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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교모' 교수들의 ‘동맹휴업’ 지지는 안해도 될 일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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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30  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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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교모' 교수들의 ‘동맹휴업’ 지지는 안해도 될 일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 않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데 아니라고 말하는 데는 용기와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신대 교수들중에는 개인적으로는 동기도 있고 존경하는 분도 있고 후배도 있다.  그간 세반운동에 대하여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오랜 동안 목회자운동을 하던 이들로 부터 비판도 받는 중이다. 그러나 '세교모' 든 '세반운동' 이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명성교회도 마찮가지다. 나는 세습을 비판하고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여러번 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거리 까지 나가서 바로잡아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는 다.  이 점이 누군가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 같다.     

동남노회 비대위도 섭섭해 하지만 나는 그들이 하는 일을 말리지 않는 다. 본질적으로눈 그들은 자기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김수원 목사는 역사적으로 그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사실 문제는 동남노회다. 거가서 해결이 안되고 나온 문제다. 교단을 생각하고 총회를 생각하면 이렇게 가는 것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나를 아끼는 분들이 이런 태도에 대하여 의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명성에 굴복한 것도 부역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언론으로 누구든지  언제든지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언론은 독자들로 부터 외면 받으면 문을 닫는 것이다.  감시하고 비판하는 한 존재하는 것이다.  세습반대가 정의고 귀한 일이지만 비판 받을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운동과정에서 오류와 오판을 받을 수 있다. 예장뉴스 기사가 자신과 다른 시각이면 그것에 불만을 삼을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생각과 유연함으로  가기를 바란다. 우리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는 운동의 대의론과 정의론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에 비하여 우리총회는 자정능력과 조직들이 건강하게 움직인다. 주무부서에 맡기고 가는 것이 정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와 심판자가 될 필요는 없다. 배우는 학생들이야 의미가 있다지만 게 어디까지란 말인가?  앞으로도 본질은 동지나 가는 방식은 달라야 하고 가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갈길이다.   

학생운동과 동맹휴업 
근대 교육 제도하의 학생들은 인간애·자유·평등의 가치를 지향하였고, 근대적 대중교육 초창기에는 일반 국민보다 지적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선구자적 사명감을 가졌다. 그러므로 학교 당국의 비교육적 처사와 사회·국가·민족적 불의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그를 통하여 일반 대중을 각성시켜 대규모 운동 단계로 확대시키려는 학생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동맹휴학은 시위와 더불어 학생운동 중 가장 급진적인 집단행동의 하나인 것은 수업일수 충족을 못할 경우 학사경고로 학생신분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 상호간의 연대를 통한 투쟁으로 시너지가 급상승한다. 동맹휴학은 학교를 넘어서 사회적 문제로 까지 학생들의 주장을 확산시킬 수 있으므로 그 효과가 클 뿐아니라 동시에 그 제재조치를 약화·무력화할 수 있는 상호 보장적인 안전장치 기능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집단행동인 학생운동이 가능한 결정적 조건은 학생들이 공유하는 신분적·사회적 성격의 동질성을 들 수 있다. 가치지향적 태도 외에도 신체적·정신적 성장 과정과 경제적·사회적 책임의 유예, 신분적·계급적 출신 등의 조건에서 동질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학생운동은 치열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맹휴학이 실패하면 큰 손해지만 성공하면 큰 도약과 성과를 동반한다.

오늘날에는 가치와 계급의 분화에 의하여 이러한 동질성이 상실되었으며, 일반인이 전통적으로 갖는 학생에 대한 인식과 학생들 스스로 지니는 사명감이 약화되고, 또한 학생운동에 대한 정부와 학교 당국의 통제가 가중됨에 따라 동맹휴학은 소멸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이후 학생운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해짐으로써 동맹휴학보다 시위가 전형적인 방법이 되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동행휴업사
동맹휴학의 역사는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의 권당(捲堂)에서부터 찾을 수 있지만, 특히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항일 민족운동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동맹휴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20년대 한국학생들은 일제 식민지라는 특수한 환경 하에서 3·1운동 후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항해서 또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다방면의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동맹휴학은 학원내의 사소한 문제로부터 발단이 되어 일제 식민지 노예교육에 대한 규탄, 나아가 총독부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발전하고 결국 민족독립을 부르짖는 민족운동의 성격으로 천착되어 한 학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한국인의 교육문제, 전 민족의 문제로 나타났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동맹휴학은 본질적인 면에서 항일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식민지 상황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인식하여 그에 대한 민족적 대항 자세를 확립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체였다. 따라서 학생들의 항일동맹휴학은 자유와 조국을 찾으려는 민족의식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역사적으로 민족과 국민의 고난을 철저히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며, 구속·퇴학·정학·체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맹휴학으로 일치단결하여 일제에 저항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동맹휴학은 민족사에 영원히 남아 평가받게 될 학생 운동으로, 젊은 세대의 항일독립운동이며 민족·민주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학생운동 역사   
1960년대 이후 프랑스, 미국 등 세계체제의 핵심부 국가들에서는 권위주의와 기성문화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것은 한 두 나라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일국적 차원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세계적 차원의 운동이었다. 이에는 베트남 전쟁 등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약진이 한 몫 했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8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광주항쟁이 동기가 되어 반제 반독재를 기치로 하는 학생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하여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분출하였다. 80년대 한국사회는 세계체제의 주변부라는 점에서 미국, 프랑스 등의 상황과 차별화되고 개발독재를 통한 경제성장이 가시화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5 60년대 서구의 호황기와 동일시된다.

전후 세대인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세계체제의 반주변부국가로서의 한국이 가지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요당해야 했으나 전쟁을 몸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내면화 할 기회가 없었다. 또한 권위주의적인 정치권력의 존재는 전후의 물질적 풍요와 정치적 억압사이의 괴리를 학생들이 느끼게끔 하였다고 볼 수 있다.

79년 유신체제의 붕괴는 부마항쟁, YH노조사건 등에 의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학생사회 내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무되는데 이는 '서울의 봄'과 같은 해방적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 등 군부에 의한 5.17쿠데타와 뒤이은 5.18은 그러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전국에는 다시 계엄령이 떨어지고 권위주의적 정치는 부활했다.

이전 학생운동의 심리적인 배경이 권위와 기성 문화에 대한 저항과 무대안적이라고도 할 만한 행동주의라면, 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이 발생한 심리적 배경은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과 이념이 행위 규범으로 내재화된 '이념화'였다. 그것을 학계에서는 신좌파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전대협은 88년의 통일운동 등을 통해 높은 사회적 영향력과 운동역량을 과시하면서 90년대 들어 소련이 붕괴하고 사회현상과 높은 소득은 학생운동을 소멸기로 들어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80년대 한국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던 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한 소위 '386 세대'가 사회 각 부문으로 진출하여 정치, 사회, 문화 각 부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80년대의 학생운동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장신대는 신학대라는 특수성으로 본격적인 운동의 주류에는 없었지만 내부적으로 지성과 신앙으로 끊임없이 몸부림 치는 인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신대 15기(59기)들은 당시 4.19 혁명 분위로 분출된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고취로 대거 입학한 일반대 출신 들러 질낮은 학교 강의 불만을 분출하여 ‘새시대 연구회’ 로 홍성현 금영균 손인웅 김종희 김종열 유경재 목사등이 만든 장신대 최초의 써클이다. 이들은 교파 연합차원으로 ‘기독교신풍회’ 운동등으로 발현되었다. 이후에도 교단의 목회에 대한 헌신을 위한 고민과 연구를 위하여 80년 초 ‘현대목회연구회’ 를 조직하고 활동한 조성기, 정태기, 김기복, 최양춘, 기현두 목사등이 있었다.

기독청년 운동을 경험하고 1980년 초에 입학하여 ‘ 현대신학연구회’ 를 조직한 76로 부터 77, 78기 등은 교권에 박제된 신학에서 자유롭게 학풍을 구도하면서 시대에 조응하는 목회자이며 운동가들이 되기를 노력했다. 학교가 가르쳐 주지 않는 신학에 대하여 공부한 첫 세대다. 이후 90년 이후의 운동은 개발과 번영의 붐으로 인한 학교이전등으로 노정된 이전투쟁에서 동맹휴학도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분위기는 지금과는 천양지차다.

장신대와 학생운동
장신대에서는 학생운동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하지만 1980년 이후 조성된 빈부격차나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에 저항할 수 없는 한계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신학 학술운동과 신분타파를 위한 민중적 사고와 삶의 지향, 낮은 곳으로의 선교와 민중선교와 민중교회 투신등으로 나타났다. 장신대는 교수와 학생신분이란 스승과 제자외에도 목사와 전도사라는 성직계급 구도였으며 당시 그런 가운데 나온 운동방식의 하나가 바로 ‘ 맹휴’ 다

혹자는 그때와 비교하여 지금의 ‘맹휴’ 는 그 결정 과정이나 목적이 잘못되었다는 지적도 한다. 학생들이 동료학생들이나 학교문제는 외면하고 외부문제로 ‘ 맹휴’ 까지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학생들이 수업후 다른 시간에 기도회나 단합대회도 아닌 수업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명분이 논란이 되는 것이다. 오히려 동료 학생들의 부당한 징계를 더 문제 삼아야 옳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칙에 있는 대로 학생 긴급총회에 공지하고 이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민주적인 투표로 ‘동맹휴학’ 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총회에 참석치 않는 학생들도 다수도 거부를 한 학생들도 없지 않은 데 736명이 참석하여 470명이 찬송했을 뿐이다. 민주적 결정은 사실지만 모든 학생들의 의사는 아니다. 명성세습 문제로 수업권을 강제로 박탈당한 선의의 피해자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앞으로 긴급총회에서 결정할 수 있는 매뉴얼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학생총회가 결정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특정 과목이나 교수에 대하여 학생들의 의견이라고 하여 거부할 수 있는 전례도 된 셈이다. 그것을 세교모 교수들이 지원과 협력을 한다는 어설픈 반응을 보인 것이 문제다.

따라서 배우는 학생들이 학교 문제외에 한국의 기독교 전반과 역사에 대하여 책임있는 주체로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비판하는 것은 모르나 단일사안(세습)에 대하여 동맹휴학을 할말큼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인가에 대해서는 교수들의 지도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다소 질서에 맞지 않는 다고 하여도 그러면서 성장하는 학생이라는 면에서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학생들의 동맹휴학은 그 이유로 내건 ‘명성세습’ 에 대한 반대나 저항의 의미만이 아니다. 최근 장신대를 공격하는 동성애 사안과 동료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몰인정한 징계와 총장의 계속적인 실책으로 인한 실망감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명성재판 판결에 대한 전국적인 저항과 총회을 앞두고 있을 목회자 대회등과 맞물려 나온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시작하자마자 '동맹휴업으로 세습에 저항하는 제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에 글에서 지지와 지원의 의사를 보인 것인 것이 화제다. 제자들에 대한 이런 행동을 단순한 격려와 공감정도가 아니라 다소 감정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환영을 표한 것은 많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돼서 순수하게 시작된 학생들의 세습반대 목적이 교수들의 개입으로 인하여 교권 정치적인 행위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학교와 타협한 ‘맹휴'  로 보여  
사실 이번에 맹휴를 지지하는 ‘세교모’ 교수들의 입장은 학생들에게는 큰 의미는 없다. 맹휴전후에 학생회는 이미 수업문제로 인한 불이익은 없다는 식으로 학교당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바 있다고 했다. 그러니 짜고 치는 고스돕이냐는 핀찮도 나왔다. 즉 이 수업거부로 학사경고나 정치적 외풍은 일단 학교당국이 보호를 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외부에서 추진중인 세반운동의 일환으로는 일단 판이 더 커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장신대 세교모 교수들이 앞장서서 총회 산하 신학대학의 교수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장신대의 맹휴를 지지하거나 여기서 어떤 운동의 전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것이 하루빨리 다른 6개의 지방 학교에서 일어나기를 원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반운동은 큰 흐름이 될 것이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을 지 모른다. 말안듣는 명성을 내쫒던지 망신을 주던지 하는 운동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운동을 모르는 소치다. 운동은 그 목표 못지 않게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진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말안듣는 개 교회를 직접 손볼 수는 없다. 그런 전례도 없고 다만 운동이라면 반드시 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쟁취하지 못하더라도 연대와 경험 그리고 만들어진 구도가 큰 성과이기에 꼭 이기기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총대들에게 기대는 것인데 이들은 현재 운동을 하는 이들과는 아주 이질적인 존재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정을 할 일도 아니지만 압박과 추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수들의 이번 일은 충분한 검토와 생각들이 있었는지 아쉽다. 그동안 명성교회 부자 세습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문제를 제기해오는 데 앞장선 ‘세교모’ 교수들로는 학생들의 동맹휴학이 그동안 지리멸멸한 세반운동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는 기회고 103회에서도 큰 변수로 호기가 된다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뭐 그런 생각조차 없이 ‘그냥 어떻게 되겠지 믿습니다‘ 라는 식이라면 더 문제지만......

그러나 교수란 자리가 어떤 곳인가 마음으로는 학생들의 일에 공감해도 그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는 신중해야 하는 위치다. 속으로는 맹휴가 반가운 일일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그러면 안된다고 해야 바른 교수로 바른 처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행동의 기저와 그 요인 결과에 대해서 낙관하고 맹휴로 얻을 가치에만 몰두하므로 이런 문제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수업 거부로 학생들이 얻을 이익?  
동맹휴학은 학생운동의 방법과 과정에서 택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했다.그러면 학생은 돈을 내고도 수업받을 권리를 손해보는 것이고 그래서 맹휴는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당국와 문교부 학부형등 사회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교원은 법에도 그렇고 어떠한 경우라도 학생들의 면학과 학습을 독려해야하는 운명적 자리에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공부는 해가면서 주장을 하라고 권하는 게 진정한 선생님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잘못하면 교수들이 학생들을 이용해 학교 밖의 문제를 학내로 가지고 왔다가 자기들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니 다시 학생들을 역 이용한 것으로 오인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세습문제는 엄밀히 보면 장신대 문제도 학생문제도 교단문제도 아닌 일개 교회와 노회의 문제이고 해 노회 관할이다. 그것이 소속 노회가 분열하고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하여 밖으로 나도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 당사자들이 재판을 걸었고 판결도 나왔다 다만 그 판결이 문제라는 것이다. 나도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당한 이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개혁이나 저항은 모든 것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총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해결할 지는 두고 볼일이지 총대들을 밀어 붙힐 일은 아니다. 재판과정이나 판결결과에 대하여 문제가 있다면 재론도 할 수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결정은 총대들이 한다
또 명성 세습문제에 대헤서는 이미 이번 103회 총회에 여러노회로부터 헌의가 올라와 있다. 한마디로 더 크게 다뤄달라는 요구를 하는 중인데 이것도 정도 껏 해야 한다. 지 교회들이야 성명서를 내던 뭐 자유지만 총회산하 직영신학교 교수들이 학교나 총회 현안도 아닌 문제에 이렇게 길게 가는 것은 무리다. 그렇게 관여를 하기 시작하면 질서가 문란해질 것이다.   따라서 다른 이들은 몰라도 교수들이라면 그 만큼 하셨으면 큰 일 하신 것으로 알고 자중해야 하는 데 누구 빽을 믿는 지 이번 일 까지 한다는 것은 걱정이다. 그것도 아니면 진짜 전원 사표내는 마음으로 명성교회 앞에서 가서 돗자리 깔고 달려들어서 해보던지 반대 하는 시늉만 한다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전에 장신대가 학내 문제로 학생들이 비슷한 집단행동을 했을 때 교수들중 일부가 동조를 했는 데 이게 양에 안찼는지 삭발로 동참을 한 분이 계셨다. 이후 이 교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 까? 결국은 다른 죄목으로 찍혀 나갔다. 그것만을 남긴 게 아닌다. 선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지지했던 교수들을 한마디로 병신들 만든 일이 있었다. 교수들은 학교 일을 열심하는 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무엇이든 교수들 다운 방식으로 하시면 되는 것이다.

학생들 수업거부를 잘한다고 할 문제는 아니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다 좋은 데 수업거부가 민주적절차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는 하지만 맘으로 대견해하고 지지와 후원을 넘어서는 액션은 결국 자기들에 부메랑이 될 것이다. 맹휴가 전체 학생들의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이번 문제도 결국은 임성빈 총장의 지도력의 한계라는 점이다.

총장과 학교 실책을 덥는 것 안되야
어쩌면 학교당국은 이번에 학생들의 이 맹휴가 동성애 문제와 계속되는 총장의 헛발질(동성애 홍보책자 발행, 여수 은파교회 설교)을 덮는 차원에서 호재일 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라면 순수하게 학생들만의 집회로 두웠어야 하는 데 세교모가 개입하므로 이제 물릴 수 없는 정치판이 된 감이 있다. 이번 재판을 신사참배에 견주고 교단 마크에 근조를 달고 하는 것은 좋으나 검은 정장들을 입고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은 걱정이다.   

이런 민감한 것은 외부 동문들은 모르나 공부를 가르쳐야 할 교수들은 공부안하고 학교 밖의 일로 맹휴을 하는 학생들에게 박수가 아니라 만류를 해야 한다. 이 행위는 학생들은 돈내고 수업못 듣는 일이지만 교수들은 강의안하고도 월급받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라면 누구라도 겉으로는 말리는 시늉을 해야지 잘한다고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게 바로 여러사람이 지적하는 임성빈 총장의 리더쉽 부재라는 것이다 이번 학생들의 맹휴의 의미는 다른 교단이나 기독교 NGO 언론들에게서는 대환영을 받고 인터뷰를 하고 칭찮을 들을지 모르지만 교단적으로는 다른 분위기다.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 총회가 입을 상처와 손해는 만만치 않다.  그런 뉴스를 지금 장신대가 계속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한 뒷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국가나 학교 재단들이 학생운동을 싫어하고 뭉치는 것을 버거워 하는 것은 청년 학생들이 합숙을 하거나 농성을 하게 되면 그 요구도 늘어난다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많은 교육의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선배들을 통하여 비형식적 교육을 통하여 의식화가 급진전되는 것이다. 그래서 첫 시작은 한 교수문제나 강의부실, 인권문제, 복지문제라도 결국은 학원자유화 사회민주화 그리고 재단비리등으로 전환된 예가 많고 끝내는 정치적 요구까지도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에도 명성세습문제지만 장신대에서 그 판이 크게 벌어지게 되서 장신대로써는 역사적으로 기여하는 일도 되지만 모험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그동안 눌렸거나 해소되지 않는 학내문제가 자연히 나올 수 밖에 없다.학생들이 재론을 요구한  징계문제나 학내 복지문제, 교수년봉, 총장 직선제나 추천제에 학생대표 참여등 봇물처럼 터져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반동성애 문제로 외부에서 계속하여 학생간 논쟁을 유도하는 흐름도 어떤 입장을 취하고 수업권을 침해받은 학생들의 반발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동맹휴업으로 세습에 저항하는 제자들에게 띄우는 편지

폭염으로 낮밤을 설쳤던 여름이 마침내 우리 곁을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어제는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시원한 가을바람을 재촉하는 비가 아차산 기슭을 적셨습니다. 그런데 장신대의 미스바 광장은 세습에 저항하며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우리 학생들의 목소리로 뜨겁게 달아있습니다.

8월 28일 개강 예배 후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입고 비상총회에 참여하였고 선한 뜻을 모아 교단총회가 열리는 9월 10일까지 동맹휴업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명성교회의 목회세습과 총회 재판국의 왜곡된 판단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교단 총회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여러분들의 강력한 뜻이 표출된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순수한 마음과 교회개혁의 불씨가 되려고 하는 결의에 찬 행동입니다. 1989년 학교이전 반대를 이유로 여러분의 선배들이 동맹휴업을 결행한지 29년 만에 다시 동맹휴업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교단의 현실에 대하여 우리 교수들도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가슴속의 눈물을 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들의 고유한 권리인 수업권마저 포기하면서까지 명성교회 부자세습의 철회를 위하여 용감하게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명성교회 세습을 용인한 부당한 판결을 되돌리기 위해 교단총회를 향하여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교모(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에 속한 우리 교수들은 지금 동맹휴업으로 세습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싸우고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응원을 보내는 바입니다. 수업권을 포기 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세습을 향한 저항에는 뜻을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교수들은 동맹 휴업에 참여한 여러분들을 돕고 지원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은 힘과 마음이 학생 여러분들의 선한 뜻과 함께 모여 커다란 변혁의 힘으로 터져 나오기를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필요한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의 귀한 발걸음을 통해 103회기 총회와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되기를 우리 교수들은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훗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또한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생과 제자로 기억되기 위하여 함께 나아갑시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2)

                                                             2018년 8월 30일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 소속 교수 일동
   
                       * 8.7 총회 재판국 판결에 대한 '세교모'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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