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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해방신학의 선구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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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01  1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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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의 선구자들 2

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5. 후안 루이스 세군도(Juan Luis Segundo, 1925-96) 

후안 루이스 세군도는 우루과이 출신 예수회 소속의 신부다. 그는 1955년 예수회 소속 신부로 서품을 받고 우루과이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1961년 몬테비데오에서 학자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는 강연을 통하여 줄기차게 경제, 사회,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신앙의 이해를 현실화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1970년 이반 일리히가 주최한 브라질 페트로폴리스(Petropolis) 모임을 통하여 뒷날 해방신학의 기초를 놓는 여러 라틴아메리카 신학자와 교류를 한다. 그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와 더불어 해방신학 태동의 신학적 기초를 만든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주류 신학에 대한 그의 비판은 몇 단계를 거치는데 단계가 지날수록 그의 비판의 깊이는 더해갔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신학이 없는 교회라고 비판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이 지역에서 신학의 소외 현상을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지역의 교회가 대다수의 민중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학과 신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교회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상황의 지속은 라틴아메리카 교회로 하여금 구조적으로 자신의 신학을 갖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그의 주류 신학에 대한 비판은 신학의 사후 구원 중심의 신학을 향한 것이었다, 그에게 구원은 정치적 해방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군도는 계속해서 주류 신학의 이념화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그는 신학의 과제는 주류 신학 안에서 발견되는 지배계급의 경험과 생각을 대변하는 특정한 형태로 이념화되어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탈이념화 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류 신학의 신앙의 이념화에 대한 비판은 세군도의 해방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로 등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군도에게 있어서 신학의 전개과정에서 해방적 방법론의 채택은 필수적이다.

6. 우고 아스만(Hugo Assmann, 브라질, 1993-2008)

우고 아스만의 신학에서는 다른 신학자와 달리 주류 신학에 대한 조직적인 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그것은 그의 모든 저술을 통해 꾸준히 나타난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저서 "해방의 실천으로부터의 신학"에서 철학에 기초한 신학의 전개를 벗어나서 비판적 분석 도구로서의 사회학을 원용하는 신학의 전개를 주장한다.

그는 주류 신학이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혁명적인 헌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학이었음을 비판하면서 주류 신학의 정치적 중립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립인 신학은 체제 현상유지적이 되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비인간적이며 억압적이고 인권이 침해당하는 현실 정치상황의 동조자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유일하고 정당한 신학은 해방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혁명에 헌신하는 신학이다. 이 신학은 우리로 하여금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게 한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신앙은 이론과 실천의 연합에서부터 출발한다.

우고 아스만은 무엇보다도 신학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제의 비판으로 우리에게 해방신학의 광범위한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그의 돈의 우상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신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경제비판을 통해 신에 대한 질문은 그의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진정성에 대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신이 존재하고 있느냐의 질문이 아니라 어떤 신을 믿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7. 혼 소브리노(Jon Sobrino, 스페인, 1938- )

   
▲ 혼 소브리노.(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바스크 출신의 가족 배경이 있는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1938년 태어난다. 그는 18살에 예수회에 입회하고 얼마 뒤 엘살바도르로 이주한다. 그 뒤 그는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서 공학을 그리고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한다. 유학을 마친 그는 엘살바도르로 돌아와서 호세 시메온 카냐 중미 대학(UCA) 창립에 관여하고 그 대학에서 교수로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는 1980년 암살된 로메로 대주교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으며 그를 도와 함께 사역하기도 했다.

1989년 그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UCA 안의 숙소에서 그의 동료 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 등 6명의 예수회 동료들과 한 수녀, 그리고 숙소 여성 노동자의 15살 딸 등 모두 8명이 엘살바도르 정부가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서 살해된 사건이다. 소브리노는 마침 당시 타이의 강연회 강사로 초청되어 가 있던 관계로 가까스로 죽음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소브리노는 특히 해방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그리고 해방의 영성에서 탁월함을 보이며 신학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해방신학적 방법론으로 인하여 2006년 11월 당시 교종 베네딕토 16세가 허락한, 신앙교리성의 경고서한을 전달받기도 한다. 이 서한에서 소브리노의 그리스도론과 그와 관련된 신학방법론이 교회의 교리와 어긋난다는 것을 경고받았다. 특히 그의 저서 "해방자 예수: 해방신학으로 본 역사의 예수"(최근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김근수 역)와 "예수의 신앙:피해자의 입장에서" 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바티칸은 소브리노의 저서들이 역사적 예수에 집중하면서 예수의 인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의 신성을 약화시킴으로서 예수를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8. 호세 미게스 보니노(Jose Miguez Bonino, 아르헨티나, 1924-2012)

호세 미게스 보니노는 1924년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스페인 출신 아버지와 이탈리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신학대학(현재 이세뎃, ISEDET)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1960년 뉴욕 유니온에서 에큐메니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 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돌아와서 그의 모교인 이세뎃에서 교수로서 그리고 학장으로서 재직하면서 중앙 감리교회 목사로서 목회를 하기도 한다. 그는 개신교 학자로서 거의 유일하게 해방신학의 선구자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개신교인으로는 유일하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스승이기도 한 미게스는 한국에서 자신의 본래 성인 미게스 보다는 보니노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가 부모 성을 나란히 사용하는 풍습때문에 기록된 그의 이름의 순서 때문이다. 마지막에 있는 성 보니노는 그의 어머니의 성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그것이 그의 성으로 보였던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오히려 미게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창시자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 미게스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인권보호에 기반을 둔 정치적 윤리를 주장한다. 그는 해방신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영적, 윤리적 그리고 사회적 헌신을 요구하는 성령의 부름에 대한 개신교와 가톨릭의 젊은이들의 응답이다. 그것은 새로운 통전적 복음을 향한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미게스는 무엇보다도 성서와 신앙에 대한 개인적 해석을 넘어서 공동체적 해석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에게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신학이 말하는 현실은 무엇인가?"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의 현장은 신학의 진정성을 결정하는 요소다. 미게스에게 신학의 현장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현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이 당면하고 매일매일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신학의 현장이며 따라서 신학은 현장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게스의 해방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전과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해설이라는 면에서 늘 도전적인 과제를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늘 현실을 향한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 미게스는 가난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의 현실에서 평생을 통하여 도전과 헌신을 계속해 온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하느님 나라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부름이다. 그것은 도전이며 선동이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 안에서 그 나라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느냐다"라는 자신의 말대로 살아간 진정한 해방신학자였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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