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와 미국 사회 - 예장뉴스
예장뉴스
뉴스와 보도국제/분쟁/구호
’코로나19‘ 와 미국 사회
편집위원  |  oikos78@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4.08  20:51:45
트위터 페이스북

                                             ’코로나19‘ 와 미국 사회

Hyun Hur(허현 목사, 미국 메노나이트 아세안 화해 쎈타,ReconciliAsian)
미국에서 한인으로는 흔치 않게 메노나이트에서 사역하는 허현 목사의 최근 페이스 북 단상입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여 개인적 기록이지만 미국의 상황을 소개합니다.   

   
                                     * 월터 브르지만 교수와 대담중인 허현 목사
3월 17일
긴 글입니다. 교회와 예배 논쟁에 참여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이에 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리한 생각을 올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만 읽으시길.....

예배는 꼭 예배당에서 드려야 할까요?
1. 1970년대 초 선교학자 랄프 윈터는 사회학 용어인 modality와 sodality 개념을 교회이해에 적용했습니다. 정적인 지역교회(modality)와 움직이는 교회로서의 선교조직(sodality)이라는 두 가지 구조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미션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분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개념에 익숙한 분들이 대다수 일것이라 추정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교회(sodality)를 교회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설사 교회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지역교회에 방점을 찍고 그 하부적인 구조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선교단체는 교회가 아니라고 합니다. 주중에 선교단체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해도 주일에 지역교회에 가서 공예배를 드려야 주일성수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중에 드려지는 선교단체의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저는 아직도 공예배란 용어의 기원과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3. 움직이는 교회를 흩어진 교회라는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전히 방점은 oo교회라는 건물에서 모이는 지역교회에 찍히게 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지 건물이 아니라고, 그래서 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서 모이는 것이라고 말들은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건물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 건물은 성전이 되고, 일상으로 흩어진 교회는 무의식 속에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동의 장소와 남의 집은 주체부터 달라집니다. 하지만,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교회는 모임장소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입니다.

4. 그렇다면, 교회로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학이나 성서를 공부하신 분들은 사도행전을 예로 들며, 예배, 교육, 봉사, 선교, 교제라고 답할 겁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배 드리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혼자도 드릴 수 있습니다. 사막의 교부들도 홀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반드시 모이지 않아도 예배는 가능합니다. 예배가 교회모임의 핵심이라면 가나안 성도들도 얼마든지 홀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예배 중심으로 이해하면 이렇게 됩니다.

5. 그럼 교회로 모이는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제(koinonia)가 아닐까 합니다. 교제는 예배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물론 교제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타인-나'가 함께 교제할 때 자연스럽게 예배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반대 경우도 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예배와 교제의 구분선이 분명하지 않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그랬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성찬에서 역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옥스포드의 1세기 역사학자였던 알랜 크라이더 교수는 성찬의 교제가 예수의 성품을 그리스도인들의 심장에 새겼고, 그들의 예수 닮은 성품 때문에 역사상 가장 혹독한 핍박의 시기에 복음이 가장 빠르고 넓게 확산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6. 교제가 아닌 예배가 교회사역의 중심이 되니까 대형교회라는 개념이 가능해집니다. 교제 중심이 되면 대형교회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교제의 관점에서 보면 20년을 넘게 같은 교회를 다녀도 서로 말 한번 섞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같은 지역교인이라 부르기 어렵게 됩니다. 그저 대중집회에 함께 참여한 우주적 교회(이 얼마나 실체없는 말인가요)의 일원일 뿐입니다.

7. 예수는 잔치를 베풀며 하나님의 나라를 시현했는데, 그렇게 보면 성찬(식탁의 나눔)이야 말로 교제와 예배의 선이 모호해지는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부모와 부모, 신학자, 농부, 회사원, 목회자, 아이들까지 둘러 앉아 나누는 대화를 통해 교회교육은 자연스레 일어나며, 선교는 그 식탁에 초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제가 교회모임의 주된 이유가 될 경우, 지금까지 해 온 사역의 많은 부분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9. 예배당에 모여서 공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교회가 됩니다. 지역교회(Modality)와 움직이는 교회(sodality) 모두 교회입니다. 지역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모임이 안정되게 이루어지도록 정기적인 시간과 장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삶은 흩어진 교회로서 비정기적인 시간과 장소에서의 만남으로 채워집니다. 저는 이것을 사건으로서의 교회라고 합니다. 이런 만남들 역시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과의 만남(예배)도 일어나고, 교육과 봉사, 선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10. 로마제국에서 시작된 교회의 형태가 150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변함 없이 사제와 새크라멘트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형태론적 근본주의(morphological fundamentalism)라고 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 굳게 믿고 있는 지역교회와 공예배의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교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핍박으로 도망다녀야했기 때문에. 교회사역을 하느라 전생애를 드려 힘쓰고 있는 선후배 목사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 COVID-19을 계기로 교회가 그런 틀도 벗어나 교회형태에 대한 새로운 상상도 한 번 해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3월 17일
브루더호프 공동체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Plough(쟁기)는 우리시대 최고의 기독교 잡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용과 디자인 모두 맘에 든다. 기독교계의 JACOBIN 이라 불리워도 될 만큼. 혹은 그 반대로도...^^ 죽기 전에 한글로된 이런 매거진을 만났으면 좋겠다. 한국사람들 역량은 될텐데 문제는 역시 재정이 아닐까 싶다.

이번 2020년 봄 호의 주제는 Faith & Politics(신앙과 정치). 코넬 웨스트와 로버트 P. 죠지의 인터뷰,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 존 D. 로쓰 등의 글이 실렸다. Art and Poetry 섹션도 정말 볼만하다.
   
 
3월 18일
1. 내가 사는 파사데나 북쪽의 산동네는 아시안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다. 어제 달걀을 사기 위해 식품점들을 여러군데 돌아다녔지만 사재기들을 해서 진열대가 텅텅비어 있었다. 달걀 구입이 어려운 것보다 더 마음이 불편했던 건, 식품점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계산대에 줄서있는 사람들로부터 내게 쏟아지는 경계의 눈초리들이었다.

2. "차이나 바이러스". 트럼프가 COVID-19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초기대응을 잘못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에게 돌리기 위한 전략적 레이블링이다. "차이나 바이러스"란 말은 아시안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폭행이나 언행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비단 한국인, 중국인 뿐이겠는가). 아케이디아라는 중국인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남가주 도시에 총기판매가 급증했다는 것은 그 만큼 인종차별로 인한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3. 트럼프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무엇인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보복심에 호도되어 자기에게 향하는 비난을 피하자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다른 인종에 대한 인종차별과 폭행은 민주사회에서는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4.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 여권을 가진 미국 영주권자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자신을 포함해 33명을 살상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참사로 한국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보복이 있을까 두려웠고, 그래서 한인사회의 이름으로 촛불집회도 하고 성금도 보내고 했다. 이 일을 두고 미국내에서는 한인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조승희 개인의 문제를 한인사회는 너무 극단적 집단 죄책감을 가지고 과민반응 한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은 그랬다. 적어도 공식석상에서 불행한 일을 인종과 연결시켜 말하는 것(racial profiling)을 교양이 없고 야만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5. 그러나,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오고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여성 비하 발언을 해도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 갔다. 미국 복음주의를 포함한 많은 백인들이 하고 싶었던 말, 그동안 꾹꾹 속으로 눌러놓았던 백인우월주의를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하게 해주는 트럼프가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미국은 딱 트럼프 수준만큼으로 변했다.

6. 조승희 사건에 대응하는 버지니아 공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많이 놀랐던 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캠퍼스 안에 세운 추모비 들 중에 조승희의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이나 끝이 아닌 중간 어디 즈음에. 피해자들 보다 가해자인 그에게 집중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를 미국 사회의 피해자 중 하나로 보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회복적정의에서 던지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피해자가 누구인가, 어떤 피해가 일어났는가, 일어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일해야 할 것인가).

7. 한국에서도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레이블링을 통해 중국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가고, 그래야 초기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국민이 마스크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 때문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일어난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두려움을 자극해 보복(retaliation)으로 사람들을 끌고가는 리더 같지 않은 리더들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올해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3월 11일
코로나19이 공식적으로 판데믹이 되었다. 두 달 전 한국에서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는 현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겠지만, 이 여파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변화를 지구마을에 가져올 것이다. 물론 종교와 신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주 기독교인들 사이에 교회란 무엇이고 예배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토론이 휩쓸고 지나갔다.

새로운 사회(교회)를 꿈꾸는 이들과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이들, 그리고 그 양극단 사이 어느 곳인가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들은 역사의 순간순간 마다 늘상 있어왔다. 이 기간이 지나가면 무엇이 남을까 사뭇 궁금하다. 전에도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중환자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눈은 신생아실에서 어떤 아이가 태어나나 지켜보는 것, 역사가 내 세대에게 내어 준 자리가 아닐까 싶다,

나는 새로운 포도주부대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련다. 지금이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할 때이다. 사회적 근간이 흔들릴 때,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전통과 관습과 법과 프로토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 때야 바른 질문이 틈을 비집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와 만개하는 꽃처럼. 역사를 관통해 현자들은 그렇게 꽃을 피우고 그래서 처형된다.

"(그)가 확실한 지식 모두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곧 확고부동한 현실과 국가 토대의 근거가 되는 전통에 대한 반란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의 파괴적인 물음을 통해 그렇지 않아도 위험에 직면한 종교를 함몰시켜 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결국 그 자신은 궁극적인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사람이 마법에 몰린 젊은이들을 모았을 때, 그는 젊은이들을 위험으로 빠뜨리게 하는 타락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모든 상황을 검토해 본 결과 ( )시민들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 공민을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그에게 소송을 걸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과 젊은이들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발하였다."

3월 9일
오늘 전해들은 말, 버지니아주에서는 1인당 총기 1정만 구입할 수 있는 법안이 상정됨. 평생? 아니, 1인당 한 달에 총기 1정, 그나마 이게 규제법안이라고. 이런 걸 야만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총기 대량 구입해 대도시 마피아나 멕시코 카르텔에 팔아넘기면, 총기 구입한 깡패들이 국경지대를 장악해 결국 주민이나 월경(越境)하려는 자들을 억압 및 착취하는데 사용. 그렇게 보면 1인당 한 달에 총기 1정 구입은 무기 장사꾼들에겐 쪼금 아픈 법일 수도....

교단 출장차 오하이오에 다녀 온 아내가 해준 말. 그 동네 메노나이트 교회들에서는 총기규제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됨. 평화교회라고 자처하는 교단에서 조차도 총기규제는 총기구입을 전면금지하겠다는 것도 아님. 반자동소총이나 기관총 등의 대량살상용 총기의 개인구입을 규제하자는 것.

술은 21살이 넘어야 구입할 수 있는데 총기는 18살부터 구입할 수 있는 나라. 인구보다 일반 시민이 소유한 총이 더 많은 나라인 "미국의 신은 폭력"이라는 월터 윙크의 말이 맞다. 폭력숭배는 미국인들의 무의식 속에 흐르는 원주민들을 학살한 원죄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인지도
   
 
Mennonite Church USA statement on anti-Asian racism and COVID-19(4월 2일) 
              
반 아시아 인종 차별과 COVID-19에 관한 메노나이트 미국 교회

                                    성   명   서

COVID-19 전염병이 발생한 후 미국 메노나이트 교회(MCON)는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반아시아 차별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주의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라, 정의와 평화의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전염병에 대응하여 서로 연결하고 돌보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할 때 아시아계 미국인 공동체는 잘못 배치 된 분노의 표적이 될 우려가 있습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식료품 점, 은행, 공원, 심지어는 동네 거리에서도 폭력적으로 기침을 당하고, 뿌려지고, 찌르고, 찌르고, 눈부신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COVID-19를“중국 바이러스”라고 언급 할 때, 그것은 모든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니다. FBI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폭력의 증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의 길에 헌신함에 따라 우리는 외국인 혐오증과 희생 양식의 길을 거부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안이신 예수의 모범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의 육체에서 그는 두 그룹을 하나로 만들고 분할 벽, 즉 우리 사이의 적개심을 무너뜨렸습니다.” (에베소서 2:14 NRSV).

우리 모두는 서로 반대하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웃을 사랑할 기회가 있을 때 지금 반 인종 주의자가 되기 위해 우리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다음은 반 아시아 인종 차별에 반대 할 수 있는 몇 가지 근거입니다.

1. 누군가 인종차별 혐의로 COVID-19를 언급하면 ​​정정하십시오. 명명 문제. 세계 보건기구 (WHO)는 2015 년부터 국가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인간 감염성 질환의 명명 모범 사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리십시오.

2. COVID-19에 관해 아이들과 이야기 할 때 사람이나 나라를 고정시키는 것을 피하십시오. 어른들이 사람들 그룹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살아있는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에 영향을 줍니다. National School of School Psychologists의 유용한 팁을 통해 자녀와 대화 할 때 낙인과 인종차별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3. 이웃을 확인하십시오. 가게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노인 아시아계 미국인 이웃이 있다면 식료품을 사러 갈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아시아계 미국인 이웃과 교회 회원들에게 지역사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가치를 인정 받게 하십시오.

4. 편견을 확인하고 이름을 지정하십시오. 연구에 따르면 무언의 편견은 바뀔 수 있지만, 개인은 우선 자신의 편견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은 암묵적인 편견을 식별하고 줄이는 몇 가지 전술입니다.

추가 자료
ReconciliAsian는 로스 앤젤레스의 평화 센터로 한국과 아시아계 미국인 교회와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이 화해를 향한 통일, 정의 및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봉사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문화 개발 인벤토리 (IDI)는 이문화 역량을 측정하는 평가 도구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참여할 수있는 능력입니다. MC USA에는 여러 유자격 관리자가 있습니다.

Roots of Justice는 개인, 기관 및 시스템을 교육, 조직 및 갱신하기 위한 전략과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도록 노력합니다. COVID-19 당시 아시아계 미국인 크리스천 콜라보레이션의 반 아시아 인종 차별 선언문은 미국 내 반 아시아 인종 차별의 역사에 대한 추가 관점과 배경을 제공합니다. 
 
메노나이트 소개

메노나이트 교회는 16세기 근원적 종교개혁으로 알려진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한 분파이자 교단이다. 모진 박해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네덜란드 가톨릭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1.31.)에 의하여 재건 된 교파다.  

1525121, 콘라드 그레벨, 조지 브라우락, 펠릭스 만츠를 비롯한 여러 신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유아세례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하고, 서로에게 다시 세례를 베풂으로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시작하였다(재세례레파)  

그러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하는 오해로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가톨릭 정부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정부에 의해 박해를 받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유아세례 거부와 가톨릭의 성례전 중 주의 만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 문제였지만, 실제적으로는 가톨릭 및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 교황권을 상대로 반성직주의 및 반성례주의 주장, 성서 해석에 대한 권위 문제 등이 보다 더 크게 작용하였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나뱁티스트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도되기 전까지, 이 운동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로 있었다. 롤란 베인턴과 같은 학자들은 이 운동을 종교개혁의 좌파로 칭하였고 어떤 이들은 종교개혁의 볼셰비키라고 칭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은 종교개혁의 서자취급을 받았으며, 종교개혁의 비주류, 과격파 종교개혁자로 이해되었다. 그나마 20세기에 들어 하버드 대학의 조지 윌리엄스와 같은 학자에 의해 급진적 종교개혁으로 분류되었고, 이를 근원적 종교개혁으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특별히 미국 교회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던 헤롤드 벤더와 같은 메노나이트 학자에 의해 조금씩 주류교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저 유명한 아나뱁티스트 비전이라는 연설문은 1890년부터 시작된 아나뱁티스트 르네상스의 정점으로 기록 될 만큼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핵심가치를 잘 정리해준 문서로 인정받고 있다.  

핵심 가치는 1) 제자도 2) 평화 3) 공동체다 

메노나이트들이 믿는 제자도의 삶은 또한 개인적인 예수 따름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항상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를 강조한다. 이들에게 교회란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형제·자매됨을 말하며, 교회의 멤버는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기꺼이 서로에게 헌신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교회 공동체의 모델로, 메노나이트, 아미시, 부르더호프, 후터라이트들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교파 교회로써의 개인전도나 교회를 세우는 것 보다는 이들의 핵심가치이자 이 세계의 가장 절실한 평화교육을 위한 갈등과 화해를 추구하는 교육과 훈련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1980711일 루터란 세계 연맹에서 발표한 선언문 일부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아나뱁티스트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를 합법적으로 성문화했던 특정 조항들이 루터란 교회가 (1530) 채택했던 옥스버그 신앙고백 문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시의 아나뱁티스트를 정죄했던 죄목들이 오늘날 더 이상 (아나뱁티스트 교회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비록 두 종파간의 교리적인 차이점들이 아직까지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것 조차도 함께 극복할 수 있음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루터란 교회가 물려받은 공동의 유산을 축하하는 다른 모든 멤버 교회들을 감사와 인내의 마음으로 섬기고자 합니다.” 

루터란 교회(LWF)와 메노나이트 교회(MWC)가 취한 용서와 화해의 움직임은 두 교단을 대표하는 학자들의 공동 조사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의는 프랑스(1981-1984), 독일(1989-1992), 미국(2001-2004)에서도 아주 광범위하면서도 심도 있게 이어졌다.  

두 교회는 지난 과거를 돌아보았다. 현재에 필요한 용서를 선택하고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약속하였다. 지난 480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서 다가올 후손에게 더 이상 죄의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한 성명서 채택하였다. 그 성명서는 1) 16세기에 아나뱁티스트들에 대해 루터란들이 행한 폭력적인 박해에 대한 깊은 뉘우침과 슬픔을 표하고 2) 메노나이트 교인들에게 과거에 행해졌던 박해에 대한 잘못과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른 체 해왔던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3) 앞으로도 자신들이 했던 잘못들을 기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러한 용서의 여정을 통해 두 교회는 2010722LWF총회에서 루터교의 후손들이 메노나이트 후손들인 MWC 대표자들에게 용서 구함으로써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화해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 화해에 대하여 레이너 버크아르트는 종교개혁의 소용돌이로 상처받은 두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화해하게 되었다.”고 평하였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서로 미워하고 정죄했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역사 속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떻게 용서를 받고 용서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루터란과 메노나이트의 용서와 화해는 전 세계 교회에 용서와 화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메노나이트는 21세기를 살면서 제자도, 평화, 공동체를 강조하며 산다.

최근에는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1927-1997년 사)라는 메노나이트 출신이지만 미국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윤리학자가 사후에 오랜동안 자신의 제자들과 크라이언트들을 영적으로 포로를 삼아 자발적 구루밍 폭로되어 큰 충격이다.  "야수의 송곳이" 라는 책자로 보고된 큰 충격이다. 생전의 권위와 학문적 업적에 눌려 공개되지 못한 일들이 그 사후에 피해자들의 제기에 자체 조사로 드러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디고 보겠다. 인간은 누구나 죄에 노출되어 있어 제도적으로 이를 견재하는 씨스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가 저술한 "예수와 정치학" 이라는 책은 2000년 4월 20세기 미국을 움직인 100대 기독교 저작중 5위에 링크된 역작으로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https://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6361(뉴스엔죠이 기사)

[관련기사]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2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3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4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5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6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7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대표 : 이상진
발행인겸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행정메일: ds2sgt@aum.net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왕보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