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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frica 방문기(교회와 신학)아프리카 흑인신학의 등장과 역사적 상황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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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31  0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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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frica 방문기(교회와 신학) 

1. 아프리카에 대한 서구 침탈과 고난의 역사
2. 아프리카 교회와 신학(저항과 동화)

3. 아프리카 기독교(선교)   
4. 아프리카의 희망과 미래  
  


아프리카 흑인신학의 등장과 역사적 상황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침략하면서 아프리카에는 기독교가 새로 태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생소한 종교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AD 150-200년대부터 기독교가 시작하여 AD 600-700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아프리카에서 변화가 심한 가운데 어느 정도 활성화 되고 있었다.   그 후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국가들이 대대적으로 아프리카를 침략함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으며 쇠퇴하는 비운에 처해 있으면서 수 세기 동안 기독교의 암흑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15-16세기에 이르러서 유럽의 백인 국가들이 아프리카 식민지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기독교가 직접 결탁되면서 아프리카 전역에 기독교가 또 다시 확장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매우 중요한 종교적 세력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서구문화와 기독교가 혼합된 정치세력이 되어 식민통치를 했다.

지금도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기독교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의 7-80%가 기독교라고 볼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뿌리를 내렸다고는 할 수 없다. 예식과 전통은 기독교적인 것을 채용하지만 완전히 토착화된 이질적인 기독교로 부터 해서 서구보다 더한 번영신학을 추종하는 교회 주술과 무속에 기반한 교회로 부터 그야말로 기독교 백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초원의 자유하는 짐승과 같은 영혼을 소유한 아프리카인의 심성으로 찬양과 춤 기도로 엑시타시를 쉽게 경험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서구기독교를 충실히 답습하여 동화되는 영혼구원형의 교회이다. 특히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을 대상으로 남아공의 장작성전은 가난한 흑인 슬럼가에는 여김없이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소망이 없는 빈곤한 흑인들에게 축복과 천국을 팔아서 헌금을 거두고 여유가 생기면 탠트를 걷고 자리를 옮기는 그야말로 마켓형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한인 선교사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우리교단 선교사들은 그런 분야에 사역하는 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아프리카를 다시 망치고 죽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아프리카에서 제3세계 독립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하여 1960년을 이른바 “아프리카 독립의 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국가들이 신생국으로 독립을 쟁취했다. 서구의 지배이데올로기에서부터 독립된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아프리카 흑인신학을 형성하게 됐다. 자유해방과 동시에 서구의 기독교 전통과 아프리카의 토착문화적 전통을 접목시키는 토착화 역할을 아프리카 흑인신학이 솔선수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서구의 기독교 신학은 주로 백인문화의 지배적 관점에서만 신학의 전통이 형성되었으며 다른 문화권에 대하여 기독교의 강압적인 정복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특히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통치에 대하여 서구의 신학은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사실화하는 지배신학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대로 들어서면서 아프리카의 각 나라들이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주권국가로 독립을 했다.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에 따라서 아프리카 교회에 흑인신학이 등장하였으며 민중의 고난과 인종차별, 억압과 착취 등으로부터 해방을 주제로 하는 아프리카 해방신학이 발전하게 됐다. 아프리카 해방신학은 역사적으로 고대를 회상하면서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했던 자랑스러운 AD 초창기의 신학자들, 어거스틴, 클레멘스, 오리겐 등을 상기하면서 아프리카 신학의 정체성 회복을 일깨우게 된 것 이었다.

오늘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은 식민주의 사관에 의한 서구에 예속된 신학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개성, 흑인정신, 전통적 아프리카의 특징을 유감없이 반영하는 고유한 기독교 흑인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동시에 아직까지도 서구열강들에 의하여 계속되고 있는 백인지배와 군사독재정부에 대하여 저항하고 있다.

아직까지 서구 열강 등의 지배를 받으며 착취를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 나라들을 위하여 아프리카 해방신학은 그 나라들의 대변인의 역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백인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와 종교적 관념들은 무조건 거부하고 죄악시 하면서 서구의 문화와 기독교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근대화는 곧 서구화이고 그것은 기독교라고 아프리카인들에게 강요했다. 서구 스타일의 복장, 음악, 건축물, 서구화된 사고방식들을 그들에게 ‘선진 문화’이며 ‘기독교적 문화’라 가르쳤던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말과 시범적 행동을 통해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문화적으로 ‘할례’를 받아야만 했다. 그것은 아프리카인들에게 더없이 고통스러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 해방신학은 흑인 문화와 전통종교의 가치에 대하여 조금도 소홀함 없이 기독교 신학과 접목하여 아프리카 종교와 기독교 신앙의 연속성을 주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흑인문화의 전통적인 토속종교와 기독교와의 접목을 통한 아프리카 흑인신학의 기초의 중요성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1. 아프리카 신학의 주요경향
아프리카 신학의 주요경향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경향은 아프리카전통종교의 신학으로서 이 신학경향은 아프리카의 전통적 종교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와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역속성을 살리려는 신학적 시도이다. 이는 그리스도교 이전에 아프리카 민족들이 가졌던 그나름의 신체험에 관한 해석을 신학의 전이해로서 중시한다. 전통종교의 신학은 전통적 종교체험을 반성적으로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신학적 의미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이다. 존 음비티(John,Mbiti)는 이 신학경향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두번째 경향은 아프리카 신학이다. 아프리카 전통종교의 신학이 그리스도교보다 전통종교에 근거를 둔 신학이라면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에 소재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으로 집약된다. 아프리카 신학은 성문화된 신학서적에 의존해 전개되는 신학이다. 특히 아프리카 신학은 신학의 전개를 위해 아프리카의 전통종교, 성서, 아프리카 독립교회, 그리고 AACC등의 자료로부터 신학적 통찰을 이끌어 내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는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신학 경향은 1966년 아프리카 신학협의회가 구성된 이후 형성, 발전되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의 흑인신학경향이 있다. 남아프리카의 흑인신학이라는 용어는 북미의 흑인신학자들에게서 차용한 것이다. 미국의 흑인신학자 제임스콘이 1969년의 첫번째 저서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이용어가 널리 받아질 무렵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신학의 중심적인 내용은 이미 형성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소수 백인 중심의 인종차별주의정책에 대항하여 흑인신학이 주창된 것이다. 이흑인 신학은 다른 아프리카 신학보다 정치해방적 요소가 강하다. 주요한 신학자로는 성공회주교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와 알란 보삭(Allan Boesak)이 있다.

아프리카의 토착문화의 연속성을 가지는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은 단순히 종교로서의 연속이 아 니라 인간의 삶으로서의 연결이며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과거의 역사에 있어서의 경험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해방신학은 지금까지 서구 기독교가 일방적으로 전해준 기독교에 대하여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프리카의 해방신학은 서구 문명시대 이전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기독교의 종교적 본래의 전통을 독자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흑인신학의 업적이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은 제3세계 해방신학의 동향에 대하여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마침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사역하는 이원재 선교사(아프리카 동부신학교 교수 사역) 를 만나서 그가 20146 주안대학원 대학교에서 제출하여 출판된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것이 소중한 성과이다. 1차 자료들은 원전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겸양의 말을 하였지만 아떤 식으로든 자신의 현장에 대하여 학문적 구성을 한 것에서 그 의미를 두고 싶다.
   
 

현장 선교사들이 사역의 성과를 후원교회의 요구 때문에 보고 거리에 의미를 두워야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안된다.  지역으로 파송받은 선교사는 그 곳의 전문가가 되야 한다. 그 지역의 교회의 역사와 신학, 신학자에 대하여 정리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이원재 선교사의 시도는 매우 의미있는 것으로 모든 선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타문화원 선교사들중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민중들의 요구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선교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아직도 지난 서구가 실패하여 반성한 선교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아쉬움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초기 선교사들의 사역은 우선은 그 나라의 언어나 문화 역사에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주요 신학자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의 발생은 원시종교에 대한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어떤 해방신학에 대한 반대자들은 해방신학이 원시종교의 전통을 기독교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하고 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다음 세 가지 주장으로 단호하다.

첫째, 서구 백인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아프리카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주입시켰다. 둘째, 하지만 아프리카의 원시종교의 귀중한 많은 요소들이 여전히 아프리카 사람들의 심성속이 살아 있다. 셋째, 그러므로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은 서구 백인신학에 예속되지 않고 우리들 자신만을 위한 신학방법을 고안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심성의 방향감각으로 충실하게 전개할 것이다.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종교적 유산을 진지하게 고수하면서 동시에 아프리카인들의 기독교적 실천적인 경험을 나름대로 현실로 수용하는 방법적 신학의 길을 모색하는 것을 주장한다. 지면상 제한으로 대표적 아프리카 해방신학자 4명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존 음비티 (John Ubiti 1931-2019)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 식민지로 자리잡은 서구의 침략적인 기독교는 반드시 배격하고 아프리카에 토착화된 기독교를 새로 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음비티는 케냐 출신의 신학자로서 아프리카 해방신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능한 흑인 신학자이다.

아프리카의 기독교는 수 세기 동안 선교사들이 주동함으로 아프리카인들은 교회에서 이방인들이 되어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프리카인들이 교회에서 자기집처럼 마음 편하게 눈물도 흘리고 기뻐 노래와 춤도 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 해방신학의 기본적인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음비티는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성을 무시한 무지와 교만을 폭로했다.
   
 
알란 보삭(Allan Boesak, 1945-): 알란 보삭은 남아프리카의 행동파 해방신학자로서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회장으로 활약했다.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과감한 정의로운 혁명정신 없이는 철폐시킬 수 없으며 감상주의로는 백인들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를 철폐시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란 보삭 박사는 아프리카 흑인 해방신학을 규정하고 형성하는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그는 우선 미국의 흑인 해방신학자 제임스 콘의 신학적 방법론을 그대로 본받아 아프리카의 상황과 연결시키고 확대와 재해석하여 추진함으로써 아프리카에 작용되는 흑인신학을 전개했다. 

알란 보삭이 주장하는 아프리카 해방신학의 방법론은 “토착”이라는 언어 사용보다는 “상황”이라는 단어가 오늘의 현실에서 아프리카 해방신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해방신학은 과거의 전통을 중요시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언자적인 미래지향으로 오늘의 사회에서 인간화의 변혁의 개혁적인 역할을 감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존 그루시(John Gruchy, 1939-): 아프리카의 흑인 해방신학자들 중에서 유일한 학자적 위치에서 아프리카의 해방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출판했으며 또 많은 출판물의 편집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 <자유케 하는 개혁신학> 은 한국어로 변역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흑인 해방운동과 민주화 과정에 대하여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예리하고 창의적인 분석과 비평을 한다. 특히 백인위주의 남아프리카 기독교의 모호성의 근원을 비판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면서 아프리카 흑인해방과 민주화 과정에서 학문적이며 실질적인 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흑인의 완전한 해방을 위하여 개혁신학을 긴요한 방법론으로 제시하면서 선지자적 역할과 능동적인 대화를 통한 해방신학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존 그루시 박사는 단순히 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을 반대하는 해방신학만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백인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기독교의 개혁의 필요성의 과제에 대하여도 역시 상황적 변혁에 대한 해석까지를 담고 있다.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1931-): 투투 대주교는 1961년에 성공회의 사제가 됐고 1980년에 남아공 교회협의회가 일으킨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주도했으며 1994년에는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84년에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투투는 남아공의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의 의상을 입고 아프리카의 인종의 언어로 말을 해야 하며 아프리카 문화의 정체성을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투는 남아공의 민족주의자 넬슨 만델라의 석방을 위하여 선두에서 투쟁함으로써 백인정권으로부터 “공산주의 선동자”, “쓸모없는 성직자”라는 모략에 시달리기도 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34&contents_id=113943(데스몬드 투투 주교)

   
* 케이프타운에 있는 남아공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동상. 왼쪽부터 앨버트 루툴리, 데스몬드 투투, 데 클레르크, 넬슨 만델라. <출처: (cc) flowcomm at Flickr.com>
1981년에 투투는 노동조합을 창립하는데 공헌했고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한 흑인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는데 항의하면서 교회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구열강의 다국적기업들의 탐욕으로 인하여 아프리카대륙의 민중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에 대하여 항의했다. 백인제국주의가 탐욕적 기업가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해 주기 때문이라고 항의했다.

아프리카 신학 선언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서구 세계의 식민통치로부터 금세기 중엽 이래 해방된 대륙이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은 도처에서 학살과 폭동, 내전에 시달리고 있고, 여전히 기아와 질병의 늪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70% 이상의 문맹자를 가지고 있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낙후된 상태에 처해 있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 대륙을 '제4세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1. 아프리카의 그리스도 교회와 신학은 서구인의 지배로부터 아프리카 대륙이 해방된 이후에도 난국은 계속되고 있으나, 자신의 주체성을 점차 강력하게 의식하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는 서구 선교사들의 섭정으로부터 벗어나 신앙의 문제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1977년 가나의 악크라(Accra)에서 개최되었던 제3세계 신학자들의 범아프리카 회의는 아프리카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고유 아프리카 신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아프리카 신학이 완성된 면모를 드러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재(實在)의 이해와 신학 주제에의 접근 양식에서 탈서구식 경향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서구 신학은 전통적으로 종교와 세상사를 구분 내지는 분리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인간의 삶 자체는 종교적이고 세상적인 2개의 범주로 분리시킬 수 없는 단일성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서의 인간의 역사(歷史)는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세상적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언어에는 '종교'(宗敎, Religion)라는 고유한 말이 없다고 한다. 예컨대 동아프리카에서 종교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dim'이라는 단어는 아랍 세계로부터 유입된 말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종교는 모든 삶의 영역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종교적 삶을 전통적인 아프리카 유산의 개별 요소로서 따로 분리시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전통 사회에서 아프리카인이란 삶을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종교적 인간임을 의미할 정도이다. 삶을 종교적인 것과 세상적인 범주로 분리시키기를 거부하는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종교자산과 복음을 조화시킬 수 있으므로 아프리카 세계권 밖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이해토록 하는 데 기여하리라고 본다.

2. 현대의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전통 유산과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이들이 과거에로의 회귀를 주장하지는 않으나, 오늘날 아프리카의 현실 속에서 대하게 되는 전통적 유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한다. 선교 교회들은 서구 신학의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아프리카 현지에서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였다.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종교 문제들에 대해 만족할만한 해결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물음들은 주로 전통적인 아프리카 종교들로부터 제기되지만, 이 아프리카 전통으로부터 주어지는 해답들이 모든 인간을 풍요케 하는 영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라는 맥락 안에서 전개되는 생생한 그리스도교 신학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아프리카 종교들이 지니는 가치들을 '복음을 위한 준비'라고 보지만 이 종교들의 신앙 내용과 실천들이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을 풍요케 하는 데 기여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
   
                  * 나이로비 소재 AACC본부에서 부 총무와 대화를 나눈 후

아프리카 신학자들도 '해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북미의 '흑인신학'의 취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들은 식민주의하에서 억압과 착취 등 온갖 수모를 체험하였다. 아프리카인들은 현재에 와서도 신식민주의가 작용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신학에서 말하는 해방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차원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그 이상의 실재를 내포하고 있다.

전통적 아프리카 종교들은 악의 문제를 깊게 취급한다. 마법(魔法)에 대한 공포, 조상(祖上)의 영(靈)들과의 바른 관계, 한발(旱魃), 불행, 일상적 비극 등의 문제는 전통적 아프리카 종교의 주요 주제들이다. 종교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악의 방향을 역전시켜 불행을 행복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프리카 신학은 앞에서 열거한 갖가지 악의 세력들로부터 아프리카인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구원으로 보고 있다. 이에 억압적인 정치와 사회-경제적 체제로부터의 해방이 첨가된다. 서구 신학에서 강조된 죄, 다분히 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거론되는 죄로부터의 해방이 무시된 것은 아니나 절대적 의미를 더 이상 지니지 못하고 있다.

3. 오늘날 아프리카 신학자들은 이 대륙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나름대로 보편적인 그리스도 신학을 정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전통적인 서구 신학의 일방성을 의식하고 독자적인 신학 사상을 정립코자 하면서도, 자세면에서 경직성보다 유연성을 보다 더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바람직한 신학 사상 형성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1975년에 WCC는 제 5차 총회를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연다. 주제는 '그리스도는 하나 되게 하시고 자유 되게 하신다' 라는 였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해방자’이면서 ‘화해자’라는 양쪽 측면을 다 강조하고 있다. 이 시기 WCC는 생태학적 위기와 전쟁무기 생산과 무역경쟁 등에 따른 세계문제를 다루었다. 앞으로 교회가 추구해야 할 윤리적인 인류사회는 정의롭고, 민중들이 참여할 수 있고, 생태적으로 '지탱가능한 사회'(JPSS : Just, Participant, Sustainable Society)라고 밝혔다.

아프리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서구 세계의 식민통치로부터 금세기 중엽 이래 해방된 대륙이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은 도처에서 학살과 폭동, 내전에 시달리고 있고, 여전히 기아와 질병의 늪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70% 이상의 문맹자를 가지고 있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낙후된 상태에 처해 있기에, 일부 학자들은 이 대륙을 '제4세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첫째 아프리카 전통종교의 신학으로서 아프리카의 전통적 종교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아프리카인들의 종교와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역속성을 살리려는 신학적 시도이다. 이는 그리스도교 이전에 아프리카 민족들이 가졌던 그 나름의 신체험에 관한 해석을 신학의 전 이해로서 중시한다. 전통종교의 신학은 전통적 종교체험을 반성과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신학적 의미를 확대해 나가는 방법이다. 존 음비티(John,Mbiti)는 이 신학경향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1990년 연세대학교에 열린 열린 wcc JPIC 대회에 참석차 한국에 온바 있다

두번째 아프리카 전통종교의 신학이 그리스도교보다 전통종교에 근거를 둔 신학이라면 아프리카 신학은 아프리카에 소재한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으로 집약된다. 아프리카 신학은 성문화된 신학서적에 의존해 전개되는 신학이다. 특히 아프리카 신학은 신학의 전개를 위해 아프리카의 전통종교, 성서,아프리카 독립교회, 그리고 AACC등의 자료로부터 신학적 통찰을 이끌어 내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는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이 신학 경향은 1966년 아프리카 신학협의회가 구성된 이후 형성,발전되었다.

인종차별의 고착화와 인종차별저항운동
1945년이후 아파트헤이트(인종분리)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은 종교적으로나 법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선 백인신도들이 대부분인 네덜란드개혁교회(DRC,Dutch Reformed Church)에서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아파트헤이트를 통한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는데, 이를테면 바벨탑 사건을 해석할때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이 야훼의 징벌로 흩어졌으니,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아시아계등의 유색인종들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했던 사례가 있다. 교회안에서도 정의와 평등의 실천은 '민감한','미묘한'등의 단어들을 통해 회피할 정도로 백인 기독교인들은 인종차별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제도적으로도 1961년 헌법개정, 20여개에 달하는 인종차별법안제정과 개정이 행해졌는데, 하나같이 흑인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악법들이었다. 이에 대해 흑인들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폭력항쟁으로 백인들의 부당한 지배와 차별에 저항했는데, 1961년 샤프빌 항쟁, 1976년 소웨토 항쟁, 1986년 인민항쟁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백인들은 흑인항쟁의 배후에 공산주의가 있다는 빨갱이 딱지 씌우기, 경찰과 정보기관의 탄압과 종족간 분쟁유도로 흑인들의 항쟁을 잔악하게 탄압했다. 남아공 기독교계에서도 백인들의 흑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에 저항했다.

1949년 백인 성직자들이 주도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ACC,South Africa Council of Churches)회의에서는 '다인종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기독교인)'이라는 주제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교육, 직업, 선거의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남아공 교회의 인종차별저항은 1980년대 가장 활발해졌는데, 흑인성직자인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남아공 성공회 케이프타운 전 교구장), 베이어 나우데,신학자 프랭크 치카네(현재 음베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에 의해 주도되었다.

카이로스 문서(Kairos Document)나 다마스커스 가는 길(Road to Damascus)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인종차별저항조직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평신도들도 인종차별 저항운동에 참여했는데, 수많은 정치지도자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기독교인 아니면 기독교계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신학계에서도 남아프리카 흑인신학을 통해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해석하여 인종차별 저항의식을 주제로 삼았다.

* 카이로스 문서(1985)
이 문서는 1985년 여름, 남아프리카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투옥되며 흑인도시들이 차례로 인종차별정권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던 상황속에서 이제는 더이상 피압박자로 살거나 압제자의 편에 서서 살기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로 한 30여명의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이 선언한 신앙고백서이다."교회에 대한 도전:남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신학적 논평" - 카이로스문서라는 제목을 가진 이 문서는 출판이후 각대륙에서 제2,제3의 카이로스문서들이 발표되었다.(라틴아메리카교회는 1990년에 중앙아메리카 카이로스문서를 발표하였고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폭력적팔레스테인 통치와 지배를 비판하는 팔레스테인 카이로스로 선언되었다

* 다마스카스문서(Road to Damascus-Kairos and Conversion: 1989)
이 문서는 1989년 남아프리카,남비아,엘살바도르,니카라과,과테말라,필리핀,한국,등 7개국의 신학자들이 제1세계의 억압자들에 대해서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사울이 다마스커스(다메섹)으로 가는 길 도중에 회개했던 것처럼, 참 크리스챤들을 박해하는 데서 회개중생하라는 내용의 신학적 선언을 한 것이다. 서구의 식민주의와 신제국주의의 확장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결탁되어 제3세계를 억압하는 크리스챤들은 배교자요,위선자요,이단이라는 선언을 하였다. 이 문서는 제1세계 크리스챤들이 저 갈등 전략과 전면적 전략을 선포하고서 문화적 방식까지를 총동원하여 제3세계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제1세계의 체계를 견지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참고 글 
이남섭 교수(한일장신대)  글 “제3세계신학을 보는 눈”
유태영 박사 “제3세계 신학으로서의 미국흑인신학의 기원과 방법”
정영화 선교사 “아프리카독립교회, 그들은 누구인가?” 
김상근 교수(연세대학교) 두란로 서원에 기고 한 글 "아프리카교회에서  무엇을 배울 것 인가?" 
http://www.duranno.com/moksin/ctg_detail.asp?CTS_ID=38267&CTS_YER=2005&CTS_MON=12&CTS_CTG_COD=11
주간 기독교: 김진아 기자(아프리카의 존 음비티(John S,Mbiti) “서구의 문화적 할례를 중단하라”
http://data.cnews.or.kr/1461/contents/hangdong/hangdong1461-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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