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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온 마을과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생명망으로 짜여가야 한다!!한국교회 이제 마을에서 마을교회로 다시 시작하자(2) =
이원돈 목사  |  부천 새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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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1  10: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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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 이제 마을에서 마을 교회로 다시 시작하자!! (2)

/ 이원돈 목사(부천새롬교회)

이러한 의미로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한국적 교회론을 써야하는 이 한국적 교회론의 마을 교회론의 출발점으로 이 마가 복음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막 2장 22)라는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1. 예수님 갈릴리 사역 작은 마을 사역이다. 

예수님의 최초의 선교 사역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대교 회당에서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볼수 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지역에서 베드로 장모의 집을 치유의 캠프로 삼으시면서 그 작은 마을의 각색 병 걸린 사람들을 고치셨는데 마가복음은 이 모습을 온동네가 베드로의 장모님 문 앞에 모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마가 1:33)

그런데 마가가 이 구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하다. “회당에서 나왔다”는 것은 기존 유대교의 거점인 회당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알패오의 아들 세리의 집에서 밥상공동체를 (마가 2:14)만드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가까운 다른 마을로 가자던 예수님(마가 1:38)의 모습은 요한복음의 물을 포도주로 만든 잔치공동체와 연결되면서 예수님이 갈릴리일대에서 일으키신 사역의 핵심은 바로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다”는 마을 선교 사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을에서 한 핵심적인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귀신 축출과 치료행위이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낸 사건에서 보듯이 귀신축출은 당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관습임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귀신축출 활동은 유대 지배 계층의 하나였던 율법 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예수의 귀신축출은 바로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으로서 귀신축출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교는 제의적 정결이라는 핵심 코드로 사회 조직 전체를 재조직화 했는데,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던 계층이 바로 율법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 해석을 통해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고, 이에 기반하여 유대 사회를 지배할 종교적/문화적/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볼 경우 예수의 귀신축출은 율법 학자들로 대변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투쟁을 상징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귀신축출 사역은 그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반대하는 세력이 누구이며, 그것이 초래할 구원이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즉 예수의 구제 활동은 인간 개인의 정신적 혹은 육체적 병듦 상태로부터의 해방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질환을 유발시킨 사회 구조적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만일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인간화를 초래하는 사회구조의 철폐 없이 정신적 위안이나 피안적 세계로의 도피만을 약속하는 하느님 나라란 거짓 해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에서 문둥병자와 중풍병자와 같은 고립 마비된 심령들을 치유하시고 세리와 죄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의 차별과 배제를 치유하시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불안증폭과 공포를 날려 버리시며 마을에서 하나님 나라의 치유와 잔치를 일으키시며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던 마을을 생명과 잔치의 생태계로 만드신 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을에서 쫒겨 나서도 호숫가와 들판과 산에서 천국 비유를 통해 전복적인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분이다!   이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마가복음 2장 22절 이전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가버나움 마을 사역에 집중되어 있다.

2. 그러므로 예수님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이 말씀은 회당에 갇힌 유대교를 향하여 이제 마을로 나와 베드로의 장모의 집을 온 동네가 모이는 치유의 중심으로 삼고 알패오의 아들 세리의 집을 밥상공동체로 삼으면서 이제 다른 마을로 가자는 선교적 마을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다시 마을로 내려오신 예수님이 당시 마을을 지배하고 있던 제국적 맘몬이즘에 저항하며 어떻게 마을을 협동적 공유사회로 만들어 갔는가의 그 구체적이 모습을 한번 그려보도록 하자 !!

   
 

그 첫째는 사귐과 나눔의 단계이다. 

제일 처음 갈릴리 지역에 들어가셔서 예수님이 하신일은 공동체가 파괴된 곳에 밥상공동체를 만드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별명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요, 즐겨 같이 먹고 마시는 자였다. 그러한 공동체 생활로 공동체가 파괴된 곳에 함께 먹고 마시고 나누는 식탁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대성을 만든 것이 예수의 갈릴리 선교의 첫 번째 전략이었다. 이러한 식탁공동체는 오병이어 사건과 같이 나누는 사건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고, 이러한 풍성한 기적은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자기의 몸을 나누는 성만찬으로 이어진다.  

둘째, 이러한 나눔과 사귐의 과정을 통해 이제 가난한 자들의 마음 속에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새로운 믿음이 탄생된다.

그들에게 새 믿음이 생기자 그들에게는 에파타!(열려라!), 달리다쿰!(소녀야 일어나라), 말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악령아 썩 나와라!,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는 예수의 질문에 바디매오가 눈이 보인다 하고, 벙어리가 말하고, 들을 귀 있는 자가 듣는다. 예수를 만난자마다 새로운 믿음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새롭게 눈뜨고, 듣고, 보고, 말하는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둘씩 갈릴리 전역에 급속도로 탄생하기 시작한다.  

셋째로, 눈 귀 입이 새로이 열린 갈릴리의 마을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눈 귀 입이 새로이 열린 믿음의 백성들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여인은 예수의 옷깃만 만져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다.(눅8:40-48)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은 모든 장벽에도 불구하고 지붕을 뚫고 예수에게 접근한다.(눅5:17-26) 어떤 창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바리사이와 식사하는 예수에게 나타나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는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에게 헬 조선과 같은 불안 공포를 조장하는 낡은 지옥 판을 새로운 생명의 길로 갈아 없는 새로운 룰과 판을 만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져 들어가야 한다는 이 실행될 수 없는 미신적 경쟁의 확률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데스다의 38년 된 환자의 치유 이야기가 바로 물이 동할 때 남보다 먼저 뛰어드는 무모한 경쟁을 포기하고 지금 너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협동과 자립의 그 길로 그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 가라는 명령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이 38년 된 운명론과 숙명론에 사로잡힌 병자를 치유한 치유의 핵심 고리가 바로 이 운명론과 숙명론의 고리를 이 38년 된 병자에서 깨뜨려 내는 것이다.  

이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낡은 지배의 판과 룰을 협동과 자립과 생명이라는 새로운 신앙의 상상력으로 갈아엎는 새로운 상상력과 규칙과 새로운 그림과 지도와 대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 운동과 초대교회는 국가가 경영하는 복지제도나 돈에 의지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단순하고 소박한 우정과 환대를 먹고 성장했다.이처럼 한국 교회는 이제 다시 마을로 내려온 예수를 만나기 시작해야 한다. 

마을 한복판에서 귀신을 내쫓고 치유하신 예수 고립을 뚫고 협동과 연대하신 예수 젊고 유쾌한 밥상공동체를 만드시면서 불안공포마케팅을 날려버린 춤의 왕 잔치꾼 예수를 이제 마을에서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방 마을이 있는 저편으로 건너가 데카폴리스의 거라사 지역과 수로보니게 지역의 광인과 여인을 만나는 길없는 경계선 곳곳에 새로운 길을 내며 다시 마을과 마을을 생명망으로 연결하는 생명의 길을 찾으시다. 

최종적으로는 다시 갈릴리 마을에서 만나자는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시대의 교회는 다시 마을에서 만나자는 이 시대의 부활의 음성을 전해야 하겠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믿음의 상상력으로 헬 로마 헬조선의 악몽에서 깨어 일어나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부활의 음성을 듣고 다시 갈릴리 마을로 가서 오병이어의 잔치를 베풀고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며 부활의 생명을 전하며 침몰하는 지역과 마을에 부활의 생명망을 짜서 이 좌절과 절망과 죽음의 맘몬적 권세를 이기고 다시 마을에서 만나자는 협동적 공유의 신앙으로 부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이처럼 이제 한국교회는 저 높은 교회당에서 내려와 마을 한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사귐을 통하여 함께 길을 가는 동무였으며 형제요 자매로 성장하면서 가난한 친구들 사이의 사귐을 통하여 이 세상 한가운데 동무들의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예수운동과 초대교회의 핵심적 복음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3.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 운동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러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바로 마을 단위와 같은  작은 단위로부터 협동과 자치의 생명 생태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는 지역과 마을의 생명망을 짜고 생명을 살리는 온 생명 마을 교회의 탄생으로부터 시작 되어야 할 것이다. 

온 생명 마을 교회는 오직 모이는 카리스마(은사)를 넘어 섬기고 나누고 참여하고 연대하며 지역과 마을에서는 생명을 살리고 생명망을 짜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은사가 마을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임을 깨닫는다. 이를 위해 온생명 마을 교회는 교회 중심적인 교회를 넘어 마을 중심적 교회, 성장 중심적 교회가 아니라 봉사 중심적 교회로 작지만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 지역사회에 학습 문화 복지 생태계를 만들어 지역과 마을의 생명을 살리고 영적 돌봄망을 통해 지역과 마을의 치유와 화해를 도모하는 하나님 나라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 교회의 새로운 목표는 치유와 화해의 온 마당(플랫홈)을 만드는 작지만 영향력 있는 온 생명 마을 교회가 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히 다니고 싶은 교회를 넘어 살고 싶은 마을을 지향하며 교회와 마을을 함께 살리기 위해 교회를 넘어 지역과 마을과 시민 사회로 흩어지는 온생명 마을 교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이제 우리 교회는 교회라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터나 지역 까페나 어르신 쉼터와 같은 마을의 근접공간과 사이 공간으로 나가야 할 때이고, 이러한 마을과 지역사회의 근접 공간을 통해 교회와 마을의 신나는 복음적 이야기(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선교적 모델이 필요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우리의 마을에서 전개해야할 신나는 복음적 이야기와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선교적 모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특별히 이러한 마을 교회를 구성할 때 마을의 작은교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 질터인데 그 이유는 작은 교회가 지역에서 기존 대형교회 생태계와는 다른 지역 생명망을 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을의 작은 교회가 ① 새로운 관계망을 짜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새로운 배치를 해내는② 작은 교회의 특이하고 주체적인 새로운 신학과 교회 스타일과 관계망을 창발할 수 있느냐 하는 한국의 작은 교회가 마을에서 새로운 생태계의 형성할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마을 교회를 지향하는 작은 교회은 교회당에 머물러 자폐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마을의 학습생태계로 나가야 한다. 이는 마을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 등을 잇는 마을을 평생학습 생태계로 만들어 마을 전체를 학습생태계로 마을 학교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작은 교회가 마을의 학습 생태계를 형성하려면 평생학습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평생학습 시대 미래 교육의 핵심은 학교와 교회가 아니라 마을이고 마을의 학습 생태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교육의 교회 안에 폐쇄 자폐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근접 공간 자체를 학습생태계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학교는 지역 사회 평생학습 생태계가 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마을 학교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는 복지생태계로 나가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교회라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터나 지역 까페나 어르신 쉼터와 같은 마을의 근접 공간 사이 공간으로 나가야 할 때이고 이러한 마을과 지역사회의 근접 공간을 통해 공부방, 도서관, 복지관, 주민자치센터, 교회를 잇는 복지교육생태계를 만들고 지역, 마을, 도시 중심의 복지, 교육, 문화 생태계를 구성하며 그것이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을을 복지생태계로 만드는 과정에서 마을은 화폐자본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협동하여 마을에 신뢰의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사회적 자본을 기초로 한 마을의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통해 복지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두 번째로 마을에 난 새로운 길이다.

   
"어제 약대동 마을카페 달토에 와플기계 들어왔습니다^^여러모로 새로운 일들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장사나 사업이 아니라 마을이란 공동의 삶터에서 어떻게든 좋은 경제, 문화, 사회체계로 역전해보려는 시도이지요~ 마음써 주시고 기도 바랍니다. 감사!! "(마을청년 이승훈)

세 번째는 마을을 문화생태계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문화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핵심적 도구는 바로 이야기이다. 마을에서 끊임없는 소통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만들고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마을의 잔치와 축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마을의 문화생태계이다

마지막으로 작은 마을 교회들은 이러한 마을의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를 상생의 돌봄망으로 짜들어가는 영적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 안의 신앙적 생태계와 교회 밖 마을 생태계를 지역심방의 개념으로 묶어 영적 돌봄망을 짜며 개인과 가족을 넘어서 지역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사회적 기도훈련과 사회적 심방을 강화하는 영적 돌봄망과 생명망으로 짜들어가는 신앙공동체의 영적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마을의 학습 복지 문화 생태계를 중심으로 서로 협동하고 소통하고 돌보고 상생하는 그런 온생명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교회와 마을이 함께 벌여나가는 하나님 나라운동 즉 온 마을 생명 공동체의 운동의 핵심적 가치일 것이다. 이러한 온 생명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우선 마을 주민 한사람 한사람이 학습 생태계의 씨알로 다시 일어나 화폐를 넘어 신용 믿음 신뢰 소통의 새로운 사회적 자본의 씨앗들로 다시 일어나야 할 때이다.  

또한 이러한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 마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마을마다 마을의 마당들이 활짝 펼쳐져 나가는 시대가 되어야 할 때 이다. 그런데 이처럼 한번 마을에 마당이 열리기 시작하면 그곳에는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토론과 학습모임이 시작되고 신용과 신뢰의 협동적 사회적 자본들로 생명들이 잉태되고 출산되는 사회적 자궁들과 생명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 헬 조선의 저주를 넘어 설수 있을 것이다.  

마을과 마을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자궁이 되고 사회적 자본이 되기 시작하며 서로 소통 협동 상생하기 시작할 때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엮어 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며 마을은 살아있는 생명의 축제의 장과 마당으로 변하기 시작할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마을의 시대가 오고 있는 징표가 될 것이다. 

   
 

이처럼 탄핵과 대통령 선거 국면에 한편으로는 광화문에 촛불 광장이 등장하고 그 촛불로 새 시대가 밝혀지는 이때에 또 다른 측면으로 마을에 마을 교회가 등장하고 있고 이 마을 교회가 마을의 마당을 형성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이 이러한 시대에 광장에 나가 하나님의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가난한 저항하는 교회가 될 뿐 아니라 지역과 마을에서 마을의 생명 마당을 만들어 그곳에서 마을 생명망을 짜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 교회를 세우고 생명망 목회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고백하여야 할 것 같다. 

이제 협동과 공유의 시대 우리는 예수님처럼 꼭 회당 안 그리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과만 어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처럼 오히려 회당 밖 마을 사람들과 같이 힘을 합쳐 함께 마을의 생태계를 만드는 협동과 공유의 시대를 살아야 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이 산업화 시대이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경쟁과 소유의 낡은 가치관을 버리고 협동과 공유의 “새 술은 새 부대”담으라는 새로운 생태계와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예수님의 진정한 매시지 일 것이다. 

촛불 광장과 마을의 마당이 열리는 시대, 광장의 시민들과 마을의 주민들이 새 시대를 여는 이러한 광장과 마을에 동참하고 참여하여서, 우리 교회와 마을에 새로운 생명의 학습 문화 복지 생태계가 등장하고, 온 교회와 마을이 생명을 살리는 생명망으로 짜여져 나가면서, 이 지옥과 같은 헬 조선의 시대가 생명을 살리는 온 생명 교회와 마을로 뒤덮어져 가는 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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