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살려야 모두가 산다(1) - 예장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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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화해 생명마을만들기
마을을 살려야 모두가 산다(1)"예장 마을 만들기 네트워크" 준비 모임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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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20  10: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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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살려야 모두가 산다(1)

◇ 글 올리는 순서

1. 예장 마을 만들기 네트워크(첫 모임)
2. 고양시 벽제 마을 “세겹줄교회연합모임” 연합 부흥회 - 5월 27-29(3일)
3. 치,화,생(PCK 100회 총회 주제) 이홍정 총장 강연 - 6월 14일(12시) 새롬교회 
4. 다 나와! 생명살림의 일꾼들!! - 100회 총회(청주 상당교회)에서의 만남을 준비하며

   
신동리 교회에 모인 예장 목회자들

여는 글
생명-마을-살림, 요즘 지자체나 시민운동의 화두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신학의 주제로도 낯설지 않은 주제들이다. 성서는 이 모든 것을 품고 있으며 지금도 그것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작년 진도 앞바다의 세월호 참사에서 실시간으로 보여 준 어이 없는 죽음을 목도한 가족들과 국민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은 우리 사회에  "생명존중" 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사회는 1960대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시대를 거쳐 왔고 이제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부당한 탄압이나 인권침해, 사회적 억압과 위험, 사고나 재해로부터의 안전과 생명살림으로 사회적 아젠다가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목회적으로도 이러한 생명이 공존하는 “마을”을 새롭게 봐야 한다는 논의들이 한참이다.

우리네 가정이나 국가경영도 예전에는 “살림”이라고 했다. 이 "살림살이" 는 "죽임"의 반대어로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살림”  실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살 수 있는 사람들만 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온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보 생명'과 '낱 생명'이 공존해야 한다. 이제는 교회가 마을을 “살림살이" 할 때다. 마침 우리 총회에서도 앞으로 10년(2014-2024) 간 치유, 화해, 생명(치,화,생)을 주제로 한 목회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WCC 제 10차 한국총회의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로 마무리한 바 있다. 이 주제의 압축적 비전인 치,화,생은 인류가 사는 길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세상을 전인적으로 구원하는 주제로 이 목표를 정확히 하면 갈 길이 보인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 우리 총회는 지난 2월 26일 대전신학대학교에서 총회 에큐메니칼정책협의회(위원장, 부총회장 채영남 목사)로 모였고 다음과 같은 연구내용들을 발표한 바 있다. 정원범 교수(대전신학대학)는  "치유하고 화해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토대로 전 지구적인 생명 위기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운동이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사의 관점에서 볼 때 WCC 제10차 부산총회의 '함께 정의와 평화의 순례를 떠납시다' 라는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며 동시에 아테네 세계선교대회의 문서에서 신학적 통찰력의 도움을 받고 있는 운동"이라고 소개하였다.

또 황홍렬 교수(부산장신대학)도 "WCC는 폭력극복운동10년을 정리하며 평화주의와 거룩한 전쟁의 대안으로 정의로운 평화를 제시했으며, 경제정의 또한 화해와 평화를 위한 필수적 요소로 보았다"고 분석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 공동체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의 상호 변형이 일어나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때 화해가 일어난다"며 "용서와 화해는 세례, 성만찬, 기도와 예배를 통해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회 자체가 치유와 화해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생명
신학적인 관점에서도 보면 인간은 출현부터 목적있는 존재로 출발한다.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무위도식하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동산 돌봄지기”라는 사명을 받는다.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동산의 것을 먹고 마시는 지속가능한 "생명 담지자"였던 것이다. 그후  "땅에 충만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명에 대한 위임령을 자연 정복의 명령으로 둔갑시킨 서구 제국주의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경제논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생명의 어원드을 살펴보면 먼저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임(hayim)은 살아있는 상태-죽음에 반대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삶과 일생을 의미한다. 네쉬피(nefesh)도 인간을 활동시키는 생명의 핵심. 인간의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생명. 호흡으로  창세 2, 7 :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호흡/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공동번역)”고 했는 데  Lebensatmen: 생명체(nefesh haya) 영혼: 생명의 숨. 생명이게 하는 힘이다.

또 '생명의 숨'은 호흡을 가리키는 말 곧 루아흐(ruah)로 "하나님의 숨"이며 "영" 이다. 생명체를 생명체이게 하는 힘/능력이다. (창 45, 27; 삼상 30, 12 등) 그와 함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 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 숨을 불어 넣어 너희를 살리면...  뼈와 살이 살아날 것이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나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내어 너희로 하여금 ...살게 하리라. 그제야 너희는 나 야훼가 한번 선언한 것을 그대로 이루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야훼가 하는 말이다."(에제 37, 5-6, 8-10, 14)

신약의 프뉴마(pneuma)는 "영"으로 하느님의 숨, 바람, 성령인데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요한 3,8) 여기에서 바람은 무엇일까. 성령, 힘, 생명의 힘이다. 또 조에(zoe) 도 생명력, 구원 받은 참생명으로 사이키(psyche)도 현세의 생명, 목숨. 비오스(bios)도 생명의 생존이나 인간의 일생/삶의 시간 등을 뜻한다. 이렇게 성서의 핵심적 가르침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구원(하느님 나라)은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영원한 생명(zoe)를 얻는 것(마태 19,16-26; 막 10, 17-27) 으로, 요한, 14, 6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1, 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 35) 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의 목회는 교회당을 짓고 연합회를 하고 해외선교나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살리고 보전하며 회복하라고 하신다.

살림
"녹색평론" 창간호에서 김종철 교수는 오늘의 생명의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우리들 각자가 자기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 '더 큰 존재'를 하늘(天)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보다 더 큰 존재를 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의식하면서 동시에 공경하는 생명문화로의 회복이라고 말한바 있다.

이 생명의 본체는 사람(人)과 하늘(天) 그리고 땅(地)이 화해하고 공생 공존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세계를 보는 전통적인 관점인 삼재론(三才論)은 해월 선생의 삼경론(三敬論)에서 나왔는 데 이 삼경론(三敬論)은 삼재의 천-지-인(天-地-人)을 잘 모시고 공경하자는 생명운동의 윤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천지인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온 세상”이 이런 의미를 더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표현이라고 미국의 UCLA대학의 옥성득 교수가 말한 바 있다.

경천(敬天)
현대사회는 천-지-인이 모두 심하게 훼손되고 파괴되어 왔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영적(靈的) 세계, 만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천(天)은 서구 근대 세계를 만들어냈던 이성(理性) 중심, 그리고 물질 중심․경제 중심의 사회가 정착하면서 철저하게 무시 되었다. 신(神)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천(天)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만 축소되어 버렸는 데 이 축소된 종교의 영역마저도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영적 세계의 파괴는 인간성의 파괴, 소외로 나타나며 정신적 아노미와 직결된다. 물질 중심의 현대 사회에 정신병이 가장 만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행복지수가 도리어 월등히 높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원초적이고 비문명적이며 구 시대의 종교적 삶을 살아가는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에게서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하늘에 대한 공경은 민중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파종 때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추수의 기쁨을 하늘에 고했던 것도 모두 하늘에 대한 공경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인간이 잘 나서 풍년이 되었다는 오만이 없었던 것이다. 우주만물의 근원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공경했던 것이기에 이 경천(敬天)은 생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윤리 덕목 중 하나이다.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사랑(敬天)과 이웃사랑(愛人)" 인 것이다.

경인(敬人)
생태주의나 녹색운동에서는 현대사회를 인간 중심의 사회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사회 혹은 산업문명이 지배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철저하게 도구화 되어 있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그저 생산이나 소비의 도구 또는 수단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물질의 유무로 하나의 사람이 평가되는 것이 현대사회이다. 돈이나 권력 등의 가치에 지배 받지 않고 그 사람이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삶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대안 교육이나 대안 공동체 운동이 일고 있는데 그와 같은 맥락으로 목회적 영역에서도 “대안 목회”가 대두되고 있다.

성장과 경쟁의 프레임에 갖힌 사회 속에서 교회나 목회마저 물질 숭배의 세속화에 찌들어 성서적 경인(敬人) 곧 '사람 존중'의 삶을 저버리고 모든 것을 대상화 또는 객체화시켜 자신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쓸려가고 있다. 생명살림운동이란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본질적으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개개의 생명을 꽃 피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그 모든 사람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이와 같이 자립적이고 자치적인 사람들의 그물(Web)로 공동체를 지향하는 일이다.

경물(敬物)
어린 시절, 우리의 어른들은 무엇이나 쉽게 버리는 일이 없었다. 쓰고 남은 종이나 비닐을 다시 쓰거나 물로 닦아 말려서 다른 용도로 쓰던 모습을 기억한다.  생명체가 없는 물건이라고  섣불리 다루지 않았다. 어루만지고 닦으며 정성을 들여 대하는 물건에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게 아끼고 소중히 다루고 손 때 묻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 소중한 골동품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다룬 물건에는 소중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물적 풍요가 넘치면서 우리는 수 많은 물건을 쉽게 쓰고 내버린다. 쉽게 구할 수 있기에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정성껏 다루지도 않는다. 세상에는 물건처럼 정보도, 사람도 흘러 넘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깊이 있는 관계는 없다. 사람이든 정보든 건성으로 대하기 십상이고, 사람도 정보도 의미와 감동은 커녕 책임을 질 필요도 없는 도구로만 여긴다. 물건처럼 사람도, 정보도 잠시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고 보는 것이다. 돈과 속도에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 같은 이런 우리의 모습은 바로 도시의 욕망이며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세기에서 생명과 살림을 몰아낸 주범이다.

옛 사람들이 썼던 소소한 것들에게서 보이는 손때 묻은 자취를 보면서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의 물건 하나의 사람 그리고 하나의 정보와의 만남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원초적 생명 감각이며 자연의 감각인 접촉이다. 접촉에는 삶의 의미, 감동, 무게, 책임 같은 것이 따라 다닌다. 들녘의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농부와의 만남과 접촉으로 결국 알곡이 영글게 된는 것이다. 벼와 작물을 돌보는 농부의 마음과 정성어린 손길이 교감하면서 한 해 농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네 옛 전통에서는 물건에도 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물건 하나라도 건성이나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따위의 미신적인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지만 이른바 과학이라는 ‘현대적 미신’이 가져온 오늘의 위기를 생각할 때, 전통적 사고가 얼마나 깊은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는가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경물(敬物)의 윤리가 바로 이러한 전통적 삶의 지혜를 이어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쓰고 버리는 시대’가 가져온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예장 생명 마을 만들기 네트워크

우리 PCK 교단 안에는 약 8천 5백여개의 교회와 300만 이상의 성도, 1만여 명 남짓하는 성직자가 있다. 그리고 이 교회들은 66개의 지역에서 노회라는 이름으로 편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이상 교회들의 현황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한 자료는 없는 것 같다. 있다면 상회비 금액을 기준으로 자립교회(지원교회)와 미자립교회(지원받는 교회) 정도로 나눈 것 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활발한 교통과 인구의 이동으로 도시와 농촌의 경계도 점점 무너지고 있다. 총회와 노회는 관리적 측면에서 지 교회들과 목사를 알고 있을 뿐, 그들의 지금 어떤 현실에 직면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그러는 동안 현장의 목회자들은 필요에 따라 자생적으로 주제나 이슈, 지리적 여건이나 공통의 관심을 주제로 한  모임들을 각 지역에서 그리고 전국적인 범위로 가져왔다. 그런 모임들이 중첩되고 중복되는 가운데 보다 새롭게 달라지고 시대적 상황에 맞게 좀더 집중하고 고민하며 함께 하는 목회자들의 첫 만남이 있었다.

   
충남노회 목회자들이 준비 중인 농촌 카페에서

지난 5월 19일(화) 홍성군 신동리 신동교회(오필승 목사)에서는 “예장 마을 만들기 네트워크”의  첫 번째 모임이었다. 서로 교감하는 전국의 목회자들은 30여 명이 되었지만 이 첫 모임에는 10여 명 남짓 참여하였다. 이 작은 모임이 오늘의 상황에 대단히 의미가 있는 것은 실패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이들이 모색하는 부활의 날개짓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서 희망을 일구어 내자는 것이다. 부자교회 잘 되는 교회를 부러워하고 평가하고 아쉬워 할 시간에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자신들의 마을에서 남은 자들로 희망을 노래하자는 것이다. 세상과 역사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바꾸고 내가 사는 마을을 먼저 바꾸어 보자는 모임이다. 스쳐가는 목회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들이 사는 땅의 의미들을 사랑하며 미자립과 가난의 쳇바퀴 속에서도 가난한 우리 모두를 품었고 먹이고 살렸던 마을속의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을 바라보며 거기서 남은 것들로 협동과 상생의 사역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마을(도시에 도전하는 동네목회)
마을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편리에 밀려난 우리들의 옛 고향이다. 마을은 '서로 살림'의 원형이었다. 예전의 마을은 우리 모두를 받아 주었고 먹여 살렸다. 서로 나누고 베풀며 공동체적인 두레의 삶을 산 곳이다. 그러나 이 마을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하여 밀려나고 해체된지 오래다. 그리고 도시는 경쟁과 소비, 야만적인 '서로 죽임'의 경쟁과 버려짐의 공간으로 정글화  되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 뒤안길은 비참하다. 대문과 마음을 닫고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밀어낸다. 가진 자는 풍요를 누리지만 없는 자는 조용히 숨죽인 채 묻혀서 살아간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마음을 숨기고 날카로운 눈으로 도시를 응시하며 자기 길을 가는 이들이 늘어간다.

이런 도시의 비애를 극복하도록 생명을 품어 모두가 함께 사는 마을로 바꾸는 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그런 실험과 도전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바로 여기 함께 모였다. 이것은 교회만이 아니다. 이미 “마을 만들기” 라는 화두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지 오래다. 그래서 예전의 '완장' 찬 마을 지도자, 동네 감시자, 관공서 끄나풀로만 여겨졌던 "마을 이장"이 새로운 개념으로 태어났다. 교수도 목사도 목회자 부인도 이장이 되는 시대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절박한 목회적 현장 속에서 맡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의 의식있는 1세대 농민 운동의 과제는 개별 지역에 대한 것보다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처하는 정치 경제적 투쟁에서 이후 세계화로 인한 WTO와  FTA 반대투쟁으로 다시 농산물 직거래와 농정 참가로 분화 되었는데 이제 3세대 농민/농촌운동 목회는 '농민적 삶으로의 동화'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 만들기' 전도사가 된 목사들
목회적으로 마을 만들기를 이론과 실천으로 시도하여 부상한 이는 부천 새롬교회과 이원돈 목사이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이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지식인 중심의 교회를 지역화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부천지역의 낙후된 약대동으로 이주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그리고 작지만 강하고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당 안으로 사람을 모으기 보다 교회당 밖으로 나아갔다.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분석하고 하나하나씩 끌어 안고 시작한 사역이 벌써 여럿이다. 처음에는 어린이 공부방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르신 돌보기” “작은 도시관” “할.수.다”(할머니들의 마을 방송국) ”꼽사리 영화제“ ”떡 카페 협동조합“ ”꼽이네 (청소년)밥차“ 등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이 목사가 주도권을 갖고 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그 일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앞장선다. 교인과 지역주민과 교회와 목회자들이 연대하고 협동하는 사역이기에 더욱 의미있다.

그가 관심 갖는 것은 한 사람의 교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소홀히 여기고 외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사람의 교인을 위하여만 시간과 마음을 내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우리는 한 사람 한사람을 전도하고 교인을 만들면 나중에 마을이 복음화 되고 전국 복음화가 된다는 일방적인 단순 성시화론에 빠져 있다. 세상, 사회, 도시는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인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라는 책에서 사회는 한 개인을 결코 도덕적으로 살도록 놔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개인의 복음화와 함께 사회의 복음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홍성군 장곡면 신동리의 오필승 이장 목사이다. 벌써 신동리교회에서 목회 13년 차인 그는 이미 민중-노동선교, 지역교회, 조선족교회 등을 거쳐서 이곳에 정착한 지 13년이 되었는데 농촌 목회자 이전에 먼저 마을 주민이 되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권고로 이장이 되었다. 홍성군 귀농지원센터를 조직하고 농촌마을 권역사업에 공모하여 "오누이(오이-누에-냉이) 마을" 협동 사업이 시작되는 등 그의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소금처럼 녹아드는 지도력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 일만해도 대단하다.

최근에는 농도 교류 활성화 정책 사업에 '신동리 마을 박물관 계획'으로 선정되어 공주대학교의 협력 하에 농촌에서 버려지고 있는 옛 물건들과 사라지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등이 하나의 역사적 의미들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라는 현실만 본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농촌을 새로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마을로 바꿀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마을을 목회하고 있다. 신동리 이장으로서 추진하고 있는 일 중 '냉이 작목반'을 조직하여 '주민 영농조합'을 만들어 이미 TV 방송국에서 여러 차례  방영 되었는데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마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마을로 활발하게 변화되고 있는 중이다.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와 도시는 제멋대로 가는 데 교회만 이 세상을 벗어나 저 세상만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복음이 아니다. 더구나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경쟁하여 승리를 쟁취하라고 하는 것은 차라리 악에 가깝다. 결코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문제는 이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대안도 없이 무한 경쟁 시대로 치닫는 세상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 자기 길에 빠져 있는 목회적 한계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도시의 삶이 각박한 것은 도시에서 살 준비가 덜 되었거나 안 된 사람들이 일으키는 문제다. 농촌이 피폐한 것은 그로한 도시로 사람들이 지금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현실을 붙들고 안타까워 할 때가 아니다.  한 사람의 교인에 매달려 그가 어디로 가건 붙잡아 두려고만 하고 이사를 가도 꼭 자기들 교회에 와야한다고 하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정신인지 심각하게 자문해야 한다.

목사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과 없어야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는 꼴찌 인생들의 꿈과 희망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차갑고 비정한 불야성의 도시만을 볼 것이 아니다. 거기서 견디며 살아가고 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런 목회적 경험과 도전을 가지고 신학적 사회학적으로 접목하여 이론적 틀의 완성을 시도한 이원돈 목사는 이미 논문 "지역 에큐메니즘(local ecumenism)에 기초한 생명망(web of life)목회"로 갈릴리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신동리 이장 오필승 목사는 자신의 마을 속에 뛰어들어 지역민과 마을 전체를 살리는 목회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현장을 이론화 하기 위하여 이들은 갈릴리신학원에서 2014년 2학기에 만났다. 

   
 


교회 마을을 품다!!

제 1회 고양동지역 마을을 품는 세미나
경기도 고양시, 화려한 일산 신도시의 그늘이 되고 만 고양동(벽제 지역)의 세 교회의 놀라운 사역 또한 주목해야 하는 데 오는 2015년 5월 27일~29일(수~금) 저녁 7시 30분~9시까지, 생수교회당(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7-2)에서 이원돈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복음으로 마을을 살리는 교회”라는 주제로 연합 생명부흥회를 연다.

고양동 지역의 작은 교회들이 모임인 “세겹줄교회연합모임”은 현재 고양벧엘교회(이상연 목사,010-2445-9749) + 생수교회(나기수 목사,010-2993-9282) + 에덴정원교회(정진훈 목사,010-8778-1995)가 정진훈 목사의 제안으로 연합을 이루어 '마을 살리기' 지역사회 선교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모범적인 자발적 지역 에큐 모임이다. 이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는 교회가 되고자 연합하여 작은 교회의 한계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2년전부터 청솔노인대학을 시작으로 지역 내의 다양한 봉사 활동과 행복한 고양동 만들기라는 마을공동체사업을 기획하고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근의 꿈마을 공동체 대표로서 벽제 벧엘교회를 개척 담임하면서 특별하게도 고양시와 함께 마을 살리기 운동을 펼치면서 자신의 소명을 '마을 살리기 운동 전도사'라고 밝히는 송기섭 목사의 마을 살리기 활동 또한 매우 돋보인다. 고양시에서 송 목사의 역할과 위치는 이미 한 교회의 목회자라는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다소 '기독교 편향'이라는 우려를 들을까 조심스러울 정도로 활발하며 고양시 마을 살리기 운동의 중심에 있다.

'예장 마을 만들기 네트워크'의 향후 전망
신동교회당에서의 모임을 정리하면서 인근 보령시 천북면의 시온들꽃교회 김영진 목사와 인근의 목회자들이 준비 중인 마을 카페로 이동하였다. 언젠가 다시 집중 보도하겠지만 천북면 시온교회(들꽃마당시온교회, 010-4631-3300)와 인근 농촌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의 작은 교회에 부임하여 27년째 목회 중인 김영진 목사의 정성과 수고가 곳곳에 묻어나는 곳이다. 거쳐가는 목회지를 머물러 희망을 꽃 피우는 목회지로 바꿔낸 소중한 현장이다. 이미 지역사회의 축제로 발전하고 있는 “들꽃 마당 축제”는 시온교회에서 시작하여 한 해 2천 명이 몰려드는 농촌마을 문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마을과의 연대와 상생, 폐교 위기에 있던 지역 초등학교를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자천, 피아노를 지도하는 사모와 함께 세계적인 천재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을 초청한 어린이 음악회 등으로 유명해졌고 그 후속 활동들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김영진 목사와 인근 목회자들이 꾸미고 있는 카페 내부

시온교회의 장로가 교회 인근에 평생을 가꾸어 온 숲이 김영진 목사의 기획으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신죽리 수목원'으로 탈바꿈하였는데 유명한 들꽃마당축제(서해안 고속도로, 광천IC에서 10분 거리)가 열리는 곳이다. 김 목사는 그 숲속에 실비를 출자하여 커피 전문 카페와 농촌교회에서 생산하는 농산물 직판장을  내자고 문익수 목사 등 10여 명의 충남노회의 목회자들에게 제안하였는데 이에 의기투합, 목사들이 직접 노동과 목수 기술을 동원하여 축사를 헐어내고 카페를 꾸미는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소박한 동물농장과 다육 식물원 등을 꾸며 보다 다양한 기독교 체험 관광의 한 모델이 되는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교회 밖으로 나와 교회 보다 더 큰 세상과 마을을 품어 안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신 개념 목회다. 김 목사는 주장한다. "목회자든 청년이든 농촌에 빨리오면 올수록 그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 확률이 높다. 일할 수 있을 때 와야 한다. 농촌은 노후를 보내는 곳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 일 하는 곳, 새로운 일을 만드는 기회의 땅이다."

이번에 모인 이들을 분류하면 도시형. 농촌형. 도농복합형, 공유경제 커뮤니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 다양한 유형 별 현장 활동들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었다. 이들이 눈물과 땀이 어린 자신들의 사역을 내놓고 공유하며 학습하는 소통을 통하여 목회와 지역사회에 접목시키는 단초를 열게 된 것이다. 이 모임의 공동 준비위원장으로 오필승 목사와 이원돈 목사 선임하였으며 몇 차례의 모임을 더 가진 후 올해 9월 중순, 청주 상당교회당에서 열리는 제 100회 총회 장소에 “생명과 살림, 마을 살리기” 사역을 하고 있는 전국의 사역 현장들 곧 명실상부 생명목회의 현장들을 모아 보기로 하였다.

또 종교개혁주간을 전후하여 장신대에서 생명과 살림의 목회를 지향하는 전국 목회자 모임를 갖자는 의견도 나왔다. 오늘날 사역지는 적어지는 데 신학생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누군가는 좋아할 일이지만 누군가는 우울하다.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앞으로의 비전과 사역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선배들의 다양한 새로운 시대의 목회 사역들을 소개하고 그 지평을 여는 일에 함께 고민해 가는 일도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5월 28일(목) 오후 2시, 고양시 세겹줄교회연합 생명부흥회 직전에 이러한 주제에 관심있는 이들과 함께 고양시의 집회 장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란다.(연락처: 오필승 목사, 010-5519-0129) 그리고 6월 14일(주일) 오후 2시에 있을 부천새롬교회의 창립 29주년 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함께 모이기로 하였다. 이 창립 기념 행사에는 총회 사무총장 이홍정 목사의 강연과 장신대 전 학장 박창환 목사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다. (연락처: 이원돈 목사(010-5324-9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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