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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K 총회 지도력 제 3 지대도 나와야계파갈등은 교단망쳐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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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6  16: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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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K 총회 지도력 제 3 지대도 나와야

계파갈등은 교단망쳐
   
 
영국 출신의 사회이론가이자 정치학자인 세계적 석학 앤서니 기든스는 1970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사회학강의를 맡으면서 제 3의 길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본격적인 학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1997년 1월 부터는 런던정치경제 대학(LSE)의 학장 겸 교수로 재직한다. 그후 영국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 총리의 고문 역할을 맡아서 유명해졌다. 그는 LSE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대학에도 출강하였다. 그가 이룩한 학문적 업적은 이미 전 세계에 알려져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우리 시대 유럽 지성의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영국인들에게 '영국의 자존심' 이라 일컬어지며 존경받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인물이다.

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영국의 오랜 침체기를 극복하고 영국경제를 구원하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 도덕적 보수주의로 표현되는 그녀의 정치철학, 정책들은 경제적인 활력에는 분명 효과가 있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문제들을 양산하게 된다. 인종폭동과 노동자 파업의 무력진압, 국제 전쟁의 촉발, 교육 의료 등 공공부분에서의 감축, 대규모 실업, 환경오염 문제의 확산 등등 수치적 기준에서 성장이라고 표현된 것들 뒤에 가려진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결국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처는 총리직을 스스로 사임하기에 이른다. 이후 영국은 대처만큼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는데 그 길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이고, 그에게 이 한 책이 바로 새로운 길을 열게 하였다.

당시 세계는 89년 이후 동구권의 붕괴와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전통적인 막시즘이 퇴조하고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세계정치, 경제를 지배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지 못했다. 이미 WCC나 WARC 같은 세계기독교 단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폐해를 신학적으로 비판했고 미국의 노엄 촘스키 같은 학자들도 “세계화의 덫”과 같은 책으로 비판했다. 이에 세계화의 선도국가인 영국과 미국은 높은 실업율과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갈등과 금융위기의 도래 등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하며 새로운 흐름이 필요해졌다.

이런 영국적 상황에서 토니 블레어는 높은 실업율과 복지국가로의 변모를 주창하며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의 기치로 '신노동당 정책'을 들고 영국노동당 총수가 되고 마침 미국의 새로운 젊은 대통령 빌 클린턴도 전임 부시대통령의 무모한 전쟁 걸프전의 상처와 미국사회의 인종갈등, 빈부격차 문제를 지적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를 역설하게 된다.

그리고 제3의 길이라는 이론이 나온다. 토니블레어 총리의 브레인인 앤서니 기든스가 좌파 - 우파의 대립을 넘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정치, 경제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거시적으로 문제점의 분석과 그에 대한 대안을 정리한 책이다. 현재까지도 그 책의 가치가 충분하고 한국사회와 같은 좌-우 대립이 극심한 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책이다.

이런 역사의 경험과 논리를 PCK 교단 정치에 놓고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총회의 최고 수장인 총회장을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뭔가 남다르게 보여줄 것이 있는 사람이여야 할 것이다. 목회도 잘했고 지역 노회와 동기들에게서도 덕망 있고 존경도 받지만 한편으론 야망과 야심도 있는 사람들이다.  돈도 적재적소에 쓸줄 알아야 한다. 평생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잘 안되는 것 같다.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다 총회장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총회장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하는 일이 남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학생 때 부터 그런 꿈을 꾼다고 하지만 한 10년은 미리 준비한다고들 한다. 그러니 온전한 목회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준비라는 것이 영적 지도자로써의 자질과 품성을 가다듬는 일보다는 총회자리 맡아서 이름 내고 집회나 다니고  동향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기 돈 드리고 내용 갖고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름과 얼굴내는 일은 불법은 아니다.  그런 분은 노회와 총회주변에서 하는 행동이 벌써 남다르다.  생색내는 일(총회가 집계하는 헌금) 에는 잘내지만 지역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구제는 뒷전이다.  애경사도 잘 챙기지만 힘있는 사람들에게만 문전성시다. 그런 식으로 총회 일에는 앞장서지만 경쟁자가 많으니 만만한 일은 아니다. 교권인사들과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남만큼 해서는 안된다. 남보다 더한 것을 해야 한다.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전의 총회장은 누구도 개인이 나서서 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다. 거의가 추대였다. 예를 들어 33-34대 1947-48년 까지 총회장을 연임한 이자익 목사 같은 분이다. 이 분은 이미 13대 1924년에 벌써 총회장을 하고도 훗날 다시 총회의 부름을 받아서 유일하게  3번의 총회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 분에 대해서는 너무 일화가 많아서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항존직자가 된 전북 금산교회에서 반상 시절에 주인과 종으로 한 교회를 섬기다가 장로투표에서 주인 보다 표가 더 나와 먼저 장로가 된 분이다.

그러나 주인 조장로는 같이 장로가 먼저 되지 못하고 나중에 장로가 되지만 갈등없이 화평하게 시무를 했고 이자익 장로가 신학에 뜻을 두고 학업에 출타할 수 있었던 것도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덕분이였다는 것이다. 그후 이자익 목사를 이 교회에 청빙하기도 하였다. 훌륭한 분들이였다. 그런분이니 스스로 나서서 총회장을 하려고 하시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 분을 세워서 덕을 보려는 분들이 만든 총회장도 아니셨다. 옛날에는 통신이나 교통이 좋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교단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대처할 사람으로 발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총회로 모이면 이미 총대들은 마음으로 이심전심으로 중론이 모아진 분에게 대임을 맡겼다.  그 후에도 선배들은 총회장 운동을 하거나 총회장이 되였다고 해서 자기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고 논공행상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 언제 부터 이렇게 자천타천의 총회장 선출이 과열되었을까? 적어도 1985년 이전 까지는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았다. 교계의 옛 어른들은 카리스마도 있었고 교단을 먼져 생각하고 여론을 보고  사람을 결정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조직화하여 특정인을 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85년 90회기 이종성 학장 때 부터 였다고들 한다. 이분의 이력은 특이 한데 의성에서 출생하시고 어릴때 일본으로 밀항하셔서 동경에서 중고등학교와 동경신학대학에서 공부하시고 재일대한기독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미국과 독일에 유학을 가셔서 공부하신다. 귀국하여 연세대교수와 영락교회 부목사로 부임을 한다.  

당시 이 분 만큼 폭넓고 깊이 있게 신학공부를 한 분이 없었를 것이다.  그후 계일승 학장 후임으로 장신대 교수겸 학장으로 부임하셔서 오랫동안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장신대 출신이 아니신 분이 장신대 교수가 된 것도 그렇고 총장으로 총회장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탁월한 실력과 능력도 있지만 역시 경상도라는 지역의 배경이 큰 힘이다. 

만약에 그 분이 경상도 사람이 아니였어도 그렇게 되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 분의 성격은 매우 혼란스럽다. 사랑이 많다는 말도 있지만 냉혹하다는 평도 있다. 한가지는 장신대 후임 학장 박창환 목사는 천성이 선하여 당시 학내 문제를 수습하지 못하고 혼란이 계속되자 다시 총장을 하려고 한적도 있다. 그러나 정작 생각지도 않은 학생들의 저항에 직면하여 포기한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그 분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본인 만은 아니다.

이 분들이 훗날 이종성 목사의 권력욕과 연합하여 총회장으로 만들어 낸다.  전임 목회자가 아닌 분이  교단 총회장이 된 것은 흔치 않은 데 종교 교육부 총무를 거쳐 총회 서기를 지낸 54회 1969년 안광국 목사와 55회 1970년 계명학원의 신후식 목사(피츠버그대학 교육학 박사) 다. 이 두분도 당시 걸출한 지도자들로 대단한 뉴스였다. 이 분들은 당대에 교단과 교계에서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종성 목사도 이에 버금가는 분으로  은퇴후에는 왕성한 저작활동으로 지인들과 기독교학술원을 만들어서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 분이 총회장을 마음으로 부터 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이 때를 기점으로 교회도 성장세로 인하여 재정적으로도 풍요로워 질때다. 여기서 바로 총회장은 권력이 되고 지역정치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름을 거론해서 안되였지만 이미 공인이 되신 분들이니 양해를 구한다. 이후 총회장은 71회기 86년 장동진(호남) 으로 부터 김형태(포항) 임 옥(이북) 박맹술(대구) 남정규(광주) 김윤식(의성) 한영제(이북) 김창인(이북) 김기수(안동) 정복량(전주) 박종순(호남) 민병억(충청) 유의웅(서울) 이규호(경주) 박정식(순천) 최병두(경북) 최병곤(전주) 김순권(경북) 김태범(경북) 안영로(광주) 이광선(영남) 김영태(청주) 김삼환(영남) 지용수(창원) 김정서(서울) 박위근(경주) 손달익(경주) 인데 78회기 93년 김창인 목사 이후로는 이북세는 퇴조한다. 그리고  출신별로 보면 영남이 전체 13명인데 이는 호남 7명 이북 3명 충청 2명 서울경기 2명에 견주어도  50% 대다. 실제로 제주도도 총회장이 나왔고 중부서 이북과 충청도 나왔는데 강원도만 없다. 권역별이 존재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배려차원인데 이젠 강원도에서도 한명 나와야 하는 것도 순리다.     

이 분들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당시 선거판도가 보인다. 그리고 단독후보도 상당하다. 그 때는 교단의 현안과 여론이 결정했다. 그러나 몇분은 개인적 지명도나 능력은 좀 안되지만 조직의 힘으로 자리를 거머쥔 사람도 있다. 능력도 되고 자격도 되지만 총회장을 못하거나 안한 사람은 곽선희 목사와 손인웅 목사다. 이북과 경상도 출신으로 적자지만 절묘하게 기피하기도 하고 본인들도 막상 아사리판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거기는 선한 것이 나올게 없으니까 그런  돈까지 내가면서 총회장을 하고 싶은 분들도 아니였다. 

정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북세는 PCK에 대하여 공헌도 많지만 후유증도 많았다. 월남한 세재들로 반공을 앞세운 군사정부에 협력하였고 공산주의의 만행을 경험한 세대로 이념적으로 우리사회의 갈등의 증폭의 한 축에서 었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월남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인 장로들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이북세는 퇴조하고 숫적으로 압도적인 경상도 출신들이 주류가 된다. 실제로 교회도 브흥시키고 지도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경상도가 김기수 목사(79회기 94년)를 축으로 하는 안동과 이규호 목사(84회기 99년)를 축으로한 경주가 분열한다. 배경은 후배들 때문이다.  경안성서신학원과 경동성서신학원의 원장과 지도자들을 지낸다. 제자들이 목회 현장에서 성공하고 성장하여 친목과 단합을 넘어 목회자리와 교권자리에서 이해충돌이 난다.  경안고등학교 문화고등학교도 출신들이 그 뒤를 이어 총회장들이 나왔다. 이 어른들이 그런 의도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후배들에 의하여 분열한 것은 사실이다.

그후 우리 총회장 선거판이 커지고 전국화되였다. 자가용의 보급과 핸드폰의 보급등으로 상당히 판이 전국화되는 데 선거꾼들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또 하나는 핵심은 전국장로회의 현대호텔에서의 여름 수련회인데 이를 계기로 그동안 목사들의 선거판에 장로들이 가세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음과 뜻이 있고 운동을 했다고 해서 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 구도에 의하여 벌어진 총회에서 경상도 출신 막강 인물인 김찬종, 박위근, 이성희 목사는 경상도의 분열로 말미암아 고배를 마신다. 역사는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2등의 설움을 기억해야 했다.  

그럼 언제 부터 우리 총회장이 희생과 봉사의 직임 보다 보여지고 드러나는 일을 하러 다니게 되였을까?  지금 총회장은 임기중 거의 반은 여행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였을까?  그것은 어느 총회의 주제처럼 "섬겨야 합니다" 라는 하고는 따로 가는 아이러니다. 이제 총회장은 대형교회 목사의 권력이 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 2년은 목회도 아예 손을 놓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총회장을 하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 정상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하고 그래서 총회장직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총회장이나 노회장은 회의의 의장이다.

그렇기에 의장은 회의의 장이다. 의장은 독자적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총회 일이나 노회일도 이미 계획이 나와 있어 사무총장이나 총무가 관장하고 부서도 상임총무들이 있어 관여할 일이 거의 없다. 모든 정책과 회의도 위원회가 관장한다. 총회장은 교단을 법적으로 대표하고 임원회장만 하면 된다. 그리고 총회장 정도 되면 교회도 크고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도 있어서 일찍이 총회장의 일은 총무 혹은 사무총장에게 위임을 한 것이다. 이는 YMCA나 NCCK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사실 더 열심히 목회에 전념해도 되는 데 나도는 것이다.

상임 회장이 아닌 한 직임을 직업적으로 할 수가 없기에 모든 것을 실무자인 사무총장에게 맡겨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총회장도 총회에 그렇게 자주 나오지도 않았다. 총회 살림이 어려우니 얼굴보이다가는 짐을 져야 할지도 모르니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내는 일보다는 받는 일이 더 많다. 심지어 총회장 되면 부총회장 선거할때 들어간 돈이  총회장 지내면서 다 체워진다는 농담도 있는데 들어간 돈이 없는 사람은 돈도 번다는 말이다. 이제 총회나 교회들의 살림도 넉넉해지고 오라는 곳도 많으니 먹을 일도 많다. 어느 자리든지 총회장이 가면 다 한자리 주고 봉투받고 부탁받는다. 그것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웃기는 얘기다.  

이제 총회장은  총회를 섬기는 지도자가 아니라 대접받고 군림하고 정치하는 총회장으로 변질되였다.  그러니 의전도 강화되였다. 어느 해는  나서서 머리를 깎기도 해야 한다.  약체 사무총장들이 자신의 정치력과 업무부족을 때우기 위하여 총회장을 불러내고 총회정치의 중심에 서게 한 것이 폐단이다. 그런 사람들은 총회장이 총회업무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설교나 축사하고 봉투나 받을 자리를 주선하고 마련하고 밖으로 나돌게 해서 1년 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총회장을 섬기는 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실은 그들이 총회장을 이용하여 자기 정치를 했다고 보는 편이 정석일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 답게 가야 

올해  부 총회장 후보로 나온 사람은 모두 3명이다.  다 경북이지만 가문은 다르다. 이들도 모두 특정한 그룹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두 분은 총회 임원을 역임했는데 공병의 목사는 김삼환 목사시절에 장명수 목사는 박위근 목사 시절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분은 지역은 경주지만 계파색은 없다는 평이다.  또 그분들의 교세나 경력으로 봐서도 이전 분들과 비교하여 보면 2% 부족이라고들 하는 데 오히려  대형교회도 아니고 총회 일에 익숙하지 않기에 오히려 참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결코 자력으로가 아닌 기존의 정치구도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갈길은 뻔하다. 그러니 "부총회장 왕인가? 종인가?"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총회장도 목사고 부총회장도 목사다. 그리고 목사는 섬기는 종이 아닌가?  이것을 부인 할 사람은 없다.  그러면 종 노릇을 하고 있는가? 왕노룻을 하고 있는가? 말은 종이라고 하고 왕으로 군림하고 행세들 하고 있다. 총회장은 제일 높은 종인데 종으로 알고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부총회장 자리는 과열되는 것이다. 총회장이 되려고 하는 분들은 종이되려고 하는 지 한번 제대로 밝혔으면 좋겠다. 그래서 후보간 토론회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보가 많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다. 진영과 구도가 가만두지를 않으니 아무리 좋은 의욕과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발휘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선거운동이 있다는 자체가 챙피한 일이다. 운동을 하게 되면 봉투가 오가게 되여 있다. 또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을 챙겨야 하기에 이런 파벌구도속에서 총회의 지도력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우리 총회의 대결구도는 점점강화되고 교단의 발전을 가로 막는 일이 될 것이다. 정치도 교단도 이 파벌로 망하게 할지도 모른 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총회장을 선출할 총대들의 선거까지도 개입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총대가 권력화 된 것이다. 총회장은 1년이지만 총대는 만년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총대 안식년제나 휴식년제를 두던지 년조를 두어야 할 판이다. 지역과 노회의 이권을 담보로 붙박이 총대를 하니 바로 지역의 중간 보스가 되서 불법과 타락에 노출되여 거래의 표적이 되거나 중개인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뜻있는 사람들은 차라리 총회장이 없는 총회가 낫다는 것이다. 기독공보도 그동안 사장이 없으니 돈도 절약되고 조용하듯이 말이다.

파벌정치는 망조

그렇기에 현재 우리 총회의 문제를 보면 그런 파벌 구도속에서 나온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차기 총회 장소를 결정짓는 과정에서의 불협화음은 바로 특정교회를 배제하거나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서로 총회 장소를 통하여 결코 이득을 누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 총회장 선거가 지원제지만 특정한 지역과 인물에 기대지 않고는 불가능하니 장소 문제부터 1라운드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이고 법대로 하면 된다. 이번 임원회서도 총회장소는 결정되지 못하였다고 하니 임원회의 고민이 장난이 아니다.

후보자들에게 막강한 파워를 갖거나 직접 자신의 사람들을 내세워서 대리전을 시키는 구도가 무너져야 한다. 그 전례가 바로 93회기 08년 김삼환 목사는 조용히 목회하던 무명의 이광선 목사를 91회기 06년에 총회장으로 만들고 ACT의 이사장으로 보내서 전 이사장 길자연 목사와 1라운드를 겨루게 하고 다시 한기총에서 2라운드를 하게 된다.   이렇게 두분은 당시 우리사회에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한기총의 연출자고 주연인 격이다. 

특히 이광선 목사는 전 총회장중 최고로 교단을 망신시켰고  김삼환 목사는 당시 한기총 지도부가 자기 교단과 총회장과 총대들을 무시하고 수모를 주는 데도 그들의 행사에 번번히 가서 설교나 축사를 하는 일을 통하여 멋대로 사는 전 총회장이 되였다.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며  다른 사람 같으면 치리감이다.

그러고도 자기가 93회기 총회장일때 94회기 09년 총회장을 변방에서 대형교회를 일군 무명의 부흥사 지용수 목사를 부 총회장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총회 부장, 임원 한번 못해본 사람이다. 당시 패자는 총회 서기를 2번이나 역임한 박위근 목사다. 그 분은 와신상담 끝에 3년을 기다렸다가 96회기 11년 소원을 이룬다. 그러나 이 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차기 97회기 12년 손달익 목사를 만들기 위하여 복무했다는 것도 공개된 비밀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은 손달익 목사는 박위근 목사의 뒤를 봐줘 현역중심의 단체인 한교연 회장에 은퇴를 무시하고 추천하여 회장이 되게 한다. 그러자 박목사는 내친 김에 한기총을 누르기 위하여 해외교회들과 협약을 맺고 이들과 “세기연” 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합법적인 외유 길을 튼다. 이제 국제적으로 나돌게 생겼다. 이는 이미 김삼환 목사가 WCC 한국 총회 유치와 준비위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이름을 올리자 이에 뒤질세라 나도는 것이다.

지금 교단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들이 바로 총회의 지도자들이다. 지금도 이들은 차기, 차차기 권력을 만들기 위하여 저울질을 하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차기 총회 장소 결정의 딜레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누구도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니 서로 연대할 세력을 찾는 것이다. 바로 호남과 중부를 저울질 해서 주고 받던지 동문회를 끌어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는 이북세가 다음은 경북과 호남이 연대해서 그리고 영남이 다시 안동과 경주가 분권하여 교계 정치를 좌우지했다면 몇년전 부터는 신총연이라는 전국 신학대학 총동문회라는 조직이 등장을 한다.

신총연의 등장

이 단체의 탁월한 지도자가 섬기는 교회는 우리교단 교회가 아니다. 목사의 적만 노회에 있다는 데도 노회는 그를 총대로 뽑아 주었다. 가입교회가 아니니 상회비도 안냈을 것인데 그 교회가 우리 교단에 무엇을 기여하는지 노회원들이 아는 지 모르겠다. 이들 그룹은 마이너리 주주로 자기 동문들의 자리를 거래로 특정후보들을 지원했다. 그러니 사실 현재 구도는 총회장은 이름만 있는 것이고 뒷 힘을 가진 이들은 현직에서는 권력을 차기에서는 권력의 유지를 전제로 운동을 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분간 이들에 의해 우리 총회는 움직일 것이라고 말한다.

신총연은 전국의 5개 지방신학교 출신들로 장신대 목회연수 과정을 거친 이들로 같은 신대원과는 같은 기수 동문이라도 정규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목회임지와 교단정치에서 다소 차별받고 소외되였다는 정서를 기초로 한 이들로 한마디로 피해자 연대다.  처음에는 친교와 교제를 하다가 모이다가 보면 불만도 정교하게 포장되고 인물도 나니 자리를 필요로 한다. 작은 개미들도 일단 뭉치면 군단이 된다. 하나는 보잘 것 없어도 모이면 엄청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내 힘을 결집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방을 분산시키거나 우호세력을 중립화 혹은 이간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계정치가 순수할 수가 없는 것이다. 투표 전에 기도는 하지만 요식행위다. 지방신학교 출신들의 약진은 그동안 교계 정치에서 소외되  묵묵히 목회만 하고 지방에서 와신상담하던 이들의 자리도 풀어 주고 회원들은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그것 까지도 뭐라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소원은 자기 학교 출신 총회장을 배출하는 것이 소원인데 이제 그것을 이뤘다고 하니 그 한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간다. 그러면 이 모임의 목적을 다 달성하였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목표는  무엇일까?   목사의 명예를 지키고 권리를 보호 한다고들 하는 데 지금 보다 더 권한을 갖고 뭘하려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면 이제는 목사의 특권을 좀 내려 놓는 일을 해야 정상일 것이고 그래야 사람들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 까지는 억지 정치를 했지만 앞으로는 어원대로  "물흐르는 이치" 를 하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세력들도 과거와 같은 방식과 감정으로 등장을 하니 철학과 노선이 없는 정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다른 써클들을 단결하게 하고 대결하는 구도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에는 호남신학대학교 총동문회가 신총연을 탈퇴한다는 결정을 하였는데 대단한 일이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이전 임원 혹은 대표들이 신총련을 통하여 누린 권력과 명예에 대한 반감이나 질투에서 비록되였다면 역시 그 나물에 그밥이다. 신총연에 장신대 신학원 동문회도 가입을 한만큼 정치적인 조직이 된 판에 탈퇴란 웬말인가?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앞으로 나타날 것이다. 올바른 대의에 기초하지 않고 자리와 권력을 나누고 독점하는 인간적인 조직은 반드시 소외자와 배신자가 나오게 마련이고 자리는 한정되여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많기에 불안정한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정상적으로 대학과정 4년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나온 우리교단의 차기 주류군인 장신대 학부동문회가 가입을 하면서 판은 커졌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은 그 세력과 연대를 통하여 자기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신총연은 막상 파워가 된 것이다. 이게 이해 할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년령은 이제 총회적으로 일할 년배이고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들이다. 작은 숫자와 가족같은 사랑과 우정으로 지내는 보기 좋은 동문들이다. 

기숙사 생활과 학교경험으로 일체감이 강하다. 그러나 신총련의 구성원은 장신대에서 1년 정도 밖에 머물지 않아서 사실 얼굴도 모르고 교제가 그렇게 깊지 않다. 그러나 이제 목회적으로 중진이 된 이들이 자력으로는 나서지 못하니 각 동문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지방의 패권자들이 되어 큰 틀을 묶어낸 것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리더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매년 총동문회 모임의 규모를 보면 그것을 알 수가 있다.

자 총회장은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권력으로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가 되어 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하기 싫어하고 기피하여 할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미국같은 곳에서는 부목사 여성목사들도 노회장 총회장을 많이 하는 데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게 정상이다. 이제 부터는 교단의 중요한 그룹들과 총대들은 전국교회는 섬길 자를 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과 파벌에 의존하는 과거 구태의연한 관행과 폐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대가 출현해야 한다.

즉 제 3의 길이 필요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당시 사회에 자본주의 공산주의 라는 양대구도속에서 영국은 제 3의 길을 택하고 영국병을 치료했듯이 우리에게도 안동과 경주라는 두 구도에서 자유롭고 건강한 새로운 세력의 지도력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총회를 살리는 길이다.

자리다툼 사라져야

그렇지 않으면 현재도 누더기가 된 선거관리법이 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돈을 쓰는 선거는 사라져야 한다. 정치적으로 사람을 불러다가 설교시키고 돈을 주는 행위는 근절해야 한다. 년전 부총회장을 지원했던 지방의 한 목사는 선거전부터 선거시까지 한주 걸러 한 1년동안 전 총회장들부터 해서 교단의 유력한 인사와 심지어 중요 노회장들까지 불러서 설교를 시키고 돈을 주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할 것인가? 전 처럼 우리 총회는 덕망있고 존경하는 목회자들을 추대하여 총회장을 만들어야 한다.

천주교나 성공회가 왜 교황이나 주교, 추기경 교구장제도를 종신화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자리를 놓고 탐욕하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경쟁으로 오는 사회적 교회적비용과 문제를 없에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것이 사라졌는가? 아니다. 다만 우리 보다는 그 시간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노회들은 매년 봄에는 총대선거로 가을에는 임원선거로 홍역을 치러야 한다. 감리교의 감독제도도 그런 것의 절충인데 지금 감리교는 총 감독을 몇 년째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이면에서 성직자들의 권력욕과 과시욕 명예욕이 함께 성장했다. 그렇기에 이런 성장은 부끄럽고 죄된 성장이다.

지금도 교권욕에 빠진 지도자들은 제 교인은 놔두고 겨우 새벽기도만 끝내고 조찬 모임 부터 시작하여 동문회, 동기회, 부서, 노회, 시찰회, 부회, 교역자회, 강사로 외국으로 질주를 한다.  저녁이면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와도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시작이다. 교인들의 애경사나 년중 심방을 직접 한지도 오래다. 구역장 집에 몰아놓고 단체로 때운다.  

대형교회는 목사 주례도 항존직자는 되야  받는 데 제 교회 담임목사 주례나 장례도 못받는 교회를 지금 나가고들 있다. 거기서 바로 대형화의 문제점이 나오는 것이다. 기업식의 행정이지 목양은 아니다. 어른들은 좀 낫다. 그러나 현재 수도권 대형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중 새벽기도와 심방을 하지 않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예전에는 목사들이 외출해도 늦더라도 밤에는 들어와 자고 새벽에 교인들 눈도장 찍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 지 무엇을 하는 지 잘모른 다고들 한다. 지금은 골프를 치는 목사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억지로라도 기도하고 성경보고 교인 보고 회개할 시간 조차도 없어진 것이다. 모든 것은 주님과 아래 사람들에게 맡긴 체 주일에 한번 진하게 말씀 사랑, 교회 사랑을 설교하고 다시 주일 저녁 부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되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의 시간표다.

이제는 현대판 바알인 권력과 돈과 자리와 파벌에 무릎 꿇지 않은 인물이 나와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론자 신사도 운동이니 영적각성을 주창하지만 자신의 영혼은 메마른 거짓지도자들은 안된다. 제왕적 목회로 넘치는 카리스마가 넘치면 파시스트형 지도자가 되는 것은 뻔하다.  이제는 과거의 전통과 관행에서 결별하고 달라진 시대를 준비한 이들이 나와야 한다.

이제는 예전에 가치들과 통용되였던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 모든 목사들의 꿈인 김삼환 목사처럼 성공하고 누리고 부리는 목회자가 될 수 없고 되여서는 안된다. 그 분 한분 만으로 족하다. 토니 블레어 처럼 기존의 권력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으로 일구고 세워 PCK를 지고 나갈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선한 품성을 지닌 여호수와와 같은 지도자를 우리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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