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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총회(PCK)와 독일교회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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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8  22: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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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S, PCK, PROK 파트너십 협의회 파트너십 안에서의 도전과 기회들” (2019. 9. 28., Hotel Atrium)

             예장총회(PCK)와 독일교회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에 대한 성찰
이승열 목사(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 겸임교수, Dr. Theol. Diplom Diakoniewissenschaft)
   
 
1. 들어가는 말
오늘과 같이 EMS 40주년을 맞이하여 독일교회의 사랑과 도움으로 교회의 성장과 발전, 한국사회의 민주화의 발전, 사회개발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된 것에 대하여 먼저 독일교회에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1989년 가을학기부터 괴팅겐 대학교 신학부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 NCCK 장학위원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WCC 장학생으로 인정을 받음으로 독일교회 Diakonisches Werk(사회봉사국)의 에큐메니칼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하이델베르그대학으로 학교를 옮겨서 디아코니아를 전공하게 되었고, 대학에서의 강의와 목회 그리고 이어서 교단 총회사회봉사부 총무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에큐메니칼 디아코니아 연합기관인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유관기관인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의 사무총장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독일교회에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늘 감사한 마음과 사랑과 섬김의 열정에 대한 책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이 발제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적합한 인물이 있다고 본다. 먼저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독일교회에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다. 그것은 독일교회처럼 어떤 교단이나 기관에서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를 담당하는 실무자가 오랫동안 그 일을 맡아서 하지 못하고 사람이 자주 바뀐다는 점과 또한 관련된 자료와 문서와 기록이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보관되고 정리되어 역사자료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 실무자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역사자료로 남은 자료를 통해서 일관되고 발전적인 관계를 새롭게 형성해 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그러한 역사자료의 보관과 활용이라고 생각한다이제부터라도 그런 점에서 오늘의 자료가 역사자료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두 주간의 발제준비를 위한 짧은 시간에 오랜 기간 동안의 구체적인 역사자료와 내용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여 그 의미와 평가를 담기에는 너무나 여건과 능력의 부족, 연구도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했다결론적인 얘기지만 앞으로 교단과 독일교회 EMS, 그리고 EKD, EZE, Pfalz주교회(Landeskirche)등의 협력으로 박사학위논문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새시대를 전망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시대적 과제와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 시간 본인의 발제는 그래서 정확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전제하고 양해를 구한다. 독일 유학생활 10년을 통해서 직접적인 경험도 있고 가까이에서 지켜본 간접적인 경험도 있으며, 특별히 친 형제인 이삼열 교수의 삶과 그의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 독일에서의 민주화운동-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중심으로를 통해서, 그리고 영등포노회와 팔쯔주교회 그리고 가나장로교회와의 삼자에큐메니칼협력선교에 대한 논문을 쓴 이명석 선교사의 책 에큐메니칼 선교 이렇게 하면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경균 목사의 석사학위논문, EMS 인터넷 홈페이지 자료검색, 몇몇 분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한 자료 확인 등을 참고하면서 한독교회협의회, 팔쯔주교회와의 협력선교, EMS의 선교협력 프로젝트, EZE프로젝트 등 주요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확인된 자료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각주를 단 논문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소회와 같은 경험과 느낌을 소개하는 차원의 발제라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좀 더 학문적으로 전문적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족한 본인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 각주가 필요하신 분은 메일로 연락주세요(ds2sgt@daum.net
 
2. 한독교회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배경과 의미
오늘날의 한국과 독일의 관계는 1960년대의 열악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박정희 군사정권이 추진한 경공업 위주의 수출지향정책이 농촌붕괴현상을 초래한 이후 막대한 실업과 외화부족현상이 발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한국정부는 광부와 간호사와 같은 노동력을 해외로 송출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다. 반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놀라운 기적적인 경제발전으로 인하여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많은 취업의 기회가 보장된 상황에 힘든 육체노동을 회피하는 현상이 생겨서 그런 일자리에는 외국인 노동자(Gastarbeiter)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 현상을 겪고 있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광고에 46,000 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실업난이 심각했다. 매월 600 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서 부상과 휴유증이 컸다. 1963년에 광부(Werkbauarbeiter) 247명이 처음 독일에 도착했고 3년간 취업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으며, 1977년까지 8,395명이 광산에서 일을 했고, 간호사는 1965년부터 시작하여 1976년까지 모두 1371명이 독일로 왔다. 이들 대부분은 원래 광부가 아니라 극심한 실업난으로 허덕이는 한국을 벗어나고자 하는 고학력층이 많았으며 이들은 독일에서의 3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살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양국 간의 협정을 통해서 지속적인 체류가 불가능하도록 순환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이들의 기여는 한국사회의 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일사회에서도 평이 좋아서 계약을 연장하여 광부 60%가 남았고,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독일에 남아서 현재도 살고 있다. 몇 년 전 파독 6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도 했다.
 
독일에 일찍이 유학을 갔던 기장 측 소속 안병무 박사, 허혁 박사, 김철현 박사 등이 1965년부터 한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문제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강원용 목사께서 1965년부터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되는 때에 독일교회의 Schaff 감독과 Schmidt 박사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한국교회와 독일교회 EKD간의 교류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호스트가 되었고, EKDAussenamt(해외담당국)이 책임부서가 되어 나중에 사회봉사국 총재를 지낸 Rev. Dr. Theodo Schober, 샤프감독, 슈미트박사 등이 NCCK를 방문하여 나중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는 공식적으로 한독관계위원회가 신설되었다. 강원용 목사가 최초의 위원장, 김관석 목사 총무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면서 독일교회가 돕게 되었다.
 
3. 한독교회협의회
한독교회협의회는 1974625-28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제 1차 협의회가 이루어진 이후 지금까지 9차에 걸쳐서 열렸고 내년에 10차 협의회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한독교회협의회가 이루어지게 된 배경은 1971년에서 1972년 사이 안병무 박사의 수고와 자극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파독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과 부당한 대우 그리고 삶의 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광산촌 막장까지 내려가 보는 경험을 했고 그래서 그들의 삶의 환경과 조건을 개선해 주는 효과도 가져왔다고 한다.
2차 협의회는 197634-6일 수원 말씀의 집에서,
3차 협의회는 19781120-23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한국과 독일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고백이라는 주제로
4차 협의회는 198168-10일 서울에서 죄의 고백과 새로운 책임이라는 주제로
5차 협의회는 198443-7일 서베를린에서 민족의 삶이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서의 교회의 사명을 주제로
6차 협의회는 1987327-30일 서울 올림피아호텔에서 정의, 평화 및 창조의 통전을 주제로
7차 협의회는 199352-7독일 부란덴부르크주 바드사로우에서 통일과정 속의 교회의 역할- 한국과 독일의 경험과 과제를 주제로
8차 협의회는 200157-9, 수유리 크리스챤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화해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9차 협의회는 2011325-31일 독일 비텐베르그에서 부산총회를 향한 여정을 주제로 열렸다.
 
한독교회협의회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는 사실상 1970년대 한국의 정치현황이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통한 영구집권을 추진하여 국내외적으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고 남한의 민주화를 위한 야권의 정치지도자, 목회자, 선교단체, 기독지식인, 대학생들의 투쟁과 투옥과 고난의 상황이 있었다. 이러한 한국의 사회와 정치상황에 대하여 독일교회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돕는 참여가 있어서 한독교회협의회가 이루어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72년에는 독일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국내 상황을 염려하며 토론하는 세미나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그해 1017일에 유신체제가 선포되고 헌법의 폐지와 국회해산을 하며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수많은 정치, 종교지도자들이 구속되었고 반독재 저항운동이 국내외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박형규 목사와 여러 목회자들이 구속되었다. 독일교회에서는 구속자들을 돕고 저항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과 연대하겠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특별히 독일교회의 당시 서남독선교부(EMS)의 파울 슈나이스(Paul Schneiss) 목사와 함부르크의 독일 동아시아 선교위원회(DOAM:Die Deutsche Ostasienmission)의 게르하르트 프리츠(Gerhard Fritz) 목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시 NCCK총무인 김관석 목사와 한신대 교수 안병무 박사와 연락을 하면서 구속자 가족들에게 후원하는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WCC5,000 불을 보냈다.
 
독일에서는 동아시아선교부(DOAM)의 슈나이스 목사가 한국과 독일의 신학자,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이 시대의 신앙고백을 하는 연구모임(Klausur Tagung)을 열게 되었으며 19731122-25일 하일브론(Heilbronn)근처 바일스타인(Beilstein)의 기독교가족수양관(Haus der Kinderkirche)에서 한국과 독일의 교회지도자들이 함께 모이는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독일교회(EKD)의 선교부(Missionswerk) 안의 동아시아위원회(Ostasien Kommission)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나라들의 교회들을 돕고 협력하는 독일교회의 공식 선교기구인데 독일교회외무총장인 헬드(Held)박사를 위원장으로 서남독선교부(EMS), 베를린 선교부(Berlin Misssionswerk) 등 여러 지역선교단체의 동아시아 책임자들이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자문위원으로 장성환 목사와 이삼열 박사가 참여하였고 WCC에서 섬기고 있던 박상증 박사도 가끔 참여하였다고 한다.이후 독일에 거주 중이던 유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여기서 더 이상 다루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생략한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이후 서남독선교부(EMS)는 계속해서 매 2년마다 도시를 옮겨 다니며 동아시아의 4개국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그리고 독일의 선교회와 함께 동아시의 현안들을 중심으로 토론하는 세미나(Tagung)을 개최하여 독일에 거주하며 목회하는 목회자, 신학생들이 참여하여 토론하는 모임이 계속되었다. 본인은 남쪽 밧볼(Badaoll)에서 열렸던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상의 9차에 걸친 협의회는 개최된 기한이 일정하지 않았으나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독일과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또한 교회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마지막 9차 협의회가 있은 지 8년이 지났고 내년에 10차 협의회가 개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독교회협의회를 통한 긴밀한 현안과 논의의 이슈들에 대한 긴밀한 논의와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년 2020년은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30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칼스루에(Karlsruhe)에서 제11WCC총회가 개최된다. 한반도는 한국전쟁 휴전 67주년, 분단75주년이 된다. 한미간, 북미간, 남북간, 한일간, 미중간 외교적 관계가 자국 국익우선주의라고 하는 보호무역주의 입장에서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복잡한 외교적 경제적 셈법이 국제정치학적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화되며 이루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독간의 협력관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통일의 경험과 지혜와 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우리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프로세스에 유익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 참가자 단체 대표들 좌로부터 이홍정 총무, 변창배 총무, Klaus Rieth목사, 이재천 총무
4. EMS(복음선교연대)PCK
EMS(Die Evangelische Mission in Südwestdeutschland: 서남독교회선교회)1972년에 설립되었다.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고 신생 젊은 교회들이 설립되어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근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의 교회들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교류 협력하는 에큐메니칼 선교를 지향해왔다. 그런데 지난 2012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정관을 개정하여 이니셜은 같지만 내용은 달리하여 Evangelsche Mission in Solidarität 즉 복음선교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EMS3개 대륙에서 23개 개신교회와 5개 선교회와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비전은 당신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도 오소서라는 것을 홈페이지에서 발견했다.
EMS의 목표는 1). 신뢰, 회원, 강함과 네트워크 안에서 계속 성장하는 교회와 선교회의 성장하는 공동체, 2) EMS를 위한 그들의 수행하는 역할을 깨닫고 이것을 수행하는 회원, 3) EMS 공동체 안에서 책임성의 정당한 나눔, 4) EMS 사역의 모든 관점의 국제화, 5) EMS와의 협력과 EMS 내에서의 참가는 무엇보다도 청소년 중심으로 매력적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6) EMS는 에큐메니칼 네트워크 안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점의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EMS가 추구하고 있는 선교의 개념은 “EMS의 신학적인 방향성에서 선교는 창조 안에서, 인간과의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증언은 전체 인간에게 적용되는 정열적으로 함께 아파하고 변화시켜가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서의 응답과 참여이다. 특별히 상처받고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이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디아코니아적 의미를 담고 있는 선교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EMS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고 구주인 것과 선교하는 것에 대한 위탁의 성취를 이루는 것을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증거한다. 특별히 상처 받은 자, 빈민, 그리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하여, 상호간의 자격, 연대, 공동의 배움과 계획, 공동의 결정과 행동을 통하여, 자원, 재능, 그리고 능력의 한 부분을 통하여, EMS가 생동감 있는 파트너가 되는 것과 같이, 문화와 종교에 대한 주의 깊고 최고의 존경할만한 만남을 계속 향상시키고,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고 선교관을 구체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체적인 선교에 있어서의 지침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 우리는 공동의 선교적인 프로그램을 실현한다.
- 우리는 현장 앞의 회원교회들을 지원한다.
- EMS는 위기에 처한 그들의 회원들 편을 든다.
- 우리는 다른 교회의 선교적이고 디아코니아적인 사역에 동역자를 파송한다.
- 우리는 우리 회원들의 파트너십 사역을 동반한다.
- 우리는 에큐메니칼적인 삶을 향상시킨다.
- 우리는 문화간 교류를 돌본다.
- 우리는 우리 회원들의 파트너를 동행한다.
- 우리는 회원의 선교적 그리고 신학적인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향상시킨다.
- 우리는 디아코니아와 교육을 후원한다.
- EMS는 회원교회 안에서 빈곤투쟁, 창조의 보존, 정의와 평화의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위해 수단을 동원한다.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EMS는 서남독선교부의 의미로서 서남독일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선교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4개국의 교회들과의 교류협력적 선교와 아프리카 남미의 교회들과도 교류하며 협력하고 돕는 선교를 해왔다. 2년마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4개국 지도자 목회자와 유학생들이 독일교회 선교부와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다양한 주제들과 현안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선교적인 입장에서의 이해를 돕고 나누는 일들을 추진해 왔다. 본인이 참석했던 밧볼에서의 타궁에서는 베를린 선교부에서도 함께 참여하면서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를 지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 많은 유학생들이 독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대기업들이 독일에 지부를 두고 무역을 하게 되면서 많은 상사직원들도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큰 대도시 여러 곳에 상사직원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독일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나토군사령부 소속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미군과 결혼한 한국부인들 그리고 기존의 광부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자리를 잡고 일하고 있으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분들이 한인교회를 여러 곳에서 형성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독일 내에서 한인교회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은 기장(PROK)이 먼저 시작하여 독일교회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예장총회는 특별히 팔쯔주 주교회(Pfälzische Landeskirche)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를 해왔다. 남독일지역 Baden-Württemberg 주에서는 대표적으로 EMS 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스튜트가르트(Stuttgart)의 한인교회를 한국인 목회자가 목회를 하면서 튀빙엔(Tübingen) 한인교회와 괴핑엔(Göppingen) 한인교회, 튀빙엔 남쪽 국경 가까이에 있는 트로싱엔(Trossingen) 한인교회 등 네 교회를 순회하면서 목회를 하였다. 스튜트가르트나 튀빙엔에는 유학을 온 한국인 유학생들이 다수였고 괴핑엔에는 미군과 결혼한 한국인부인들이 소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서남독 지역의 하이델베르그 한인교회나 칼스루에 한인교회는 유학을 온 한국인목회자가 목회를 하지만 EMS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교회였다. 그러나 에어랑엔-뉘른베르그 한인교회와 뮌헨한인교회 두 교회를 순회목회를 하는 목회자 자리는 EMS와 밀접한 관계 속에서 목회를 했으며 이 두 지역의 목회자들은 독일교회가 목회자의 사례비를 지원하였다. 나중에는 한국교회가 지원하여 절반씩 부담하게 되었다. 에어랑엔-뉘른베르그와 뮌헨교회는 김종렬 목사, 최창선 목사, 고영은 목사 등이 뒤를 이었고, 스튜트가르트, 튀빙엔, 괴핑엔, 트로싱엔 지역 4개 한인교회는 서성환 목사, 박춘수 목사, 장승익 목사 등이 뒤를 이어 현재는 김태준 선교사가 그 뒤를 이어서 사역하고 있다. 김태준 선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독일에서는 130여개의 한인교회가 있지만 독일주교회에 속하여 계약을 맺고 한인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는 김태준 목사를 비롯하여 3명밖에 없다고 한다.감리교는 소수이지만 중서부 지역인 뒤셀도르프 본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 외 베를린, 괴팅엔, 하노버, 함부르크 등 여러 도시에는 한인교회들이 다수 생겨났고 유학을 온 목회자들이 주로 목회를 하게 되었다.
 
EMS에 소속된 팔쯔주 주교회(란다우:Landau 위치)는 예장총회와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는 1984년부터 시작되었다.를 위하여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Ökumenische Mitarbeiter)를 초청도 하고 파송도 하여 상호교단의 사역을 독일교회와 한국교회에 소개도 하고 필요한 프로젝트도 만들어서 지원하고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게 하였다.
 
첫 번째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로 독일 라인란드 팔쯔주교회가 예장총회 소속 목사를 초청한 것은 박창빈 목사였다. 이 당시 팔쯔주교회의 에큐메니칼선교 담당이었던 게르하르트 프리츠 목사가 이삼열 교수와 협의하여 박창빈 목사(1943-2014)를 초청하였으며, 총회사회부 총무를 지낸 박창빈 목사는 19858-198812월까지 만 3년을 란다우에서 거주하면서 팔쯔주교회 내 지역교회들을 방문하며 한국교회를 소개하였으며 독일어 습득과 더불어 독일교회와 독일문화를 경험하였다. 그는 독일어로 설교 몇 편을 준비하여 독일교회를 순방하면서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독일교회는 그를 통하여 한국기독교와 선교, 그리고 문화와 사회, 정치적인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박창빈 목사는 3년 후인 1988년 노태우 정부시절 본국으로 귀국하였고 이후 한아봉사회를 섬기며 인도차이나 반도의 4개국에서의 디아코니아 선교를 후원하는 사역에 집중하였다. 그후 그는 월드비전의 부회장 자격의 회장특별보좌관으로서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개발사업으로 16년 동안 씨감자 보급사업에 힘썼다.
 
두 번째 경우는 김옥순 목사이다. 예장총회의 여교역자협의회의 스탭으로 섬기던 그가 프리츠 목사와의 협의를 통해서 그는 1992928일부터 1995831일까지 팔쯔주 주교회의 초청으로 독일에 왔다. 원래는 노인요양원(Altenheim)에서의 실습 6개월 프로젝트로 독일을 오게 되었으나 도중에 디아코니아 공부를 하고 싶어 팔쯔주 주교회의 허락을 받아서 하이델베르그대학 신학부 디아코니연구소에서 디아코니아학 석사(Diakoniewissenschaftliche Diplom)학위를 취득했고 이어서 한국교회의 두레연구소 장학금을 받아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현재 한일장로회신학대학의 교수로 활동 중이다.
세 번째 경우는 황남덕 목사였다. 예장의 민중목회자협의회의 총무로 섬기며 민중교회인 작은교회운동에 힘썼던 그는 199610월부터 199712월까지 만하임(Mannheim)에 거주하면서 팔쯔주 주교회의 도시산업선교와 디아코니아 사역을 돌아보며 경험하며 배웠으나 조기에 귀국하여 아쉬움이 있다. 그후 그는 미국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해서 민중교회를 섬기다가 최근 일본에 총회파송선교사로 가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네 번째는 이순희 목사이다. 예장총회사회봉사부의 직원으로 섬기던 중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로 이순희 목사 유영경 목사 부부가 19988월부터 20037월까지 5년 동안 란다우에 거주하면서 한국교회를 소개하며 독일교회를 경험하며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EMS에서 한국교회 쪽으로 파송한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는 정확히 조사 확인이 되지 못한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확인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고 그들의 수고와 협력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서술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대략적인 소개에 그치게 됨을 아쉽게 생각한다.
1970년대에 도로테아 슈바이쩌(Pfarrerin Dorothea Schweizer:한국명 소혜자)목사를 시작으로 여러 명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들의 수고가 있었다. 기간은 1975-1985 그리고 1989-1991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기장총회의 EMS협력선교사로 활동하며, 신학연구소(KTSI)에서 동역했다. 특별히 그녀는 민주화운동에 협력했으며 나중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고 다시 와서 사역한 해가 1989년인지가 확실치 않다.
두 번째 선교사는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 두 개를 가지고 있는 볼프강 크뢰거(Pfar. Dr. Dr. Wolfgang Kröger)목사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EMS의 동역자로서 한신대학교와 신학연구소(KTSI)에서 사역을 감당했으며, 2005년에 암으로 별세하였다.
 
세 번째 EMS 선교사는 1985년에서 1991년에 온 에디트 뷀러트(Edith Wellert)이다. 그는 고제도 섬 애광원에서 많은 장애아동들을 섬긴 사역을 감당하였다.
 
네 번째 EMS선교사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고 수고를 많이 하고 은퇴한 루쯔 드레셔(Lutz Drescher: 한국명 도여수)이다. 그는 기장측 협력선교사로서19872월부터 19956월까지 8년여 생활하면서 상계동의 영은교회의 동역자로 사역하면서 상계동지역 철거민들과 함께 동거 동락하면서 민중들의 삶의 애환을 체험했으며 민중교회를 돕거나 적극적으로 한국교회에 협력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훗날에는 하이델베르그대학 디아코니아연구소에서 디플롬과정을 공부하고 계속해서 200110월부터 20164월까지 EMS 동아시아 관계의 책임자(Ostasien Verbindungsreferent)로서 한독교회협의회와 다양한 채널의 만남에 함께 하면서 특별히 통역으로 수고를 많이 했다. 그는 현재 은퇴하여 프라이부르그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EMS 선교사는 자비네 바우어(Pfarrerin Sabine Bauer:한국명 박사빈) 목사가 예장총회 측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로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와서 4년간 봉사하고 돌아갔다. 서울여자대학교에 적을 두고 주중에 2일간 독일어 교수로, 2일은 예장총회 소속 여교역자협의회의 여교역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하루는 총회에서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에 관한 사역을 돕는 일을 감당하였다. 또한 금호동에 있는 한 교회의 협동목사로 개교회를 섬겼고 당시까지 예장교단에는 여자목사 안수가 허락되지 못한 상황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국의 지방교회를 다니면서 여성목사안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감당하였다. 예장총회의 경우 여성목사안수문제는 1994년 총회에서 허락되어 이듬해 1995년에 노회수의를 거쳐 1996년부터 시행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23년이 되었다. 불행히도 택시에 의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중상을 입었고 독일로 귀국하여 EMS를 위해 사역을 감당하다가 건강 문제로 조금 일찍 은퇴하였다.
 
여섯 번째 EMS파송 협력선교사는 예르그 바루트(Pfr. Jörg Baruth:한국명 박용)목사이다. 그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기장 총회에서 동역하였으며 특별히 성남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협력하였으며, 1996년에서 2000년까지는 독일교회연합회(EKD)의 위탁으로 재한독일어권교회(EGDS)에서 목회사역을 위하여 50%를 자발적으로 봉사하였다.그는 김해성 목사와 더불어 18년 동안 외국인노동자선교에 힘썼다. 그는 한국어에 능통하여 상담과 예배설교도 가능했고 영어 상담도 잘했다고 한다. 기장총회에서는 너무나 능력 있고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요청을 했지만 재정의 어려움으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는 독일에서 경찰과 교도소의 교정선교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여건이 허락되면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덟 번째 EMS 파송 협력선교사는 프라싸도 라오(Pfr. Prasado Rao) 목사이다. 그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EMS의 위탁으로 한국에서 인도교회의 동역자로 사역을 감당하였다. 기장총회에서 협력하였는데 예장총회에서의 협력은 미확인이다.
 
아홉 번째 EMS 파송 협력선교사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기장총회에서 협력선교사로 사역을 한 에스더 그리더(Pfarrerin Esther Grieder) 목사이다. 그녀는 독일 EMS와 스위스선교회의 공동 파송으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주로 기장총회의 여성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열 번째 EMS의 파송 협력선교사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기장총회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로 수고한 카리나 슈마허(Ms. Karina Schumcher) 양이다. 주로 기장총회의 생태선교동역자로 생태교육과 교육자료의 제작과 제공 등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특별히 경북 영주의 내성천을 방문하고 난 뒤에 내성천의 매력에 빠져서 내성천 살리기운동의 활동가가 되었고 그 곳에서 운명적인 배우자(김용기)를 만나서 20184월에 결혼을 하고 현재까지 그 지역에서 살면서 생태학자로 생태연구와 활동가로 살고 있다.
 
참고로 베를린선교회(Berlin Misssionswerk)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두 선교사가 있는데 첫째는 1978년에서 1989년까지 우베 뷔씽어(Pfr. Uwe Wissinger) 목사이다. 그는 1984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베를린에서 KWG-Kirche의 목사로 사역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베를린선교회 파송선교사는 1992년부터 2000년까지의 말테 리노(Pfr. Dr. Malte Rhinow) 목사이다. 그는 기장총회 해외선교부에 협력선교사로 한신대학교 독문학과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2000년 이후부터는 EKD의 위임으로 40% 재한독일어권교회 목사로 사역하였으며 현재는 Evangelische - Lutherische Kirche in BayernMission Eine Welt 파송으로 기독교한국루터회로 파송을 받았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교회개발원원장, 2005년부터는 루터대학교의 실천신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예장총회에는 장청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독일 여자청년 애니카 슈매그너 양(Ms. Annika Schmegner)이 와서 기독청년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기독청년운동에 참여하며 경험하며 교류하고 있다.
 
EMS와의 협력선교 차원의 프로젝트 중에서 특별히 예장의 청년들을 기독교정신으로 양성하고 훈련시키는 사업을 지원한 프로젝트가 바로 평화의 사도프로젝트이다. 이것은 청년지도력양성프로그램으로서 독일교회의 지원금을 인건비로 쓰지 않고 전액 청년지도력 양성훈련비용으로만 사용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 예장총회 해양의료선교부 총무로 섬기고 있는 윤신영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1988년에 예장 장청 총무시절 EMS로부터 매년 1,350만원이 3년 동안 프리츠 목사를 통하여 전해졌으며, 모두 15회에 걸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기독청년들의 의식화 뿐 만 아니라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정세분석과 기독교사회주의사상에 이르기까지 교회 밖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시민은동, 사회운동, 환경운동, 노동운동, 지역사회운동 등 다양한 훈련을 시킬 수가 있었다. 시작은 당시 장청의 총무로 수고하였던 변창배 목사였고 오늘의 예장총회 사무총장으로까지 성장했으며 당시 훈련을 받았던 청년지도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교단의 훌륭한 인재들로 성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EMS와 예장총회는 꾸준히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적 차원에서 작은 소그룹들의 활성화, 훈련, 지도력개발, 등의 프로젝트를 지원해 왔다. 최근 프로젝트의 예를 보면 20133201412월 사이의 여성지도자 아카데미’(Womens’ Leadership Academy) 2013819-22일 까지 예장 7개 신학대학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을 강의한 교수들과 수강생 신대원생들이 함께 여름에 모여서 강의를 들으며 토론하고 훈련을 받는 오이코스 신학운동’(Oikos Summer School for Theological Education Movement)등이 있다.
 
예장총회사회봉사부가 지난 2011년에 발생한 시리아내전으로 인하여 수많은 시리아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난민들이 시리아를 탈출하여 이웃나라 이라크, 요르단, 터키, 등으로 목숨을 건지기 위해 긴급 피난민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에 예장총회사회봉사부는 2012년에 단독사업으로 요르단과 터키에 있는 총회파송선교사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여러 차례 시리아 난민구호사업에 힘쓴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 때에 EMS는 세계의 여러 파트너 교단에 시리아 난민촌에서의 난민 어린이 청소년 교육지원 프로젝트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며 우리 예장총회사회봉사부에서는 1만 불을 지원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예장총회와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는 팔쯔주 주교회와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는 더 이상 이상에서 소개한 형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협력선교로 패러다임이 변화되게 되었다. 즉 총회와 연관성을 직접 갖지 아니하고 노회로 사업을 이관하여 영등포노회와 팔쯔주와 아프리카 가나장로교회 볼타노회와 삼자간 협력선교의 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 세 노회가 한독가교회협력위원회’(Korea Germany Ghana Church Relations Committee:KGGCRC)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구체적인 예로는 가나에 2002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간 이명석 선교사가 가나에 컴퓨터 기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기숙사 설립운영, 수도 및 우물파기 사업, 가나신학생 유학프로그램, 장로회신학대학교와 가나 아크로피크리스톨러 신학대학원 교환교수협정 등의 협력사업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었다. 영등포노회와 팔쯔주교회가 재정후원을 함께 하여 운영을 하고, 때때로 영등포노회의 청년들이 자원봉사자로 일 년씩 가나에 가서 컴퓨터를 가르치며 선교사역을 돕는 단기선교사로 봉사자로 돕는 과정을 통해서 훈련을 받는 프로젝트로 발전해 갔다. 이러한 모델을 이명석 선교사는 선교학 석사학위논문(2012)으로 썼고, 에큐메니칼 선교 이렇게 하면 잘 할 수 있다-한국, 독일, 가나교회 삼자선교협력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여 우리들에게 잘 소개하고 있다.
 
5. EZE(독일개신교개발협력처: Die Evangelische Zentralstelle für Entwicklungshilfe)PCK
EZE1961년에 설립되어 독일개신교회연합회(EKD) 소속이면서도 독립적인 법인으로서 정부의 기금을 운영하는 독일개신교개발협력처이며,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교회를 통한 사회개발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디아코니아적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다. 특별히 예장총회와의 관계 속에서 EZE의 후원과 도움은 총회의 발전,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발전, 특별히 에큐메니칼 운동 차원에서 지대하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자세한 내용과 역사를 하나하나 추적 연구조사해서 과거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오늘까지의 성장과정의 평가 그리고 오늘날과 미래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상세하게 비교 평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도 이러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으니 어려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의 후진국나라의 사회개발을 돕는 사역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와 채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전문적인 연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나 우선 대략적인 자료의 수집과 평가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소개는 다만 지극히 부분적인 시작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EZE와의 관계와 도움은 총회사회봉사부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사회봉사부 총무시절 100년의 역사를 백서발간사업에 관계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해 둔 것이 최종적으로 결과물로 나왔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예장총회 사회부는 1978년에 상임 사업부서로 신설되었으며, 초대 총무로 정봉덕 장로께서 많은 수고를 했다. 첫해인 1978년에 제1,2회 사회문제연구세미나를 개최한 결과 이 세미나에서 논의된 실천방안을 실현하기 위하여 1978926일에 개최된 사회부 실행위원회의 결의를 거쳐 지역사회 개발요원 훈련계획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제출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통해 1979년부터 독일교회의 EZE의 기금을 지원받아서 그해 8월부터 지역사회개발을 통한 사회선교를 감당할 교회지도자 훈련이 시작되었다. 사회부는 총 2회에 걸쳐서 EZE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1차 프로젝트는 1979년부터 24차에 걸쳐 12년 동안 사회개발을 위한 지도자훈련을 실시하여 총 480명이 수료하여 사회개발을 통한 교회의 사회선교에 대한 책임을 확산시켰으며, 1차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에는 사회부와 숭실대학교 기독교사회연구소(소장 이삼열 교수)가 공동으로 개발한 기독교사회봉사목회자훈련이 실시되었다. EZE2차 프로젝트는 1차의 성과를 기반으로 3년간 진행되었는데 영등포, 대전, 충북, 대구, 경북, 부산, 태백, 전북, 춘천, 광주 및 전남지역에 사회선교협의회를 조직하여 교회가 지경사회 개발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게 하였고, 빈민선교 사업을 통해 사회개발 사업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사회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2차 프로젝트가 종결되는 시기인 78(1993) 총회시 디아코니아 담당 전문교역자를 교회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이 받아들여지는 데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1980년에는 연세대 도시문제연구소에서 빈민선교 실무자훈련을 받고 교회지도자 훈련1기 수료자인 박창빈 목사를 사회부간사로 채용하여 사회개발 지도자훈련과 사회선교협의회 조직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사회학적 이론적 근거 마련과 함께 강도 높은 현장훈련에 기초한 모델 개발과 현장 피드백에 이르는 통합적 전문교육훈련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그 내용과 성과에 있어서 본 교단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가장 모범적인 프로그램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회사회부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으로는 사회봉사전문훈련(목회자, 신학생, 평신도훈련)과 사회선교협의회 지도자훈련(협동간사), 그리고 사회선교훈련(빈민선교 목회자, 신대원 졸업생 및 재학생)이 있으며, 총회 사회부가 상설화 된 이후 정책부서로서 그 성격을 전환하기 까지 이 훈련분과 사업이 총회사회봉사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으로 평가되고 이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봉사 사업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 결과 대구 및 경북지역(1987), 대전 및 부산지역(1988), 영등포 태백(광산)지역(1989), 충북지역(1990), 전북지역(1993), 광주 및 전남지역(1994) 등에 지역사회선교협의회가 조직되었다.오늘날에도 그 영향과 전통을 이어서 총회사회봉사부는 7개 신학대학교와 연계하여 신대원생 사회선교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68개 노회의 사회봉사부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봉사지도자과정을 세미나로 진행하면서 해외(주로 동남아시아의 디아코니아 선교현장)에서의 현장탐방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다.
 
예장총회와의 중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강원도 태백광산촌 황지교회의 이정규 목사를 중심으로 한 태백사회선교프로젝트였다. 열악한 광산촌의 광부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교회의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섬김의 사명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1984년 이정규 목사, 정봉덕 장로, 박창빈 목사, 이삼열 교수 등이 태백사회복지선교회를 구성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독일교회가 처음에는 1천만 원 정도의 지원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이정규 목사의 수고로 1-2만불 정도의 지원액이 전달되었다. 독일교회가 지원한 재정으로 호주로부터 80여 마리의 양을 수입하여 키워서 양모로 이불을 만드는 사업도 했는데 이 사업이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당시 실무자가 독립하여 발전시켜서 큰 양모이불공장과 회사로 발전하여 큰 기업체가 되었다.오늘날에는 태백사회복지회로 발전하여 디아코니아정신으로 열악한 광산촌 탄광근로자와 가족들을 위한 무료양노원, 독거노인 도시락배달봉사, 주부대학, 노인대학, 공부방, 복지조합, 어린이집, 직업병관리센터 등을 운영했으며 광산촌의 직업병인 진폐증환자 후원과 탄광촌부녀자 지도사업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전개하였다.
 
EZE1985년에 방한한 Reinders 씨와 Schönberg 박사가 국내의 에큐메니칼 사회운동지도자들과 협의를 하여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발전을 위한 풀뿌리 소규머 운동조직들을 돕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198627일 김관석, 박형규, 이우정, 강문규, 오재식, 이효재, 이삼열 등 8인이 종로5가 계룡각에서 한국기독교사회발전위원회(기사발)’을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김관석 목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기사발이 시작되었다.한국기독교사회발전협회(기사발)은 우선적으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독대학을 육성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숭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에 각각 100만 불씩을 지원받아서 학교건물을 짓고 학교발전에 사용하였다. 숭실대학교는 사회봉사관을 지었고 거기에 기독교사회연구소(소장:이삼열 교수)를 설치 운영하면서 총회사회봉사부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고 사회봉사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시하였으며, 관련된 디아코니아 책도 발간하였다.
 
이후 기사발은 작은 민주화운동 그룹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재정을 지원하였다. 1993년에는 EZE의 지원으로 9개 여성단체의 전세금으로 구입한 장충동 여성평화의 집을 매각한 후 6개 여성단체(한국여성단체연합,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기독여민회, 여성교회, 살림문화원)이 주축이 되어 2006년 여성미래센터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이듬해 건물이 완공되어 12개의 단체(한국여성연합, 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연구소,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군인권연대,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가 입주하였다.그 외에도 작은 그룹들을 지원하는 가운데 기독교노동자연맹(기노련), 기독교농민회(기농회), 한독아동복지회 같은 30여 기관들을 후원하여 발전에 기여하였다.
EZE1990년대에 본에 있던 사무실과 스튜트가르트에 있던 사무실을 베를린으로 옮겨서 통합된 모습으로 디아코니아 사역을 통폐합하여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세계를 위한 빵”(Brot für die Welt)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안에 디아코니아사업단(Diakoniscehs Werk)을 소속시켰으며, 재난재해구호사업을 관장하는 Katastrofenhilfe와 함께 디아코니아 사업을 주도해 가고 있다. 그리고 EZE는 이름을 변경하여 EED(Evangelische Entwicklungs Dienst)로 하였다. 개신교개발봉사국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6. 나가는 말
EMS는 한국교회의 발전과 한국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단순한 재정지원으로만이 아니라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사를 파송하여 교류 협력하였고 한국교회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독일교회를 경험하며 한국교회를 소개하면서 상호 배우며 나누며 섬기는 진정한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에 앞장서 헌신해 온 것이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는 배우고 도움을 받은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본다. 오늘날 정치현황이나 사회현황이 많이 달라졌다. 민주화도 이루고, 인권운동이나 환경운동이나 교회발전도 상당부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독일교회의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는 더욱 공고한 협력관계와 형제자매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해갈 필요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한국에 있는 다수의 교단들과 교회들 그리고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경향이 상당히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어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갱신하고 개혁해 가야 할 사명을 가진 개신교회에 속한 교회들임에도 불구하고 갱신과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다. 모든 사회문제, 신앙문제에 결부된 가치관과 교회적 입장과 견해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좋은 영향과 본을 보이기 위해서 더욱 공고한 협력적 선교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라도 한국교회와 독일교회의 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져야 할 것이다. 30년 전 먼저 통일을 경험한 독일교회의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평화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외교적으로나 국제정치학적으로 주변 4대 강국과의 관계에서 시행착오나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더욱 발전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독일 국민들이 현재도 경험하고 있는 동서독 출신 국민들 사이에서 느끼고 존재하고 있는 갈등의 문제들과 사회통합의 문제들을 연구하고 지혜를 얻어서 한반도 평화통일과 평화체제의 실현에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해서 독일교회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이제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 남반구의 빈국들과 개발도상국들에게 나누며 베푸는 디아코니아적 협력선교의 장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며 필요도 너무나 많다. 다만 이 사역에는 디아코니아에 관한 이해와 디아코니아 선교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하며 연대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넷째는 한국교회와 독일교회가 앞으로도 더욱 서로 배우며 경험하며 지혜와 지식을 나누고 협력해야 할 분야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더 많은 분야에 더 많은 인재들을 양육하여 교회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평을 넓히고, 재정적 지원을 하며, 사람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교회의 위기현상도 심각하다.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도 심각하며, 교인의 감소현상과 재정의 악화도 한국교회의 위기현상 중 심각한 문제이다. 독일교회에도 교인의 감소와 신앙고백의 포기로 인한 교회세의 감소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힘써서 미래와 다음세대를 위하여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한독교회협의회를 통해서나 EMS와 한국교회의의 그동안 에큐메니칼 협력선교의 관계를 맺어온 예장총회와 기장총회 그리고 NCCK와의 협의회를 통해서 논의하고 개발하여 더욱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다섯째 현재적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사람이 부족하고 여유가 없어서 중요한 자료들의 보관과 기록 그리고 활용이 어려웠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소중한 자료들의 회복과 분석과 연구를 통해서 한독교회의 상호간의 관계와 협력의 의미들을 새롭게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호가의 협력이 필요하고 자료의 구입, 회복, 번역, 분석, 평가 등에 인적 투자와 재정적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협력선교를 위한 채널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의 발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마련을 위한 연구와 노력이 서로에게 있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 우리교단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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