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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의 만남(EATW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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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0  10: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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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의 만남(EATWOT)

김정형 교수(서울대 철학과, 장신대 대학원, 카나다 죤 낙스,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Systematic and Philosophical Theology) Ph.D 

'분단 한국을 위한 평화의 신학'  에서 인용

통상적 이해에 따르면, 제1세계의 신학자들이 대체로 “보편신학”을 추구했다면, 1960년대부터 제3세계의 신학자들은 “상황신학”을 추구해왔다.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탈식민주의신학, 민중신학 등 20세기 후반 제3세계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상황신학들은 유럽과 북미의 주류 신학에 도전하고 그 권위를 상대화시켰으며, 서구의 주류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기 비판적 성찰을 시작하도록 자극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1983년 제네바에서 열린 제3세계신학자에큐메니칼협의회(Ecumenical Association of Third World Theologians: 이하 ‘EATWOT’) 제6차 대회에 특별히 주목한다. 이 대회는 EATWOT이 개최한 기존의 5차례의 대회와 달리 제3세계 신학자들이 제1세계에 속한 신학자들과 한 자리에 모이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필자는 이 역사적인 대화가 기독교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EATWOT에 속한 제3세계 신학자들이 제1세계에 속한 신학자들과 대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던가, 혹은 제1세계의 신학자들이 제3세계의 신학자들을 중요한 신학적 대화상대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양편 모두 불완전하고 편협한 신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EATWOT의 창설자인 서지오 토레스(Sergio Torres)는 앞서 언급한 제네바 대회에 대해 평가하면서 “제3세계 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자들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강조점은 연속성보다는 불연속성에 있다. 왜냐하면 제3세계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서구 신학을 자신들이 경험하는 상황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다.

토레스는 두 진영 사이의 차이점이 “서로 다른 상황과 도전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석한다. 제1세계 신학자들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줄곧 “신앙과 학문” 혹은 “믿음 없는 사람과의 대화”의 문제에 있었다면, 제3세계 신학자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생존”의 문제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토레스의 이 같은 진단은 제3세계와 제1세계에 속한 신학자들의 주장을 모두 상대화시키면서도 동시에 각각이 속한 고유한 상황 속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균형잡혀 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상황은 서로 다른 신학을 낳지만, 이때의 다름은 다른 신학을 틀리다고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호보완의 기회로 삼는다.

하지만, 토레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네바에서 열린 신학자대회는 사실상 불협화음, 좌절, 실망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제1세계 신학자들 안에서도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누가 제1세계를 대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한 대회 참가자들이 서론 다른 기대를 갖고 이 대화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제네바 대회에서 제3세계 신학자들은 서양의 신학자들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이고 도전적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제1세계 신학자들로부터 회개와 회심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펼친 사람은 엥엘베르트 므벵(Engelbert Mveng)이다. 그는 “신학은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서구 신학자들이 가진 “보편신학” 개념을 거부하는 한편, 서구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와 신앙을 독점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서양의 “복음화(evangelization)” 개념에 매우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면서, “제3세계가 처한 고난 앞에서 선교의 언어는 경멸과 교만과 지배의 언어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므벵는 기독교 복음의 탈문화화 혹은 탈서구화 및 제1세계 신학자들의 “회심”을 요구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EATWOT 제6차 제네바 대회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제1세계 신학자들 안에 자기 비판적 성찰을 더욱 부추겼다는 점이다. (사실 서구 신학자들의 자기 비판적 성찰은 이미 그 이전에 시작되었다.) 모든 서구 신학자들이 제3세계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 중 일부가 제3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신학적 사고방식 전체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별히 도로테 죌레(Dorothee Sölle)의 용기 있는 고백은 매우 인상적이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죄책감이다. (중략) 나의 조국은 식민지 백성들을 착취하고 땅을 훼손하는 일에 관여해 왔다.” 죄책 극복을 위한 죌레의 마지막 제안은 죄책 고백보다 더욱 인상적이다. “짐승의 뱃속에 저항집단들을 만드는 일이 새로운 선교적 과제가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로써 이제는 제3세계가 아니라 제1세계의 중심이 선교지로 이해된다. ​

비슷한 맥락에서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 역시 “유럽 중심의 기독교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면서 여섯 가지 명제를 제시하는데, 그 중에서 다섯 번째 명제가 가장 주목할 만하다. “가톨릭교회는 단일중심 문화의(culturally mono-centric) 교회에서 다중중심 문화의(culturally poly-centric) 세계교회로 변화하고 있다.” 마지막 명제에서 그는 이 같은 다중중심 문화를 저항과 해방의 문화와 연결시킨다.

그는 해방이 고유한 문화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해방을 “서구문명으로의 회심”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한다. 나아가 그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유럽 사회 내에서의 회심”을 언급한다. 요컨대, 죌레와 메츠 모두 제3세계 안에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제1세계 사회 속에서의 저항과 회심을 모든 인류의 해방을 위한 선결과제로 이해하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EATWOT 제6차 대회는 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자들 간의 대화를 기획하였다. 그 대화는 쉽게 전개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신학방법의 “잠정적인 원칙들”에 대하여 제3세계와 제1세계에 속한 신학자들 사이에 얼마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메르시 암바 오두요예(Mercy Amba Oduyoye)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들은 모두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신학자들(third way theologians)” 곧 신학함의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스스로를 이해하였다.

대회 참석자들은 신학의 방법, 소재, 주체, 주제 등에 대해서 대체적인 합의에 도달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신학의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들이 동의한 새로운 신학방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헌신이 신학에 앞선다는 확신이다. “신학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억압의 희생자들의 편에 서는 헌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헌신은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에 대한 헌신이기 때문에 헌신이 갖는 우선순위는 새로운 신학방법과 관련한 다른 여러 가지 주제들, 곧 신학의 주체로서 공동체의 중요성, 사회문화적 실재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 해방의 실천에 참여하는 일 등에 대한 강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소 거칠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전통 신학자들은 성경이나 전통에서 먼저 소위 보편적인 진리를 찾은 다음 그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키려고 했다면, 신학함의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신학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해방을 위해 먼저 헌신해야 하고 신학은 그 헌신에 대한 성찰 곧 이차적인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르쥬 카잘리(Georges Casalis)의 표현에 따르면, 전자는 “연역적” 방법을 따르는 신학자들이고, 후자는 “귀납적” 방법을 따르는 신학자들이다.
   
                      * 모니카 쿨만의 저서 책 표지
https://www.amazon.com/Making-Way-Out-Innovations-Religious/dp/0800662938

지금까지 살펴본 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자들의 역사적인 만남에 대한 소개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있는 한국교회의 신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우선, 한국교회의 많은 신학자들이 실상은 제3세계 신학자들보다 오히려 제1세계 신학자들의 편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자들의 상호비판적이고 상호보완적인 대화 속에서 서구의 주류 신학담론이 상대화된다는 사실은 서구 신학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많은 한국 신학자들에게 경종과 해방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져준다.

틸리히가 신학함에 있어 복음과 상황의 관계를 다소 추상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일러주었다면, 제3세계와 제1세계 신학자들의 대화는 우리에게 참다운 신학함을 위해서는 우리가 속한 구체적인 상황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고 도전한다.

다른 한편, 이처럼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형태의 상황신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서구 전통의 소위 보편신학과 구별되는 의미에서 통전적(holistic) 혹은 포용적(inclusive) 신학을 계속해서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다양한 “상황신학들”을 한데 모아두는 것만으로는 오늘날 기독교 신학의 과제를 완수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통전적 신학 혹은 포용적 신학은 서구의 전통신학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상황적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학을 포괄적인 의미에서 해방을 위한 투쟁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 이해하는 최근 상황신학의 이해는 신학을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서 보는 고전적 이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후자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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