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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짐되면 안된다.세습반대 운동은 과정이 중요한다.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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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3  09: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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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짐되면 안된다. 

세습반대 운동은 과정이 중요하다.
명성세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원인이나 분석은 앞으로 할 기회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현재 이 사건의 발생 원인과 배경 그리고 반대운동의 흐름과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처음 정보를 접하는 분들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든데 워낙 많은 매체에서 취급들은 하지만 거의가 깊은 정보나 분석보다는 배끼기 경쟁보도를 하기 때문이다.  비대위도 그렇고 반대자들은 자기들의 언어와 실명으로 떳떳한 주장을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어서 기대어 가지 말고 당당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문제는 과격한 남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여  비꼬는 식의 세반운동은 안된다.  자기의 신앙과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는 필요하다. 그래야 반대자들의 논리가 무엇인지 명료해진다.   홍인식 목사나 김운용 교수 차정식 교수 처럼 당당하게 실명을 밝히고 하면 좋겠다.  우리 독자들을 위하여 여러번 한 얘기지만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요약해보려고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나' 라는 사람의 인식의 한계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이기에 절대적이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누구보다도 긴 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연구와 분석을 했다는 것만은 밝혀둔다. 이 글의 목적은 총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서로를 돌아 보고 접점을 찾아보라고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총회서 교단이 분열이야 되지는 않겠지만 좋치 않은 상처를 모두에게 줄 수 있다. 세반연에서는 총대들을 통하여 원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총회에서 오랜 활동을 한 분들이나 내 시각으로 보아도 그것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갈등의 기제나 후유증이 고스란히 교단의 것이 되어 그나마 이룩한 개혁의 성과는 갈길에 적신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는 잘못하다가 감정싸움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나올 수 있을 것인데 감정들을 잘 조절하고 말이나 글로 붙어야 할 것이다. 

대세는 세반이지만 말없는 다수도 중요하다.  거기다가 장로들의 태도도 변수다. 목사들 문제라고 외면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목사와 장로의 대결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미 봄노회에서 일단의 장로들이 목회자들이 집단화 하여 개 교회의 문제를 과도한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한바도 있다. 한 가지 확인해 둘 것은 나는 세습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운동의 목표나 방식에는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그런 논조로 인하여 예장뉴스를 같이 시작한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장뉴스의 독자층이 넓어졌고 관심사들도 다양하기에 한쪽 편에만 서서 보도를 하기에는 어렵다.  그렇다고 막말을 하는 분들도 있다는 데 그것은 자유다. 내가 그들이 하는 일을 대하여 뭐라고 하지 않듯이  나도 그런 예우를 받고 싶다.  나는 이제 운동가가 아니라 언론인이고 신문은 다양한 눈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폭넓은 사고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어진 과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교단이 잘되고 건강하게 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교회성을 옹호하되 건전한 비판자로 서고자 한다.

이떤 것이든 지 중간지대에서 보는 것은 힘들지만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명성교회의 문제는 우리교단의  정서와  상황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문제지만 사회법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아니기에 비판자도 있고 옹호자도 있고 중립자도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다양성을 거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얘을 들어 목적이 있는 운동단체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전략과 전술을 갖고 공격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 사회가 받아드릴 수 있는 제도와 틀안에서 해야 한다.  교회개개혁가들이 그런 관점에서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저항하고 회복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당연하지만 교회와 목회자의 품성에 맞는 정서와 방식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대형교회 그 자체가 죄인인 시대
한때 대형교회가 이룩한 교회성장의 신화를 상품화 하여 "교회성장의 비결"  이랍시고 커지고 싶어 안달이 난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불러서 폼을 잡고 가르치던 세미나가 유행인 때가 있었다.  기도가 부족하다, 전도가 부족하다, 열심이 없다는 등 별별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돈을 내고 앉아 있는 이들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 패러더임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잘만하면 교회성장의 신화가 실제로 이루워진 때다. 3맨 목회라는 소강석 목사는 맨땅에 맨몸으로 맨주먹으로 일어선 개척교회의 신화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성장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당시 그런 영웅들은 목회되고 말되고 힘도 있고 돈도 있으니 교권에도 진입하고 자기 써클들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영웅이 맨토가 되고 목회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은 상징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대다가는 욕을 먹는 시대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와 경제력 저하, 고령화 젊은 세대들의 교회 이탈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개척교회를 포함하여 교회는 전반적으로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출세의 사다리가 무너진지 오래다. 그래서 우리교단에서 나온 것이 바로 "마을목회" 다 모든 교회가 다 커지고 부흥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교회의 자리와 환경의 특성에 맞는 목회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갈곳이 없어 개척을 하고 자립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소형교회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이런 현상을 보면서 자라나는 젊은 목회자들과 신학생들로써는 아무리 지교회의 자유와 선택이라고 하여도 명성의 세습은 충분하게 분노를 주는 일이다.

더군다가 그것을 금하려고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을 무시되고 한쪽에서는 허락되는 재판국은 합법화한다는 구도에 대하여 불만들이 쌓이고 분출되면서 이것이 공적분노가 아닌 막말과 반감이 된 감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권위를 악마화하고 이것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라는 방식이 된 면도 있다. 거기다가 대형화가 되고 싶었으면서도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한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인한 질투심과 경쟁심도 한 몫을 한다. 또 이해관계에서 바라거나 단절로 인한 분풀이에 나름대로 세속의 사회에서 안전하고 고고하게 살아온 신학교 교수들의 미안함도 실어 체면유지해을 해보려는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개혁운동 구룹들은 하나의 목표로 설정하여 명성교회의 세습반대와 이의 철회을 통한 법치의 총회를 목표로 설정된 것이다.

대형교회에 대한 반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대기업 재벌 권력자들에 대한 부패와 타락상 정경유착등으로 공격을 받아왔고 실제로 하는 일들도 욕을 먹어 싸다. 국제관계에서 대기업도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기업군의 경영이나 인사 자녀들의 행태를 보면 성실하게 사는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것은 사실이다. 대형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호위호가 하면서 목회자랑으로 나돌면서 유익을 취하면서도 말로는 성자로,  빈자로 위장하고 속으로는 돈을 숭상하고 돈으로 조직과 사람을 지배한다는 면에서 대 교회는 대 재벌들과 다르지 않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대형교회의 목회자와 그의 실상은 존경과 덕망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교단별로 예을 들지 않터라도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의 비리와 횡령으로 인한 실형,  합동의 오정현 목사의 논문과 학력부정과 거짓말,  감리교회의 김홍도 목사의 여자문제와 횡령, 서류위조, 김장환 목사의 방송 사유화와 족벌운용등이다. 교회도 성장의 신화 못지 않게 그로 인한 비리와 허물과 반비례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명성교회나 김삼환 목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교회가 목회를 대물림한다는 데  좋게 보거나 간단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 장로교회의 당회장이 강대권 인사권 치리권등 3권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당회장권의 물림은 권력의 물림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교회들의 후계가 전임자들의 파워가 단절되지 않고 혈연적 정신적 인간적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있다. 그것을 추진하는 방식도 법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 더욱 화가난다.  “우리가 필요해서 한다는 데 뭐야” ?  가뜩이나 평소에 잠복된 불만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의 경우 하나만 확실히 하자면  김 부자가 처음부터 세습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그것이 더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의 번복으로 인한 지도자의 윤리적 책임론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불법을 피하기 위하여 편법으로 징검다리를 생각하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합병을 통한 세습으로 갔다가 다시 직접 청빙으로 간 것인데 이런  과정은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하려는 일단의 고민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명성교회로써는 모든 교회들이 다한 일, 그리고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사례들을 들어 무엇보다 교인들이 원하는 일을 했다는 다소 주관적인 주장에 몰입되어 있다.  지금 그렇게 흔들어도 요지부동을 하는 이유들 가운데는 바로 교회내부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정위' 나 최근 보도로 인하여 많은 정보가 교회로 유입되고 정확한 사실들이 회자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불만은 확산되는 것이고 그것은 순식간인데 세우는 것이 힘들지 무너지는 것은 잠깐이다.  교회가 흔들림 없단 것이 복은 복이다.  교인들이나 장로들이 반대하면 멀쩡한 목회도 힘든데 세습도 좋다고 하니  말다한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에게 바보라고 하고 그 교회를 떠나라고 주문을 하기도 하는 데 사실 그럴 필요까지 있는 가 하는 생각이다. 

여기서 한가지 기억할 것은 충분히 명성교회나 김삼환 목사에 대한 성공신화나 명예는 이미 무너졌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김 목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더 밟자는 얘긴데  그것은 감정이라고 본다.  하나만 생각해보자 한번도 실패하거나 누구에게 명령을 받아 본적이 없는 분 이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 적어도 그 세계에서는 통용되는 구조다. 그래서 이것을 인정하자는 말이 아니고 무슨 얘기인지?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법이나 정서는 우이독경이다.  

세반운동이 세습과 불법을 자행하는 교회들을 다 비판하고  매달릴 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명성교회는 한마디로 제대로 걸린 것이다.  세습반대의 최종판으로 임자를 만난 것이다.  세습비판의 대표선수로 지목되여 뭇매를 맞는 중이라고 본다. 그리고 명성교회로써도 이를 대처하고 풀어가는 방식도 구닥다리고  순수하기 까지 한데 장로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고 땜질 처방을 하는 식이다.  그러니  장로들이 누구를 만났다, 알고 있다, 약속을 했다는 식으로 충성경쟁을 하는 것이다. 누구는 자기가 재판국원을 만났느니 반은 넘어 왔느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우스게 소리가 재벌이라면 상속세라도 내는 데 그 교회가 거져 먹겠다는 것이냐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법은 만능이 아니다.
현재 우리교단에는 세습을 금한다는 법은 사실이다.  그 법의 취지와 의미는 대형교회가 이룩한 목회적 성과나 내용을 사유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교회성의 확립이다. 거기에는 대형교회의 전임자들이 보여온 교단내 폐해들과도 연관이 있다. 학연과 지연에 따른 돈 잔치와 편중된 지원, 혹은 생색내기, 한마디로 성경적으로 비판받는 맘몬에 대항 숭상을 부채질하고 이런 구조를 기업처럼 물려주고 은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교회에 남아서 상왕노릇을 하고 권력을 분점한다는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들로는 세습이라는 용어도 잘못이고 법도 없이 무조건 부모가 집이나 가산을 물려주듯이 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최소한의 절차(당회장, 회의체)을 거쳐서 상회의 허락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허락이라는 것이 현재 문제가 된 것이지만 이것도 대형교회의 메카니즘으로 강제는 아니지만 다수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구조이기에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가장한 다수의 폭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총회가 이 법을 제정할 당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명성교회를 표적으로 한 법이라는 것도 없는 소리가 아니다.  특히 분명하지 않은 법조항 문구로 인하여 논란이 되어 온점도 사실이다. 법적으로는 총회 헌법위가 해석한 상위법(교회와 교인의 양심의 자유와 지교회의 직원 선택권을 제한) 을 위반으로 위헌적(이후는 기본권 침해로 변경) 요소가 있다고 보아 이를 수정 개정 보완하라는 주문을 한다(101회기 헌법위원화) 그러나 이 내용을 받은 당시 임원회장 이성희 목사나 102회기 총회는 헌법개정 청원을 하지 않는 다.

이유는 아마 개정 법을 청원도 하기 전에 이미 명성교회에서는 이런 해석에 힘입어 합병을 하려고 하다가 다시 직접 청빙으로 선회를 하고 위임식까지 해버렸기에 입법절차도 없이 쟁점이 되버린 것도 이유다.  총대나 교단이 차분하게 이 문제를 향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논의보다 이미 저지러진 일에 찬반양론으로 갈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회는 꾸준하게 이 법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 데 102회기 헌법위는 28조 6항에 대하여 “은퇴하는” 것과 제정당시 “은퇴한자” 가 빠진 경위가 소급법이 될 수 없기에 삭제된 것에 착안하여 현행 “은퇴하는” 이라고 규정한 것은 해석상 논란이 있으니 수정해야 한다는 해석을 해서 총회 임원회에 올린다.

그러나 임원회장 최기학 목사는 명성사건이 이미 지교회 손을 떠나 노회가 파행되고 총회 재판국에 게류중이므로 이 해석을 그대로 받았다가는 큰 혼란이 있을 수 있고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반려한다. 그러나 헌법위는 다시 같은 해석을 내서 올린다. 그런 시점은 이 재판의 선고일인 8월 7일 다음 날이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는 예상을 엎고 원고가 패소되므로 명성교회의 김하나 목사 위임목사 청빙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온 교단과 사회가 뒤짚혔다. 헌법위배인 그 안이 아무리 행정재판이라고 하여도 재판국이 정면으로 부정된 것에 대한 분노들이다. 그러나 아직 판결문이 나오지 않아서 모르지만 어떤 법의 근거로 그렇게 했는 지를 따져보고 말은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이 재판에 참석하여 찬반행위를 한 재판관들이 자기들의 행위를 공개하고 사표를 낸 것은 정치적인 행위로 재판국의 윤리적 본분을 져버린 것이다.  한편 최기학 총회장은 법에 의하면  1번만 반려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위 해석을 보류(반려가 아닌) 한다. 그렇게 되니 총회장이나 임원회는 정서적으로 세습반대를 외쳐온 구룹과 교단법의 질서 확립이라는 다소 모호한 측의 입장에서 법의 준수를 위하여 위원회의 해석을 보류한 것에 대한 비판론이 일기 시작한다.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행위적으로 총회장의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앞으로 이 문제는 판단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 총회는 부서가 한일을 보고 받고 선포하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주장 때문이다.

본노와 감정은 운동이 아니다.
과거 운동은 시대의 모순과 억압에 대하여 분노와 좌절을 모아 운동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또 세반운동의 주류는 과거 우리교단의 운동권만이 아니다. 동남노회 비대위만 하여도 농촌지역분들이고 개혁과 같은 일에 이름을 낸 분들이 아니다. 가장 큰 조직인 통목연은 목회만 하는 순수한 분들이 많다.  거기다가 개척교회,중견 교회, 대형교회와 은퇴목사도 많다. 그렇게 각자의 출발점은 좀 다르지만 명성세습은 찰회되어야 하고 김하나 목사는 사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기다가 다른 교계언론과 이런 사건을 계기로 우리교단을 흔들고 거기서 떨어지는 이삭을 줍기 원하는 교회개혁 시민운동단체들에게는 왕건이 매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 이후 언론들의 비판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단체들에 대한 비리와 불법에 대하여 방송사별로 맡아서 비판의 날을 세운바 있다. 그런 언론들의 보도를 근거로 세반운동을 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김동호 목사의 인터뷰등이 문제다.  우리의 언어와 방식으로 일을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반우동이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공정재판과 제판국에 대한 압력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었고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그것은 노회의 손을 떠난 안이고 다른 노회의 일이니 막을 길이 없는 목회자들로써는 재판국의 판결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오고 그 재판에 임한 이들이 항의의 의미로 사표까지 제출하자 세습반대운동의 동력과 명분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명성교회가 뒤에서 금권이나 교권으로 이런 재판을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하면 운동의 판을 키운 다는 면에서 재판국원 사표는 감사한 일이지만 공교회의 직무를 감당한 이들의 이런 행동은 국원의 갈등으로 재판국의 신뢰붕괴와 교단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감정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막말을 하는 것이다.  심한 말을 모르는 평생을 산 분이 이번 현상에 대하여 “마음 껏 욕을 하고 싶다” 고 하는 말을 듣고 이 문제의 감정적 확산을 위한 선동성 발언이란 것도 있지만 실제로 이 분이 그 정도라면 그 감정이 크기가 대단한 것이다. 이는 불법을 합법으로 가장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세습반대운동 구룹이 문제로 삼는 세습의 주역이면서도 모든 개혁운동의 공격상징인 탈법적인 총합이 된 것에 대한 도전이며 슬픔이다.이러니 대상화한 목표가 더욱 가증스럽고 공교회의 질서를 헤치는 것이니 교단을 나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감정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힘으로 능으로 안되는 한계상황에서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도 있다.   거기다가 평소 고고한 삶을 살아오셨고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 않는 장신대 교수들까지 합류하니 큰 힘이 되었고 세반운동의 명분은 더 확실해졌고 앞으로 총대들만 움직이며 어떤 식으로든 명성교회를 총회에서 굴복시키거나 망신주워서 말을 듣던지 나가던지 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재판국원의 탄핵에서부터 재심국의 설치, 명성교회나 김부자에 대한 탄핵등도 고려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참기도 힘들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도 있다. 

따라서 그런 상처 다 받고 나가지 말고 차라리 지금 나가서 그런 감정까지는 가지 말자는 소리인지 모른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이뤄질지는 모르나 현재와 같은 열기는 총회에서 충분히 총대들의 마음을 움직 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런 경우가 안되도 그 정도 가면 사실 얼굴 들고 전 총회장 모임이나 더 이상얼굴들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  교단에서는 지워지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학생들이 김원로의 전총회장 직위 박탁이나 면직등을 추진하여 흠집이 더 크게 나면 더 이상 수모를 참을 수 없는 명성교회도 결국 모든 이들이 예상한 대로 이별을 수분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일을 얘측한 이들은 미리 교단을 나가라는 말을 했던 것인데 최근에는 치리와 권징을 받도록 못나가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데 이는 나가라는 말보다 더 한 말으로 들린다. 앞으로 9월 3일에 예고된 세반목회자 대회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이후 한 주후에 열리는 총회석장에서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한 총회의 중진들과 총대들이 어떤 판단을 하느 냐에 따라서 결판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기 전국 노회장 협의회는 끝이 났지만 차기 구성된 노회장 협의회장 단의 입장도 변수다.

법과 감정을 분리해야 한다.
지금 세반운동은 동력을 모으는 시간이니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던지 재판으로도 못꺽은 그 기세를 총회가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도 처음에는 교단을 탈퇴해야 한다고 하다가 비판을 받자 이번에는 명성을 혼내는 일을 재판국이 못하게 했으니 총회에서 마져 이를 제지 못하면 총회 불복운동을 하자고 하고 그것도 안되면 노회가 하게 하고 노회도 안되면 노회 불복 운동을 하자고 하기도 한다. 참 주문도 많고 감정도 많은 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라기는 세반운동이 이런 식으로 감정을 앞세우면 대중적 지지를 받기 어렵기에 힘들고 어렵게라도 목회자답고 교회다운 방식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 101기 헌법위는 이 조항을 개정하라는 해석을 하지만 총회는 이행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헌법에 세습방지법은 살아 있으니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법논리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법은 지켜져야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법의 정신과 입법취지에 다수가 동의하고 자구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법은 제정당시부터 표적입법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헌법해석위원회가 몇차례에 걸쳐서 개정 보완하라는 취지의 해석을 냈다는 면에서 그렇다. 102회기에 이어서 102회기도 역사 28조 6항은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총회장은 이 해석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해석은 해석이고 법은 살아있다“ 는 유명한 말을 한 것이다. 
   
                  * 헌법위 해석을 총회장이 보류 했다는 한국기독공보 기사
그러나 법은 상식이나 감정, 정서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법의 눈과 잣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법의 모호성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변화하고 첨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현행 28조 6항의 법이 헌법해석위와 총회 규칙부로 부터는 개정요청을 받고 있다는 것도 고려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이 사태로 인하여 교단을 걱정하는 분들은 이번에 차라리 명성교회가 패소를 했더라면 길이 열릴 수도 있었지 않았겠냐? 승소한 것이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진단을 들었다. 처지가 어려움에도 늘 이기는 방법으로는 동정론을 받을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세반운동의 주류는 아니지만 명성교회를 계속 까대면 결국 나가건지 내 쫒던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 아닌 차분한 논리로 이번 총회에서 헌법개정위가 가지고 나오는 안을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세반법에 대하여 헌법위는 상위법 위반이라고 했기 때문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장로교회는 감리교단과 다르게 지 교회의 자유권이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의 청빙이 장로교는 지 교회가 선택하고 상회가 인정해 주는 형식이지만 감리교회는 반파송 형식으로 감리사나 상회와 지 교회가 동등한 권한이 있다. 그런면에서 교회와 성도의 양심의 자유나 직원선택의 자유권이 충돌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 법이 기본권 침해라는 것도 아직 차별금지법이 입법되지 않았지만 특정한 사람들을 예우하거나 배제하는 법은  안된다는 의미다. 일반론으로 목사와 장로의 자녀는 안되고 집사와 권사의 자녀는 되고, 미자립은 되고 하는 것은 헌법규정이 아니라 다른 조례나 노회법에서 규정해야 맞는 다. 어떤 조항이 헌법이 되려면 그 구성원 다수가 손해를 입거나 이익을 본다는 사례가 있고 그런 법을 제정되지 않으면 공동체나 다수가 피해를 본다는 보고와 사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세반법의 적용을 받은 곳은 0.1 %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법을 만들기 시작하면 누더기 법이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법이 제안되고 적어도 1년은 전문가들이 연구와 검토가 있었어야 했다는 의미에서 졸속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이 작년 102회기 총회석상에서 동성애 반대법도 총대 발언 한번으로 법이 성문화 된 것에 대한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교단의 신학교교수들과 목회자 의사등 사회전문가들로 하여금 교단의 입장을 정하는 연구위원회가 서구의 사례와 국가법 교회의 현실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지금이라고 늦지 않았기에 이번 총회서라도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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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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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이쓰마
(223.XXX.XXX.74)
나는 찌라시다 라는 이야기를 이상하게 하네요ㅋ
명성 신문이라는 게 그렇다고 지워지나?

(2018-08-13 13:58:21)
나름중립
(223.XXX.XXX.74)
중립? 예장뉴스가? 유재무가?
ㅋㅋ
장신대징계문제
원주제일문제

명성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사에 중립을 지키고 있는가?
소가 웃는다
그저 저만 옳은거지
다른 이들은, 심지어 예전에 운동을 같이 했다는 이들조차 천치바보쯤으로 여기는
오만이 너에게 있는거 안보이니?

(2018-08-13 13: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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