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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24  23: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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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K와 예장뉴스가 나가야 할 길


발행인 백도웅 목사
   
 

우리가 구루터기가 되야 한다.
PCK 총회가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으로써 우리사회를 선도하고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까? 슬프게도 이제 별로 없다는 얘기가 있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만 주어도 된다는 말이다. 이제는 교회가 사회를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근심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름받는 일꾼이라면 아직 할 일은 있다. 먼져 우리자신들이 깨여 이 역사와 민족 앞에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기 위하여 바르고 선한 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타락되고 부패한 시대에도 남겨진 구루터기가 되어 이 사회의 양심의 표징으로 불의한 힘과 권위에 대하여 비판하는 남은 자들이 되는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

우리 신문이 태동하게 되는 동기는 2011년 한기총의 파행으로 부터 시작되였다. 무기력한 pck 교단의 대응은 문제를 더 키웠고 급기야 온 국민과 교회의 분노를 삿고 노회들은 한기총 탈퇴를 헌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다 죽어가던 한기총을 없에지 못하였고 시간만 끌다가 뒤늦게 탈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기총은 아직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며 버젓이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이하는 WCC 한국 총회를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자차하며 이단들을 옹호하는 일를 일삼고 있다. 이렇게 연합기관에서의 불법과 부정도 문제지만 먼져는 교단내적으로도 떳떳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이제는 상시적으로 교권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고발하는 일들을 해야하는 필요성이 제기 되였다. 

총회 지도자들 좀 더 노력하고 희생해야 한다. 
과거에는 우리 사회와 총회의 문제점과 오류에 대하여 개인이나 구룹들이 비판하고 발전적 대안들을 내고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런 정신과 조직들이 시간이 가니 안주하고 정신도 변질되거나 타락 되였다. 그래서 근자에는 이런 권력화와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누구도 도전받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모두 연관이 되어 있거나 개혁을 선도하는 구룹들도 나이가 들고 지역의 먕주가 되니 교권에 편입이 되거나 지친 면이 있다.

우리 PCK는 명실상부 한국교회의 최대 교단이다. 전국 65개 지역의 노회 산하에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노회와 교회들이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여 있으며 300만 성도들이 있다. 또한 7개 지역의 안정된 정규신학교외에도 연세대 한남대 숭실대 서울 여대 등에서 배출되는 성직지망자들 학교들의 유수한 교수진을 보면 숫적으로나 물량적으로는 커졌고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 아쉬운 것도 많다. 교수들은 많치만 제대로 된 학자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들은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누리지 못하는 억대연봉에 안식년과 연구학기나 연구비에 강사비는 전체 지역 목회자들의 생활과 비교가 안되게 받고 있으면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고 자기 강의와 초청에만 만족하고 있다.  높은 등록금은 학교시설이나 환경을 고급화하였지만 막상 졸업하고 나올 목회현장은 없거나 열악하기 그지 없다. 

우리 총회의 상층 지도자들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전국교회를 목회한다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앞장서고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단의 산적한 문제에 대하여 깊은 고민과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자신의 위상과 격에 맞는 노력과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는 총회장을 누리는 직책으로 오해하고 있으며 공적직무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그러니 준비되여 있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풍토가 되였다. 먼저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들이 노회나 총회의 직책을 개인의 출세나 명예로 아는 사유화의 문제가 있다.

그외에도 고질적인 지역판도의 정치적 거래에 의해서 배출되거나 세워지는 지도력 때문이다. 현재의 구도를 그대로 두면 최고 지도력은 특정계파에서만 나오게 되어 있으니 누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도 그져 하던 일이나 답습하거나 대접이나 즐기고 외국이나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한해가 다 간다. 임원회의 구성도 견제가 안되는 것은 승자독식 구조로 임명하기 때문에 하위직 임원들은 말한마디도 못하고 회의비나 받고 왔다 갔다 한다. 일인지하의 총회임원회로 고착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총회의 사무국이 제 역할을 하고 있을 가?  마음과 기대는 있지만 아직은 쉽지 않고 더 기다려 봐야 한다.

사무총장 시스템에 의한 인사제도 앞장서야
총회 사무총장제의 도입 취지는 1년 임기의 총회장과 임원들의 직무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총회행정을 위해서다. 부서 총무들의 독립적인 사업이나 내용도 마찮가지다. 그런데도 소신행정을 하기보다 연임이나 자리보전, 차기 권력구도 눈치나 보면서 복지부동이 관행이였다. 교단 전체를 바라보며 일하는 풍토가 안되여 있다. 한마디로 실무자들에 권한은 주고도 일하지 못하게 하는 씨스템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개선점은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된 업무측정들을 하고 매뉴얼화하여 개인의 일들이 되지 않토록 해야 한다. 사무총장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갖는 종결구조로 가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총회장 바뀔때 마다 군기잡고 그들의 입맛을 맞추고 하명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씨스템에 의하여 움직이는 총회행정이 되기 위하여 집단적 리더쉽을 중요하게 여기겠다던 신임 사무총장의 의욕이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총회 훈련원 원감을 선출하는 해당 위원회의 인선과정에서의 구태의연한 인사제도와 학연과 지연을 동반한 로비 인사제도를 바로잡이야 할것 이다.  특히 장신대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직무나 충실해야지 건방지게 특정 학맥의 대부를 자처하고 훈련원 원감 자리를 후배 직장 알선하는 일자리 창출로 아는 식의 개입은 전에 없던 일이다. 장신대 이사장 이라면 좀 격조 있게 행동을 해야지 전직 이사장들이 품위유지를 하는 것도 못봤는지 누구도 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다. 이게 다 이사장 자리도 정치해서 차지하고는 이제는 총회 인사에 개입하는 데 이전 세대들도 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훈련원 원감 선출을 둘러싼 문제  
총회 훈련원은 아직도 그 중요성에 비하여 그 위상에 맞는 일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매우 귀중하고 할일이 많은 부서이다. WCC 보세이 훈련원 하면 아는 분은 아실 것이다.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책임을 맡고 있다. PCK 훈련원은 중고등부 청년회 공과나 만들고 교육하는 곳이 아니다. 최근 우리 교단 산하 목회자들의 학력과 경력이 높아지고 있고 다양화되고 있으며 중견목회자들도 있는 데 지금 훈련원 원감으로 지원한 분들의 면모들을 보면 년배나 경력으로 봐도 참으로 한심하다. 단독 목회경험도 일천하고  목회경험만 갖고도 그 직무를 감당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전임자 이일호 목사도 총회 산하 신학교와 현장 목회, NCCK 연합기관등 여러분야를 경험을 한 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훈련원감을 하고자 지원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자린줄 알고 지원을 했는지 모르겠다. 변변한 학위자도 없고 총회내 직장 구하듯 하고 있다.  일개 간사를 뽑는 것도 아닌 데 현재 후보군으로는 우리 총회의 훈련원 원감으로는 모두 자격미달이라는 평이다. 

적어도 훈련원 책임자는 앞으로 해당 인사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교 교수급으로 정식 학위도 있는 분으로 좀 안정감있고 격조 있는 분을 모셔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 총회 가장 객관적이고 유일한 자랑인 제 1 인사위가 이번에 지역과 학연에 메몰된 인사정치을 거부하고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 모두가 지켜볼 것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9월 총회에서 총대들이라도 반드시 이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총회에는 교단 최고 실력자들이 다 모여 있음에도 윗사람 눈치나 보고 복지부동을 하고 있다. 이래서는 총회를 위한 복무라고 말하기 어렵다. 총회 직원은 전국교회를 섬기는 것인데 임원회나 부장을 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총회장을 보좌하는 것은 간신역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충신이 되야 한다. 반대도 보좌라는 말이 있듯이 지도자의 격에 맞는 인정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학습을 해야 한다. 예을 들어서 과거 제왕들이 하는 경연(학습)과 같이 전문가나 교단의 다양한 세력들과 만나고 이해를 구하며 전체 한국교회를 진단하고 내다보는 토론과 연구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는 급변하는 시대속에서 한국교회와 우리총회를 이끌어갈 수가 없다. 평생 개 교회에서 말한마디로 누린 관성을 유지하며 1년 보내고 다음에 어디 연합 사업기관에 가거나 계파수장으로 갈등과 반목의 중심에 서서 명예나 구하는 일을 도모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지 못하는 교회 지도력
다가오는 세기는 지난 몇 년에서 보듯 이념과 지역이 무너지고 과거의 남성이나 정치인 재벌로 대표되는 중심들이 크게 퇴색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여성과 소수자 인권등의 가치들이 크게 신장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세계화로 인한 폐해로 인하여 대안적인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외적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변화의 축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며 이에 조응하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는 세력과 개인만이 살아날 수 가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라도 관심사를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우리나라의 특수한 남북관계까지 광범위하게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환경은 교회를 향하여 큰 도전으로 다가 올 것 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도전은 단순히 시장경제 체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곧 시민의 권리까지도 확대되거나 제한되어 질 것인데 미 SNS나 미디어 상황은 일방에서 쌍방으로 변했고 과거 대형 미디어의 영향력과 돈벌이도 종언을 고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형식에서 내용을 체우는 구조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식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민은 뉴스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올드 미디어인 종이 신문은 퇴조 할 것이다.

이런 사회 상황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은 여전히 정치권, 언론과 여론, 시민단체 등이 가지고 주도를 할 것이다. 반면에 종교나 교회 권위,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거나 무시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현재의 이러한 상황에 맞는 획기적인 전환 없이는 노쇠하고 뒤쳐져서 다가오는 세대들을 잃어버리고 쇠퇴함과 무력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세상은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세운 기준과 상식을 지켜 달라는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더 커질 것인데 성직자 조세문제나 교회재정의 투명성 재고 국가 지원을 받는 복지기관의 공정운영에 대한 감시와 보수화와 목소리나 세속주의적는 교회를 더 공격하고 비판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신문은 이러한 일을 경보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회의 교회 비판은 가속화 할 것
교회가 만약에 이런 세상의 요구에 대하여 외면하고 반기독교이라고 비판만 하고 있고 대안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험한 일을 당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아마추워적인 문화와 행동양식, 잘못된 관행과 윤리적, 도덕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교회는 냉혹한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이고 쓸모없는 소금이 되어 버려질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형교회와 성공주의 목회자들의 사건과 사고로 말미암아 교회 내외적으로 계속해서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교회는 이를 대처하느라 힘을 소진하고 그래서 일반 사회로 부터의 불신과 고립감, 이질감으로 다음세대인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잃을 것이며 양식과 지성 있는 기성 교인들의 이탈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새로운 부흥이나 성장은 과거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정의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 뼈를 깍는 개혁과 거듭남 그리고 대 사회적 신뢰회복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서는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신문은 파수꾼으로 시대의 징조를 깨우고 그 책임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 위한 요구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공적직무를 잘 감당하는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존경하고 협력할 것이다. .

과거의 갈등 요인의 변모
20-40세대는 새로운 미디어의 사용자요. 현대식 교육을 받은 파워 구룹으로 등장한 세대들로 그들이 선택한 정치적 칼라는 가변적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에게 번갈아 가면서 표를 주었고 그들은 기성 정당에 식상하여 제 3 의 세력으로의 성장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에 열광하던 이들도 분화의 과정을 맞이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누구든 이런 역동적인 젊은세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안정을 이룰 수가 없다. 교회의 노령화 현상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대졸이상의 교육과 안정된 전문직 직종으로 다수가 강남 3구에 살면서 소위 강남좌파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이들의 변화의 욕망은 어디 까지 일까?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은 실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세대 특성으로 과감한 변화와 개혁의 요구에 편승할 것이고 과거 억압의 시대에는 파업과 길거리에서의 데모가 힘이라면 앞으로의 힘은 인터넷과 통신 미디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미래지향적인 교회의 모습
한국교회의 리더인 우리 총회는 획기적인 발성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은 모두에게 기회이다. 현재 총회나 노회에서 출현하는 지도력들은 학번으로는 70년대 학번에 50대가 주축이다. 가장 왕성하게 일하고 목회적으로 총회적으로나 연합운동에서 각자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고 우리 총회의 중심들이다. 그렇기에 이 세대에 우리 총회가 씨스템에 의하여 움직이는 총회로의 정착을 하지 못하고 총회장 갈릴 때 마다 눈치 보는 총회가 돼서는 안정된 지도력의 발현은 요원하다.

문제는 이들이 자각을 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가치의 네트웍이 되고 교단의 주체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대형교회, 측정기수, 지역파벌은 퇴조해야 한다, 한 시기의 역할에 만족하고 종언을 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눈여겨 볼 것은 그동안 교권의 보조축으로 이용되거나 담합되였던 평신도(장로) 운동의 성장이 기대된다. 장로들도 이제는 한국교회와 우리교단의 개혁의 대안세력으로 세워가야지 언제 까지나 끼워넣기 식으로 이용하거나 방치되서는 안된다. 그리고 기존의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목회자운동을 한 이들도 지역파발의 고착화에 일조하거나 편입되므로 그 첫 마음들이 산화되여 버린 것으로 보이는 데 이에 대한 반성과 대안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과 대안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필요한 개혁의 이론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공론화 하는 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분쟁이나 사건을 숙성과 여과 없이 생보도 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외면하고 특정입장만을 보도하는 것을 경계한다. 앞으로의 우리사회 정치지형의 변화와 전망을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그 장이 바로 미디어다, 우리가 기존신문처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논쟁점과 개혁의 담론을 담아내야 한다. 대중과 만나야 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예장뉴스의 나갈 길
예장뉴스는 Refo 500(1957-2017) 을 맞아 교단과 노회 혹은 교회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한 10대 과제로 모아 정리하여 여론화 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도개혁을 향한 씽크탱크가 되야 한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총회 주변에 기생하며 별로 중요한 일을 하면서 개교회의 무한대의 모금과 교권정치에 선을 대고 있는 각종 선교단체들에서 부터 총회 총대 구성의 다양화(직능과 비례제들 민주화), 총회장의 권한 축소와 사무총장 업무종결화, 사무총장과 부서총무의 업무 매뉴얼, 직원의 복무규정, 총회기관의 슬림화(기독공보, 출판사등) 연합기관 파송 원칙(전문가) 신학교 교수들의 학술활동 보장과 졸업생 진로 문제, 수급조절, 목사장로 갈등문제(임기제와 시무연한제), 전도목사와 무임목사제도의 현실화, 총회 재판 제도연구(일원화), 교회헌금의 법정 소송비용 지불금지(목적외 사용) 등이 될 것이다. 아마 기구개혁위원회에서 검토한바 있는 부총회장 선출의 노회원 참가문제(모바일)와 비용과 장소의 문제를 위한 2년 총회 대회제 등도 검토해야 한다.

결 론
우리 신문이 창간 된지 벌써 1년이 된다. 이제 말뚝을 박은 것이다. 아직은 평가받기 조차도 부끄럽다. 하지만 비판에 귀기우리고 있다. 그러나 발전적 긍정적인 마음이 아닌 비난에 대하여는 듣고 싶지 않다. 그것은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의 자리와 범죄 이익에 손상을 입고 불편해 하는 소리들이기 때문이다. 신군부는 제 5 공화국 출범을 위하여 왜 “언론기본법” 을 만들어서 통폐합을 했는 가? 다양한 소리를 통제하고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언론에 대한 비판은 전문적이지 않고 다 개인의 이해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기존의 교단기관지인 기독공보나 목회자 신문 장로회보등과 같이 우리총회의 발전을 위하여 각자 맡겨진 형편대로 봉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선의 경쟁을 통하여 발전하고 독자에게 복무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모든 신문은 무료화 하여야 한다. 그래서 "정보는 무료로 광고는 유료" 로 가야 한다.우리가 제도권 밖에서 좀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할말을 할 것이지만 모든 신문이 우리처럼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올드 미디어나 종이신문의 잣대로 전문성 완벽성을 요구하며 자구 문법 언어구사에 대한 불만은 숲은 보고 나무는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말을 알아들었으면 된다. 지적을 받으면 고치는 것이 먼져다. 그런데 애써서 형식과 방법에 시비를 걸고 싶은 것은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런 것들은 신문의 안정성이 주어지면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신문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문제다. 하나의 소리이고 싶지 유일한 소리는 아니다.

우리는 칭찮 받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돕거나 불편을 주려고 하는 신문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과 제도화에 대하여는 감시하고 불의와 부정에 대하여 고발하고 약자에 대하여 대변하지만 바르고 옳은 길을 가며 정의를 실현하는 이들에게 친구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역은 있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공익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있고 도전과 오해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을 막아주고 덮어주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런면에서는 과거의 동지도 적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과거의 적이 동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권력화 되고 자만해지려는 것으로 부터는 겸허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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