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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3  12: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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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사회 사상

손봉호 교수

1. 머리 말
오늘의 세속화된 문화는 경제적 생산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합리성외에는 아무 것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런 문화에서 어떤 종교적 신앙 혹은 신학사상이 사회관과 사회적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믿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상당할 정도로 그런 종교사상의 영향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거기다가 16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한 한 조용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죤 칼빈 (Jean Calvin)의 영향을 20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을 지배하는 인위적인 제도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역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다. 물론 모든 나라가 다 민주주의적이지도 않고 모든 사회가 다 자본주의를 채택한 것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인의 절대다수에 의하여 인간이 만들어 낸 정치제도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고, 자본주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록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가장 현실적인 선택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이데올로기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형성되는데 칼빈의 공헌과 영향은 적지 않다.

칼빈의 사상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란 제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그의 신학사상을 받아들인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통하여서도 직접적인 영향력도 행사한다 할 수 있다. 칼빈의 신학사상은 그의 스코트란드인 제자 죤 녹스 (John Knox)에 의하여 장로교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장로교는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교파가 되어 있다. 비록 칼빈의 사상이 순수하게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닐지라도, 한국 기독교에 대한 칼빈주의의 영향은 상당하며, 신학자, 목회자뿐만 아니라 장로교단 평신도들의 학문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표현되고 있다.

칼빈은 무엇보다도 우선 신학자였고 목회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그의 사상이 다른 신학사상보다 사회사상 연구와 사회적 활동에 더 큰 주목을 끌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의 신학사상 자체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그의 정치 및 경제관은 그의 신학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불가분의 관계 그 자체를 그의 신학사상이 유달리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회사상과 그의 사상의 사회적 영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신학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 칼빈의 신학사상
트뢸치는 그의 기렴비적인 저서 <기독교회의 사회이론>(1911)에서 칼빈 신학의 특성으로 豫定論, 개인주의, 그리고 일종의 神政으로서의 "聖會思想"을 지적하였다. 루터교가 지배적인 독일의 종교사학자로서 트뢸치는 주로 칼빈의 신학이 루터의 신학과 다른 점에 관심을 기울임으로 그와 같은 특징을 구별해 낸 것 같다. 루터와의 차이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예정론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특징도 첫 번째 특징인 예정론의 논리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역시 독일인이었던 사회학자 베버도 자본주의 형성에 대한 칼빈주의의 공헌을 논하면서 예정론에 주 관심을 기울인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예정론은 칼빈에 있어서 그 보다 더 핵심적인 교리인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의 논리적 귀결이라 함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루터가 신약성경과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주 관심을 기울였다면 칼빈은 구약성경과 창조자요 통치자인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사색한 것 같다. 그리고 루터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믿음에 강조 점을 두었다면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공의 (정의)에 강조 점을 두었다.

물론 이 대조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칼빈은 자신과 루터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칼빈 신학의 상당부분은 루터 신학의 논리적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 개혁자가 모두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권위로 수용하였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은혜를 얻는 수단은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은 동시에 인간의 전적인 무력과 상관관계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함으로 악의 노예가 되었고 구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을 선택할 자유조차도 상실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유명한 예정론은 바로 이런 전제의 결론이다.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해서 구원을 받을 만큼 의롭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고 의를 선택할 자유조차 상실했으므로 한 개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정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시간적으로 어떤 사람의 구원이 미리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사람의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나님에게는 시간의 전후가 문제가 아닐 것이므로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당할 사람을 '미리' 결정해 두었다 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악 외에 아무 선택의 자유가 없다면, 결과적으로 아무 책임도 묻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칼빈주의가 숙명론으로 오해받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종교적, 윤리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유달리 강조하는 칼빈의 가르침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부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 그 자체를 구별한 것 같다. 인간의 타락으로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했으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선택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고, 따라서 의지의 기능 그 자체가 파괴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본 것 같다. 그리고 정부 정책, 가사, 인문과학 및 공학 등에서는 사람이 상당할 정도의 자유와 이해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런 것도 역시 하나님의 영(靈)이 작용함으로 가능하다고 보았고, 그것도 하나의 하나님의 은혜이나, 정화시키는 작용이 아니라 타락의 작용을 억제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칼빈은 하나님이 결코 어떤 사람을 그의 의지에 역행해서 선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도 하였다. 그러므로 의지가 죄의 노예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완전히 해명해 주지는 못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의 신비이며, 모든 종교적 교리가 그러하듯 예정론은 하나의 이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종교적으로 실제적, 실천적,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베버는 바로 이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자본주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하나님 중심사상은 사람의 구원조차도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의 수단으로 간주하게 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개종이전의 인문주의자로서의 칼빈과 개종이후의 기독교 신학자로서의 칼빈의 근본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문예부흥에서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목적이라면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것의 주인이요 목적이며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수단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도 개인과 비슷한 의의를 가진 것으로 보았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구원의 도구요 은혜의 객관적인 수단인 동시에 공동체를 거룩하게 만들고 사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배하게 가져오는 도구요 통로의 역할을 감당할 임무를 맡았다. 비록 지상의 교회는 그 자체로 완전하게 거룩하게 되지는 못하지만 새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에 전혀 무지한 낡은 사회의 파괴적인 세력을 억제해야 할 뿐 아니라 나가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증거할 의무를 위임받았다. 즉 교회 그 자체, 가정, 국가, 경제생활, 인간관계, 사회전체를 하나님 말씀대로 재형성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3. 칼빈의 국가관
칼빈의 시대에는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칼빈 자신도 사람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란 사실에 대해서 절실하게 인식한 것 같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는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처럼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였고 그 테두리 안에서의 인간 상호관계였다. 우리는 다만 그의 국가관을 통하여 그의 사회관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1) 종교적 국가관
칼빈이 국가 혹은 정부에 대해서 그 시대의 다른 신학자들에 비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자신이 제네바시의 행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도 그의 신학사상과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루터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세속국가를 교회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시키는 '두 왕국' 이론을 견지하였다. 카톨릭교회의 정치개입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수도 있으나, 그의 개혁을 도와 준 세속 군주들과의 관계 때문에 불가피해진 타협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칼빈은 세속국가와 교회를 완전히 동일시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정치영역에서의 신자들의 임무에 대해서 매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도 하나님의 절대주권밑에 있고, 따라서 신자들은 교회의 일원일 뿐 아니라 국가의 국민이요, 교회에서의 임무 못지않게 정치영역에서 하나님에 대한 임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의 국가관은 그의 경제관과 함께 앞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어디까지나 사회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임무와 관계해서 제시되었고,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칼빈은 우선 모든 국가사회는 이상적인 상황에서의 교회처럼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런 이상을 땅위에서는 달성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제네바 시는 그의 노력으로 상당할 정도로 변화되기도 하였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서로 관용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2) 정부의 소극적, 적극적 임무
칼빈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종교를 보호하고,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과 함께 사회의 건전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국가는 "우상숭배... 신성모독..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적인 안정을 유지하여야 하고 각자의 재산이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필요하면 공적으로 보복하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할 힘을 가졌다고 까지 하였다. 국가는 인간의 부패에 대한 하나님의 대응이나, 국가의 권위는 인간의 부패에 근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기본목적은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것으로 보았다. 사람을 교육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일반적인 복지를 증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정치는 "기독교도들 사이에 공적인 종교형태가 존재하며 사람들 사이에 인간성이 존재하도록 해야" 하며 "우리의 행위를 인간사회에 적응시키고 우리의 습관을 사회정의에 맞도록 형성시키며, 서로 서로를 화해시키고 공공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3) 전쟁
정치문제에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고 국가행정에 깊이 개입한 칼빈은 대부분의 다른 신학자들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그는 우선 모든 전쟁을 죄악시하지 않았다. 통치자는 전쟁을 할 권리가 있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악이라고 생각하였다. 평소에 전쟁준비를 하고 무기를 생산해야 하며 이웃 통치자들과 방위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는 것이요, 통치자의 경건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루터만큼 전쟁을 단순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루터는 "사형, 고문, 잠수, 살상, 전투..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행위들"이리고 주장했다 한다. 그러나 칼빈은 전쟁의 잔인함과 비참함을 알았고,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가끔 강도나 짐승보다 더 악하게 행동함에 대해서 전율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제멋대로 살상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은 전쟁이 지나치게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않도록 계속 절제해야 하며,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매우 반대하였다.

4) 민주주의와 시민저항권
칼빈이 민주주의를 주장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비엘르는 비록 현대적인 민주주의는 아닐지라도 정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정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고, 정부의 형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칼빈의 주장을 인용한다. 그리고 맥네일은 구약 미가서 5:5에 대한 주석에서 왕위세습제는 자유와 조화될 수 없으며 질서가 있는 정부는 사람들의 일반투표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칼빈이 쓴 것을 인용한다. 그러나 월레이스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모든 사람이 모두 권위와 명예를 유지해야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은 지배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순종해야 한다는 칼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칼빈은 분명히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창조되었고 동일한 생존권을 가지고 있으며, 돈, 권위, 사회적 지위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주지 못하고, 노예의 생명을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정치제도에 대해서 칼빈은 "나는 귀족주의 혹은 귀족주의와 민주주의가 혼합된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왕들이 가장 정의롭고 옳은 것으로부터 벗어날 만큼 그들의 의지를 절제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를 알만한 예민함과 지혜를 타고 난 왕이 드물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악을 믿는 칼빈은 권력의 독점이 가져올 수 있는 오류를 막는 길이 민주주의란 사실을 의식하였고,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권력남용에 대한 견제란 사실을 인식한 것 같다.

칼빈은 오늘 우리가 이해하는 바 시민정항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가 모두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고, 심지어 악한 통치자에게도 굴복해야 한다고 하여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 점에서는 그도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시대에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생각들을 표현하였다.

우선 그는 모든 사람이 이웃을 도와야 하되 특히 비참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억울하게 압제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악한 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해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시민들의 권리에 대한 헌법적 보호의 중요성을 지적하였고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권좌를 파괴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자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까지 주장하였다.

다니엘이 다리우스왕의 명령을 거부한 사실과 관계해서 칼빈은 "지상의 왕들은 하나님의 힘에 반항하면 그들의 권력을 내려놓은 것이요, 인간의 하나로 계산될 수 조차도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순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머리에 침을 뱉어야 할 것이다" 라고 썼다 한다. 비록 단편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땅위의 모든 제도와 권위는 상대적이고, 하나님이 위임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제거될 수 있음을 시사함으로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시민불복종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할 수 있다.
칼빈이 국가의 권위를 이 정도로 상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이미 전통적 권위에 대하여 항거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이 천 여 년 간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까지 서구사회를 지배해 왔던 카톨릭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종교적 권위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국가적 권위가 절대적인 것으로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카톨릭의 부패와 권력남용 뿐만 아니라 그와 못지 않은 프랑스 왕권의 횡포와 개신교 탄압을 목격한 그에게 국가의 정치적 권위가 모두 신성하게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개인적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그의 신학적 입장이었다. 카톨릭 교회의 전통대신 성경의 가르침을 절대적 권위로 받아들인 것과 유사하게, 눈에 보이는 국가의 권위대신 하나님의 권위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가 종교적 국수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4. 칼빈의 경제관
칼빈의 사회사상가운데 후대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역시 그의 경제관이고, 여기서 그의 사회관이 가장 잘 나타난다.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의 견해 자체가 그 시대에서는 새로웠을 뿐 아니라 그들이 후세에 미친 영향도 다른 신학자나 사상가들보다 더 컸다. 사유재산, 이자, 상업, 노동과 임금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사유재산과 청지기 사상
루터 및 그 시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렸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요 공공질서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사람들간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재산소유가 분명하고 개인적이라야 한다" 그래서 남의 재산을 훔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범죄라고 생각하였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그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는데 있어서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이 정당하게 주신 것을 즐길 권리가 있고 자기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 지나친 절제는 불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사람의 사유재산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소유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불편하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소유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보다 좀 더 궁상하게 살지 말아야 할 의무는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굶도록 내 버려 두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의 것으로 자신의 부를 축척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재산을 허락한 것은 "가난한 사람의 종" (les ministeres de pauvres)이 되기 위함이고, "하나님께서 부자와 빈자로 같이 살게 한 것은 그들이 같이 만나서 교제하며 부자는 주고 빈자는 받도록 하게 함이다"고 하면서 이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라 하였다. 심지어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이 채무자가 되는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개개인이 가난한 자들의 상황을 일일이 알 수 없으므로 교회 집사들은 가정 방문을 통하여 그들의 사정을 알아서 공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가르쳤고, 그 일에 전념하는 사람을 두어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까지 하였다. 사유재산에 대한 이런 입장을 현대 기독교계에서는 "청지기 사상"이라 한다. 즉 인간에게 주어진 재물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은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임무를 위임받았을 뿐 자신을 위해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자기재산이라 하여 자기 향락을 위하여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너무 많은 재산은 그 자체로 위험하기 때문에 부의 축척에 절제가 필요하며, 욕심에 이끌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마음의 병"이라고 비판하였다.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 자본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사유재산이 이웃을 봉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점과 관계해서 트뢸취가 칼빈주의를 "기독교적 사회주의"라고 특징 지운 것은 재미있는 관찰이라 하겠다.

2) 돈 꾸어주기와 이자
칼빈의 경제관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돈을 꾸어주고 비는 것과 이자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칼빈시대 이전에는 이자를 받기 위하여 돈을 빌려주는 것을 정죄하였다. 아리스토텔레서와 스콜라철학에서는 돈은 그 자체를 '재생산하지 못하기'(barren)때문에 돈으로부터 이익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했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구약성경 (출애급기 22:25, 신명기 23:19)의 가르침에 따라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루터도 자신은 아무 수고나 위험부담도 없이 돈을 빌려줌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쳤다. 다만 돈을 꾸어준 사람이 그 때문에 손해를 보았거나 이익을 볼 기회를 잃었을 때만 이자를 허락했다. 이자를 받는 경우는 점점 늘어났고 정부들은 이율을 결정하는데 고심하였다.

칼빈은 이런 전통에 대하여 처음으로 다른 의견을 내어놓았다.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농업이 중심이었던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상업이 일어나는 16세기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즉 농업에는 자본이 필요 없으나, 상업에 있어서는 자본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자를 금하는 구약의 가르침은 이익을 남기려고 돈을 꾸는 상황이 아니고 생명유지를 위하여 빌려야 하는 상황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이자의 문제는 특정 성경구절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공평의 원칙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고 했다. 즉 돈을 빌려간사람은 그 돈으로 장사하여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을 빌려준 사람은 원금만 받는다는 것은 공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이자를 받는데 있어서 적어도 일곱 가지 예외규정을 두었다. 그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옳지 못하며, 가난한 자로부터 지나친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고, 담보가 없다하여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도 잘못이며, 돈을 빈 사람이 그 돈으로 얻은 이익과 이자가 충분하지 못할 때, 즉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를 위한 것일 때 이자를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해서 정죄한 것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 돈을 빌려주는 이자놀이였고, 법이 정한 이자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 모든 것은 당사자들에게와 사회전체에 이익이 될 때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아야 하며, 그 때 따라야 할 공평의 원칙은 황금률이라고 가르쳤다.

3) 재화의 생산, 교환, 임금
교회가 영적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은 교인들이 각각 다르게 가지고 있는 은사(恩賜- gift)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회란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자라려면 그 능력들이 공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서로 서로로부터 덕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배하는 힘은 사랑이다.

칼빈은 정치적, 사회적 공동체도 그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화와 봉사를 서로 나눌 수 있어야 건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교환은 돈의 흐름에 의하여 가능하므로, 돈이야말로 공동체의 피와 같고, 단순히 공리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정신적인 사명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 돈은 물이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가진 자로부터 갖지 못한 자에게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와 함께 그도 농업을 아주 고귀하게 생각했지만, 상업에 대해서 칼빈만큼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 사상가는 그 시대에 많지 않았다. 다만 투기, 독점, 시장조작 등 부정직한 상행위를 심하게 비판했고,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사회를 와해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며, 하나님과 인류의 연대성을 파괴하는 행위로 정죄하였다.

재화를 교환하려면 먼저 생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을 권했고, 열심히 일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도 유익하다고 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칼빈이 주도했던 제네바 시는 방직, 제약, 견직산업 등 각종 산업을 육성시키려 전문 기술자들을 외국에서 초청해 왔으며, 젊은이들에게 기술교육을 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단합해서 임금을 지나치게 올리거나 기업주들이 단합해서 임금을 동결시키는 것을 금했으며, 노사문제에는 법률가인 칼빈이 주로 조정역할을 감당했다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임금에 있어서 필요하면 법적 개입과 단체협약을 통한 노동계약제도를 옹호하였다. 기업가가 이익을 남기거나 노동자가 임금을 받는 것도 모두 자신들의 공헌 때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주인이 노동자의 임금을 속이거나 시장을 조작하여 근로자들의 생활수준 이하로 임금을 낮추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하였다.

5. 평가와 결론
1). 칼빈은 사회를 어느 정도 유기성을 가진 것으로 본 것은 사실이다. 특히 그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마치 몸의 기관처럼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그럴 때만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나, 사회도 이상적으로는 이상적인 교회의 연장으로 본 점에 있어서 그런 면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타락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어느 정도 자연적 이성이 남아 있으며, 그보다 더 하나님의 섭리가 사회를 조정하기 때문에 사회는 결코 우연하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후에 헤겔, 마르크스, 스펜서, 때야 드 샤르당등이 주장하고 기능주의나 체계이론가들이 전제하고 있는 범신론적 유기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칼빈은 창조자요 지배자인 하나님의 우주 통치를 그의 사상의 근본으로 삼고 하나님과 인간의 속성에서 의지를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모형에 의한 사회의 자율적 조정은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연적 이성과 하나님의 섭리가 보장하더라도 사회의 질서유지는 동시에 인간의 윤리적 책임으로 간주하였다. 부자는 마땅히 가난한 자를 돌보아야 하고, 시민은 마땅히 통치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질서유지 그 자체를 위해서나 그 질서를 통한 개개인의 생존 및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는 그 자체로 유기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재능은 이웃을 위하여 사용해야 하며,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들을 돌아봄으로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사회에 대한 책임은 같은 것이었다 "십계명의 두 째 부분을 지키지 않고 모든 부정직과 폭행을 그치지 않으면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할 수 없다. 이웃을 속이고 해롭게 하는 자는 하나님께 폭행을 가하는 자다."

2). 칼빈이 현대 자본주의 형성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결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가 부지런히 일해야 할 것, 사치와 낭비를 금한 것, 이자를 조건부로 허락한 것, 산업과 상업을 장려한 것 등은 자본주의 형성과 발전에 분명히 공헌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의 축척과 이자에 한계와 조건을 둔 것,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들의 임무를 강조한 것,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를 제도화하려 한 것, 그리고 모든 부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개인이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가르침 등은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칼빈의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자본주의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베버와 퇴니스도 현대 자본주의 형성이 바로 칼빈의 가르침으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베버는 칼빈 자신이 아니라 퓨리탄등 칼빈주의자들이 예정의 확신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세계 내적 금욕주의를 실행하여 자본축척을 이룩했다고 주장하였고, 퇴니스도 칼빈 자신이 아니라 칼빈의 영향을 받은 퓨리탄들이 상업과 치윤 추구를 이상화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칼빈의 사상가운데 자본주의적인 요소들은 인간의 약점과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어느 정도 타협한 결과라 한다면, 사회주의적 요소들은 주로 성경의 이상적인 가르침에 근거한 것들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당위적인 것은 신앙에 근거한 것이고 사실적인 것은 구체적인 인간사회의 현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문화가 세속화되고 종교가 힘을 상실한 오늘, 그의 사상가운데 사회주의적인 것은 그 힘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적인 것은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칼빈의 가르침과 그가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었던 제네바의 질서와 평화는 이제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세속화된 합리주의가 종교적 신앙의 자리에 앉아 힘겹게 군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3) 민주주의에 대한 칼빈의 공헌에는 역설적인 면이 있다. 우선 그 자신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했던 제네바 시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시민에 대한 엄격한 규율을 요구해서 폭정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부패를 누구보다도 더 강조한 칼빈의 사상이 인간의 기본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도움도 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으로 생겨난 장로교는 모든 교회정치제도가운데 가장 민주적이라 할 수 있고, 그의 사상을 받아들인 청교도 정신은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확립하는데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것은 비록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음을 강조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지만, 아무 인간도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할 본질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그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 될 수 없고 다만 모든 사람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부가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 위하여 주어진 것처럼 권력도 피지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즉 재물과 권력은 모두 수단적인 가치만 가지고 있고, 그 목적달성에 역행하여 사용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이 인간의 기본가치와 인간간의 평등을 보장해 주는 기초가 된 샘이다. 그래서 비엘러는 인간의 피조성과 전적부패를 누구보다 더 강조한 칼빈의 사상을 '사회적 인간주의' (l'humaisme sociale)라고 특징 지운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의 가치는 절대화되고 인간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신을 인간사회로부터 쫓아내는 것이 세속화요, 세속화가 바로 인간역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세속화의 결과로 모든 개인이 다 자유로워지고 인류전체가 과거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 않다. 신이 쫓겨 나간 보좌에 인간, 이데올로기, 물질과 쾌락이 등극했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 온 귀신은 쫓겨 나간 귀신보다 수도 많을 뿐 아니라 성질도 더 악한 것으로 그 모습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자기 혹은 자기네 욕망을 채우려는 인간의 이데올로기였다. 진정한 신은 인간의 자유와 인간성을 앗아가려는 다른 귀신들을 막아주는 유일한 성이란 사실을 칼빈은 선포하고 증명하려 하였다. 칼빈이 섬긴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졌으나 인간으로부터 지혜로운 사랑 이외에 아무 다른 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곧 인간성과 평등의 보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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