이 전부 회교도가 되기 전에 인도네시아는 회교국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셋째는 전통 문화와의 긴장과 화합이다. 인도네시아에는 400여 종족들이 많은 섬들에 흩어져 살고 있기에, 저마다 특이한 문화양식이 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는 어려움은 복음보다 문화를 더 앞세우는 현지인들을 어느 선까지 설득하는가에 있는데, 이는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수마트라 북부의 바딱족을 선교한 독일선교회의 로멘슨 목사는 거친 성격의 이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그들의 전통문화 (조상숭배)를 교회에서 하는 것을 금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그 족속 대부분이 기독교화 되었으나, 오늘날 복음의 본질이 변질된 족속 전통주의적 교회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바딱족은 회교도들이 금하는 돼지고기를 즐겨먹으며 심지어 개고기까지 즐겨먹는데, 이는 다른 기독교지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술라웨시 므나도지역의 미나하사족, 또라자 족, 말루꾸의 암본족, 이라안자야의 대부분의 족속들이 이에 해당된다. 전통문화는 기독교 복음과 혼합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회교도 문화와 대치되는 면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지역의 문화를 공부하는 것은 선교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면이다.

넷째는 일반역사에서 소개되지 않는 중요한 점인데,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네델란드 식민정부하에서 기독교선교가 일어나게 된 데에는 선교사들의 열정적인 복음증거에도 있었지만, 식민정부 관료중에 기독교 신앙에 투철한 평신도들의 협조 또한 무시할 수 없는데, 알리시합과 같은 회교도들이 이를 더 인정하고 있다. 이야말로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65년 공산주의 혁명실패로 인하여 많은 공산주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이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체험을 하게 된다. 아직도 자바섬 시골지역의 많은 교회들은 이때 거듭난 공산주의자들이 헌신적으로 개척한 교회들이며, 이들은 여전히 존경받는 교회지도자로 수고하고 있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세계최대의 회교인구를 지니면서도 회교국가가 되지 않았고, 세계선교역사에서 회교도로부터 늘 밀리기만 한 기독교가 이곳에서는 역으로 회교도 개종에 성공한 특별한 지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선교
최근 인도네시아 교회소식에 의하면, 현 와히드 정부하에서 기독교 교회가 방화 및 파괴 (부분적인 것 포함) 된 것이 모두 144 교회이며, 해방이후 모두 758 교회가 과격한 회교도주민들에 의하여 공격받아 파괴되었다. 공격을 하는 주 이유중의 하나는, "시기와 질투"이다. 과거 식민주의 정부에서 억눌렸던 회교도들은 해방이후에, 자신들의 신도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정책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단적인 예로서, 선교사들을 위한 단기거주 비자가 지난 10여년 전보다 휠씬 더 쉬워진 점이다. 과거에는 2-3년을 기다려야했는데, 최근에는 1-2개월 정도면 거주비자가 나온다. 

오늘에는 기독교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다섯 종교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현재 전인구 (2억2천만명)중의 약 10%를 차지하는 대도약을 이루었으나 일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교회소식에 의하면, 현 와히드 정부하에서 기독교 교회가 방화 및 파괴 (부분적인 것 포함) 된 것이 모두 144 교회이며, 해방이후 모두 758 교회가 과격한 회교도주민들에 의하여 공격받아 파괴되었다. 공격을 하는 주 이유중의 하나는, "시기와 질투"이다. 과거 식민주의 정부에서 억눌렸던 회교도들은 해방이후에, 자신들의 신도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도저히 참지 못하고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기독교에 대한 정책은 점차 완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단적인 예로서, 선교사들을 위한 단기거주 비자가 지난 10여년 전보다 휠씬 더 쉬워진 점이다. 과거에는 2-3년을 기다려야했는데, 최근에는 1-2개월 정도면 거주비자가 나온다.

   
PCK 한국 참가자들과 인니 선교사들  

최근 선교
지난 2년간의 경제위기는 교회들이 복음증거를 위하여 행하는 구제, 의료 등과 같은 사회 사업이 쉬워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급진회교도들이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방관한 것이 교회가 전도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일부지역에서 종교분쟁과 소요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점은 우려의 소지가 많지만, 이 또한 성령의 역사로 바라보아야 할 점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종교분쟁의 기독교 지역이 복음보다는 전통을 더 강조하거나 선교보다는 다른 일에 열심인 교회들이 있던 지역이었는데, 성령께서 이들을 고향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마치 사도행전 8장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인도네시아는 선교사역의 ABC가 있는 지역이다. A지역은 미전도족속 지역으로서 수마트라남부의 람뿡족 지역과 서부의 미낭족, 최북부 지역의 아쩨족, 자바섬 서부의 순다지역과 동부와 마두라섬의 마두라족 지역, 발리, 술라웨시 남부지역등이다. B지역은 기독교선교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지역으로서, 자바섬 중부지역과 대도시 지역이다. C지역은 기독교 지역으로서 북부수마트라, 북부 술라웨시, 동인도네시아 지역이다. 대부분의 현지 교회지도자와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면, 인도네시아는 제2의 추수기를 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나 선교사들이 믿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많은 사역을 하고 있지만, 400여 미전도 족속이나 과격한 회교도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하는 이는 부족한 점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가 해야할 일은 미전도 족속들을 입양하며 이들을 위하여 선교전략을 수립하면서 현지의 신학교나 선교훈련원과 같은 기관과 더불어 성숙한 지도자를 양육하며 이들과 더불어 전세계 회교권 선교의 멍에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파송 선교사들과 해외선교회, 한국교회가 긴밀한 협조와 기도의 짐을 지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참가한 각 교단 대표와 NCCK 총대들  

인도네시아의 에큐메니칼 운동
인도네시아는 일찍이 화란의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서구화되었는데 화란의 식민지 수탈기관인 동인도 회사의 본사가 있기도 했다. 이들은 전혜의 자원인 발리를 휴양지로 개발했다. 기독교 지도자로 현존하는 Dr 나바반은 에큐메니칼운동의 1세대로 오늘날 까지 PGI의 지도자로 있다. 그의 가문은 인도네시아 교회연합의 중요한 가문인데 한국의 강원용 목사와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유학을 다녀와서 그에 못지 않은 신학적 통찰과 정치력으로 국가적 지도자이다. WCC 의장을 지냈으면 CCA에도 막강한 영량력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교회협(PGI)가 막강한 이유는 회원교단 약 70여개중 약 30여개의 교단이 CCA의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있어 총회에서의 총대수로 압도하고 하고 있다.

군소교단도 많치만 총대 기본수를 있기에 그렇다. 그동안 CCA 총무로 사역을 한 Dr후타바랏 레방(에리)도 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신학자(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종교학 박사) 로 이번에 CCA 총무 임기를 바치고 PGI의 의장(상임)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CCA가 1957년에 창립되지만 창립 이전에 이미 아시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도네시아의 프랏팟이라는 섬에서 첫 모임을 갖고 EACC라는 조직체를 상정한다. 그후 CCA의 중요한 참여자로 지난 역사를 같이해왔다. 그리고 2000년 인도네시아의 토마혼에서 CCA 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번 총회 역시 인도네시아 교회협(PGI)가 창립 65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총회를 유치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교회협(PGI) 창립 65주년 기념 로고

이번 총회의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총무의 선인이었다. 이미 CCA에서 국장으로 일하다가 WCC 국장국장으로 일한바 있는 죠지 매튜 박사를 선임하였다. 총회전에 인선위원회가 회원국가들에게 공모하여 절차를 거쳐서 최종 결정을 하여 이번 총회에 보고를 한 것이다. http://cca.org.hk/home/2015/02/dr-mathews-george-chunakara-elected-general-secretary-of-cca/

   
CCA 스탶들 앉은 사람 좌로 부터 직전 총무 에리. 현 총무 매튜, 전 총무 프라윗

그동안 한국교회 PCK의 CCA 참여는 꾸준히 해왔다. 가깝게는 1990년대 장윤재 교수(이화여대)가 CCA공동의장(성직자, 평신도, 여성, 청년) 4인중 청년 의장에 피선되어 활동한바 있다. 또 김용복 박사는 민중신학과 관련된 영문도서를 출판하는 데 기여를 하였고 오재식 선생은 국장으로 박상증 목사와 안재웅 선생은 국장과 총무를 지내기도 했다. 그 외 박성국 목사가 국장으로 PCK는 문정은 목사가(FMU국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번에 PCK총대는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김경인 부총무(CWM) 장청 회장과 총무인 김소영이 참석하고 있다. 그 외 변창배 목사(기획국장) 과 한경균 목사(뉴질랜드 교회협 소속 선교사)가 뉴질랜드 교회의 총대로 참석중이며 CCA의 MEPP 국장을 지낸 허춘중 선교사(치앙마이) 도 참석을 하였다. 그 외의 한인들로는 재일대한기독교회의 박영자 목사(도요나카), 이원중 목사(동지사 대학원)가 참석하였다.

   
장청 참가자들과 역대 상임총무들 

총회전 사전대회에 청년들과 민중선교 분야가 모이기도 한다. 이번에 pck 총회는 인근의 아시아의 선교사들도 초청을 하였는데 인도네시아 현지 선교사들이 한국인 참가자들을 위한 교통과 숙소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 사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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