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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8  00: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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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예장뉴스] 독자 여러분!

행동하는 독자가 되어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 작은 농촌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 동안 현장에서 한국교회가 시대적 소임을 다하야 하는 일에 대하여 나름 고민하며 독학하던 중 [예장뉴스]를 접하였습니다. 2015년 새해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 저 역시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 [예장뉴스]를 통하여 서로 소통하며 함께 하는 분들에게 [예장뉴스]에 대하여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귀한 지면을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서구 유럽의 교회들에 비하면 단 시간에 이룬 한국교회의 성장은 그에 못지 않은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지나 온 일에 대한 반성과 개선 없이 달려온 130년. 이제야 좀 뒤를 돌아다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기독교 이후 시대' 라는 엄청난 쓰나미를 앉아서 맞이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어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앞에 있는 한국교회, 더구나 우리 PCK 교단을 위해 [예장뉴스]가 앞장서서 캄캄한 밤 등댓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홍수에 먹을 물이 없다고, 참으로 많은 기독언론들이 있지만 단순한 정보나 기관 또는 개인들에 대한 홍보만 난무할 뿐 그 사건들을 깊이 해석하고 비평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현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언론은 거의 볼 수 없는 실정입니다. 이에 [예장뉴스]의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말씀 드립니다.

보다 건강한 총회를 위해
첫째로 [예장뉴스]는 이미 주창하고 있는 대로 우리 PCK 교단의 오랜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상식과 전통처럼 굳어진 여러 폐단들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면서 실질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개인들의 이름이 거론 되기도 하지만 골자는 화석처럼 굳어진 관행을 이제는 돌이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디서도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대단히 놀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그저 아무 생각도 못하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인 공교회를 사적으로 소유 놀음을 하는 이들의 하부구조가 되어, 주는 떡이나 먹고 줄을 서거나 외면하면서 맘 편하게 뒷짐이나 지고 시류에 편승하는 채로 밀려가야 하는 것일까요.

[예장뉴스]는 바로 이런 부분들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언급하는 데 멈추지 말고 저항과 개혁을 실제로 실천하여 나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안에 따라서는 혹자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또는 언짢게 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단 안에서 이런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예장뉴스]의 출발과 그 의미가 얼마만큼 중요하고 남다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현장에서의 고발과 제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역량의 부족으로 그것을 다 듣고 항변해주고 함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 앞에서 그렇게 침몰하고만 저 '세월호'! 그 절체절명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선내 방송'이 오히려 침묵했거나 아니면 엉뚱하게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죽음의 방송을 한 것을 보십시오. 그 방송을 그대로 믿었던 수백 명의 우리 아이들이 어떤 참사를 맞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침묵도 중한 죄이지만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아무런 개선과 개혁의 방향 제시도 없는 그런 말들 뿐이라면 그것은 죽음의 자장가이지 일깨우는 사이렌 소리는 될 수 없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와 우리교단을 위하여 다급하게 누구라도 멈칫할 새 없이 당장에 사이렌을 울려대야만 할 때입니다.

과거 기사들 중 우리 PCK 총회의 개혁과 발전을 위해 이슈가 있을 때 마다 심층 보도한 내용들을 보면서 저는 독자 제형들께 다시 한 번 그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주시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노회에서 파송하는 '총회 대의원(총대)'은 물론 총회 대회 현장에 조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저와 같은 절대 다수의 평범한 목회자들이 우리총회의 구조와 관행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 이면의 구조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교단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넓고 깊게 확산 되어야만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예장뉴스]만의 격문들
둘째로 우리 [예장뉴스]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매우 독특한 방식의 전개와 '문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종이신문이라는 구시대 언론 제작의 훈련을 받지 않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전문가가 따로 없는 시대입니다. '미네르바'가 분석한 글들만 보고 외국 일류대학을 나온 세계적 금융회사의 엘리트 글이라고 추정했었지만 그는 지방대를 나온 30대의 한 청년 실업자였습니다. 또 과거 종이신문에 익숙한 분들은 언론이란 "팩트"만 주는 것이고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시장의 다변화로 인하여 기사는 독자들과 공감하고 적극 소통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으려고 쓰는 기사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정치적 사회적 가치와 관점을 보도하는 기사를 선호하고 지지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래서 조,중,동과 같은 어이없는 언론도 살아있는 이 혼돈 속에 한겨레와 뉴스타파도 생존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장뉴스]는 보도나 논평만이 아니라 <탐사 보도> 또는 <심층 보도> 형식의 <가치지향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현재 미국에서 위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를 누르고 인기를 끌고 있는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와 같은 보도 방식입니다.

자신들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기사만 작성하는 시류 속에도 빗나간 권력과 불의들을 고발하는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지하고 공감하는 독자가 있는 한 [예장뉴스]는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신문들이 부지기수요 그런 언론은 모두 홍보물에 불과한 휴지조각이요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 외의 <기획 보도>도 끈질긴 근성이 아닌면 전개할 수 없는 기사들입니다. 그러나 관점은 피해자인 약자를 중심으로 하되 정의의 관점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공익과 정의의 관점에서 글을 쓰면 반드시 그 글에 매를 맞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지만 그것은 불기피합니다.

결코 어느 개인들을 표적으로 하지 않고 있지만 그 어떤 개인이 그 부정의한 자리 그 불의한 현장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는 위치로 있다면 비껴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독자들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예장뉴스] 편집인이 개인적으로 무슨 원한도 관계도 감정도 없으면서 거론할 수밖에 없는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장뉴스]가 지향하는 공익과 정의,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피해자들의 편에 서려는 것을 일관되게 유지해 가려는 고민들로 볼 때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득히 실명을 사용하지 못하고 '보도부'라고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몇 차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되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실형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사심 없는 기자의 본심을 알게 된 분들이 취하해 주는 아량도 있었고 검찰이 나서서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결코 개인을 인신공격하여 넘어뜨리거나 망신을 주자는 저의를 가진 보도가 아니라 사랑으로 매를 드는 역할을 자처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한 대형교회의 고소가 있지만 그렇다고 위축되거나 번복하지 않는 것은 열렬히 그 글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또한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예장뉴스]의 독특한 글들은 한 마디로 "격문(檄文)"이라고 봅니다. 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주의를 부추기는 글이며, 시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특히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고 꾸짖기 위한 글'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격문'은 그렇게 그야말로 일필휘지(一筆揮之)! 한 호흡으로 내려써서 그대로 파발꾼의 손에 들려주거나 벽보로 게시한 뒤 그 글에 대하여 더 이상의 번복이나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그렇기에 격문 형식의 기사는 문법적으로 완성도를 갖추고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매끄러운 문장이 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사무실에서가 아니라 세상의 가쁜 호흡들이 있는 현장에서 길에서 차에서 실시간으로 올려대는 기사들이기 때문에 비문과 오탈자들이 보여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숲이 아니라 웅장한 산입니다. 독자들과 교회와 한국교회를 일깨워 인식의 폭을 넓히고 때로는 함께 분노하게 하고 그리고 개혁하도록 촉구하는 프락시스(praxis)를 수반한 글들이기에 그 자체로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간혹 자주 발견되는 오타들조차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곧 "글이 아닌 외침 소리"로 그대로 들려지도록 단 한 글자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자칫 글에 대한 우상화가 될 수 있는 위험도 있지만 말입니다. 요즘 들어 교열과 교정 작업을 하면서 공론화된 언론으로서 보여줘야 하는 문체나 문장 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하여 저 "일필!"을 둔하게 하고 "휘지!"하지 않고 지연시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법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말만 알아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 지방에서는 그 지역의 방언 곧 사투리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송이 인기가 있는 데 표준말(서울 말)로 교양화된 언어는 순화되고 젊잖은(젊지 않은!) 표현들이라 오히려 오늘의 온라인 모바일 세대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빙빙 돌리고 의도된 예의와 범절로 포장하는 문장이 아니라 직설적이며 때로는 "뭐지?"하는 해석이 필요한 언어와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의 독특성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글도 안 되니, 배워서 써" 하는 이런 비상식적인 말들은 글로써 말하고 있는 중심 가치를 듣기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숨기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장뉴스]의 "격문"들, 곧 "외침 소리"들은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기사들로 이번에는 어디가 틀렸나 하는 생각으로는 그 '특별한 글맛' 곧 그 속에 있는 뜨겁게 살아있는 정의에 대한 열망의 진정성을 영영 모르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겨자 씨 심기" 라는 가장 중요한 행동들
셋째는 어쩌면 한 사람의 독자로서 가장 부탁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 역시 그 동안 다른 기독교(신.구교)의 개혁 언론들을 통하여 많은 정보를 얻고 위안과 사고의 폭을 넓혀 왔습니다. 그러면서 무료로 얻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미안한 마음과 또는 이런 개혁 언론들에게 힘을 주고 격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몇 인터넷 신문에 많지는 않으나 자발적으로 <구독료>를 납부해 왔었습니다. 그리고 [예장뉴스]를 알게 되었고 이처럼 보다 시급한 우리 PCK 총회를 아프게 끌어 안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지역 기자'로 지내며 알게 된 분명한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결국 우리 [예장뉴스]는 몇몇 분들의 전적인 희생과 봉사로 이어갈 것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예장뉴스]의 사명과 방향으로 볼 때 금전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는 광고나 개인 또는 교회의 후원은 아마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호소 드립니다. 독자 제형 여러분!
[예장뉴스]가 끝까지 "독립 언론"으로 우리의 편에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십시오.

우리가 알다시피 오늘날 하나의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정치 권력과 금전 권력입니다. 정치적 권력에 대해서는 현재 [예장뉴스]를 지켜온 분들만으로도 충분히 안심할 부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만큼은 그분들의 굳은 결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일반 독자들, 개미들의 엄청난 힘을 모으는 일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고 또한 독자가 곧 주인인 언론이 진정한 언론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현재 [예장뉴스] 메인 화면에 있는 <후원> 배너를 편리하게 몇 번 누르는 것 만으로는 정기 후원금을 내는 후원 독자가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 편의조차 금융기관에 월 수십만 원의 사용료가 지불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장뉴스]의 독자들은 손가락으로 클릭만 하는 허약한 독자들이 아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예장뉴스]를 진정한 독립 언론, 진정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힘 있게 내주는 언론으로 키워주실 수 있습니다.

먼저 메인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예장뉴스를 후원하시면>이라는 배너를 클릭하시고, 바뀐 화면에서 <후원회원 기본 정보>와 <출금 정보>들을 적어 넣고 '보내기'를 눌러 후원하겠다는 사실을 우선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은행이나 농협, 우체국으로 달려 가시거나 또는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서 <매달 자동이체>를 신청해 주시는 적극적인 행동! 바로 그것이 우리 [예장뉴스] 독자들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진정한 참여입니다. 물론 비정기 후원금도 독자님의 이름을 적어서 계좌로 보내주시면 될 것입니다.

독자들의 '겨자씨' 후원이야말로 끝까지 독립 언론으로서 우리 PCK 교단을 보다 바르게 세워 나아가는 일에 이바지하려는 [예장뉴스]를 큰 나무로 성장하게 하고, 불편부당한 일들을 우리의 교계에서 점점 사라지게 함으로써 보다 모범적으로 총회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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