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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제주 4.3 평화기행 마쳐최형묵 목사의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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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7  17: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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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제주 4.3 평화기행 마쳐 

우리 근대사의 비극으로 무고한 양민의 학살로 그 상흔이 아직도 체 아물지 않은 체 70년을 맞아 처음으로 제주 4. 3사건을 돌아보고 추념하는 기독교의 평화기행이 지난 3월 14일부터 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이홍정 목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남재영 목사)가 주관하고 제주 NCC(회장 이상구 목사)와 총무인 김인주 목사 등이 지역에서 영접하고 주관한 사순절 평화 걷기 행사에 70여 명이 함께 했다.

   
 

그동안 제주 4.3은 제주도내의 의식있는 시민들과 희생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조사하고 연구하며 공론화된 바는 있으나 진보 기독교회마저 공식적으로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라는 소식이다. 제주 4.3사건 당시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엄연함에도 이렇게 공론화가 된 것은 지난 2014년으로 발발 66년이 되는 해였고 진상규명운동 55년 만에 비로소 국가적인 추념일로 법정화 되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인 4.3 사건에 바르게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기에 이후의 5.18 광주학살도 용인되고 이어진 것이다. 4.3은 이제야 비로소 선언적으로나마 어둠과 응어리진 마음에서 빛으로 입으로  "너무 늦게 찾아온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 분향하는 일행들 우측에서 2번째 최형묵 목사

민간 위주의 4.3 연구, 결실을 맺을 것인가?  
“제주 4.3 평화제단“ 이문교 선생은 지난 2016년 4.3일에 펴낸 “제주 4.3 바로알기” 소 책자에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는 말로 글을 맺는다. 보복이 아니라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다. 특히 이 4.3이 기독교와 무관치 않은 것은 당시 학살의 주역인 군대의 지휘관 대부분이 장로교회 교인들이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와 밀월관계의 대표격인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도 자경단인 서북청년단의 근거지였다는 데 무한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지금껏 진척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최근 제주도내의 목회자들도 자료연구와 조사를 하는 등 조만간에 기독교 차원의 백서와 보고서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과거로 다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해와 치유를 위한 노력인 것이다. 우리시대의 슬픈 과거는 정치 지도자나 직접적 가해를 한 개인들에게 물을 문제는 아니다.

우리 모두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한번 쯤은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의 출발은 피해자들에게 국가와 가해자들을 대표하는 기관들이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이고 화해이고 정의가 아닌가? 그런 정신의 작은 걸음이 바로 이번 4.3평화 기행의 목표이다. 이들은 4.3제단의 참배와 평화공원과 북촌 '너븐숭이 4.3 생존자들'의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이후 4.3과 서북청년회, 영락교회 등 당시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책임을 연구한 최태육 목사의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 이 행사의 대표자 중 하나인 최형묵 목사(천안 살림교회)의 소감을 아래 게재한다.  

한편 지난 12월 13일에는 국회에서 제주지역 민주당 의원들과 "재경 4.3희생자유족회"가 주최한 “국제인권법으로 본 제주4.3” 이라는 주제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미국 하와이대 백태웅 교수의 기조강연과 “한국사회과학연구회” 허상수 이사장과 경북대 채형복 교수의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올해 4.3사건 70주년을 맞아서 처음으로 서울에서 대규모 기념대회와 행사들이 예고되어 있다. 진보 기독교도 같은 시기에 행사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사건
이 사건은 해방 직후 이념적으로 살벌하던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우익에 의해 좌익의 척결이라는 이유로 일어난 대규모 양민학살을 말한다. 분단과 남한 내의 남조선로동당의 무장대와 미군정과 국군, 경찰 간의 충돌 과정과, 이승만 정권 이후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벌어진 토벌작전과정에서 무고한 제주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사건은 당시 4월 3일에 시작된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에서 무장대를 조직하여 국가시설에 대한 기습으로 시작되었지만 이 날만이 아니라 그 전후 1947년 3월 1일부터 한국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제주도 일대에서 벌어진 참혹한 학살로 보도연맹 학살사건과 더불어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다.

   
 

최형묵 목사의 참관기

‘제주4.3’은 해방이후 일그러진 우리 현대사 속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사건 가운데 최대규모의 사건으로서, 정부의 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수자만도 14,373명에 이르는 참혹한 반생명ㆍ반인권의 사건입니다. 당시 희생자 수는 실제로 25,000~3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규모는 당시 제주 인구 27만명 가운데 10%를 넘어서는 비율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해방직후 제주도의 특수한 상황, 그리고 미군정 주도하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시도가 그 배경이 되었습니다. 일제 말기 미군의 진주를 막기 위해 일본군은 제주도에 6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켜 전략적 기지로 삼았는데, 패전 후 그 군대가 철수하였고 대신에 외지에 나가 있던 제주도민 6만여 명이 귀환하면서 제주도에는 급격한 인구변동이 있었습니다. 해방직후 불안한 상황과 소요사태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지만, 급격한 인구변동과 동시에 실직난, 생필품 부족, 흉년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제주도에서의 불안정한 상황은 심각하였고, 그 분위기 가운데서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이 발생하여 민심이 악화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무자비한 진압작전이 펼쳐졌고, 결국 1948년 4월 3일 제주도민은 자구적 차원에서 본격적인 항쟁을 벌이면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항쟁을 남로당의 소행으로 간주한 미군정은 군경을 동원해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였고, 그로부터 1954년 9월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여 동안 비극적인 사태는 지속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단순히 한국의 고립된 한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지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사적 차원에서 막 시작된 냉전체제의 비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2차 대전 이후 미군의 지휘 아래 자행된 동아시아 민중학살의 ‘원점’이요, ‘원형’이라고 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냉전체제가 형성되는 바로 그 기점에, 바로 그 체제에 저항했던 사람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민중학살의 ‘원점’이요 ‘원형’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공포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대통령이 나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절차였으며, 어떠한 경우라도 무고한 생명이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천명이었습니다.”

<4.3평화기행단 대표 기도문>

“오늘 우리는 평화의 섬 제주에 왔습니다. 평화의 섬, 그 이름만큼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사는 사람들 또한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을 평화의 섬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기억합니다. 그 사건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저 천진난만하게 이 땅을 평화의 섬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48년 4월 3일, 아니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절규하며 쓰러져갔던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독립된 자주국가 안에서 평화롭게 삶을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비극을 초래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외세의 지배를 물리치고 하나된 조국 안에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당당한 외침이었을 뿐입니다. 마땅한 외침이었습니다. 비극은 그 외침을 두려워하는 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막 시작된 냉전체제의 당사자인 미국과 그 체제에 편승하여 분단국가 안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 그 외침을 두려워하였고, 마침내 무자비한 폭력으로 그 당당한 목소리를 틀어막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숱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 처참한 비극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온전히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그 비극의 사건을 기억하고자 하는 기념일의 제정으로, 한 차례의 사과로 그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온전히 치유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체제와 이념의 대결이 낳은 참극을 낡은 시대의 유물로 돌리고 진정한 평화를 이룰 때, 한라에서 백두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평화의 바람이 넘실거릴 때, 그 가운데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정겨운 살붙이와 이웃들, 그들과 더불어 사소한 일상의 삶을 기쁨으로 만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가 이뤄질 줄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그 치유와 화해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었던 비극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이 땅을 평화의 섬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 땅에서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간절하고, 바로 그 치유와 화해의 역사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평화의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새기는 사순절 절기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단지 사랑의 삶을 펼치셨고,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삶다운 삶을 누리도록 그 본을 보여 주신 그 사실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까지 고난을 겪으셨을 때, 사랑을 펼쳤던 그 분의 삶을 두려워하였던 세상 권세의 사악함을 오히려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진실을 깨닫고 더 이상 죄의 권세에 매이지 않게 되었을 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부활의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의 고난이, 그 진실을 깨우친 모두에게 구원의 역사, 부활의 역사로 이끄는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제주 4.3을 다시금 기억하고 그 뜻을 새기는 가운데, 그 진실을 깨우치고, 마침내 죽음을 딛고 일어선 부활의 사건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죽음을 딛고 일어서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8년 3월 14~15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4.3평화기행 참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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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1.XXX.XXX.113)
동조상잔의 비극의 싹을 티웠던 제주4.3사건의 중심에 있던 서북청년단의 악의적인 만행을 극우 세력들이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소위 서북청년단재건돌격대장, 기독시민연대사무총장 이라는 직함으로 원주제일교회의 오인근씨를 도와 소위 동료 1명과 함께 3월18일 주일에도 오인근씨와 함께 교회에 와서 행악을 부리고 갔습니다. 이 자는 현 문제인 정권을 간첩 문제인 놈이라 는 등 차마 입에 담지못할 짓을 한
(2018-03-20 19:59:13)
치악산
(175.XXX.XXX.225)
이 자는 박근혜 정권시는 세월호 가족 괴롭히기 등 극우 단체와 함께 행동하며 소위 새누리당 강원도당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오인근씨가 원주제일교회의 모든 소송권 성도들의 인적사항 교회의 중요 자료들을 위임했던 자로 마침내는 성도들을 겁박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장뉴스를 양심적 언론이라고 자칭하는 유재무 목사님 이제 진정 참 진리의 편에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2018-03-20 10:53:06)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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