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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1947-1970)에서 김용균(24세)으로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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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23: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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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 49제서 전태삼 동생 끌려나와

11월 13일은 전태일이 청계천에서의 노동생활중 어린 시다들의 비참한 참상을 세상에 고발하기 휴지가 된 근로기준법을 사망선고하고 함께 분신한 날이다.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의 처지와 삶은 낳아졌지만 사회의 발전에 비하면 상대적 빈곤과 양극화로 아직도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작년 12월 7일 태안화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 청년이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상인 ‘죽음의 외주화’ 로 표현되는 사고로 죽임를 당하게 된다. 전태일의 죽음과는 50여년의 시간차가 있고 죽음의 방식은 달랐지만 그 의미하는 바는 크다.
   
                                                         *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의 전단지 
전태일 사건을 통하여 각성된  한국사회는 노동자들만의 주체화가 아니라 당시 지식인들과 학생, 종교계까지 큰 변화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의 의미와 생애는 특히 대학생들에게 읽히우고 감동받고 한국의 노동자들의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인하여 우리사회는 진보해 갔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10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중 일부는 죽음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전태일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모친 이소선 여사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전태일의 정신을 대표하던 어머니 이소선 여사도 타계를 하고 정신적 계승자 바보회의 민종덕이나 김영대 동지들도 모두 청계천을 떠났고 동생 전순옥은 19대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내고 여전히 정치에 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이번 마석 묘지서 열린 추모식에서 가족을 대표하여 추모사를 하던 동생 전태삼을 도중에  끌고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재단이 문학상이나 노동교실도 사실 그 시대의 역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수한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변화한 시대와 달라진 조건에서 새로운 차원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상징을 필요로 하고  지속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밥그릇 지키지로 밖에 보일 수 밖어 보인다.  

전태일 동지 49제는 추태로 막내려

추모일 당시 전태삼의 추모사가 좀 길다는 주의는 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긴것 보다는 내용에 불만을 갖은 이들이 주최측의 방조아래 전태삼의 마이크를 빼앗고 도중에 끌고 나갔다. 이에 대하여 누구도 경위보고나 사과가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후문이다. 특히  심상정 의원이나  노동계의 원로들이 있었지만 누구하나 이 추태에 대하여 사과와 마무리는 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슬픈 마음으로 페이스 북에 글을 남긴 심종숙 동지의 소회다.

어제 전태일 열사 49주기 추모식에서 열사님의 동생 전태삼 선생님은 전태일재단 핵심과 삼동회 친구 2명으로부터 모욕과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유가족 대표로 발언 도중에 전태일기념관 사무총장인 사회자는 두 번이나 빨리 끝낼 것을 무례하게 말하였고 결국 두 명의 남성이 한 명은 앞에서 마이크대를 발로 차고 마이크를 빼앗아 땅바닥에 내던지고 다른 한 명은 선생님의 뒤쪽에서 안아다가 바깥으로 끌어내듯이 하였다.

그 충격으로 전태삼 선생님은 극심한 어지럼증과 두통, 가슴 동통으로 어제 밤에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전태일재단 관계자는 전태삼 선생님께 사죄하고 앞으로 유가족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태도를 버리길 바란다. 그리고 전태일기념관 관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소명하길 촉구한다. 
   
                                    * 49제에서 추모사를 하는 전태삼 동지
이에 이번 사건을 노동운동계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전태일동지 가족중 하나로 공식 순서자인 전태삼 동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이고 막은 이들의 의도는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이런 추태에 대하여 묵인하고 정리하지 못한 재단 이사장 이수호 위원장은 사과하고 용퇴를 해야 하며 관련자도 해임시켜야 할 것이다. 

당시 전태삼의 발언이나 육필 원고 내용이 공개되었지만 좀 길다는 것외에 내용적으로 못할 소리도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런 정도의 비판을 용납하지 못한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런 내용은 이미 민종덕 동지도 이수호 이사장을 향하여 공개된바도 있다.  이번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열사의 묘지 앞에서 일어난 추태로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해명했으면 될 일인데 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  24일 김용균 1주기를 앞두고 산업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안전을 감시하기 위한 김용균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용균 어머니)가 결성된다. 그리고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새로운 지평을 연 전태일의 정신은 영원하지만 달라진 세대의 청년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신구세대가 연결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11월 13일 7시에 열린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서부터 광화문에 있는 김용균의 분향소까지의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이라는 주제의 노동자 행진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도약과 운동의 대중화를 위하여 의미있는 시도로 보여진다.
   
                                                      * 고 김용균 모친 김미숙 씨
전태일의 생애

한편 '노동자도 인간' 임을 세상에 알린 전태일 열사가 지난 2006년 잠시 다녔던 남대문 초등학교에서 46년만에 졸업장을 운다. 총동문회와 전태일기념사업회(이사장 이광택)가 공동 주관한 이 행사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여사, 여동생 전순옥씨 등 유족과 기념사업회 및 동문회 관계자들, 양대노총 위원장, 지은희 전 여성부장관 등이 참석했다.

전태일은 1954년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와 1960년 남대문초등학교(당시 남대문국민학교)에 4학년으로 편입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 현장에 투신해야 했는 데 1963년 대구의 청옥 고등공민학교에 잠시 다녔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다.

총동문회는 '초등학교 4학년 중퇴'였던 전태일 열사에게 ‘졸업'으로 인정했다. 열사가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지 않았다면 18회 졸업생(1963년 2월 졸업)이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왕보현 남대문초등학교 총동문회 사무국장은 "배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전태일 동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해, 교육이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 사회에 (자성의) 메시지를 주자는 의미"라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동문 중에서 전태일 열사와 함께 학교를 다닌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수소문하고 있는데 아직 찾지는 못했다"며 "워낙 오래전 일인데다 학교를 다닌 기간도 짧고 학교가 폐교돼 관련 자료 중 남아 있지 않은 부분도 많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전태일 동상 제직식에서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
전태일 평전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재단사라는 이름의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22세에 지켜지지 않던 근노기준법 책자를 가슴에 않고 극단적인 선택인 분신을 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고 외치며 육필유서를 남겼다.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사회에 고발한 이 사건을 통하여 당시 지식인 특히 한국기독교회를 깨우는 계기가 된다.

이후 그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의 의미를 헛되지 않토록 많은 각 분야에서 노력했다. 그러나 그 댓가는 혹독했다, 그의 친구들이었던 '바보회' 나 이후 조직된 청계피복 노조(위원장: 민종덕)는 합법으로 인정받지 못한 가운데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지만 정권과 자본가들에 의에서 탄압과 억압으로 이룰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을 당한다. 

그러나 못배우고 무시받았던 노동자들의 삶과 의미에 대하여 지식인들로 하여금 연구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는. 가장 큰 동기는 ‘전태일 평전’ 때문이다. 당시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시국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고 조영래 변화사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는 데 그의 일대기와 분신 이후의 사회적 의미까지 기록한 명저다.

조영래는 1970년 전태일의 장례식이 서울대 법학대학 주관으로 치뤄졌을 때 학생으로 참석하면서 부터라고 전해진다. 이후 조영래는 1974년부터 1979년까지 6년 간 도피 생활중 3년의 시간 동안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과 생존 당시 전태일의 친구들과 청계천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친구 장기표가 이소선으로부터 전해받은 전태일의 수기를 정리하여《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집필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일본에서 먼저 출간하고, 이후 1983년 국내서 익명으로 출간나왔다가 복권 후 1983년 변호사 개업후 1990년 12월 폐암으로 타계하는 데 그 다음해인 1991년 1차 개정판에서 저자를 밝힌다.

한편 전태일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그가 살았던 집을 매입하여 고인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만드는 일이 진행중이다. 또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은  이 일을 통하여  보수적인 도시 대구의 진화를 소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의 위대한 인물로 자리를 잡은 전태일의 생애와 정신을 경북의 중심도시 대구에서도 계승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 일은 전남대학교 김상봉 교수의 기고 글로 공개화되었다.  
   
                                      * 전태일 평전은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육필 유서) 
조영래 변호사

전태일과 동갑내기로 같은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한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전태일 분신사건은 그의 생을 송두리체 바꿔놓았다.  이후 1971년 고시합격후 사법연수원에서 연수 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반 동안 투옥되었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 동안의 수배생활을 겪었다.
   
 
김용균은 누구인가?

지난해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씨가 숨진 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이른바 '김용균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들은 미흡하다는 지적인데 조선소와 철도, 발전소 등이 도급 승인 대상에서 제외됐고, 원청 업체의 안전 책임을 강조한 건설 기계의 종류에서 굴삭기나 덤프트럭 등이 빠져 있는 등 허점이 많다.

그런 가운데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라고 하면서 분신한 전태일의 49주년을 맞아 열사의 청계천 동상 앞에서 노동자들이 모였다. 거기에는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1969년 일명 '시다'로 일했던 이00희 씨가 지난해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김용균 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이들은 더 이상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사망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한 목소리로 촉구하면서 청계천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창립 선언문에서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언제까지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기업 이윤을 남기게 할 것이냐고 사회에 물었다”면서 “죽음의 행렬을 끊어내고 비정규직을 철폐해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김용균이라는 빛을 퍼뜨려 ‘김용균들’의 작업장을 밝히고 모두의 건강한 노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단 초대 이사장은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맡았다. 김미숙 이사장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앞으로 재단이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경률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김종민 청년 전태일 대표, 박석운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승렬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대표, 이상진 고 김용균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등이 재단 이사로 참여한다.

재단은 △고 김용균 동지 추모사업 △위험의 외주화 근절 투쟁 △산재 사고 예방·대응, 산재 피해 지원 활동 △비정규직 철폐 활동 △청년노동자 권리보장사업 △차별 없는 일터를 위한 연대 활동 등을 주요 사업 방향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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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과 김용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약속과 다짐

 

49년 전, 청년노동자 전태일은 노동청과 서울시와 청와대를 찾아가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시와 탄압뿐이었다. 그는 허울뿐인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다.

48년 후,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은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사업주 처벌하고, 비정규직 직접고용’ 약속을 지키라며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운동에 함께했다. 그의 몸은 이윤만을 위해 도는 무자비한 자본의 컨베이어벨트에 말려 처참하게 잘려나갔다.

 

취임사에서 재벌개혁, 비정규직 문제 해결, 차별 없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권은 사회 각 부문의 적폐청산에 눈감고 촛불투쟁의 염원을 배신한 채 친재벌, 노동개악의 길을 걸으며 다시 수구보수-재벌특권 동맹의 숙주가 되고 있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고,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단축, ILO핵심협약 비준, 노동3권 보장이라는 ‘노동존중’ 정책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김용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시행령으로 누더기가 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되지 않고,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톨게이트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은 부정되었으며, 고공에 오른 노동자들은 여전히 외면 받고 있는 게 문재인 정부 3년의 추악한 현실이다.

그렇게, 다시 기울어가는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실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창궐하는 정경유착 특권동맹, 보수자본동맹에 맞서 1100만 비정규직과 결합한 사회적 투쟁이 시급하다. 12월 7일,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의 1주기는 추모와 대회가 아닌 분노의 대회가 되어야 한다.

주체와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 개혁놀음, 총선놀음을 심판하고 사회대개혁의 커다란 등불로 촛불시민들이 다시 나서야 할 때다. 더 이상 우리만 죽거나 차별당하며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 우리 모두 다시 사회대개혁과 혁명의 주인이 되어 광장으로 나서는 날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모든 특권과 차별이 철폐되는 세상은 우리 모두의 직접민주주의로만 가능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명박근혜와 이재용을 감옥에 가둔 광장의 힘으로 좌초되는 우리의 어두운 내일을 우리의 힘으로 다시 밝혀나가자. 작지만 위대한 촛불의 시작, 12월 7일 우리가 든다. 우리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겠다.

                                        2019년 11월 13일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행진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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