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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이중직 논의 어디까지 왔나?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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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03  23: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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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촌, 언더우드와 폴 어반 카페을 중심으로             

목회자 이중직 문제는 우리교단만이 아니라 보수 교단들도 큰 화두다. 교단적으로는 이미 오랜 전에 시작된 일로 노회들 헌의도 있어 합법화하는 일만 남았다고 보여진다. 농촌에서의 이장목사와 사모, 농사짓기등 오래된 얘기다. 그외 기성 목회자들 중에도 생존차원에서 더 이상 손을 놓고 있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총회적으로는 그 필요성과 의의에 대한 신학적인 뒷 받침이 있어야 겠다. 따라서 유경험자 실패사례, 문제점등을 진솔하게 연구하고 내놔야 할 것이다.  

   
 

우리 교단 목사가 되려면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중 하나를 마치고 졸업하고 총회가 실시하는 목사 고시에 합격한 후 현장에서 2년간 목회 실습을 하고 시무지 청빙서가 있어야만 안수를 받을 수 있다. 그 외 총회가 인정하는 국내외 신학교나 교단소속의 안수자는 청목과정을 거쳐야만 입회를 허락한다.

안수를 받을 때는 시무지와 사례비 약정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데 목회자의 생활대책 때문이다. 이명할 때도 시무지 노회의 청빙서가 있어야만 한다. 그 외 기관이나 전도목사는 노회가 인정을 하는 곳에서 사역해야 한다. 그럼 허락받지 못한 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떻게 될까? 거짓말이라도 해야 한다.

임지 없는 목사, 그 책임은 누구
교회 관련 일이 아닌 곳도 그렇고 합법적인 시무처가 아닌 곳의 사역은 형식이라도 서류를 내야 무임이 안된다. 또 아무리 사역을 하고 싶더라도 시무지를 못구한 체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면직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복직할 때는 증인이 있어야 노회서 다시 허락받는 다. 번거로우니 무임이 안되야 한다.

현재 우리교단은 수습을 예측하지 않고 신학교를 늘려 학생들을 받고 목사 고시를 합격 시킨 결과 임지 보다 목사가 더 많아 무임을 양산하고 있다. 그렇게 나온게 이중직인데 아직 법제화되어 않고 있다. 하루빨리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반대도 만만치 않치만 통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현재 이 안은 몇 개노회에서 헌의되고 국내선교처로 넘어 가 연구중이다. 그러나 현장의 목회자들은 이미 운전이나 택배, 건설 노동, 단순 알바, 출판, 카페운영, 농촌에서는 이장등으로 이중직을 갖는 분들이 늘고 있다. 아예 전업 수준으로 일하는 이들도 없잖아 있는 것으로 안다.

   
                                          * 연대 앞 창천교회 인근 언더우드 카페

카페가 인기있는 이유
이중직 가운데 비교적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업종이 바로 카페다.  카페를 예배처소와 겸용하기도 하지만 카페을 직접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 정확한 실태는 모르지만 임지를 위하여 개척하려고 해도 높은 임대료 부담이 걱정이다. 그래서 다중을 만날 수 있는 카페를 통하여 사람들과 소통을 통한 출발로 삼자는 것이다. 

업종의 특성상 시간적으로 자유롭고 중,노동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는 장점이 있다. 독립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주간에는 카페를 주일에는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린다. 그 외 양평 ‘책보고 가게’(황인성목사) 처럼 책방이나 다른 업소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래되고 자리를 잡은 곳 중의 하나인 이대 앞 폴 어반(Paul Urban)은 우리교단 목사가 직접 운영한다. 그 분야서 이름도 났고 제빵이나 케익도 인정받고 있다. 도시 목회의 창시자 바울의 사역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마도 바울이라면 지금 어떤 식의 선교를 했을 까? 하는 고민의 산물로 보인다.

   
                                         * 이대 앞(이대역)의 폴 어반 카페

21세기 바울이라면?
초대 교회 창시자 바울은 이방인의 낮선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했는 데 지금과 같은 제도화된 교회를 세울 순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교회를 세우는 데는 재정적 부담은 있지만 법적 제약은 없다. 그러나 세우진 교회인들 자립은 커녕 생존하는 것 자체가 보장이 없고 그건 사실 하나님도 감당 못하실 일이다. 

폴어반은 이름 외에는 공간에 기독성을 표현하지 않았는 데 고객들에게 다른 것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독성을 표징으로가 아닌 그들이 찾는 편안함과 상품에서 느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고객들이 먹는 상품에 정직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믿음 좋은 분들이 하는 가업에는 으래 십자가나 성화로 ‘나는 믿는 자다’ 라는 표식을 한다. 그러나 이를 보는 고객이나 직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같지는 않아 보인다. 직원 예배를 드리고 자족하는 대표들도 봤는 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직원들을 그렇게 대우하거나 신앙적으로 바른 경영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표징을 달 때 우리는 더 부담이 되고 두려워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우리는 그동안 좋은 신앙인 하면 주일성수, 인가귀도, 물질생활, 전도생활으로 주로 외형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즉 보여지는 신앙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형식이지 내용은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내면의 경건과 정직이 중요한 거다.

   
                                  * 폴 어반은 원두 커피도 온라인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종교적 공간은 엄숙함이 있어야
목회란 전임을 해도 부족하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이중으로 한다는 게 사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 되는 건 아닐 까? 예배처소도 개인이 돈내서 임대해서 예배받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인지도 모르겠고, 이중직이나 예배처소에 대하여 현장의 요구가 크더라도 그간 장려하고 유지되어 온 예전이나 형식과 어떤지는 살펴야 한다.

아무 곳이나 공적인 예배장소가 돼서는 안되는 것이고 구별을 안하면 준비가 안된 것이다. 익숙한 예배에 변화가 오고 있다. 예배당이 왜 전통적으로는 회중은 강단만 바라보고 인도자에게 집중하토록 해야한다. 그런데 요즘은 누가 왔는 지 사람구경등으로 시선이 분산된다.

강단이란  최소한 휘장이나 장식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어느 농촌에 주민들과 친화력이 있는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동네 사람들을 초청했다. 교회정서에 익숙치 않으니 그럴 때는 최소한 강단도 가리고 초청의 의미도 부여하는 ‘00마을 주민 초청 마을잔치’ 라고 쓰고 강단을 가리면 서로에게 좋다,

교회라는 공간을 구분하고 불신자들에게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배려다. 따라서 카페에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예배시간 만큼은 어디를 바라봐야 하고 집중을 하도록 구별할 필요가 있다. 복식에도 성의를 갖추고 까운까지는 아니지만 예배자는 설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 동료의 개척교회에 담안유목사  

언더우드와 폴어반(paulurban.kr) 홈페이지

여기는 대만 국적의 담안유,서명보 목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카페다. 코로나19로 어렵지만 견디는 중이다. 그리고 공간은 교파가 다른 교회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이 직접 목회를 하지는 않는 데 안수받은 지도 얼마 안되고 안수 조건에 외국인에 대한 조항상 복잡한 문제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단 안수를 준 이상은 노회나 총회가 외국인들에게는 관심을 더 기우려야 할 일이다. 

이들은 그동안 한인 교회에서 사역했고 앞으로 인구나 선교대상으로 마지막 전도지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어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 대만과 홍콩을 포함하면 세계가  대상이다.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본토는 물론 서구와 아시아 세계적으로 없는 곳이 없어 어디로 가든지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꼭 현지에 가서만 사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 와 있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 중 지도자로 서원한 이들을 훈련시키고 후원하여 재 파송을 하는 것도 방안이다. 이미 몽골교회가 호잣트라는 이란인을 안수주어 터어키로 파송한 경험들이 있다.

담안유목사는 이번에 장신대서 실천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서명보목사도 목회상담을 전공했다.  이에 장신대나 교단 산하 신학대학들도 이런 외국인 학생을 재정적 도움대상으로가 아닌 선교사를 길러낸다는 마음으로 투자하고 현장 교회와 연계하여 사역지를 만들고 훈련시키는 것을 생각 해볼 때다.

   
 

교단 신학대학들 멀리보고 가자
오래전 김명용총장이 취임사에서 대 중국선교에 대한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의 인구나 영향력을 보아 적절한 트랜드라고 생각하면서도 기업들의 시장성만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비판적 성찰을 한 바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구호나 보내는 선교가 아니라 와 있는 이들을 교육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지금 장신대에 교수로 중국계 오동일교수가 와 있다. 이외에도 중국계 학생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장신대가 세계 장로교회에서 주목받는 것이 큰 시설이나 학생숫자가 아니라 세계교회를 바라보는 선교적인 비전이 되야 한다. 올해 퇴직한 일본인 낙운해교수도 그렇고 교수들의 다양성도 학문에 꼭 필요하다.

이미 장신대는 오래전 제 3세계 교육원을 운영하여 여기를 거쳐간 분들이 그 나라의 큰 지도자들이 된 경우가 많다. 지금도 우리가 여력이 있다면 외국인 교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어 훈련을 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동문의식을 갖고 세계선교를 위해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끝으로 담안유 목사가 소개한 논문이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 논문으로 ‘일하는 목회자들-개신교 목회자들의 부업 경험과 그에 따른 정체성의 분화’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김재완 전도사다. 이들은 로잔 YLGen이 주최한 게더링에서 만났게 되었고 교류중이란다. 이런 연구서가 신학교에서 있어야 하겠다.
담안유목사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의 선교적 비전을 지켜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런 일로 호구지책을 하게 둘게 아니라 여유가 되는 교회에서 사역을 맡겨 훈련을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선교적인 비전을 갖은 능력있는 교회가 더 공부도 하게 하고 연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분야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
담안유목사는 동료가 ‘일하는 목회자들’ 을 주제로 연구을 한 것에 대해서 특별한 마음을 갖게 되었는 데 자신이 바로 일하는 목회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농공상으로 노동은 천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중세도 그렇고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훈련은 기도와 노동 그리고 침묵이었다.

우리교단서도 산업선교(Urban Rural Mission) 사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훈련중 하나는 바로 일정한 육체노동이다. 그러나 이제는 훈련으로의 노동이 아닌 사역으로 ‘성직과 노동’ 을 양립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18세기 프랑스 카토릭교회의 외방선교회엔 노동사제(Priest Worker)가 존재했다.

벨기에의 죠셉 카르덴이라는 신부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서구가 반분할 때 노동자 청년들을 뺏기지 않기 위하여 JOC(카토릭노동청년회)이라는 조직을 한다. ‘레룸 노바룸’ 이라는 교황의 칙서에서 언급되었다. 이들을 지도하는 노동사목은 신부외에도 수녀들과 함께 여성 노동운동가 출신의 서원한 평복 수사들이 있었는 데 개신교 URM과 함께 활동을 한 바 있다.

   
 

이중직 합법화되야 
결론적으로 이중직 헌의가 102회 총회에 헌의 되었지만 아직 국내선교부에서 연구중으로 총회에 가서도 논란이 될 수도 있다. 목회라는 것이 전임을 해도 어려운 것인데 이 둘을 병행한다는 게 목회자로의 절도와 엄격성을 갖고 자유분망한 일상을 양립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어느 직종 어디까지를 겸직으로 볼 것인가에서부터 교인들이 갖는 혼란등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자비량으로 텐트 메이커로 사역했다고는 하지만 이후 교회사속에서 구별되운 성직자상과 비교하여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정신 노동에 속하는 교사나 의사, 전문직은 이미 통용되어 온지 오래다. 그러나 육체 노동에 따른 피로도와 이런 이중직으로 인한 교회의 문화와 개인의 느낌, 신학등 수반되는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위는 이 분야의 선험자들이나 해외 사례등 당야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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