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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서회 정관 개정은 공론화 필요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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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23  08: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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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기관 관리 감독, 회원 교단이 해야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지교회 신자들의 열심있는 믿음과 헌신이다. 이로 인한 대형화와 성장의 열매를 일부 지도자들이 독점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런 가운데 연합기관들도 풍요로워졌는 데 대표적인 대한성서공회(KBS) 기독교방송(CBS) 대한기독교서회(CLS)도 크게 성장했다. 그러더니 성서공회가 제일먼져 교단 파송이사제를 회원, 찬성이사를 두워 교단 원로들을 불러 드린다. 이제 그 나마 CBS만 교단파송 이사제가 유지되고 있다.  

CBS는 몇사람이 맘대로 못하는 이유로는 노조도 있고 언론기관이라는 특성으로 시청자와 호흡해야 하고  많은 직원들로 인하여 좋은 인재 등용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서공회나 서회는 오래 근무하고 많이 아는 이들이 주도하는 방향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엔 서회가 공회보다 더 나가려는 심산인지 상임이사제를 들고 나왔다. 공회는 사장과 총무로 이관하여 어느 정도 업무의 분담과 균형을 이뤘다. 

공회는 여러 번 비판 했듯이 총무로 사장으로 상임이사로 갔지만 사장과 총무의 업무나 권한을 월권하지는 않고 있다. 또 성서공회가 큰 논란이 되지 않은 것은 성서반포라는 취지에 맞게 국내외 사업도 그렇고 경영면에서 흑자다. 교단 파송 이사 숫자를 줄이기는 했으나 교단 파송은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사업은 사장이 성서 반포 업무는 총무로 역할에 있어 상호 보완과 견제의 기능을 한다.  

   
                                    * 개정안은 교단 파송 이사를 없에는 것으로 교단은 손 떼라는 말이다. 

정관 개정은 공론화가 필요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서회로 사장 서진한목사는 1차 4년을 사역하고 연임을 받고 이제 70세 가까워 다시 도전은 안될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 발전위가 내논 개정대로라면 상임 이사를 하려나 하는 생각들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 결국 자기 자리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게 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말은 미래 발전을 위한 것이라지만 결국은 아는 형님 꽃길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밖에 없다. 

발전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이들중 가장 연장자는 박종화목사로 경동교회를 은퇴하시고 기장 교단 총회장을 지내신 큰 어른이다. 순복음 계열의 국민일보 재단 이사장도 지냈는 데 신학적으로 많이 다른 곳인데 속사정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를 위하여 충분한 봉사도 하셨고 대를 이어 아들이 기장 총회와 NCCK서 일하는 데 뒷 말들이 나올 일에 왜 이름을 올리셨는 지 이해가 안간다는 분들이 많다.

김근상신부는 대한 성공회 서울 본당 주교을 지냈고 NCCK 회장등 교단과 CBS이사장등 성공회 파송으로 연합기관를 두루거친 분이다. 그러나 대성당 주교시절 달개비 임대와 복지기관 관리문제로 후배 사제들의 반대로 불명예 퇴진을 한 분이다. 그런데도 굳이 서회 이사를 하고 이번에 교단을 배제하는 정관 개정을  발전이라고 볼 수 없는 데 발전위원이 된 것은 유감이라는 평도 있다.

김영주목사는 NCCK 총무를 지내고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며 지난 3월 부터는 (사)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이 되셨다. 소속 교단인 감리교단 농민운동의 선구자고 정평목협 의장과 민주화 인권 통일운동 현장에서 잔뼈가 굵어 오신 분이다. 그러나 아직도 감리교 현역 후배들이 현장에서 고생들 하는 데 월급 받는 자리는 이제 그만 하시고 원로로 물러나 주시면 존경받을 것으로 보인다.

단필호목사는 대전 낭월교회를 은퇴하신 지가 10년이 되는 분이다. 이 분이 통합교단 이사로 현재 몇 년 째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서회가 개인회사도 아니고 친목회도 아닌 데 유독 가까운 분들 위주로 일을 도모하니 너무 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다. 옛말에 뭐도 손발이 맞아야 된다고는 했지만 교단을 과잉대표하면서 이런 일을 꼭 하셔야 하나 하는 안타까움들이 많다.

황선업사관도 구세군의 최고 사령관을 거쳐 NCCK등 연합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분으로 무슨 미련이 더 남았는 지 모를 일이다. 이번에 서회 정관을 개정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구세군도 이제는 후진들에게 자리든 일이든 물려주고 뒤에서 후견인의 역할로 남으셔야 한다. 아마도 이사회 교단 구색을 맞추자보니 그림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옛 친구들이 사적으로는 가까이 지내시되 공적자리는 공공성에 복무하시는 게 순리로 보인다.

서진한사장이 정관 개정이 되면 월급을 받는 자리가 보장이 되는 지는 몰라도 그나마 기상 편집국장 출신으로 업무력은 있는 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장까지 간 것은 자력이라기 보다는 사람 좋고 무색무취하니 길이 열린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서회 사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다시 회장 격인 상임 이사(유급)을 두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나 이런 일에 참여를 하셨는 지 묻고 싶다.

정지강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서회 맨으로 서회가 오늘날 이만 큼 반석에 세운 공로도 있지만 이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란다. 사장에 명예사장에 지회사 대표에 다시 이사로 발전위원으로 지난 30년간 서회의 안팎에서 그의 이름이 빠진 적이 없다. 생기는 게 없는데도 그런 일을 한다면 대단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NCCK는 역대 총무들이 얼씬을 않는 것에 비하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들은 교단 파송이사를 없에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7개 교단 2명을 1인으로 줄인 것을 시발로 교단을 계속 소외시키고 교단이름 지우려는 노력은 사실이다. 그러면 어떤 이사로 대체가 될 것인가? 교단의 원로 중 말잘듣는 사람을 지명하여 기관의 포로로 삼는 것이 수순이다. 그런 이사는 파송한 기관이 우선이 아니라 이사를 시켜준 이들을  대변할 것이 뻔하다. 

연합기관 책임자는 교단의 고용인  

그런 의미에서 대한성서공회도 지금의 이사회 구도인 찬성이사 회원이사에서 성경의 실제 소비자인 모든 교단들로 구성하는 구도로 환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이사을 지낸 통합교단 김순권 전 총회장, 손인웅 덕수교회 원로 목사, 전 총무 김호용 새문안교회 원로 장로, 기성의 이정익목사등은 이제는 그만 빠지시고 교단의 실제 지도력을 갖은 분들과 일하는 것이 설립 취지에 맞고 연합기관 윤리성에도 어긋나지 않는 다. 이 분들은 충분히 역할을 하셨고 공로도 있다.    

지금 17명의 이사중 교단 파송은 7인으로 과반수가 안되는 구도로 만들어 놨기에 사장이나  실제 조종자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그것도 모자라 일반 기업 처럼 상임이사를 둬 경영자로 하자는 것을 어느 교단이 찬성을 하겠나? 그러니 말이 좋아 개발이고 경영이지 자기들 아는 사람들 끼리 해보겠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하기야 대통령관저 공사도 지인들 갖다 붙히는 판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 가? 

서회는 서적과 기상에서 출발해 찬송가와 성경 합본 판매 수익인데 그것도 순복음과 온누리에는 억대를 주고 판권체로 팔았다. 사실 도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찬송가공회 문제로 큰 경을 치고도 정신들을 못차리고 탈 교단화 사유화를 포기 하지 않는 지 모르겠다. 아마 그동안 사논 땅이나 임대 부동산들을 처분하거나 투자하는 사업의 다각화를 하자는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회사를 유지하고 미래를 위하여 투자하고 직원들 예우도 하려면 재정 수입이 중요한데 서적에만 메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교단이나 이사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것이고 전문 경영인을 공채하던지  하면 될일이니 정관 개정까지 해서 할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로 구성된 발전 제안은 구성원들의 과거 행적이나 개정안 부터 불신을 받게 되어 있다. 

끝으로 지금 까지 연합기관들이 교단 산하 교회와 교인들로 인하여 먹고 산 주제에 이제 배들이 부르니 교단은 참견하지 말라는 식으로 교단 파송이사를 줄이거나 없에는 데 이건 정말 큰 문제다. 지 교회를  자기가 세워 부흥시키면 지가 키웠다고 제 새끼 주는 것도 반대해서 맘대로 못하는 판인데 한국교회 공적 자산인 연합기관을 그것도 한두해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서회 역사(1890- )

서회(CLS)는 1890년 6월 장로교선교회와 감리교선교회가 연합하여 조션셩교셔회(朝鮮聖敎書會)를 만든 것이 그 시초이다. 당시의 창립위원은 언더우드(Underwood, H. G.)·아펜젤러(Appenzeller, H. G.)·베어드(Baird, W. M.)·기포드(Gifford, D. L.)·존스(Jones, G. H.)·게일(Gale, J. S.)·헐버트(Hulbert, H. B.)·모페트(Maffett, S. A.) 등이었다.

사업자금은 미국·영국의 기독교서회에서 온 원조자금, 장로교·감리교 선교부의 원조, 또 주한선교사들의 회비와 개인들의 기부금 등으로 충당되었고, 출판경영의 인력은 선교사들의 무보수 봉사로 이루어졌다. 초창기의 사무책임자는 빈톤(Vinton, C. C.)이었고 1910년 최초의 유급총무로 본위크(Bonwick, G.)가 임명되었다.

이와 같이, 순전히 선교사들만의 사업으로 시작되었으며, 비영리적인 전도사업의 일부분이라는 성격을 지녔다. 설립된 지 약 10년이 지난 1903년에 이르러서는 총 판매 부수가 25만 부에 달하였으며, 대부분 번역물이었다.

내용은 성서주석·찬송가·교회사 및 신조와 교리, 주일학교 교리 등이었고 전도용 소책자가 다량 출판되었다. 일반교양서적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글공부, 건강과 위생, 결혼생활, 세계역사, 절제생활 안내, 유아양육, 농민생활에 관한 것 등 다양한 종류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1905년부터는 주한외래선교사들을 위한 월간지 『The Korea Mission Field』를 영문으로 발행하여 외국에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본위크가 취임한 이후 출판실적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1910년에서 1911년의 1년 동안 15만 부의 출판물이 발행되었고, 33만 부의 판매실적이 이루어졌다.

1911년 새로이 2층 벽돌양옥을 지어서 본격적인 출판활동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이승만(李承晩)과 신흥우(申興雨) 등의 한국인들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15년 죠션예수교셔회[朝鮮耶蘇敎書會, The Korean Religious Book And Tract Society]로 개칭되는 한편, 교단연합신문으로 『긔독신보 基督申報, The Christian Messenger』를 발행하게 되어 게일이 편집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출판서적의 발행내용이 비교적 단순하였던 과거의 전도 소책자와 초보적인 계몽·교양서적을 넘어서서 종류도 매우 다양해지고 질적 수준도 높아져, 1919년 출판사업을 보다 조직화하여 편집위원회를 최초로 채택하였고 죠션예수교셔회의 영어 명칭도 ‘The Christian Literature Society’로 바꾸었다.

초대 편집위원은 게일·하디(Hardie, R. A.)·클라크(Clark, W. M.)·로드(Rhodes, H. A.) 등이었다. 출판 사업이 점차 확장됨에 따라 새로운 건물이 요청되었고, 1931년 현대식 5층 건물이 마련되었다. 1911년부터 1931년까지 일반도서 321만 부, 잡지 및 신문 323만 부, 전도지 2358만 부가 출판되었다.

1938년에 접어들자, 일제의 기독교 탄압이 가중되어 서회의 출판활동에도 간섭과 박해가 가해지게 되었다. 한편 그 동안 총무직을 맡아 공헌한 본위크가 그해에 정년퇴직하였고, 1939년 명칭이 조선기독교서회로 변경되었다.

1940년 창립 50주년 사업을 탄압 속에서도 계속해 나갔다. 50년 동안 서회는 약 700여 종의 출판서적과 4631만 부의 출판부수, 그리고 4375만 부를 반포하는 사업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1940년부터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으며,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외국인 선교사들이 추방되자, 1941년 서회의 관리권은 양주삼(梁柱三)에게 맡겨졌다.

1942년 일제는 서회의 재산을 적산(敵産)으로 간주하여 모든 재산운영권을 박탈해 갔기 때문에 서회의 임무는 중단되고 말았다. 1948년 3월 광복 후 최초로 이사회를 열어 남궁혁(南宮爀)을 이사장으로, 김춘배(金春培)를 총무로 임명하여 출판사업의 재건을 도모하였다. 이사회와 편집위원회는 한국인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한국교회의 뒷받침을 받으며 활동을 재개하였다. 명칭도 대한기독교서회로 되었다.

이때의 가장 큰 업적은 합동찬송가의 출판으로 1949년 8월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다시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전란 중에 부산에 임시사무실을 두고 출판을 계속하였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다만, 1952년 유일한 아동잡지인 『새벗』이 부산에서 발간되었다.

휴전 후 서울에 돌아와 출판사업의 재건에 적극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1955년 개신교선교70주년기념 출판사업, 1957년 월간지 『기독교사상』 창간, 1958년 신학교재의 출판, 1960년 점자(點字) 찬송가 발행 등의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서회사업이 커다란 진전을 보게 되어 1962년 평신도신학총서가 출판되기 시작하였고, 가정예배서인 『다락방』의 발행, 1967년 맹인들을 위한 점자 월간지 『새빛』의 창간, 개편찬송가 발행, 그리고 현대사상사(現代思想社)의 설립, 또한 1972년 『그리스도교대사전』의 출판, 1976년 기독교출판사업의 전문화를 위하여 만든 대한기독교출판사의 설립 등의 활동이 전개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이 서회는 개화 초기부터 시작하여 한국출판문화의 개척자적인 임무를 수행하였고, 기독교 선교는 물론 한국적인 기독교문화 정착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지난 1987년 종로사옥을 임대로 주고 강남구 삼성동에 사옥을 신축·이전한 대한 기독교서회는 현재 매년 50∼100여 종을 발간하고 있다. 

대표적인 잡지인 기독교사상은 한국기독교의 역사와 사상사 측면에서 가장 오랜역사와 자료가 축적된 저널이다. 이것은 큰 자산이고 보배다. 아카이브도 되어 있어 회원이 되면 누구나 보고 인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참고로 총무와 사장으로는 김소영,김상근,정지강, 서진한 목사가 역임했다.   

회원교단들은 파송 이사들을 소환하여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교단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변하지 않은 이들은 교체해야 한다. 이사들도 자기 파송을 한 기관을 위하여 복무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따라서 교단들은 연합으로 모여 이 문제를 대처하고 교단 총회에 보고하여 한국교회가 조성하고 이룩한 물적 영적자산을 도둑맞지 않토록 정신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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